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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한류 르네상스, 깊이가 숙제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LA 킹스가 지난달 23일 홈구장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한국 문화 축제인 ‘K-타운 나이트’를 성황리에 개최하며 LA 한인 사회의 뜨거운 열기를 실감케 했다. 코리아타운 시니어 & 커뮤니티 센터의 흥겨운 사물놀이 공연과 하모니카 연주, 한인 DJ가 선사하는 K-팝의 향연은 경기장을 찾은 현지 팬들을 매료시켰다.   그런가하면 LA 다운타운에선 한국 미슐랭가이드에 이름을 올린 돼지곰탕 전문점 ‘옥동식’의 팝업 식당이 연일 화제다. 지난 1일부터 오는 12월까지 9개월간 운영될 예정인 옥동식 팝업 매장은 뉴욕타임스도 극찬한 한국 전통의 맑은 돼지곰탕 맛을 LA 미식가들에게 선보이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또한,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K-도넛 브랜드 ‘카페 노티드’가 오는 12일 LA에 미주 1호점을 오픈하며 디저트 시장까지 K-열풍을 이어갈 전망이다.   스포츠, 음식,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최근 LA에서는 그야말로 ‘한류 르네상스’라 불러도 좋을 만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흐름이 단순한 유행에 그치지 않고, LA 문화의 한 축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보다 심층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팬덤을 구축한 한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시작으로 방탄소년단,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 등을 통해 한국 대중문화의 저력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그러나 현재의 한류 소비는 한국 문화를 ‘겉으로 즐기는’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콘텐츠 자체의 매력에 대한 반응은 뜨겁지만, 그 이면에 담긴 한국인의 정서나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다.   예를 들어, LA 현지인들이 한식을 맛본다고 해도 김치나 곰탕 한 그릇에 담긴 한국인의 삶과 철학, 역사적 의미까지 깊이 이해하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해 LA타임스의 저명한 음식 비평가 빌 에디슨과의 인터뷰에서 삼계탕을 메뉴로 함께 식사한 적이 있다. 그는 한국의 ‘삼복(三伏)’이라는 절기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 유래나 담긴 의미까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삼복의 역사와 의미를 설명해주자 그는 깊은 감명을 받은 표정이었다. 당시 에디슨은 “한식이 진정으로 타인종의 일상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단순한 음식 소개를 넘어 정통 한식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확산이 필요하며, 그 수요는 한국인들의 생각 이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다.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열연에 매료된 시청자들은 K-드라마를 즐겨 보지만, 그 속에 녹아 있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나 시대적 배경, 사회상은 때로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결국, 현재의 한류 소비는 콘텐츠라는 ‘결과물’에 집중되어 있을 뿐, 그 문화적 ‘맥락’까지 깊이 공유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피상적인 소비 형태가 지속된다면, 한류는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나고 머지않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한류를 지속 가능한 문화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한국 문화가 지닌 고유한 ‘문화 내러티브’를 적극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단순한 볼거리나 먹거리를 넘어 한국인의 역사적 경험과 가치관, 삶의 지혜 등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함께 전파해야 한다. 화려한 K-팝 퍼포먼스 뒤에 숨겨진 아티스트와 스태프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 그리고 LA를 비롯한 타지에서 묵묵히 삶을 일궈온 한인 이민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조명될 때, 비로소 감상자들은 한국 문화에 대한 깊은 공감과 진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지속적인 문화 교류와 교육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대학의 한국학 강좌나 세종학당의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처럼 언어와 역사를 함께 배울 수 있는 창구를 더욱 늘려야 한다. 이를 통해 일회성 문화 체험이 장기적인 관심과 깊이 있는 이해로 발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셋째, 전략적인 지원과 연대 또한 중요하다. 문화가 꽃피우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다.     일본의 사례를 보자. 태미 김 전 어바인 시의원은 지난 2022년 한 인터뷰에서 “일본은 소름 끼칠 만큼 치밀한 로비로 미국 사회에서 문화 영향력을 유지 중”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민간 차원의 뜨거운 열정에 더해 한국 정부와 LA 한인 사회가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한류의 제도적 기반을 튼튼히 다져나갈 때, 한국 문화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미국 사회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스며드는 진정한 ‘생활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LA 킹스의 ‘K-타운 나이트’ 행사장에서 뜨거운 함성, 옥동식 팝업 식당 앞에 길게 늘어선 줄, 달콤한 K-도넛의 인기. 이 모든 현상이 단순한 유행으로 스쳐 지나갈 것인지, 아니면 미국 사회에 한국의 이야기를 깊이 새기는 문화의 씨앗이 될지는 결국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고민에 달려 있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르네상스 한류 한국 대중문화 한류 르네상스 한국 문화 김경준 미국 캘리포니아 가주 엘에이 로스앤젤레스 LA뉴스 한인 뉴스 미주 한인 한인 LA중앙일보 미주중앙일보

