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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시를 사랑하는 정치가 그립다

‘대통령 파면’이라는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선고는 끝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은 맞는 것 같다. 다음 대통령이 정해질 때까지는 상당한 혼란과 대결, 반목, 질시의 거친 소용돌이가 그치지 않고, 한층 더 심해질 것이라는 염려가 매우 크다. 성숙한 민주주의로 가는 성장통치고는 너무 크고 아픈 고통이다.   정치적, 법적으로는 일단 결론 지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국민들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마땅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엉뚱한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시(詩) 정신을 치유약으로 적극 활용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고 싶다. 좋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시를 비롯한 예술의 기능이라고 믿는 것이다. 시가 더럽고 살벌한 세상을 정화하는 일에 한몫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일까….   물론, 한국 정치판에는 이미 시가 들어와 있다. 실제로, 좋은 시(詩)들이 어지러운 정치판에 불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걱정스러운 소식도 들려온다.   뜬금없이 등장한 “호수에 뜬 달그림자를 쫓는 격”이라는 시 낭송이 화제가 되는가 싶더니, 지난 3.1절에는 정치인의 기념사에 민족시인 이육사의 시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꽃’, 홍준표 대구시장은 ‘절정’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고 한다. 다음 대통령 자리를 넘보는 이들의 일이라서 눈길을 끈다.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꽃’의 한 구절   ‘매운 계절(季節)의 챗죽(채찍)에 갈겨 / 마츰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 /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 서릿발 칼날진 그 우에 서다 /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볼밖에 /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보다’-‘절정’의 한 구절   이 시들은 암울한 일본강점기의 절망적이고 극한적인 상황을 끝끝내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이육사 시인의 절창으로 3.1절에는 썩 잘 어울리는 시다. 이 시를 빌려다 쓴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상황을 시에 빗대어 호소하려 한 모양이다. 하지만, 평소에 시와는 별 관계없이 싸움질만 일삼던 사람이 뜬금없이 멋진 시 구절을 읊어대니, 영 생뚱맞다.   물론, 시나 문학이 정치에 건강하게 참여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문학이 정치 현실과 무관할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 옛 벼슬아치들은 기본적인 시적, 인문학적 소양을 두루 갖춘 선비들이었다. 이방원과 정몽주처럼 시로 정치적 신념을 주고받는 멋을 알았다. 영국의 처칠 수상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평화상이 아니라 문학상이다.   한국에서도 실제로 정치 무대에서 활약한 문인이 많다. ‘꽃’의 시인 김춘수, ‘겨울공화국’의 양성우 시인, ‘인간시장’으로 유명한 김홍신 소설가 등이 금배지를 달았고,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은 의원에 장관을 지냈다. 소설가 김한길은 국회의원, 당 대표, 장관 등 여러 개의 감투를 쓴 정치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식 등단한 수필가로 대접받았다.   결국 문제는, 현란한 미사여구나 겉치레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시, 문학, 예술의 긍정적 힘을 어떻게 살리느냐에 달린 것이다. 즉, 절실한 진정성의 문제다. 시심(詩心)을 소중하게 받드는 정치지도자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희망사항이 너무 거창한가.   다 접어두고, 아주 작고 소박한 부탁 하나만 하고 싶다. 제발 막말, 험한 말, 헛소리, 욕지거리, 삿대질… 좀 그만하시라! 제발, 거짓말은 하지 마시라!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정치가 사랑 한국 정치판 정치적 상황 이육사 시인

2025-04-10

[문화산책] 오늘은 현금, 내일은 외상

옛날이야기 한 토막! 꽤나 오래전, 내가 다니던 미술대학 옆에는 미술재료를 파는 자그마한 가게가 있었다. 가게는 작지만 이름은 거창하게 〈별나라화방〉.   부잣집 따님들인 여학생들은 당연히 깔끔한 현찰 거래였지만, 가난한 남학생들은 외상 달기를 밥 먹듯이 했다. 학생증 맡기고 외상술 먹고, 라면이나 짜장면 먹고 다니던 시절이었으니, 외상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외상이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고, 그걸 견디다 못한 주인 양반이 꾀를 내서, 계산대 앞에 이렇게 쓴 쪽지를 붙였다.   ‘내일은 외상, 오늘은 현금’   대단한 명문장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기다리는 내일은 오지를 않고, 하루하루 매일매일이 오늘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항상 현금을 내라는 말씀이다. ‘외상 사절’이라고 야멸차게 선언하지 않고, 은근히 돌려 말하는 주인 양반의 애교(?)가 귀엽다고나 할까? 그 쪽지 덕에 정말 외상이 줄어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그 명문장이 별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우리는 그 명문장을 이렇게 새겨 읽었다. 그게 통하는 좋은 시절이었다.   ‘오늘은 외상, 내일은 현금’   이런 옛 생각이 불쑥 떠오른 것은, 돌아보니 내 인생이 ‘외상 인생’이었고, 그 빚을 갚을 길이 막막하다는 깨달음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철 늦은 반성….   생각해보자. 하늘님의 보살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부터 외상이었다. 공짜로 태어났으니 사람구실 제대로 하라는 말씀… 살면서 착실하게 갚으라는 깊은 뜻이 담긴 외상이었다. (하늘님이라는 낱말은 하나님과 하느님 사이의 갈등을 비켜가려는 생각으로 쓴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삶의 굽이굽이 고비고비마다 보살피고 거두어주신 은혜도 모두 외상이다. 학생증도 맡기지 않았는데, 아무런 담보도 없이 무이자로 그냥 베풀어주신 외상이다.   오늘날 우리 생활방식으로 굳어진 크레딧카드의 실체는 외상거래다. 악착같이 이자를 뜯어가는 외상이다. 그래도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속담처럼 거침없이 긁고 본다. 그리고는, 카드빚을 제때 갚으려 애를 쓴다. 이자가 아까워서… 그런데, 하늘님께서 주신 외상은 무이자인데도 갚을 생각을 않는다. 외상 빚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간다.   둘러보면, 온통 갚아야 할 외상투성이다. 부모님, 식구들, 친구들, 스승님, 어르신들…. 그 은혜에 기대어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빚을 갚기는커녕 사람노릇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있으니 참 딱하고 부끄럽다.   신세를 갚아야 할 외상이 너무도 많다. 물, 나무, 흙, 땅, 바위, 산, 공기, 바람, 햇살 같은 자연, 나라, 지구별, 우주, 시간, 공간… 제 몸을 먹을거리로 내주는 가축들, 달걀을 제공하는 닭… 벌레나 곤충 등… 끝이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나는 제일 먼저 자연에 진 외상부터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해,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자연재해 등 지금 지구별이 앓고 있는 심각한 병을 고치지 않으면 우리도 살 수 없다.   그동안 함부로 더럽히고 낭비한 죄를 엎드려 반성하고, 하나라도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하며 아껴 쓰는 작은 일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흔히 공해나 환경오염, 자연보호 같은 것은 워낙 거창한 문제라서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인식이 강해서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나 하나만이라도”라는 생각이 지구를 살리는 첫걸음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외상 갚는 마음으로 살면, 늘 겸손하고 부지런하게 살 수 있을 텐데….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현금 외상 외상 인생 외상 사절 외상 오늘

2025-04-03

[문화산책] “우리는 돈을 믿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하게 내세우는 상징적 구호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막가’로 읽었다가 공화당 지지자로부터 아주 호되게 혼이 났다. 눈이 가물거려서 MAGGA로 보이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막가’로 읽은 것인데….   된통 혼이 나고 혼자서 구시렁거리며 생각해보니 MAGGA라고 해도 크게 틀린 것 같지 않다. ‘미국을 다시 한번 위대하고 위대하게!’라고 강조하면 한층 박력이 있어 보이지 않나! 발음상으로도 ‘마가’보다는 ‘막가’가 힘차고 생동감 넘친다. 게다가 실제로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적인 행보를 보면 ‘막가’라는 말이 별로 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한다.   옆에 있던 한 어른이 점잖게 한 말씀 하시는데, 참 절묘하다. “아, 그건 MAG-A ‘막아’로 읽어야 해요. 그런 건 ‘막아’야 한다는 말씀!”   아무튼, 이 구호가 매력적인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의 오세훈 시장님께서 흉내 내서 ‘KOGA’라는 구호를 만들었다고 한다. 영어로는 ‘Korea Growth Again’, 우리말로는 ‘다시 성장하는 대한민국’이란다. 자기 ‘코가(KOGA)’ 석 자인 양반이 생각해낸 구호답다. 나는 도박에는 흥미가 없어서 ‘트럼프 카드’에는 관심이 없지만, 대통령 트럼프는 참 별난 것 같다.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의 연속이니….   국내에서 백인우월주의가 의심되는 정책을 펼치는 것도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세계 여러나라와 충돌 하는 것도 무척 걱정스럽다. 불법체류자 추방은 물론이고,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정책이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흑인, 히스패닉, 여성 참전용사 지우기에 이르고 있는 현실은 정말 심각한 일이다.   급기야는 미국 해병대의 상징이자, 미군 고난 극복의 상징으로 유명한 ‘이오지마(硫黃島) 성조기’ 사진이 국방부 홈페이지에서 돌연 삭제되는 일이 벌어졌다. 사진에 등장하는 세 병사 중 한 명이 원주민 헤이스 상병이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이와 함께 원주민 병사 소개와 사진도 함께 사라졌고, 나바호족의 암호병 활약상도 삭제됐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미국 역사상 두 번째 흑인 합참의장을 전격 경질한 바 있다. 백인우월주의에 기반을 둔 인종 차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까불지 말고 우리나라의 한 주로 들어와라!” 이런 말을 이웃 나라에 서슴없이 한다. 잔혹한 전쟁에 간신히 맞서고 있는 외국 대통령을 불러다 놓고, 너는 정장도 없느냐, 복장이 그게 뭐냐, 너희 나라에서 나오는 광물의 절반을 내놓으면 도와주마…. 이래서야 되는가? 품격이라곤 찾을 수 없다.   내가 가장 불안하고 두렵게 생각하는 것은 모든 일을 돈으로 따지는 독선이다. 그가 주장하는 ‘미국 우선주의’라는 것이 결국은 완전히 장사꾼 논리 아닌가. 세상에 공짜는 없고, 돈이 제일이라는 믿음…. 가령, 영주권을 돈 받고 팔겠다는 발상도 문제다. 돈 받고 방 빌려주는 여인숙 주인과 무엇이 다른가.   “미국이 믿는 신이 변하고 있다”는 한국 보수 언론 칼럼의 제목이 오늘의 현실을 잘 말해준다. “미국의 많은 결정이 ‘돈’과 ‘미국의 이익’에 따라 내려지는 지금, 미국의 정식 국가 표어인 ‘우리는 신을 믿습니다(In God We Trust)’가 ‘우리는 돈을 믿습니다(In Money We Trust)’로 바뀌어 버린 것 같다”는 지적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을 단순히 크고 강한 나라가 아니라, 세계를 이끄는 ‘위대하고, 특별한 나라’로 만든 가치는 건국 이래 미국 정신의 바탕을 이룬 기독교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그 신성한 가치를 돈으로 따질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될 것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들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해 ‘기브 앤드 테이크’를 요구하는 정책에는 찬성하기 어렵다. 인간은 단순히 경제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트럼프 대통령 대통령 트럼프 상징적 구호인

