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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아래서] 묻히지 않고 심어진 생명

하얀 붓질로 이리저리 찍어놓은 청명한 하늘, 비록 짧아졌지만 여전히 반가운 남가주의 봄이다. 옷깃을 슬며시 풀게 하는 따뜻한 바람에 나무도 풀도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몸을 일으켜 화창한 꽃들과 마주하고, 살아있다고 다시 외치는 새 싹들을 경이롭게 보게 되는 만화방창(萬化方暢)의 날들이다.     이럴 즈음 부지런한 농부들은 이미 뒤집어 씨를 뿌린 밭에서 녹색 잎이 벌이는 잔치를 보고 있다. 매년 같은 일인데도 내가 만난 많은 농부들은 이 시기가 되면 항상 생명의 힘에 놀라고, 바야흐로 커가는 신비에 경건해진다고 말한다.     바늘 꽂을 땅조차 없는 집도 이 잔치를 즐길 수 있다. 만일 깻잎을 진한 향기와 함께 먹고 싶으면 아무 화분에나 모른 척 그저 씨를 뿌려두면 된다. 모른 척 싹을 틔우고, 어느새 향기를 뿜어내고, 벌써 먹거리가 된다. 지난겨울 내내 땅속에 있던 씨들도 함께 아우성을 치며 옆에서 올라오기도 한다. 차갑고 어두웠던 시간을 이겨낸 것이다. 우리는 평범한 자연이 기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만난다.     지난겨울은 유달랐다. 한 마을이 재로 사라지고, 가족들이 피난처를 찾아 발을 굴렀다. 화염과는 정말 전쟁을 치렀다. 그리고 나서는 비가 와도 걱정이었고, 안와도 염려였다.     그뿐이랴. 물가를 걱정하던 동포들은 멀리 고국의 소식으로 염려에 염려를 쌓았다. 어둠이 어둠에 묻혔다. 이렇게 어둠이 오면 우리는 빠져나갈 길만 찾는다. 누구도 어둠과 함께 묻히기를 원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봄에 몸부림치며 돋아나는 씨앗들도 그렇게 걱정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어둠 속에 갇혀 있을 때, 자신이 무덤에 묻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심어진 것이다 (Christine Caine).     그리고 생명은 차가운 어둠을 뚫고 싹을 틔우며, 잎을 달고 꽃을 피우며 마침내 열매를 맺기까지 자라게 된다. 당신은 묻히고 갇힌 것이 아니다. 당신은 심어진 것이다. 오히려 어둠을 양분 삼아 뿌리를 뻗고, 싹을 틔울 것이다. 우리의 질문은 어둠이 얼마나 강한가가 아니다. 어둠이 커지고 쌓이더라도 우리의 질문은 실은 한가지일 뿐이다. 나는 살아있는 생명인가. 나에게는 이 생명이 있는가. 죽은 나무나 돌이 아니고, 단지 쓰인 글자나 얻기 힘든 깨달음만이 아닌 참 생명이신 살아있는 이분, 예수가 있는가. 평범한 진리가 기적을 이룬다.   [email protected]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등불아래서 생명 진한 향기 christine caine 이분 예수