2025-04-02

[기자의 눈] 미국 사회의 변화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을 왔다. 벌써 20여년 전 이야기다. 대학을 다니면서 항상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들이 부러웠다. 특히 취업할 때가 되니 더 그랬다.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 미국은 금융위기 직후였기 때문에 경기는 극도로 침체해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외국인을 비자까지 줘가면서 고용할 회사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하던 기업의 최종면접까지 갔지만, 외국인이어서 탈락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영주권자가 되고 이후 시민권도 땄다. 시민권자가 되고 나서 처음 투표를 할 때는 감개무량했다. 한국영사관에 찾아가서 국적상실 신고를 할 때는 기분이 이상했다. 나라는 사람은 바뀐 게 없는데 정체성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국적’이 바뀌니 많은 일이 달라졌다.     내 주변에는 영주권을 취득하고 한참이 지났지만,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는 한인들도 있다. 이유도 다양하다. 영어 시험이 두려워서라는 사람도 있고 후에 역이민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다. 혹은 본인이 미국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음에도 한국인이라는 인식이 더 깊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최근 반드시 시민권자가 돼야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영주권자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한인 대학생 정윤수 씨의 이야기다. 이스라엘에 가자지구 공격에 반대하는 교내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영주권 박탈과 함께 추방 위기에까지 몰려서 많은 사람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현재 정 씨는 영주권 박탈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고 연방 법원은 추방 절차 중단을 명령한 바 있다. 하지만 정치적 입장 때문에 7살 때부터 살아온 나라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두려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주권자나 합법적 비자 소지자들이 외국에 나갔다가 미국으로 다시 입국할 때의 조사도 까다로워지고 있다고 한다. 심증 질문과 전자 기기 검사 등을 무차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런 소식을 접하고 미리 시민권을 취득하길 잘했다고 안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시민이 되겠다고 선서한 미국의 모습이 과연 이런 것이었나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에 반기를 들고 있다. 한인 앤디 김 연방 상원의원은 정 씨의 영주권 박탈을 정치적 보복으로 규정했고 데이브 민 연방 하원의원은 “이번 조치는 불법적이며 헌법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했다.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도 “다른 의견을 갖는다고 추방하는 것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미국은 동경의 대상 중 하나였다.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항상 미국은 지구를 지키는 국가였다. 가장 발전된 민주주의와 경제를 가진 선진국이 없다. 유학 시절부터 가까운 곳에서 본 미국 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다양성과 포용성이었다. ‘멜팅팟’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사람이 섞여 사는 이곳에서 다양성은 미덕의 하나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고부터는 이러한 경향이 쇠퇴하는 것 같다. 지난 20년간 미국에 살면서 본 모습과는 확실히 다르다. 시민권 선서를 할 때 생각했던 나라 와도 차이가 있다. 변화하는 미국을 시민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조원희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미국 사회 시민권 선서 영주권 박탈과 이후 시민권