2025-03-27

[문화산책] 양간도와 북간도, 그 사이

양간도(洋間島). 소설 〈광장〉의 작가 최인훈 선생은 미국의 교포사회를 일러 ‘양간도’라고 불렀다. 북간도에 비유한 표현이다. 여러 가지로 음미하고 생각해볼 여지가 많은 그럴듯한 비유다.   양간도라는 말은 ‘미국과 한국 사이에 어정쩡하게 떠 있는 섬’ 정도의 뜻이겠다. 최인훈 작가는 이 말을 미주 한인사회를 낮잡아보는 투로 사용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꼭 부정적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북간도에서 태어나서 양간도에서 살고 있는 중생인지라, 두 이름 사이의 상징적 의미를 비교해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간도(間島)는 글자 그대로 ‘사잇섬’이다. 사전의 설명을 빌리면, 간도는 압록강 상류와 두만강 북쪽의 조선인 거주 지역을 일컫는 말로, 일반적으로 간도라 하면 현재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 지역을 가리키며, 두만강 북쪽인 연변 지역을 ‘북간도’, 그 서쪽인 압록강 북쪽 지역을 ‘서간도’라 부르기도 한다.   널리 알려진 대로, 북간도는 일제강점기 조국 독립운동의 중요한 거점이자 온상이었다. 많은 독립투사들이 이곳에서 힘을 얻었고, 후원을 받았다. 예를 들어, ‘일송정 푸른 솔은…’으로 시작되는 가곡 〈선구자〉는 만주(특히 북간도)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독립군을 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란강, 용두레 우물가, 용문교, 용주사, 비암산… 이 노래의 원래 제목은 〈용정의 노래〉였다.   그 밖에도 봉오동 전투, 청산리 대첩, 15만원 탈취사건, 신흥무관학교 등… 북간도는 종교와 파벌을 넘어선 대단결을 이루어낸 터전이었다.   또한, 간도는 우리 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많은 인재를 길러낸 곳이기도 하다. 악랄한 일제 치하에서 신음하던 조선과는 달리 일찍이 개화된 이곳에는 명동학교, 은진중학교, 대성중학교, 명신여중학교, 광명중학교 등 여러 곳의 학교와 교회가 세워져, 서양 선교사들이 들여온 근대식 교육으로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그 중심에 정신적 지도자 김약연 목사가 있었다.   ‘별의 시인’ 윤동주를 비롯하여, 문익환 목사, 독립투사 송몽규, 영화 〈아리랑〉의 나운규 감독 등이 여기서 공부했다. 강원룡 목사, 모윤숙 시인, 강경애 소설가 등도 이곳 출신이다. 잠시 거쳐간 이는 훨씬 더 많다.   연변 조선족 사람들은 이곳의 우리 이민문화사를 산업으로 만들고, 문화테마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다. 명동촌과 용정 일대에 윤동주 생가와 명동교회. 명동소학교 등이 복원되어 있고, 윤동주 기념관, 연변조선족박물관도 지었다.   이에 비해, 태평양 건너 양간도 주민인 우리들에게는 그 옛날 북간도에서와 같은 절박감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제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피맺힌 안쓰러움이나 허망함도 없다. 잘 먹고 잘살아보겠다고 제 발로 걸어온 땅이니 서러움을 마음껏 드러낼 수도 없다.   지금 우리에게는 북간도에서처럼 독립운동이나 조국광복 같은 뚜렷한 목표도 없다. 물론 미국에서도 초기 이민의 경우에는 조국 독립이라는 커다란 구심점이 있었다. 그것을 향해 하나로 뭉칠 수 있었고, 피땀 흘려 번 돈을 아낌없이 나라에 바치는 것을 당연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뜨거움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뜨거운 구심점도 공동체 의식, 공동의 목표도 없다. 오로지 개인적 행복 챙기기에 바쁘다. 그래서 지금은 얼음짱 세상이다. 차디찬 땅 위에서 무슨 나무 한 그루인들 제대로 키우랴.   이민은 오늘날 유일하게 남아있는 합법적인 영토확장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영토확장을 위해서는 마음을 열어 현실을 똑바로 파악하는 눈이 필요하다. 그 위에 우리 나름의 문화전통을 세워야 비로소 우리의 삶이 넓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한 마음으로 광복 80주년을 맞는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양간도 북간도 연변 지역 연변 조선족 압록강 북쪽

2025-03-20

[문화산책] 페미니즘 예술에 거는 기대

〈페미니즘 미술 읽기〉라는 두툼한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저항과 탈주’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은 1980년대 이후 반세기 동안 한국의 여성미술가들이 이룩한 성과를 보여주는 여성적 시간의 지형도다.   김홍희 씨가 오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쓴 도전적 저술인 이 책은 44명의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세계를 페미니즘이 당면한 15가지 화두로 나누어 진지하게 탐구하고 있다. 차학경, 민영순, 김원숙, 윤진미 등 미주 한인작가들을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어서 반갑다.   저자 김홍희 씨는 지난 삼십여 년간 큐레이터, 평론가로 미술 현장에 몸담아 온 이 분야의 독보적 전문가다. 한국 미술사에 중요하게 기록될 많은 전시회를 기획한 독립 큐레이터이며, 경기도미술관 관장,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을 역임했다. 광주비엔날레 총감독,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카셀도큐멘타 예술감독, 홍대 미대 교수 등을 지냈고, 현재는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이다.   쉽게 술술 읽히는 책이 아니라서, 제대로 읽으려면 한참 걸릴 것 같다. 그래도 도 닦는 심정으로 읽고 있다. 오래 관심을 가져온 주제이기도 하고,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존중하고 싶어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머지않아 여성시대가 열릴 것이고, 그 시작은 예술부터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예술이라는 낱말은 근원적으로 ‘여성명사’다. 예술이란 결국 생명을 낳아 기르는 일이라는 말이다.   페미니즘 예술에 대한 논의는 이미 가부장적 가치관과 남성 중심의 문화 권력에 맞서 싸우는 단계를 넘어섰다. 물론, 아직도 불평등이 완고하게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예술작품에서 남녀를 구분하는 일은 무의미해졌다.   김혜순 시인은 이 책의 발문에서 “여성 미술가들에게는 모델이 없고, 거장이 없으며, 본보기가 없다”고 지적했다. 정말 그런가? 빼어난 여성 예술가 몇 명의 이름만으로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한국의 예를 들어본다.   ▶문학: 박경리, 박완서, 한강, 김혜순 시인, 이민진 등   ▶미술: 나혜석, 박래현, 천경자, 최욱경, 김윤신, 이성자, 윤석남, 양혜규, 이불, 김수자 등의 작가와 홍라희, 박명자, 김선정 등   ▶음악: 정경화, 진은숙, 성시연, 장한나, 김은선, 손열음, 강주미 등   노벨문학상의 한강 작가 같은 인재가 나타날 가능성은 크다. 결코 헛꿈이 아니다. 영화계의 강수연, 전도연, 윤여정 등이 국제무대에서 이름을 떨쳤고, 지금 각 방면에서 국제무대로 뻗어가는 우리 젊은 예술가들도 여자가 훨씬 많다.   우리가 여성 예술가들에게 기대를 거는 까닭은 사랑의 손길로 생명의 예술을 복원하는 어머니 마음과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머니’라는 말은 깊고 근원적인 의미를 갖는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인종의 차원에서 젠더의 문제는 여성이 종족, 혈통의 생물학적 운반자로서 인종적 재현의 원천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여성만이 가능한 이러한 경험은 예술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여성 특유의 상상력과 본능적 사랑으로, 억압되어 보이지 않는 것, 존재하지만 부재하는 것들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일이 그것이다.   “출산과 육아의 시간은 작가로서 부재, 공백을 의미하고 (…) 작가의 현실의 무게는 작업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그 경험은 새로운 미술적 시점을 마련해 준다”는 조영주 작가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근본적으로, 페미니즘의 이상적인 상태는 남성과 맞서 싸우며 우월을 다투는 이분법적 관계가 아니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세계를 넓혀가는 상호보완적 관계일 것이다. 바람직한 부부처럼….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페미니즘 예술 페미니즘 예술 여성 예술가들 페미니즘 미술

2025-03-13

[문화산책] “공부 많이 헌 것들이…”