2025-03-24

[등불아래서] 우리 손에 가득한 자랑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를 여럿 작사한 호나티우스 보나에게 누군가 물었다.     "하나님께 어떻게 갈 수 있나요?"   "형제여, 우리는 우리의 죄와 함께 하나님께 갑니다. 우리는 그 외에 진정 우리 것이라 부를 수 있는 다른 어떤 것도 없기 때문이지요."   참으로 그러하기에 교회는 겸손했다. 교회는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고 말하기 전에 "주님, 우리는 빈손 들고 주님 앞에 갑니다"라고 고백했다. 오직 빈손만이 십자가를 붙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손에는 자랑이 가득하다. 선교를 시작하면 선교사 수가 자랑이고, 예배당을 세우면 교세와 건물이 자랑이다. 제자 훈련이 자랑이고, 성경 통독 횟수가 자랑이다. 시작은 창대하지만, 나중이 미약한 것이다.   교회가 세상 속에서 빛으로 살지 못하는 이유는 나누어 줄 사랑과 물질이 없어서가 아니다. 정부를 제외한 어느 단체보다 많은 예산을 세우고 사용할 것이다. 여전히 병원과 보육원, 전쟁터와 난민촌에는 어김없이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우리 문제는 우리 안에 있다.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우리뿐 아닌가. 세상이 우리를 보고 제자라고 하지 않고 우리끼리만 서로 성도이고 제자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고 세상이 놀라지 않는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우리는 미소 띤 얼굴과 괜찮은 교양으로 덮어버렸다.   사랑은 아무 일도 없어서 항상 좋은 것이 아니다. 다툼과 시기, 분쟁과 분노를 돌이켜 용서와 화해, 진실과 겸손으로 만드는 것이 사랑이다. 서로 죽고 못 사는 것이 다는 아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대개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잘해 주는 사람들, 괜찮은 사람들,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이야 당연하다. 교회는 속이 거북한 사람들, 하는 짓마다 얄미운 사람들, 말마다 속을 긁어대는 사람들과 함께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는 곳이다. 싸워야 할 몽둥이는 사랑의 땔감으로 쓰고, 찌르고 싶은 칼로 땅을 일구어 나무를 키운다. 하나님이 바로 이런 능력자이심을 증명하는 곳이다.   이 일을 하지 않으니, 회개도, 용서도 없고 평화도, 믿음도 없다. 우리는 여전히 의인끼리 재밌게 살고 싶다. '나는 부족하지만'이라고 덧붙이면서. 끝까지 잘나고 싶은 우리에게 주님은 험한 십자가를 붙들라고 하신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받은 고통은 바로 그의 몸이신 교회의 이기심이요 탐욕이며 눈물이다. 그 피 흘린 몸이 교회다.   [email protected] 한성윤 / 목사ㆍ나성남포교회등불아래서 자랑 제자 훈련 주님 우리 회개도 용서

2023-09-04

[등불아래서] 하나님의 매력

종교 개혁자였기에 그런지 아니면 널리 알려진 그의 초상화 덕인지, 왠지 날카롭기만 할 것 같은 칼빈은 그의 책 기독교 강요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오직 배고픔만 채우라고 음식을 지으셨겠는가. 우리 마음과 기분을 즐겁고 유쾌하게 하시려는 것은 아니겠는가. 풀과 나무, 과일 역시 그 다양한 용도를 넘어 아름다운 모습과 상쾌한 향기를 가지지 않았는가. 한마디로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단지 쓰임새만이 아니라 매력 있게 만드신 것이다.”   그렇다. 한 끼의 식탁에서도 우리는 이 매력적인 하나님을 만나며 즐거워할 수 있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하나님이 주신 자연과 경쟁하지 않고 오히려 영감을 받는다. 훌륭한 식탁 역시 그럴 것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아무리 먹음직스러운 흑트뤼플에 캐비어를 곁들이고 푸아그라나 오르톨랑을 먹는다고 해도, 텃밭에서 꽃을 피우고 나비가 노닐며 열매를 맺는 오이 하나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바쁘다는 핑계로 시멘트벽만 바라보며 사는 우리에게 푸르른 하늘은 여전히 매력을 뿜어낸다. 우리가 피워낸 먼지와 매연이 온통 하늘을 가려도 별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별빛을 쏟아낸다. 꽃으로 가득한 벌판 그리고 숨이 멎을 것 같은 노을.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당신이 있다.   하나님은 이 순간을 당신이 없이는 완성하지 않으신다. 할 말조차 잊게 하는 벅찬 장관을 보는 것은 산도 아니요, 꽃도 아니다. 별도 아니며 해도 아니다. 당신을 위해, 언제 쳐다볼지도 모르는 우리를 위해 오늘도 펼쳐져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런 것이다.     우리는 이 우주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결국 사라질 것들조차 이토록 경이롭게 만들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은 그 매력으로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셨다. 하나님을 따라 지어진 당신을 위해서 말이다.   이 나라를 상속받은 자는 더 이상 얻을 구원이 없고 잃어버릴 천국도 없다. 사라질 세상조차도 당신을 위해 빛내시는 하나님이 어찌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생을 빛내시지 않으랴. 이 매력적인 위대한 예술가는 연탄재와 지푸라기로도 피카소조차 부끄럽게 하실 분이시니 말이다.   사바트(Sabbath). 멈추어 보라. 그리고 이 역사의 끝에서 당신과 함께 이 순간을 완성해 가시는 하나님을 보라. 구름이 흐르는 하늘과 빛나는 태양만이 아니다. 어두운 뒷골목과 암울한 빌딩까지도 당신과 함께 지금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매력을 막을 수 없다. 당신은 하나님의 매력이다.   [email protected]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등불아래서 하나님 초상화 덕인지 종교 개혁자 기독교 강요

2022-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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