2025-04-01

[기자의 눈] 페이스북의 부활, ‘친구’로 돌아간다

페이스북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시도가 다시 한번 시작됐다. 메타의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는 최근 ‘오리지널 페이스북(OG Facebook)’으로의 복귀를 선언하며, 그 첫 번째 변화로 ‘친구 탭(Friends Tab)’ 기능을 출시했다.   친구 탭은 이름 그대로, 오직 ‘친구’들의 콘텐츠만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더는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 광고, 유명인의 포스트에 뒤덮이지 않고, 친구들의 게시물, 스토리, 릴스, 생일 알림 등 순수한 인간관계의 흔적만이 남는다. 이른바 옛날 페이스북의 원형을 되살리겠다는 시도다.   오리지널 페이스북은 2004년 하버드 대학생이었던 저커버그가 친구들 간의 교류를 위해 만들었던 그 초기 형태를 의미한다. 당시 페이스북은 ‘친구들과의 연결’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갖고 있었고, 사용자는 피드를 열면 오직 친구들의 근황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관계 중심의 구조였다. 지금처럼 광고, 페이지, 추천 콘텐츠, 릴스, 쇼핑이 범람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내가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공간’이라는 정체성이 뚜렷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페이스북은 달라졌다. 피드는 점점 알고리즘의 손에 맡겨졌고, 내가 팔로우하지 않은 계정의 영상이 뜨고, 광고는 친구들의 소식을 밀어냈다. 메타는 수년에 걸쳐 그룹, 동영상, 마켓플레이스 등 다양한 기능을 발전시켰지만, ‘친구들과의 연결’이라는 정체성은 희미해졌다.   이런 변화를 견디지 못한 건 특히 젊은 층이었다. 2014년만 해도 10대들의 페이스북 사용률은 70%를 넘었지만, 최근엔 절반에도 못 미친다. 대신 이들은 틱톡, 스냅챗, 인스타그램으로 떠났다. 더 빠르고, 더 자극적이고, 더 유행에 가까운 플랫폼들이었다. 이렇게 페이스북은 늙어갔다. 지금 페이스북의 주이용층은 40대 이상, 점점 더 고령화되는 플랫폼이라는 조롱도 나온다.   이런 배경 속에서 저커버그의 OG 페이스북 복귀 선언은 일종의 회귀다. 그는 “페이스북을 다시 문화적으로 영향력 있는 앱으로 만들기 위해 단기적 수익을 희생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만큼 지금의 위기가 절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친구 탭’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 많은 업데이트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문제는 OG 페이스북이 과연 지금 시대에 통할지에 대한 것이다. OG 페이스북이 가졌던 단순함과 연결의 진정성은 지금도 분명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용자들의 습관은 이미 바뀌었다. 인공지능(AI) 알고리즘에 길들여진 유저들은 이제 추천 콘텐츠를 보는 데 더 익숙해져 있다. 유행하는 릴스와, 유명인의 숏폼 영상과 함께 하루를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G 페이스북이 가진 가능성은 있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소셜미디어가 점점 더 1인 미디어로 바뀌는 시대에, 진짜 친구들과의 연결을 복원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다. ‘오직 친구만’이 등장하는 공간은 과거의 향수뿐 아니라, 디지털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러면 OG 페이스북은 단순함, 사적인 공유, 믿을 수 있는 관계라는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광고보다 친구를 앞세우고, 알고리즘보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가 돌아올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단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시대에 맞는 OG 페이스북을 만들어야 한다.   페이스북이 부활하려면 ‘우리는 여전히 친구들과 연결되고 싶어하는가’라는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페이스북 부활 진짜 친구들 추천 콘텐츠 광고 페이지

2025-03-30

[기자의 눈] ‘쿵 플루’는 필요 없다