읽다가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치게 되는 글이 있다. 정신 버쩍 드는 매운 회초리 같은 글… 예를 들어 이런 말씀.   “우리 손자가 공부허고 있으문 내가 말해. 아가, 공부 많이 하지 마라.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맘 공부를 해야헌다, 사람 공부를 해야헌다, 그러고 말해. 착실허니 살고 넘 속이지 말고 나 뼈 빠지게 벌어묵어라. 넘의 것 돌라 묵을라고 허지 말고, 내 속에 든 것 지킴서 살아라. 사람은 속에 든 것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벱이니, 내 마음을 지켜야제. 돈 지키느라 애쓰지 말어라.”   〈월간 전라도닷컴〉에 실린 전남 순천 송광면 왕대마을 윤순심 할매의 말씀이다. 그동안 이 잡지에 실린 말씀 중 가장 인기 있는 어록이라고 한다. 〈월간 전라도닷컴〉은 전라남북 방방곡곡 안 가본 촌구석 없이 찾아 헤매며 발로 뛰면서 촌사람들의 생생한 육성을 손으로 받아적어 매달 내는 잡지다. 여기 실린 말씀들은 하나같이 찰지고 맛깔스럽다.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 무법의 시대를 후려치는 죽비소리 아닌가. 이 대목은 조정래의 소설 〈천년의 질문〉 3권에 그대로 인용되어 나온다고 한다. 어느 이름 없는 시골 할머니의 말씀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유식한 사람들의 심장을 찌르는 훈계이자 경고라고 작가는 말한다.   다른 사람은 어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나는 나를 향해 매섭게 떨어지는 회초리 같아서 아프고 부끄러웠다. 물건이나 돈 도둑질은 안 했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마음 공부, 사람 공부… 정신이 버쩍 든다.   내 친구는 이 말씀을 읽고 진심 어린 감탄의 글을 보내왔다.   “촌 무지렁이라고 업수이 여겨지는 분들이 실은 참으로 재치있고, 따듯하고, 지혜롭고, 기품 있는 분들임에 감탄했어유. 윤순심 할매의 말씀은 동판에 새겨 서울대 교문 앞에 세웠으면 좋겠구먼.”   한국 사회에서 공부했다는 것은 곧 학교 교육을 말한다. 학벌과 학위만 중요하게 취급한다. 달리 말하면, 가방끈 길이만 따지는 세상이다. 주입식 교육의 지식만 중요하게 여기고, 삶을 통찰하는 지혜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런 교육의 독소가 사회 전반에 지독한 악영향을 미친다. 사회지도층, 이른바 배운 자들이란 학교 다닐만한 환경에서 자라고, 기억력이 좋아서 시험 잘 쳐서 출세한 사람들이다. 당락을 결정하고, 인간 줄 세우기의 기준이 되는 시험 점수는 인간성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사람다움이나 품격과도 무관하다.   법조인을 예로 들어보자. 법조문 달달 외워서 고시 합격하고, 출세와 벼슬따기에 혈안이 되어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법 기술자’가 되어 개인적으로 돈 많이 벌고 떵떵거릴 수는 있겠지만, 사회 정의 구현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일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헌데, 지금 한국 사회의 정치판, 언론, 경제계, 학계, 문화예술계 등 거의 모든 분야가 비슷한 현실이라는 점이 문제다.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교묘하게 나쁜 짓을 할 여지가 크다.     모든 것을 돈으로만 따지는 경제계나 부자들의 문제도 크다.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는 가난하고 힘없는 촌사람들에 한참 못 미친다. 참 답답하다.   세상 탓, 남 탓할 것 없다. 나부터 반성해야 한다. 사람 공부, 마음공부 얼마나 하고 있는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윤순심 할머니의 말씀 중 마지막 구절이 특별히 가슴을 때린다.   “사람은 속에 든 것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벱이니, 내 마음을 지켜야제. 돈 지키느라 애쓰지 말어라.”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공부 마음 공부 아가 공부 사람 공부

2025-03-06

[문화산책] 620만불짜리 바나나, 작품의 정체

무려 620만 달러짜리 바나나가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11월 중순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벌어진 소동(?)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엄청난 가격에 낙찰받은 이가 그 값비싼 바나나를 먹어 치우고는 “다른 바나나보다 훨씬 맛있다”고 한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참 더럽게 우습고 슬픈 코미디다.   황금으로 만든 것도 아니고, 마켓에서 살 수 있는 그저 평범한 바나나 한 개가 이렇게 비싼 이유는? ‘예술작품’이기 때문이다.   생바나나 한 개를 은색 접착테이프로 벽에다 붙여놓은 이 작품의 제목은 〈코미디언〉, 매우 풍자적이고 상징적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작품이다. ‘현대미술의 개구쟁이’라는 별명을 가진 작가다. 18금으로 만든 ‘황금 변기’도 그의 작품이다. 이 황금 변기의 제목은 〈아메리카〉, 이 또한 매우 통쾌한 풍자다.   작품 〈코미디언〉은 2019년 마이애미 아트바젤에서 처음 소개되어 대단한 화제를 모았다. 한 행위예술가가 관람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바나나를 벽에서 떼어내 먹어버리는 바람에 더욱 유명해졌다. 그런데 갤러리는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새 바나나를 붙여놓았다. 똑같은 사건이 2023년 서울의 삼성미술관 리움에 전시됐을 때도 일어났다. 이때도 작가와 미술관은 아무렇지도 않게 새 바나나를 사서 붙여놓는 것으로 그만이었다. 그리고, 경매에서 620만 달러에 낙찰받은 바나나를 맛있게 먹어버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미술에 별 관심 없는 보통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은 두 가지다. 첫째는 ‘그런 것도 미술이냐?’ ‘현대미술의 정체는 도대체 뭐냐?’. 둘째는 ‘미술작품의 가격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 것이냐?’ ‘바나나 한 개 값이 아파트 수십 채와 맞먹는다니 말이 되느냐?’.   두 가지 다 딱 부러지게 대답하기 어려운 지극히 당연하고 원초적인 질문이다. 오늘날의 미술에 숨겨진 부조리의 핵심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미술은 그 범위가 엄청나게 넓어졌다. 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미술’이라는 개념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자칭 전문가인 나도 ‘이런 것도 미술이라고 해야 하나?’ 싶은 작품을 자주 만난다. 도무지 감당이 안 된다. 그래서, 미술 대신에 시각예술이니 조형예술이니 하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코미디언〉 같은 작품을 전문가들은 ‘개념미술’이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바나나라는 물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익은 바나나를 평범한 접착테이프로 벽에 붙여놓아, 보는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먹고 싶게 만든다는 아이디어에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생각이 곧 예술이라는 말씀이다. 거룩하시다.   카텔란의 〈코미디언〉을 낙찰받은 사람은 가상화폐로 벼락부자가 된 중국 출신의 젊은 기업가 저스틴 쑨이라는 분이다. 그가 거금 620만 달러를 내고 받은 것은 바나나와 접착테이프, 바나나가 썩었을 때 이를 교체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설치 안내서, 그리고 작가가 서명한 진품인증서가 전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쑨의 행동은 단순한 과시가 아니라, 그가 운용하는 암호화폐 홍보를 위한 것이고, 그의 행동에 전 세계적 관심이 몰리면서 충분한 홍보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경매에서 작품을 낙찰받을 때도 일반 화폐가 아닌 암호화폐로 대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쑨이 말했다.   “이 작품이 예술과 밈과 암호화폐의 세계를 연결하는 문화적 현상이며, 미래에 더 많은 생각과 토론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아, 참 대단한 선문답이다. 먹고 살기 힘들어 바둥대는 생활인들에게 이런 고차원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라고, 그래야 고상한 문화인이 된다고 말할 자신이 도무지 없다. 아무래도 구멍가게 문을 닫아야겠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문화산책 바나나 작품 바나나 작품 접착테이프 바나나 달러짜리 바나나

2025-02-27

[문화산책] 노인과 어른, 발효와 부패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숙해져 가는 것이다(We don't grow older, we grow ripper).”   화가 피카소의 말씀이다. 가수 노사연이 부른 노래 〈바램〉에 나오는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라는 가사에 공감했는데, 알고 보니 피카소 할아버지께서 먼저 하신 말씀이었던 것이다. 피카소(1881-1973) 화백은 92세까지 장수하셨으니 익다 못해 나중에는 곯았을 지도….   누구의 말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핵심은 나이를 멋지게 잘 먹는 지혜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골치 아픈 꼰대가 되지 말자는 이야기. 나이가 들면 꼭 생각해야 할 숙제다.   마침 한국에서 가수 나훈아와 이승환이 ‘어른'이라는 말을 꺼내 화제가 되었다. 나훈아가 정치인들을 향해 “어디 어른이 이야기하는데…”라고 일갈하자, 이승환이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고 한다.   “‘노인'과 ‘어른'은 구분돼야 한다. 얕고 알량한 지식, 빈곤한 철학으로 그 긴 세월에도 통찰이나 지혜를 갖지 못하고 그저 오래만 살았다면 ‘노인'이다. ‘어른'은 귀하고 드물다.”   맞는 말씀이다. 나이 많이 먹고 백발 난다고 어른인 것은 아니다. 어른다워야 어른이다.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예쁘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나이 많은 사람은 계속 늘어만 가는데, 어른이 사라져가는 안타까운 시대다.   100세 시대가 현실이 되면서 아름답고 멋지게 잘 늙는 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어서, 이에 대한 말과 글이 넘쳐난다. 책도 물론 많다. 훌륭한 분들이 다양한 지혜를 이야기하는데, “절대로 재산을 자식들에게 다 물려주면 안 된다”는 식의 아주 현실적인 것부터 영성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누구나 공통으로 강조하는 가르침도 많다. 예를 들면 ▶욕심을 내려놔라 ▶말을 많이 하지 마라. 특히, 옛날 이야기와 잔소리는 금물이다 ▶과음 과식을 하면 안 된다 ▶술 담배를 끊어라 ▶의욕이 있어도 과로하지 마라 ▶친구를 만들어라 ▶사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라 등이 대표적이다.   또 ▶노화에 맞서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라 ▶죽음을 준비하라는 가르침▶사랑하라, 감사하라, 많이 웃어라 ▶몸과 마음이 늘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라 ▶언제나 긍정적, 적극적, 정열적으로 활동하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가르침도 빠지지 않는다.   사르트르와의 계약 결혼으로 유명한 철학자이자 작가인 시몬 드 보부아르가 이야기한 ‘잘 늙는 방법’도 새겨들을 만하다. 간추려보면 ▶과거를 받아들일 것 ▶친구를 사귈 것 ▶타인의 생각을 신경 쓰지 말 것 ▶호기심을 잃지 말 것 ▶자기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목표를 추구할 것 △습관이 우리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습관을 지배할 것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쉴 것 ▶건설적으로 물러나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넘겨줄 것 등 철학적 성찰이다.   그런가 하면, 실제로 노년의 삶을 멋지게 장식한 분들의 이야기도 많이 전해온다. 스코트와 헬렌 니어링 부부,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오드리 헵번, 철학자 김형석 교수 같은 분들의 향기로운 노년이 주는 교훈들….   그런데, 좋은 말씀이 아무리 많아도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문제는 실천인데, 그게 참 어렵다. 그저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 그 일이 좋아하는 일이고 해야 할 일이라면 그것이 바로 행복일 테니.   늙는다와 낡는다와 익는다, 부패와 발효 숙성, 고물과 골동품의 차이는 오로지 마음가짐에 달렸으니, 그저 후회 없는 하루하루를 사는 길밖에….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노인 어른 어른 발효 어디 어른 옛날 이야기