최근 시카고 서버브 나일스의 한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괴편지가 날아왔다. 편지 내용은 아시안 비하 내용이었다. 지면을 통해 자세히 옮기기 민망할 정도의 어조로 식당 주인을 비하하는 내용이었는데 그 중에는 ‘쿵플루(Kung Flu)’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쿵플루는 중국 무술 쿵푸(kungfu)와 독감(flu)을 합성한 말이다. 중국인 등 아시안들이 바이러스를 가지고 다닌다는 의미로 팬데믹 이후 한인을 포함한 아시안들이 자주 듣게 된 비하 용어다. 그러면서 당장 식당 문을 닫지 않으면 갱 조직의 행동으로 공격하겠다는 표현도 들어가 있다.     편지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식당 주인이라면 등골이 오싹할 정도다. 편지는 백인 판사 클럽의 제프리 워닉이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추신으로는 판사로 일하는 최고의 장점은 무엇이든 맘 먹은 대로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 편지의 심각성은 현직 판사를 사칭했다는 것이다. 제프리 워닉 판사는 쿡 카운티 순회법원 판사로 현재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워닉 판사가 보낸 것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 편지는 판사 이름을 사칭해 혐오스런 아시안 비하 용어를 마음대로 내뱉고 있다.     당장 워닉 판사가 소속된 쿡 카운티 순회법원측은 성명서를 내고 심각한 사안이라며 수사에 적극 협조할 뜻을 밝혔다. 티모시 에반스 쿡카운티 판사장은 “현직에 있거나 은퇴한 판사들의 명예를 실추한 사건으로 관련 기관에 수사를 의뢰했으며 연방수사국(FBI)에도 이를 알렸다”고 언급했다.   이 편지는 또 나일스의 한식당에만 전달된 것이 아니라는 점도 확인됐다. 에반스톤과 모톤그로브, 스코키 등 한인 밀집 지역의 소수계가 운영하는 식당 5~6곳에 이와 같은 형식의 혐오 편지가 배달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인만을 노린 것이 아니라 편지 내용에도 언급된 것과 같이 흑인과 라티노, 성소수자 등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뿌려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간 시카고는 다른 대도시인 뉴욕이나 LA에 비해 아시안 혐오 범죄의 피해에서 상대적으로 비켜나 있었다. 적어도 주요 언론을 통해서는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거리에서 폭행을 당하거나 묻지마 혐오 범죄의 타깃이 된 것은 거의 없었다고 볼 정도다.     하지만 이제 시카고뿐만 아니라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한인사회도 아시안 혐오범죄의 피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보여졌다. 혐오 범죄는 당하는 사람이 조심한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단순히 피부 색깔만으로 누구나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관할 나일스 경찰은 편지를 발송한 자에 대한 수사에 즉각 착수했다. 편지에 남아 있을 수도 있는 지문을 채취해 누가 발송했는지 여부를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도시의 경찰과 협조 수사를 통해 동일범의 소행인지, 복수의 가해자인지 여부도 확인하고 있다.     한인사회 역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신속하게 나왔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시카고 이민자보호교회에서는 해당 사건을 인지한 즉시 변호사와 의견을 나눴다는 점을 확인한 뒤 관련 수사 당국에 철저한 수사를 통해 범인을 색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지역 정치인들에게도 이러한 한인사회 의견을 전달했다. 한 사람의 식당 주인만이 아니라 커뮤니티 차원에서 대응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혐오 범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뉴스에서 가끔 접하는 다른 세상의 일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코로나19로 인해 확인되지 않은, 검증될 수 없는 가짜 뉴스가 판치는 현실 속에서 이민자로, 아시안으로,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고심하게 된다.     이는 이민 1세대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태어난 우리 후세들에게도 직접적인 문제로 다가온다. 단지 피부색 때문에, 생김새 때문에, 성 정체성 때문에 억울한 피해를 당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은 본인 스스로 그런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지진 않았을까 하는 뒤돌아 봄으로 자연스레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박춘호 / 시카고중앙일보 기자기자의 눈 플루 kung 아시안 혐오범죄 카운티 순회법원측 아시안 비하

2025-03-27

[기자의 눈] 시카고 방갈로와 정치인

시카고 지사 기자건축 양식을 일컫는 말 중에 방갈로(bungalows)라는 말이 있다. 인도 뱅갈 지방에서 흔히 보이는 건축 양식을 뜻하는 말로 사용됐지만 미국에서는 주로 크지 않은 면적 위에 자리잡은 단층 주택을 의미하는 말로 통용된다.   방갈로의 특징은 높은 천장과 큰 문, 넓은 창, 처마와 베란다 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시카고에서도 전형적인 방갈로 주택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주로 남부에, 일부 서부와 북부 지역에도 이와 같은 형식의 주택이 곳곳에 남아 있다.     건축계에서는 이런 시카고 방갈로 주택이 고층 건물을 뜻하는 마천루(skyscraper)에 못지 않은 시카고 건축의 역사와 특징을 나타낸다고 평가한다. 마천루의 탄생지로 시카고가 인정받는데 비해서 방갈로는 그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방갈로는 1900년대 초반부터 시카고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세기 초반에 쿡카운티에만 약 8만 채에서 10만 채의 방갈로가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집에 입주한 주민들은 대부분 이민 1세대들이었다. 방갈로 벨트라고 불리는 지역으로는 사우스 쇼어에서 마켓 파크까지, 오스틴에서 노스웨스트 지역, 웨스트 로저스 파크까지에도 방갈로가 차지하고 있었다. 방갈로에 거주한다는 것은 사회적 지위의 확인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집은 중산층을 의미하기도 했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지 않고 그 지역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자녀를 낳고 이들이 자라게 되면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하야했겠지만 방갈로는 첫 보금자리의 의미가 컸다. 집을 임대하지 않고 첫 주택을 장만한다는 것은 또 부의 축적을 뜻했다. 에쿼티가 커지면 대출을 할 수도 있었고 그만큼 가용할 수 있는 재산이 늘어난다는 것과 의미가 상통했다.   당시 부동산 광고도 이런 측면을 강조했다. 아서 맥인토시라는 주택 건축 회사는 당시 시카고 트리뷴에 낸 광고를 통해 “우리는 지붕이 있고 벽난로도 설치됐으며 전기 조명, 난방장치까지 갖추고 모든 방이 멋지게 꾸며져 있는 시멘트 토대의 집을 500달러 현금과 월 40달러에 판매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외관적으로는 방갈로에 넓은 유리창이 적용됐고 붉은색이나 노란색 벽돌이 체커보드 패턴으로 사용됐다.     또 출입구에는 베란다가 만들어져 의자 하나 둘 씩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차를 마시거나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시티 라이트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방갈로의 형식은 간단하다. 보통은 지하가 지상 위로 약간 돌출된 모양을 가진 1층 반 짜리 주택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다락방이 있고 지하실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침실을 추가할 수 있었고 주거 공간을 확장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추고 있었다.     규모 역시 클 수가 없었다. 시카고의 한 부지가 보통 25피트에서 35피트 넓이다. 이 공간을 충분히 활용해서 주택을 지어야 했기에 옆 주택과 촘촘히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실제로 방갈로 주택의 창문과 창문은 거의 붙어 있을 정도로 가깝다. 그래서 옆집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훤히 알 수 있는 공간적 제한이 있었지만 이를 통해 옆집과의 소통과 교류가 활발해질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실내 공간 역시 넓지 않았기 때문에 복도를 통해 옆방으로 이동할 수 있기보다는 거실과 침실을 문을 통해 드나드는 방식으로 공간을 활용했다. 이를 ‘레일로딩(railroading)’이라고 불렀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열차 내부 설계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유래했다. 방갈로가 당시 대표적인 주택 양식으로 널리 사랑받게 되자 정치인들에게도 하나의 표식으로 여겨졌다. 리차드 J 데일리 시카고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즉 방갈로에 살고 있다는 의미는 서민, 일반 노동자들과의 연대감 혹은 교류를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로 읽혔다.     연방 하원이었던 윌리암 리핀스키는 선거 캠페인을 하면서 유권자들에게 자신은 도시의 방갈로에 살지만 상대 후보는 교외의 크고 멋있는 주택에 살고 있음을 강조하는 우편물을 보내 차별화를 시도했고 이는 선거에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당선에 큰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시카고 시는 이런 자산인 방갈로의 보전을 위한 정책도 펼쳤다. 2000년에 방갈로를 구입하거나 개조하고자 하는 주민들에게는 재정적 보조 프로그램을 실시한 것이다. 이 정책은 리차드 M 데일리 시장이 추진했는데 자신도 역시 방갈로와 함께 한 경험이 풍부했다. 아버지 데일리 시장이 남서부 브릿지포트에서 일생을 방갈로에 살았고 자신 역시 시장 임기 마지막 몇 해를 제외하곤 방갈로에 살았기 대문이다.     아들 데일리 시장이 방갈로에서 나와 시 남부 고급 고층 콘도로 이사하는 것을 두곤 시장 선거에서 낙선할 위험이 있다는 경고가 나오기도 했을 정도로 정치인과 방갈로로 상징되는 중산층과의 관계는 중요하게 여겨졌다. 아들 데일리 시장은 “방갈로에서 자란 우리들은 우리 가슴 속에 항상 방갈로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춘호 / 시카고 중앙일보 기자기자의 눈 시카고 방갈로 시카고 방갈로 방갈로 주택 방갈로 벨트