2025-02-20

[문화산책] 한글 전용과 문해력 논란

시조시인 변완수 선생이 쓴 〈한국 어문(語文)을 고발함〉이라는 책을 거듭 읽고 있다. 공부 많이 하신 지식인들이 쓴 책이나 글에서 잘못 쓰인 우리 글과 말의 사례를 하나하나 찾아내서 조목조목 고발한 준엄한(?) 책이다.   나 같은 글쟁이에게는 꼭 필요한 회초리 같은 책인지라, 여러 번 정성껏 읽으며 많은 것을 배운다. 주위의 문인들에게도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다.   책의 표지에는 “우짜다 우리 말이 요 꼴이 됐능교? 이 모두 한글 전용 군자의 공이로소이다” “이 책은 한 외로운 언어순정주의자(言語純正主義者)의 탄원서다”라고 적혀 있다. 저자의 서문은 한결 절절하다.   “우리 어문의 타락상이 하 분키로 부득이, 실로 마지못해, 이 통분(痛憤)의 글을 쓴다.”   작심하고 쓴 저자의 용기를 존중하지만, 많은 논쟁을 불러오거나 아예 무시당할 것 같은 걱정도 든다. 가령, 저자는 우리 말과 글이 타락한 원인은 한글 전용 때문이라고 고발한다. 어조도 매우 격정적이다.   “이 모든 문제의 장본(張本)은, 넓은 의미로, 한글 전용에 있고, 그 장본인은 다름 아닌 한글 전용론자(專用論者)들이다. 우리 선인(先人)들이 수천 년간 써오신 한자(漢字), 우리의 그 국자(國字)를 짓밟고 한글 전용 광란(狂亂) 반세기에 남은 것이 무엇인가? 우리 민족 문화는 쇠진(衰盡)하고 단대적(斷代的) 비극을 초래했을 뿐이다. 한글 전용은 우리 민족 문화의 난적(亂賊)이다.”   물론, 공감 가는 견해이기는 하지만,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주장은 아니다.   나는 이민 오기 전에 잠시, 한 미술대학에서 한국미술사 강사 노릇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수강생들이 공교롭게도 한자를 배운 적이 전혀 없는 학생들이었다. 그런 학생들에게 미술사를 가르치려니 강의가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강의 때마다 문교부의 언어정책을 원망했던 악몽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런 기억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글전용을 전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반대할 수 없다. 순기능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국민의 대부분이 한글 전용 세대인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더구나 “한글이 한국어인가?”라는 저자의 문제 제기에 이르면 더욱 동의하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문해력 저하’ 논란이 심각한 최근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생각이 달라진다. 문해력이란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문자의 이해와 활용 능력을 의미한다. 한국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 따르면, 국민 5명 중 1명은 충분한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심각하다. 예를 들어 보자.   “심심한 사과? 난 하나도 안 심심한데”   “고지식? 지식이 높다는 뜻?”   “우천시 장소 변경 예정? 우천시가 어디 있는 도시냐?”   이 책의 저자 변완수 선생 같은 전문가들은 이런 기막힌 현상이 한글 전용의 부작용이라고 강력하게 지적하는 것이다. 역사적 맥락으로 보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실제로 학자들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국어의 70% 이상이 뜻글자인 한자에 온 낱말이라고 본다.   그러니 한자를 모르고는 우리의 정신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한글은 영어의 알파벳 같은 ‘발음기호’일 뿐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렇게 토대가 허약해진 어문(語文) 환경에 일본말 찌꺼기가 아직 상당히 남아 있고, 영어를 비롯한 외래어가 무분별하게 밀려들어 오고, 거기에 정체불명의 신조어, 줄임말, 비속어가 난무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말 사랑 지극한 이들이 피눈물로 비분강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비극을 막으려면 좋은 글, 건강한 문장이 많아져야 한다. 품격있고 바른 글, 아름다운 문장의 문학작품이 많이 나오기를 빌고 또 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한글 전용 한글 전용론자 모두 한글 한국미술사 강사

2025-02-13

[문화산책]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꿈

‘나보다 오래 살아온 느티나무 앞에서는 무조건 무릎 꿇고 한 수 배우고 싶다’   -안도현의 〈나무 생각〉 중에서   산불의 피해가 워낙 커서 희망을 이야기하기엔 앞날이 아득하다. 그래도, 피해자 돕기에 마음이 모이고 이런저런 문화행사들이 열리고 있어 다행이다. 고통과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모두가 작은 힘이나마 모아야 할 때다.   이런 시절에 희망을 이야기하고 글을 쓰는 일이 무슨 소용인지,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간절하게 찾으면 어디엔가 희망이 있을까? 그런 생각에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니, 나무가 말을 걸어온다. 그래도 찾아야 한다고….   산불로 많은 나무들이 불길에 휩싸여 죽었다. 나무들은 죽어서도 당당하게 서있다. 어쩌면 나무는 슬픔을 이겨내고 분노를 다스리는 슬기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지혜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나무를 닮고 싶다. 주어진 날을 묵묵히 정성스럽게 살아가는 나무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   나이 많이 드신 나무를 만나면 절하고 싶어진다. 긴 세월 살면서 묵묵히 지켜봐 오신 역사의 무게를 생각하면 숙연해진다.   나무는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살며 자연의 중심을 이루고 인간들을 지켜주는 거룩한 생명이다. 산과 숲을 지키는 영험한 나무, 한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안고 있는 어머니품 같은 동수(洞守)나무… 거룩함의 상징인 나무 십자가….   우리 주위에 푸르게 서있는 나무뿐만이 아니다. 나무는 죽어서도 살아서 인간을 보살피며 함께하는 고마운 존재다. 나무는 죽은 뒤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 우리 주위에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 그래 왔다.   시멘트와 철제, 플라스틱 등이 일상화되기 전에는 나무가 우리 삶의 거의 전부를 지탱해주었다. 나무와 더불어 숨 쉬며 살았다. 이렇게 한평생을 나무와 함께 살다가 죽어서는 나무 상자에 담겨 땅에 묻혔다.   실제로 우리 삶은 집을 비롯해 삶의 구석구석에서 나무를 만난다. 기둥, 석가래, 대들보, 천장, 추녀, 처마, 마루, 대문, 문틀, 창틀, 담장, 울타리 등 집의 뼈대… 책상, 걸상, 옷장, 반다지, 식탁, 뒤주, 장작, 칼도마, 소쿠리, 함지박, 젓가락, 떡살 같은 살림살이… 수레나 배 같은 교통수단… 거문고, 가야금, 피리, 북 같은 악기들… 다양한 탈과 장승들… 육모방맹이, 몽둥이, 회초리, 형틀, 홍두깨, 말뚝… 온갖 연장, 자루… 대장경판, 나무로 깎은 불상, 목탑, 목탁, 목어 같은 종교용품… 붓, 캔버스 틀, 액자… 등등 모두 죽어서도 살아있는 나무들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몸을 눕히는 관도 나무다.   나무의 가장 아름다운 변신은 목조건물, 목조각, 목공예품 같은 예술품들일 것이다. 일본에 남아있는 목조 미륵반가사유상이나 백제관음상 같은 삼국시대 불상을 대하면 천년이 넘는 긴 세월을 그윽하고 당당하게 살아온 아름다움에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다.   “나무의 생명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 천년이 지난 나무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 대패질을 해보면 지금도 질 좋은 나무 향기가 나는데, 이것이 나무의 생명의 길이입니다.”   -니시오카 쓰네가즈 〈나무에게 배운다〉중에서   이제 비가 내리고 봄이 오면 타죽은 나무 아래에서 아기 나무들이 일제히 고개를 내밀고 왁자지껄하며 노래할 것이다. 죽은 나무 등걸 아늑한 틈새에서 아기 나무들 씩씩하게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너무 슬퍼 마세요, 우리가 대신할게요. 할 수 있어요. 따스한 햇살도 세월도 새소리도 모두 우리 편인걸요. 걱정마세요.”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게 흘러오고 흘러간다. 나무에게 배우며, 나무처럼 살고 싶다. 꿈이 너무 야무진가?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나무 나무 생각 아기 나무들 대장경판 나무