2025-03-17

[기자의 눈] 레이커스 경기장에 뜬 숫자 ‘100’

프로농구(NBA) 댈러스 매버릭스의 간판 스타였던 루카 돈치치가 LA 레이커스 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누비는 모습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LA의 새로운 아이콘이 됐다. 그가 LA로 트레이드된 이후 레이커스는 보스턴과 맞붙은 원정 한 경기를 제외하고 연승을 거두며 NBA 서부 컨퍼런스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지난 6일 뉴욕 닉스와의 경기에서는 연장전 접전 끝에 113-109 승리를 거뒀다. 르브론 제임스는 31득점 12리바운드로 팀을 이끌었고, 돈치치는 20득점 7리바운드 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공격과 경기 운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레이커스의 JJ 레딕 감독은 경기 후 “우리 선수들의 후반 수비력은 환상적이었다. 특히 르브론과 루카의 움직임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돈치치의 합류는 단순한 전력 보강이 아니었다. 그는 레이커스를 다시 우승 경쟁팀으로 끌어올릴 차세대 슈퍼스타다. 일각에서는 르브론과 공존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두 선수는 오히려 환상적인 시너지를 보여주고 있다.   마흔을 넘긴 르브론은 돈치치가 볼 핸들링을 분담하면서 체력 관리가 수월해졌다. 덕분에 경기 후반에도 강한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고, 뉴욕전처럼 클러치 상황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수비에서도 돈치치의 존재는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가 단순한 득점원이 아니라 팀 밸런스를 맞춰주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르브론이 수비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최근 레이커스의 수비 효율성은 리그 1위까지 상승했다. 뉴욕전 4쿼터에서 단 15점만을 허용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돈치치의 이적은 그의 친정팀인 매버릭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25일, 그는 트레이드 후 처음으로 친정팀 댈러스를 상대하며 19득점 15리바운드 12어시스트의 트리플 더블을 기록,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경기 후 그는 “(댈러스가 날 트레이드한 것에 대해)감정이 아직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기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경기장에서는 레이커스 팬들이 “땡큐 니코(Thank You, Nico!)”를 외쳤다. 댈러스 단장 니코 해리슨이 돈치치를 트레이드한 것을 비꼬는 의미였다.   처음부터 이 트레이드는 논란이었다. 돈치치를 내보낸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댈러스는 카이리 어빙과의 조합을 유지하며 새로운 전력을 구성하려 했지만, 오히려 균형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설상가상으로, 돈치치 트레이드로 얻은 앤서니 데이비스마저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댈러스의 시즌 계획은 완전히 어긋났다.   댈러스 팬들의 실망은 극에 달했다. 경기장에는 빈 좌석이 늘어났고, SNS에서는 ‘#해리슨아웃’ 해시태그가 트렌드에 오를 정도다.   반면, 레이커스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돈치치와 르브론의 조합은 공격뿐만 아니라 경기 운영에서도 새로운 차원을 보여주고 있다. 수비력까지 리그 최상위권으로 올라서면서 팀의 완성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JJ 레딕 감독은 “이제 우리는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는 팀이 아니다. 조직력과 팀워크가 우리의 새로운 무기”라고 강조했다.   경기장에서는 르브론(23번)과 돈치치(77번)의 등번호를 합친 ‘100’이라는 숫자가 적힌 포스터와 사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두 선수의 시너지가 극대화됐다는 의미이자, 팬들의 기대감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루카 돈치치의 합류는 레이커스의 DNA를 다시 세팅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존재는 단순한 전력 보강이 아니라 팀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됐다. 코비 브라이언트 이후, 다시 한 번 NBA 정상을 노릴 슈퍼스타가 나타났다.   레이커스 팬이기 이전에 객관적인 시각에서 봐도, 댈러스가 돈치치를 레이커스로 보낸 이유는 쉽게 가늠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는 이제 레이커스의 중심이며, 그의 플레이 하나하나가 팀의 미래를 새롭게 그려가고 있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레이커스 경기장 최근 레이커스 이후 레이커스 레이커스 팬들

2025-03-10

[기자의 눈] 미국 전문가들이 본 탄핵정국

사회부 기자 탄핵정국이 이제 종착역을 눈 앞에 두고 있다. 14일 전후로 선고 일정을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 상황이다. 다만 7일 법원의 윤석열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에 따라 평의가 길어져 다소 지연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탄핵 정국과 관련, 2월 말부터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10여 명을 인터뷰해 이들의 분석을 들어봤다. 전문가들은 탄핵 정국에 우려를 표하면서도 오히려 한국인보다 한국에 더 깊은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먼저 이들의 상당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세계 정세가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한국의 대통령 공석으로 정상 간의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점을 가장 크게 우려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제대로 된 정권이 없는 한국은 시속 100km로 달리는 도널드 트럼프에 속도를 맞추려는 다른 모든 나라들보다 뒤처지고 있다”며 “현재 한국은 기어를 중립에 놓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유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 종결 압박,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 조정, 유럽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 문제 등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은 이러한 흐름에 뒤처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한국의 대통령이 앞으로 누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누구와 대화를 해야 하는지 모른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하게 되는 계엄령 선포 전에 미국에 이를 사전 통보하지 않아 한미동맹이 악화하고 양국 간 신뢰가 훼손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앤드류 여 브루킹스 연구소 한국 석좌는 “만약 계엄령 선포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사전에 오랫동안 계획됐던 것이라면 신뢰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 발견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고위직 관리, 특히 외교 문제를 담당했던 사람들은 한국의 탄핵 문제와 관련해 답변을 꺼렸다는 것이었다. 한 백악관 전직 고위 관리는 “한국의 정치와 계엄이 양국 관계에 끼친 영향에 대해 말하는 것이 불편하다”며 “(외국인인) 내가 그들의 민주주의 절차가 어떻게 돼야 하는지에 대해 언급하는 것에 한국인들이 기분이 나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전직 고위 관리는 탄핵 정국이 영향을 끼칠지를 묻는 질문에 대답하기 싫다는 듯 “뭐 영향이야 있겠지만, 더 할 말이 없다. 미안하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30명 이상에게 연락했지만 실제 인터뷰에 응한 전문가는 10명 남짓이었다. 이는 현재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의 신중한 태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한국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전문가들도 많았다. 국방정보국(DIA) 분석관을 지낸 브루스 벡톨 앤젤로주립대 교수는 탄핵이 한미 관계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으며 양국은 강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은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을 때도 강한 유대감을 갖지 않았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상원외교위원회에서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정책 국장을 지낸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는 한국 민주주의 복원력에 감동했다고 했다. 그는 “혼란스러운 탄핵 정국에도 시민들의 자유가 보장되고 국회와 법원, 그리고 군대가 헌법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반복적으로 강조한 것은 한국의 대통령 공백 상태가 빨리 해결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 때처럼 북한과 직접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데 한국이 지도자 없이 대응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우려였다.   탄핵 심판은 이르면 이번 주, 늦으면 이달 말쯤 결론이 날 전망이다. 계엄은 이미 선포됐고 시계는 빠르게 돌아 윤 대통령은 탄핵 심판에 부쳐졌으며, 현재 탄핵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중립 기어’ 상태에서 벗어나 하루빨리 대통령직에 앉을 사람을 결정하고 ‘드라이브 기어’로 전환해, 트럼프가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같은 속도로 함께 달리길 바란다. 김영남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미국 탄핵정국 한반도 전문가 한국 석좌 탄핵 문제