2025-02-06

[문화산책] 하루하루를 또박또박 정성껏

설날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나이 먹을 때마다 궁금하다. ‘시간’이라는 엄청난 질서를 만들어낸 이는 누구일까? 보이지 않는 흐름을 잘게 쪼개고 토막내서 초, 분, 시… 날, 주, 달, 해… 어제, 오늘, 내일… 과거, 현재, 미래…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정리한 현자(賢者)에게 허리 접어 경배하고 싶다.   아마도 까마득한 옛날부터 벌써 그런 구분과 질서가 있었을 것인데 그 시절에 이미 우주의 진리, 생명의 신비를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망원경 같은 기계가 있었을 리 만무하니, 오로지 육안으로 하늘을 우러러보고, 자연을 만드신 신의 섭리를 깨닫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마땅한지를 궁리했던 것이다.   우리 인간은 시간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살 수 없는 존재다. 시계와 달력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살고 있다. 벗어나면 생존이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완강한 철옹성을 깨부수고 자기 나름의 질서로 사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앎과 삶이 하나였던 참사람’으로 일컬어지는 다석 류영모 같은 분이 그렇다.   함석헌 선생과 그의 스승인 다석 류영모(柳永模, 1890-1981) 선생은 생애를 햇수로 셈하지 않고, 날수로 헤아린 것으로 유명하다. 날수를 세면 하루하루가 죽었다 살아나는 것으로 여겨져 좀 더 삶에 경각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류영모 선생께서 일기에 스스로 ‘오늘 하루살이(一日一生)’로 살아가고자 한다고 적으셨다는데, 이는 ‘날마다 편견을 버리고 하루하루를 영원의 시간으로 살고자’했다는 뜻으로 새길 수 있다. 다르게는, 잠자는 것과 죽음을 똑같이 보고 영원을 하루 속에서 살고, 하루를 평생으로 여기며 매일 죽는 연습을 했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류영모 선생께서는 1918년부터 살아온 날수를 헤아리기 시작했고, 함석헌 선생도 배워서 따라하게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숨 쉬는 것까지 숫자로 기록할 정도였다고 한다. 류영모 선생은 3만3200일(91세)을 사셨고, 들고 난 숨을 쉰 횟수는 약 9억 번이라고 한다. 함석헌 선생은 3만2105일(88세)를 사셨다.   참고로, 다석 류영모 선생은 불경, 성경, 동양철학, 서양철학 등 동서고금의 종교와 철학에 두루 능통했던 대석학이자, 평생 진리를 추구한 한국의 큰 사상가였다. 불교, 노장사상, 공자와 맹자 등을 두루 탐구하고, 기독교를 줄기로 삼아 이 모든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는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사상 체계를 세웠다. 모든 종교가 외형은 달라도 근원은 하나임을 밝히는 류영모의 종교다원주의는 서양보다 70년이나 앞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류영모 선생은 우리말과 글로써 철학을 한 최초의 사상가였다. 1956년 〈노자도덕경〉을 우리말로 번역한 〈늙은이〉를 세상에 내놓았는데, 이 책은 노자(老子)라는 고유명사까지 우리말로 번역한 작품으로 번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평가된다. 〈노자도덕경〉을 한자어를 완전히 배제하고 우리말로만 번역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데, 선생은 그 불가능한 일을 해낸 것이다.   류영모 선생은 생활에서도 성인의 삶을 실천했는데, 51세가 되던 때부터 하루 한 끼만 먹고, 하루를 일생으로 여기며 살았다. 선생의 호 다석(多夕)은 하루 삼시 세 끼를 합해서 저녁 한 끼만 먹겠다는 뜻이다.   다른 것은 감히 흉내 낼 엄두조차 못 내겠지만, 하루하루를 헤아리는 것과 우리말 사랑은 따라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하루하루를 또박또박 정성껏 살아야 할 텐데…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매일 매일을 허투루 날려 보내곤 한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게 덧없이 지나간다. 정말로 하루하루를 또박또박 정성껏 살고 싶다. 그렇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류영모 선생 함석헌 선생 우리말 사랑

2025-01-30

[문화산책] 보라색 동그라미 태극기

집안 환경 탓으로 우리 아이들은 어린 시절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림 그리는 엄마 옆에서 놀면서 자연스럽게 붓을 잡아 휘두른 것이다.   두 살 남짓 무렵 아이들의 그림은 감탄스러울 정도로 좋았다. 아무런 꾸밈도 거침도 생각도 없는 그림…. 첫 아이의 그림은 엄마 개인전 때, 한구석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 전시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다. 문제는 그들이 성장한 후에도 예술가로 남을 수 있는가이다”라는 피카소의 말이 떠오르곤 했다.   그 무렵, 어느 날 문득 태극기가 눈에 띄기에 아이에게 주며 이걸 그려보라고 한 적이 있다. 아이가 태극기가 무엇인지, 거기에 어떤 심오한 뜻이 담겨있는지 알 리 없고, 나도 그냥 호기심에 그려보라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그린 태극기는 참으로 엄청난 것이었다. 한가운데 보라색 동그라미가 크고 당차게 자리 잡고 있고, 그 네 주위를 시커먼 작대기가 감싸고 있는 작품(?)이었다. 보라색은 붉은색과 푸른색이 자유분방하게 뒤섞이며 만들어낸 색깔이었다. 깜짝 놀랐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아, 이것은 통일의 모습 아닌가! 붉은색과 푸른색이 온전히 하나가 된!”   오랜 옛날의 그 장면이 불쑥 떠오른 것은 아마도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현실 때문일 것이다. 오른쪽 왼쪽으로 갈라지고 쪼개지고 부서져, 사분오열 서로 원수가 되어 핏발 선 싸움박질에 여념 없는 위험한 현실….   사람마다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다양한 생각과 이념이 자연스럽게 부딪치고 어울리며 대화를 나누고 토론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이 건강한 민주사회다. 내 생각만 옳고 나와 다른 생각을 한 자는 적이요 원수라는 식의 아집은 독이다.   혹시라도 말이 잘 안 통해서 싸움이 일어나고 대립이 심각해질 때, 중재에 나서라고 존재하는 것이 정치다. 정치는 타협과 조정, 화합의 예술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정치가들이 앞장서서 국민 갈라치기를 선동하는 망국적 판국이 되풀이되고 있다. 우리 편 아니면 모두 적이니 죽여없애야 한다. 이건 도무지 사람의 논리가 아니다. 정치는 격투기가 아니다.   오죽하면, 대중가수의 한마디 발언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 지경이다. 자초지종을 간추리면 이렇다. 물론,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가수 나훈아가 자신의 은퇴공연에서 말했다. “그만두는 마당에 아무 소리 안 하려고 했는데… 왼쪽이 오른쪽을 보고 잘못했다고 생난리다. (왼쪽 팔을 가리키며) 니는 잘했나?”   더불어민주당은 당연히 발끈했고, 나훈아도 물러서지 않고 거친 말로 맞받아쳤다.     “나보고 뭐라고 하는 저것들, 자기 일이나 똑바로 하라. 어디 어른이 이야기하는데 XX들을 하고 있느냐. 안 그래도 작은 땅에 선거할 때 보면 한쪽은 벌겋고, 한쪽은 퍼렇고 미친 짓을 하고 있다.”   그러자 이번에는 진보 경향의 가수, 배우 등 연예인들이 ‘어른과 노인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말로 비난하고 나섰다고 한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시시비비를 따지고 싶지 않다. 세상일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갈라칠 수 있는가? 부질없다. 그저 한 가지만 묻고 싶다. 보수와 진보는 원수지간이고, 좌와 우는 정말 그렇게 다른 적인가? 간절한 마음으로 옛 어른들의 가르침을 되새긴다. ‘대동소이(大同小異), 화이부동(和而不同)’   멀리 바다 건너에서 그런 참담한 장면을 바라보면서, 아이가 그린 태극기의 보라색 동그라미를 떠올리니 처량하고 서글프기 한이 없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동그라미 보라색 보라색 동그라미 한가운데 보라색 거침도 생각

2025-01-23

[문화산책] 이겨낸 후엔 한층 단단해질 것

선생님, 보내주신 산불 걱정과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바다를 건너온 따스한 말씀 한마디에 제 마음의 답답한 어둠과 잿더미가 많이 가시는 느낌입니다. 특히, “하늘을 믿고, 굳건하게 이겨내시기를. 이겨낸 후엔 한층 단단해질 것으로 믿어요”라는 말씀이 가슴을 울립니다.   한마디 말씀이 이렇게 큰 울림을 주다니…. 현실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겠지요. 지난 연말 한국에서 들려온 느닷없는 비상계엄, 탄핵 찬반 갈등과 갈라치기, 비행기 참사 같은 서글픈 소식에 잔뜩 우울해 있던 차에 산불까지 일어나니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이번 산불은 참 대단합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산불이 연례행사처럼 일어난 탓에 어지간히 면역력이 생겼는가 싶었는데, 이번 산불은 감당이 어렵네요. 미국 역사상 최대의 자연재해라고 할 정도로 피해가 크고,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아마겟돈’이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나왔습니다.   저희는 직접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바로 코앞에서 작은 산불이 일어나 조마조마했습니다. 대피령이 내리면 바로 피할 수 있도록 짐을 싸놓고 뉴스를 응시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편할 수 없죠. ‘아보하’의 평범한 일상생활이 이렇게 소중한 줄을 미처 몰랐으니….   그런데, “아, 다행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없네요. 피해를 입은 이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죠. 아무런 피해 없는 것이 오히려 미안할 지경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참혹한 현실이 ‘남의 일’이 아니고 바로 ‘우리의 일’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생기는 겁니다.     이 깨달음은 아마도 비극을 극복하고 일상을 되찾는 일에 큰 정신적 기둥이 되고,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아픔을 함께 느끼는 일 말입니다.   산불 피해가 커지자 한인사회가 자발적으로 나섰습니다. LA 한인회를 중심으로 대피소를 찾아가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쳤고, 모금 운동을 전개했고, 미 주류 언론들이 그 모습을 모범 사례로 소개했습니다.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사실, 더 큰 걱정은 산불이 잡힌 후의 일입니다. 산불이야 어찌 되었건 잡히겠지요. 미 전국은 물론 다른 나라의 소방 인력도 달려와 힘을 합하고, 죄수들까지 동원하고, 바닷물까지 퍼붓고 있으니.   하지만, 산불이 진화된 뒤에 잿더미가 된 수만 채의 집을 다시 지어 보금자리로 만드는 일, 사람들의 마음에 내려앉은 잿더미를 털어내는 일에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할까요. 엄청난 참을성과 노력이 필요할 텐데요.   어디 그뿐인가요. 산불의 원인 규명도 필요하고, 재발 방지책 마련도 시급합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심각한 산불이 자주 일어날 텐데 그 원인은 기후변화 탓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강수량과 심한 가뭄이 번갈아 발생하면서 대형 재난을 만들어내는 ‘기후 채찍질’ 현상도 언급합니다. 대기가 물을 빨아들였다가 내뿜는 ‘대기 스펀지’ 효과가 커지면서 홍수와 가뭄을 오가는 극단적 날씨가 강화되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그 기후변화의 주범은 바로 우리 인간들이지요.   이런 판국에, 정치가들은 벌써부터 싸움질로 바쁘시고, 아니면 말고 식의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산불보다 더 큰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말씀을 굳게 믿고 싶습니다. 건강하게 이겨낸 후엔 한층 단단해질 것이라는 말씀, 이겨내기 위해선 ‘우리’라는 마음이 꼭 필요하겠죠.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라는 탈무드의 가르침을 실천하기란 무척 어렵겠지만, 손에 손잡고 어깨동무하는 일 정도야 우리 같은 평범한 중생도 할 수 있겠죠.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산불 피해 산불 걱정 이번 산불

2025-01-16

[문화산책] 젊은 신바람 문화의 엄청난 힘

참으로 어수선한 연말연시를 보냈다. 한국의 느닷없는 비상계엄과 탄핵의 소용돌이가 참 어지럽다. 순리대로 극복되고 정상의 삶으로 돌아오려면 아직 더 시간이 걸릴 듯하다. 살벌하고 시커먼 불확실성이 우리를 슬프고 답답하게 한다. 조국이 어두우면 우리는 더 컴컴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조국이니까.   하지만, 그런 어둠 속에도 우리는 귀한 것을 얻기도 했다. 건강한 국민들이 보여준 희망이다. 한국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굳건한 믿음, 특히 젊은이들이 보여준 전혀 새로운 차원의 시위문화는 실로 놀랍고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세계가 놀라고, 외국 언론들이 하나같이 감탄하며 부러워했다. ‘광장의 품격’ ‘경쾌한 저항’이라는 멋진 말도 나올 정도였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 낭독의 밤’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민들이 보여준 진실과 용기 때문에 감동을 많이 했어요. 자정이 넘은 시각에 굉장히 많은 시민들이 집에서 달려나가서, 모여서, 맨몸으로 장갑차 앞에 서 있기도 하고, 맨주먹으로 아무 무장도 하지 않은 채 군인들을 껴안아 달래기도 하는 모습은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공격적인 구호와 깃발, 머리띠, 주먹질만 난무하는 살벌한 시위를 흥겹고 신바람 나는 축제로 변화시켰다. 그러면서도 할 말은 야무지게 다 하고, 수만 명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정연하게 질서를 지키고,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는 감동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2030 여성이 다수를 차지한 집회 참가자들은 온갖 아이돌의 형형색색 응원봉을 흔들며, K팝을 떼창으로 불렀다. “오랜만에 콘서트에 간 것처럼 스트레스 풀고 왔어요. 큰 소리로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면서 할 말 다 하고 왔습니다.”   그들이 들고나온 깃발이나 손피켓에 담긴 풍자와 해학은 뉴욕타임스 같은 외국신문에 크게 소개되기도 했다.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연맹’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 ‘강아지 발냄새 연구회’ ‘전국 수족냉증 연합’ ‘직장인 점심 메뉴 추천 조합’ ‘전국 과체중 고양이 연합’ ‘(내향인)’ ‘나, 혼자 나온 시민’ 같은 재미있는 깃발들….     어떤 소속이나 주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각자의 정체성을 발랄하게 드러낸 것이다. 과거의 촛불 시위처럼 하나의 상징으로 획일화된 것이 아니라 각자의 깃발과 응원봉으로 수없이 다양한 개개인이 하나의 지향을 말한 것이다.   이처럼 팽팽한 긴장과 대결의 상황을 재미와 신바람으로 풀어내면서 하고픈 말은 다하는 슬기, 이것이 바로 세계로 뻗어가는 K-컬처의 정신적 바탕이자 저력이다.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의 이런 시위문화를 ‘K팝 문화의 진화된 형태’로 해석하기도 한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날아드는 과거의 과격 시위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안전한 시위라는 것이다.   새로운 집회문화의 바탕을 거슬러 올라가면, 월드컵 축구 응원과 촛불 시위가 있고, 더 올라가면 판소리나 탈춤의 질펀한 풍자와 해학, 익살, 골계의 미학이 있다. 그것을 오늘의 암울한 현실에서 살려낸 젊은이들이 자랑스럽다. 희망을 건다. 제발, 기성세대를 닮지 말기 바란다, 제발!   정치에 대한 생각이나 이념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 당연하다. 모두의 생각이 똑같으면 그건 병든 사회다. 문제는 생각이 다르다고 서로 적대시하며 싸우지 말고, 마음을 열고 상대방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려 하는 자세일 것이다.     대동소이(大同小異),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가르침, 거기에 더해 요새 젊은이들처럼 흥과 신바람과 재미를 더하면 더 바랄 나위 없겠지.   신문기사의 한 구절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한국은 정치인들이 잠든 사이에 성장한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신바람 문화 깃발과 응원봉 시민의식과 민주주의 촛불 시위

2025-01-09

[문화산책] 2024년 미주 한인 문화계 결산

옛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이하는 고갯마루에 서서 지난 한 해 문화예술계를 되돌아보고 정리한다. 2024년 남가주 한인 문화는 전반적으로 코로나 침체에서 완전히 벗어나 활기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2024년에도 K-문화가 상승세를 이어가며 빛나, 우리를 자랑스럽게 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정점을 찍은 느낌이다. 한국문화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정상에 섰다.   아카데미 영화제 작품상과 연기상, 칸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국제영화제의 큰 상을 수상했고,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음악 콩쿠르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우승의 영예를 차지하는 건 뉴스도 아니게 되었다. 대중음악에서도 방탄소년단의 뒤를 이어 빌보드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 아이돌 그룹의 활동이 눈부시다.   미술 쪽에서도 세계 정상의 미술관들에서 한국 미술 특별전을 열리고 있고, 이우환 등에 이어 서도호, 이불, 양혜규 등 젊은 작가들에 주목하여 초대전을 열고 있다.   이제 한국문화는 더 이상 변방이 아니다. 선두에 서서 인류의 문화와 예술을 이끌어갈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그런 전망이 많다.     그만큼 우리 예술가들의 책임과 정신적 부담도 커졌다. 우선은 한류 열풍을 바람직하게 이어가는 일이 숙제다. 이제 서양 것 흉내 내기로는 어림도 없게 되었다. 우리의 정체성을 확실하고 당당하게 내세우고 독창적 예술세계를 열어야 한다. 과연 한국적인 것이란 어떤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되풀이해야 한다.   한국문화의 세계적 열풍은 미주 한인 문화계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물론, 매우 긍정적인 영향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은 미주 디아스포라 문인들에게도 큰 자랑이요, 자극이 되었다. 남의 나라에서 한글로 글을 쓰는 작업의 외로움에서 벗어나 당당한 자부심을 갖는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한강 작가에게 집중되는 관심 때문에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1.5세 소설가 김주혜 작가의 톨스토이 문학상은 대단한 의미를 갖는 쾌거다. 그것도 반일투쟁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로 러시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받았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앞으로 영어로 글을 쓰는 1.5세, 2세 작가들에게 기대를 걸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미술계는 ‘남가주한인미술가협회’ 창립 60주년을 맞으며, 새로운 시대를 설계하는 기념 전시회를 열었다. 미술가들의 활동도 활발했다. 현혜명 회고전, 유제화 초대전을 비롯한 많은 전시회가 꾸준히 열렸다.   UCLA 해머 뮤지엄에서 열린 ‘한국실험미술전’은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회로 꼽을 수 있다. 반면에 LA카운티 뮤지엄이 체스터 장씨의 기증품 중 35점을 엄선하여 개최한 ‘한국의 보물전’은 위작 논란에 휩싸였는데, 아직까지 확실하게 정리가 되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K-문화가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 전통문화에 관심이 쏠렸다. 전통문화 공연으로는 지난 11월7~10일 나흘간 풀러턴에서 열린 ‘어흥 문화예술축제’가 눈길을 끌었다. 국악경연대회, 한복패션쇼, K팝, 비보이 공연, 다양한 먹거리 등 풍성하게 열린 이 축제는 문화 교류의 축제로 정착될 것으로 기대된다.   LACMA에서 열린 ‘한국전통국악의 밤’에는 박종대, 박영안, 김동석, 이태준, 유희자 등 이 지역 원로 국악인들이 출연해 우리 전통음악의 뛰어난 예술성을 널리 알렸고, 김응화 무용단의 카네기홀 공연 참가도 화제가 되었다.   LA 한국문화원과 코리언 아메리칸 뮤즈(KAM)가 ‘가주 한복의 날’ 기념으로 개최한 ‘한복 특별전’도 큰 관심 속에 열렸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문화계 미주 미주 한인 노벨문학상 수상 남가주 한인