2025-03-09

[기자의 눈] 외교 무대서 ‘을’의 생존 전략

지난달 28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이 파행으로 끝났다. 이번 회담에서 거친 고성이 오간 것은 미.우크라이나 관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는국가 간 외교 전략과 국가 이익이 충돌할 때 어떤 갈등이 발생하는지를 시사한다. 특히 젤렌스키 대통령이 안보보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가치 외교’를 강조하며 미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려 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향후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 역시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이 결렬된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요구한 전략적 조건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추구하는 외교적 가치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앞세워 우크라이나 광물 수익의 50%를 요구하고, 협정 관할권을 뉴욕 소재 법원으로 지정하는 내용을 협정안에 포함했다.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를 부당한 요구라고 판단했다. 더불어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안보 보장을 제공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안보를 강화해야 하지만, 광물 협정에서 미국이 보인 태도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강조하는 가치 외교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젤렌스키가 말하는 가치 외교란 경제적 이익과 국가 주권을 우선하면서도 동맹 관계를 유지하는 균형 잡힌 외교 전략을 의미한다. 그는 미국과의 협력을 유지하면서도, 자국의 핵심 산업과 경제적 주권을 미국의 과도한 개입으로부터 지키고자 했다. 그러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외교 무대에서 ‘을’의 입장에 놓인 우크라이나는 이를 관철하기 어려웠다.   한국 역시 미국과의 관계에서 비슷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에 미국과의 안보 협력은 우크라이나처럼 필수적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계속해서 한국의 이익에 반하는 외교 정책을 펼쳐 왔다. 특히 그의 강경한 관세 정책, 주한미군 철수 시사, 한국의 대중 경제 협력 축소 요구 등은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도전 속에서 한국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우크라이나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첫째, 자강 안보를 실현해야 한다. 강한 국방력은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강화하는 핵심 요소다. 미국과의 긴밀한 군사 협력은 유지하되, 한국 자체의 방위력을 증대시켜야 한다. 국방비 증액과 첨단 무기 개발을 지속해 안보를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한미 간 협상 테이블에서 더욱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   둘째, 경제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 미국 중심의 경제 질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도,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반도체, 배터리, 방위산업뿐만 아니라 AI 및 친환경 에너지 산업에서도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와 같은 다자 협력 체제를 활용해 무역 다변화를 추진하고, FTA 네트워크를 확대해 수출 의존도를 분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에 대비해 한국 기업들이 다양한 무역 시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실용 외교를 지향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도덕적 명분보다는 전략적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미국과의 협력을 최우선으로 하되, 필요에 따라 유럽, 동남아, 남미 등과의 연대를 강화해 다자 외교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미국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외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트럼프-젤렌스키 회담의 파행은 국가 이익과 외교 전략이 충돌할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주체적인 외교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강한 안보와 경제적 독립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국제 외교 무대에서 ‘을’의 자리는 피할 수 없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외교 무대 외교 전략 외교 무대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5-03-06