2024-12-26

[문화산책] 코리안 디아스포라 콘텐츠 열풍

2024년에도 K-문화의 뜨거운 열기가 이어져 우리를 자랑스럽게 했다. 미국사회에서 그 열기가 시작된 것은 K-팝, 영화,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였다.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직접적이기 때문에 파급력도 클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적 스토리나 정서는 세계의 언어가 되었다. 그 배경에는 〈미나리〉 〈기생충〉 〈파친코〉 〈오징어게임〉 등이 있다. 이 작품들 덕분에 한국어 영화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2024년 할리우드에서 큰 관심을 모은 K-문화 콘텐츠의 대표적 작품은 드라마 〈성난 사람들〉과 저예산 독립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였다.   이성진 감독, 스티븐 연 주연의 〈성난 사람들(BEEF)〉은 골든 글로브상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3관왕에 이어,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 남녀주연상 등 무려 8개 부문을 휩쓸며 돌풍을 일으키며, 전 세계적 화제를 모았다. 특히 스티븐 연은 이외에도 미국 비평가협회상, 미국 배우조합상에서도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확실한 입지를 다졌다.   “한국계 이민자의 삶에 밴 현대인의 고독과 분노를 그려내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낸” 드라마가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정말 놀라운 사건이다.   한편, 올해 아카데미상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올라 화제를 모은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의 데뷔작이다.   전생(前生)의 인연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은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베를린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고, 영국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올랐다. 이어서 2024 필름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고, 미국 독립영화상인 고섬 어워즈 작품상을 받았다. 젊은 여자 감독의 첫 작품이 이렇게 큰 주목을 받은 것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이다.   이와 같은 코리안 디아스포라 콘텐츠의 열풍을 반영하여, 아카데미 영화박물관은 〈윤여정 회고전〉을 마련해 〈미나리〉 〈화녀〉 등 대표작 8편을 상영했다. 또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코너를 마련해 할리우드에서 주목받고 있는 영화인들을 집중 조명했다.   할리우드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숨은 한인 인재들도 기대를 모은다.   영화나 드라마뿐 아니라 K-뮤지컬의 미국 무대 진출도 주목된다. 대표적인 예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위대한 개츠비〉다. 한국의 제작사 오디컴퍼니가 현지 제작한 이 작품의 의상을 담당한 린다 조는 토니상 의상상을 수상했다. 올해 토니상에서는 하나 김이 〈아웃사이더〉로 조명상을 받았다.   남가주에서는 한국에서 제작된 뮤지컬 〈프리다〉가 USC 빙 시어터에서 공연되어 화제를 모았다.   한편, 남가주 한인 연극계는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뮤지컬 도산〉이 윌셔이벨극장에서 공연되었고, 선교극단 이즈키엘의 성탄공연이 있었다. 한편, 〈모임극회〉는 50주년을 맞아 자축행사를 가졌다.   K-콘텐츠의 세계적 위상으로 한국인이 세계 문화 속 ‘객체’에서 ‘주체’로 거듭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아카데미상, 에미상, 골든글로브, 토니상 등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최근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콘텐츠의 열풍은 미국에 사는 한인인 우리들에게 자신감과 긍지를 심어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 이민자의 정체성을 담아낸 화제의 작품들은 이민 온 한인들의 삶을 역사적 맥락에서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열린 시각을 통해 백인 주류사회의 한국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성난 사람들〉의 이성진 감독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감동은 우리 안에 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코리안 콘텐츠 문화 콘텐츠 한국계 이민자 어워즈 작품상

2024-12-19

[문화산책] 올해 별이 된 문화계 인사

올해도 많은 이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별세한 사람들은 한 시대의 마침표인 셈이다. 마침표를 찍고 새 마음 새 뜻으로 새 문장을 시작하듯 세월이나 시대도 마침표를 찍는다. 그 문장 안에는 수많은 느낌표와 물음표, 쉼표, 말없음표, 따옴표 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인다.   가신 이들의 삶은 나의 세상살이를 비추어보는 거울이 되기도 하고, 추억의 한 장면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그리움에 젖기도 하고, 위로받고 용기를 얻기도 한다. 그래서, 가신 이의 삶을 그리움으로 되새김질하는 시간은 소중하다.   올해 우리 곁을 떠난 문화 예술 쪽 몇 분의 뜻깊은 발자취를 되살펴 본다.   ▶배우, 연기자들   ‘세기의 미남’으로 이름을 날렸던 영화배우 알랭 들롱(1935~2024)이 우리 곁을 떠났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로 일약 전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르면서 ‘세계에서 가장 잘생긴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고요한 분위기를 풍기는 들롱의 신비로운 외모는 우리 젊은 시절 청춘의 한 페이지를 불러온다. 할리우드 진출을 시도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프랑스로 돌아온 들롱은 1960~1970년대 프랑스 영화계를 이끈 대표적인 배우였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고, 2017년 은퇴를 선언했다.   말년에는 거의 활동을 못했다. 뇌졸중으로 수술을 받고, 오랜 투병 끝에 안락사를 결정했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편, 한국의 배우로 올해 세상을 떠난 스타는 ‘한국의 그레고리 펙’으로 불린 미남배우 남궁원, 감칠맛 나는 감초 연기로 이름난 오현경, 일용엄니 김수미, 연극배우 권성덕 등이 있다.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   일본의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1935~2024)는 백인 지휘자 일색의 지휘계에 처음으로 등장했던 동양의 마에스트로였고, 당대의 거장 카라얀과 레너드 번스타인의 가르침을 받은 유일한 지휘자였다. 그는 1973년부터 29년 동안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었고, 이후 빈 국립 오페라의 음악감독을 지냈다.   그는 그래미상을 2회 수상했고 프랑스 레지옹도뇌르 슈발리에 훈장을 받았으며, 케네디 센터의 명예 음악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시아 음악가들의 롤모델’이었지만, 동양인 지휘자에 대한 편견도 고스란히 겪어야 했다. 1980년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오페라 〈토스카〉를 지휘하던 중 관중들의 야유를 받은 일은 유명하다.   2010년 식도암 수술을 받은 후에는 여러 합병증으로 무대에 제대로 서지 못했다. 하지만 2022년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을 잡고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을 지휘한 장면으로 전 세계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인, 문인들   시집 〈농무〉로 한국 민중문학의 새 지평을 열고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신경림 시인(1936~2024)은 대중의 삶과 괴리된 현학적인 작품을 경계하며, 당대의 현실 속에 살아 숨 쉬는 뚜렷한 문학관을 견지하며, ‘민중문학 개척자’로 평가받았다. 1973년 발간한 첫 시집 〈농무〉는 1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신경림 시인은 1970~80년대 군부독재에 맞서 문단의 자유실천운동과 민주화운동에도 부단히 참여해 왔다. 암으로 투병하던 신 시인은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한편, 성춘복 시인(1936~2024), 김광림 시인(1929~2024), 송기원 소설가(1947~2024) 등 문인이 올해 세상을 떠났다. 미주 한인문인으로는 손용상 소설가(1946~2024)가 올해 별세했다. 많은 작품을 남겼고, 마지막 순간까지 순수문예지 〈한솔문학〉을 발간하며, 미주 이민문학 발전에 앞장섰다.   그밖에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작가이자 똘레랑스를 역설한 언론인 홍세화(1947~2024), UC 어바인 교수로 재직하며 치열한 문제의식으로 작품활동을 펼쳐온 1세대 디아스포라 작가 민영순(1953~2024) 등은 오래 기억하고 싶다.   〈아침이슬〉의 작곡가이자 가수인 ‘뒷것’ 김민기(1951~2024)도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노래 한 구절을 모든 가신 이들에게 바친다.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문화계 인사 지휘자 오자와 백인 지휘자 미남배우 남궁원

2024-12-12

[문화산책] 가로쓰기와 내리쓰기의 다름

때로는 지극히 당연하게 넘기는 일의 바탕에 근본적인 문제가 깔려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것을 찾아서 꼼꼼히 살펴 교훈을 얻는 일이 인문학의 시작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책이 그렇다. 지금 우리가 읽는 책이나 신문은 당연히 가로쓰기로 되어 있다. 왼쪽 위에서 옆으로 읽어가며, 오른쪽 아래 방향으로 읽어가는 형식이다. 서양의 책들과 같은 구조다.   하지만, 누구나 아는 대로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은 오랫동안 내리쓰기를 해왔다. 우리의 옛 문헌들은 띄어쓰기 없는 내리쓰기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가로쓰기를 전용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책이나 신문이 모두 내리쓰기였다. 중국어 책이나 일본어 책은 아직도 내리쓰기를 한다. 컴퓨터의 영향으로 가로쓰기로 변해가는 중이긴 하지만, 아직은 내리쓰기 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온 전통을 소중하게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문화적으로 뒤떨어졌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가로쓰기 또한 띄어쓰기와 마찬가지로 ‘구미선진국 따라 하기’인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가로쓰기를 하는 까닭은 ‘사람의 눈이 가로로 찢어져 있으니 가로쓰는 것이 과학적이다’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붙어 있다.   “책의 판면(版面) 짜기에서, 1980년대까지 이어 오던 세로짜기가 하루아침에 가로짜기로 바뀌는 현상을 목도하면서, 우리 사회의 문화조직이 ‘냄비현상’에 휘둘리고 있는 전형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세로짜기에서 가로짜기로 가더라도, 오랫동안 세로짜기 또는 세로쓰기를 해온 동아시아의 문자문명이 하루아침에 가로쓰기로 가야 하는지, 그 사유를 분석하고 검토하고, 그리고 검증하고 하는 신중함과 진지함이 크게 결여되었음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중략〉… 알파벳 문화에의 맹종을 경계하는 지적에 귀 기울일 일이라고 생각한다.”-이기웅, 〈출판도시를 향한 책의 여정〉 중에서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옛 문화를 읽을 때, 특히 그림을 볼 때 드러난다. 세상을 보고 표현하는 관점과 방법이 다른 것이다. 가로쓰기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 가게 되어 있는데, 내리쓰기 문화에서는 오른쪽 위에서부터 내리읽으면서 왼쪽으로 옮겨 가게 된다. 별것 아닌 차이 같지만, 한국미술사학자 오주석(吳柱錫)의 설명을 들어 보면, 문제가 간단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작품을 읽는 동서양의 방식 차이는 아주 작은 듯하나,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는 예상 밖으로 엄청나다. 우리 옛 그림은 애초 가로쓰기 식으로 보면 그림이 잘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옛 화가들에게는 세로로 읽고 쓰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으므로, 보는 이도 당연히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 쪽으로 감상해 나갈 것이라 생각하면서 구도를 잡고 세부를 조정하고 또 필획(筆劃)의 강약까지도 조절했기 때문이다.”-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중에서   이렇게 가로쓰기와 세로쓰기는 우리 문화 전반에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인제 와서 내리쓰기로 되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오랜 전통을 무시하고 뭉개버리는 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필요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그런 일이 너무나 많다. 현대화,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속절없이 스러져 되살릴 수 없어진 무수한 우리 것들, 납득하기 어려운 쏠림 현상들….   이건 그저 농담이지만, 내리쓰기 책을 읽을 때는 고개를 끄떡거리게 되는데, 가로쓰기를 읽을 땐 도리도리를 하게 된다. 도리도리와 끄떡끄떡, 매몰찬 부정과 넉넉하고 수더분한 긍정의 차이….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가로쓰기 애초 가로쓰기 한국미술사학자 오주석 알파벳 문화

2024-12-05

[문화산책] 유홍준 잡문집 읽는 즐거움

‘만약 이민을 오지 않고 한국에 그냥 살았다면 나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나이 탓일까? 그렇다고 이민을 후회하는 건 아니다. 타향살이의 아쉬움이야 많지만, 그래도 내가 선택한 현실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으니 후회는 없다.   그래도 가끔 고국 생각에 잠기는 것은 향기로운 참사람, 스승의 짙은 그림자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한국 사회에서 든든한 정신적 버팀목 노릇을 해온 큰 어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그런 생각이 한층 간절해진다.   유홍준 잡문집 ‘나의 인생 만사 답사기’를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어 많이 부러웠다. 이 책에는 저자가 스승으로 모셨던 어른들, 짙은 우정을 나눈 벗들과 예술가 등 사람에 대한 진득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스승으로는 리영희, 백기완, 신영복, 통문관 옛 주인 이겸로 선생들과의 인연과 존경심을 이야기했고, 몸이 자연과 합일(合一)하는 ‘자연춤’을 꿈꾼 춤꾼 이애주, 광주 민주화운동의 대들보 박형섭, 똘레랑스를 역설한 언론인 홍세화, 가수 김민기 등의 친구들과 나눈 진한 우정과 그리움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백남준, 화가 신학철, 민중미술의 전설이 된 판화가 오윤, 김지하 시인, 서예가 김가진 같은 예술가들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진면목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한다.   ‘한국 3대 구라’로 불리는 이름난 글쟁이답게 유홍준의 글은 맛깔스럽다. 얼핏 보기엔 사사로운 사연이나 일상사를 자분자분 이야기하면서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삶의 본질을 일깨워 준다.   이영희 선생의 주례사, 우리의 구전 민중설화를 순우리말 토속어로 이야기한 작품을 통해서 사라져가는 민족혼과 민중적 삶의 정서를 고양시키는 작업에 매진해온 백기완 선생, 개성적인 ‘어깨동무체’를 개발한 신영복 선생의 붓글씨, 빼어난 시인이자 훌륭한 현대 문인화가 김지하 시인의 49제와 그림 이야기, 김민기를 보낼 때 가족의 요청에 따라 영결식 없는 조용한 분위기의 가족장으로 치러진 것에 대한 아쉬움 등….   만약 한국에 그냥 살며 활동했다면, 나도 큰 어른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사람답게 사는 지혜를 배우는 영광을 누릴 기회가 있었을 것 같다. 그럴 수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인간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속 깊은 친구나 동료들과의 관계도 그렇다. 멋진 친구로 지냈을 법한 인물들도 많다.   사실, 스승을 모시고 배우는 일은 글이나 책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직접 대하고 모실 때처럼 절실하게 마음을 움직이기는 어렵다. 우리 삶에서는 아주 사사롭고 작은 일에도 커다란 울림이 있는 법이다.   우리가 목말라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고 삶의 지혜다. 지식이라면 컴퓨터나 인공지능으로 넘쳐날 정도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지식이나 정보는 건조하다. 그래서 생생하고 따스한 깨우침을 주시는 스승을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것은 유홍준처럼 스승님을 가까이 모시고 체온과 숨결을 느끼며, 가르침을 받는 것이겠지만, 그런 행운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 스스로 스승을 찾아 모시기라도 해야….   나는 그런 목마름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배울 점이 있는 분을 내 멋대로 스승으로 모시는 길을 택했다. 예를 들면, 찰리 채플린을 스승으로 모시고, 영화를 통해 예술가의 자세나 인생의 철학을 배우는 식이다. 궁금한 것을 그때그때 여쭙고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안타까움은 크지만, 그래도 큰 공부가 된다.   마음을 열고 살피면 스승은 우리 인생 도처에 계신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유홍준 그림 이야기 신영복 선생 백기완 선생

2024-11-28

[문화산책] 아빠, 오빠, 자기야

‘오빠’라는 낱말이 한동안 한국 정치판을 뜨겁게 달구었다. 논쟁의 핵심은 오빠라는 호칭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이냐, 친오빠냐 남편이냐 하는 것이었는데, 이러쿵저러쿵 시끄러웠다. 우리말에 부부 사이의 호칭이 참으로 애매하고 느슨해서 생긴 희비극이었다.   지난 시절에는 남편을 ‘아빠’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것이 한동안 유행했었는데, 이는 자신의 친정아버지를 부르는 것인지 남편을 부르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뿐만 아니라, 일본식 어법으로 알려진 말이므로 절대로 써서는 안 된다고 우리말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아빠’가 ‘자기’를 거쳐 ‘오빠’로 진화(?)한 모양이다. 요새 젊은 아내들 사이에는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 연애 시절에 부르던 호칭을 결혼 후에도 그냥 자연스럽게 쓴다는 것이다.   그런데, 단호하게 말해서, 아빠건 오빠건 그건 명백한 ‘근친상간’이다. 그러니까,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되는 세상이 된 셈이다.   보통은 ‘여보’, ‘당신’이 일반적 호칭이지만, 어쩐 일인지 안 쓰는 부부가 많은 모양이다. 특히, 신혼의 젊은 부부들은 매우 어색하게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개 씨, 아무개 아빠, 저기요, 이봐요, 나 좀 봐요 등으로 얼버무린다.   남편을 부르는 가장 보편적인 호칭어가 ‘여보’인데, 이 말이 부부간의 호칭어로 정착된 것은 뜻밖에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20세기 초, 중반에도 그리 보편적이지 않았다.   한편, ‘오빠’라는 호칭은 조용필, 나훈아, 남진 같은 가수들을 열광적으로 따르는 ‘오빠부대’에서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고, 지금을 K-팝 열풍 덕에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국제어가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편이 오빠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연스럽게 알맞은 호칭을 찾았으면 좋겠다. 이에 대해 우리말 전문가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궁금해서, 전문가가 권하는 표준안 하나를 예로 살펴본다. (출처: 한국다문화사회연구소)   남편을 부르는 호칭 △신혼 초- 여보, ○○씨, 여봐요 △자녀가 있을 때- 여보, ○○ 아버지, ○○아빠 △장년, 노년- 여보, 영감, ○○할아버지   아내를 부르는 호칭 △신혼 초- 여보, ○○씨, 여봐요 △자녀가 있을 때- 여보, ○○엄마, ○○어머니 △장년, 노년- 여보, 임자, ○○엄마, ○○할머니   아무튼, 흔히 쓰는 자기, 오빠, 아저씨 등은 안 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하나같은 주장이다. 말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보태자면, 자기 아내를 ‘와이프’라고 부르는 것을 흔히 보는데, 이런 호칭도 어딘가 어색하다.   이런 식의 문제에 부딪힐 때면 떠오르는 것이 우리말을 지극히 사랑한 선구자들이다. 백기완, 이어령, 소설가 김동성 같은 분들….   이어령 선생은 자신이 이룬 숱한 업적 중에서 가장 보람있게 여기는 일로 ‘갓길’이라는 낱말을 정착시킨 것을 꼽은 바 있다. 백기완 선생의 우리말 사랑은 참으로 지극하여, 글을 쓰고 말을 할 때도 한자어와 영어, 일본어 같은 외래 어휘를 삼가고 달동네, 새내기, 동아리, 모꼬지 등의 순우리말을 살려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우리말 사랑은 김지하, 김민기, 전인권 등 많은 문화예술인에게 영감과 자극을 주었다.   우리 한글은 매우 과학적이어서 배우기 쉽다고 하는데, 사실은 깊이 들어갈수록 정말 어렵고 속 깊은 언어다. 호칭이나 존댓말 등도 그렇다. 잘 찾아보면, 부부간의 호칭도 아름답고 정겨운 순우리말이 있을 것 같은데….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아빠 오빠 아빠 오빠 아무개 아빠 우리말 전문가들

202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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