[기자의 눈] 에드가 전 주지사의 값진 성찰

한때 일리노이 주지사는 공화당 출신들이 많았다. 현직인 JB 프리츠커 주지사는 민주당 소속이지만 직전 브루스 라우너 주지사가 공화당 소속이었다. 그 전 팻 퀸, 로드 블라고야비치 전 주지사가 민주당이었는데 그 이전까지는 공화당 주지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조지 라이언이 그랬고 짐 에드가 전 주지사도 공화당이었다. 주청사 건물 이름을 따온 제임스 톰슨 전 주지사도 역시 공화당이었는다. 적어도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일리노이 주지사는 공화당 소속이 단연 압도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존경받은 주지사를 꼽으라면 단연 에드가 전 주지사다. 1991년부터 1999년까지 재임한 그는 중도 보수 성향이면서도 이념적으로는 크게 치우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에드가 전 주지사의 눈에 띄는 업적은 주 재정 상황을 매우 합리적이고 건전하게 이끌었다는 점이었다. 그가 취임할 당시 일리노이주 재정은 10억 달러 적자였지만 퇴임하던 해에는 15억 달러 흑자로 돌아섰다는 점이었다.   선심성 퍼주기 정책과 무책임한 공무원 연금 인상으로 인해 매년 적자가 늘어나고 있는 작금의 현실과 비교하면 매우 놀라운 수치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재정 상황을 반전하기 위해 그는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주의회와 어려운 타협을 해야 했는데 그 파트너가 최근 뇌물 수수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은 마이클 매디간 주하원 의장이었다.   에드가 전 주지사에 대한 평가는 민주당이나 공화당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흔한 평가는 ‘integrity’ 하다는 것이다. 정직, 성실, 청렴, 흠 없는 상태라는 뜻의 단어다. 개인적으로 이 평가는 스티브 김 전 공화당 부주지사 예비후보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스티브 김은 에드가 전 주지사를 조금이라도 접했거나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들었다면 누구나 하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에드가 전 주지사 인생 자체가 그랬고 정치인으로 그가 가장 우선적으로 내세우는 가치가 그것이다. 스티브 김 역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에드가 전 주지사를 꼽기도 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당적을 가리지도 않는다. 프리츠커 주지사는 지금도 조언이 필요하면 에드가 주지사와 대화를 한다고 밝혔다. 크리스 웰치 일리노이 하원 의장 역시 에드가 전 주지사를 integrity의 전형이라고 언급했고 그가 진정한 정치인이면서 일리노이를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을 아직도 계속 가지고 있다고도 평가했다.   참고로 웰치 의장은 에드가 전 주지사가 현재도 이끌고 있는 ‘에드가 펠로우’ 출신이다. 에드가 펠로우는 일리노이를 이끌어갈 유망 정치인들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현실 정치에서도 그는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주지사로 처음 당선될 때에는 민주당 후보에게 단 8만4000표 차로 신승했지만 재선에서는 무려 90만 표 차이로 당선되기도 했다. 일리노이 102개 카운티 중에서 단 한 개 카운티에서만 밀렸고 101개 타운티에서 승리한 압승이었다.   올해 78세인 그의 영향력은 아직도 유효하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카말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다고 밝혀 일리노이 공화당원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에드가 전 주지사는 최근 자신이 췌장암을 앓고 있으며 3주간의 키모 치료를 받았다고 공개했다. 그는 “아내와 나는 이 도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내일 삶이 끝난다 하더라도 나는 멋진 인생을 살아왔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담당 의사가 너무 멀리 내다보지 말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라는 조언을 했다. 이것이 아마도 내가 받은 최고의 어바이스일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존경받는 정치인이라도 에드가 전 주지사 정도는 되어야 자신의 삶을 이렇게 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것일까. 한국이나 미국이나 주위를 둘러봐도 현실 세계에서 존경받는 정치인을 쉽게 찾기 어렵다.   그래서 에드가 전 주지사가 밝힌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은 더욱 값지다. 그의 투병 소식을 접하면서 차세대 정치 지망생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인물이 좀 더 오래 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박춘호 / 시카고 지사 기자기자의 눈 주지사 성찰 공화당 부주지사 일리노이 주지사 공화당 주지사들

2025-03-04

[기자의 눈] 정부 효율화에 뒷전된 소비자 보호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연방 정부 기관의 효율화 및 재구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례 없는 과감한 조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가장 논란이 된 사안은 소비자금융보호국(CFPB) 폐지 추진이었다. 다행히 현재 폐지는 보류된 상태지만, 향후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   새 행정부는 지난달 CFPB를 “엘리트라 불리는 이들이 특정 산업과 개인을 불리하게 만들기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무기화된 관료 기구”라고 비판하며, 기구 해체를 추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및 정크 수수료 폐지 정책을 추진했던 로힛 초프라 CFPB 국장을 해임하고, 러셀 보트를 임시 국장으로 임명했다. 보트 국장은 부임 즉시 직원들에게 사무실 출근 및 업무 수행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이 같은 조치는 즉각적인 혼란을 초래했다. CFPB가 업무를 중단하면서 금융기관을 상대로 한 소비자 불만 접수가 중단되었고, 이에 대한 불만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CFPB는 그동안 소비자들의 금융 권익을 보호하는 핵심 기관으로 기능해 왔다. 은행 측에서 해결하지 않는 문제도 CFPB에 접수하면 빠르게 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도 정부와의 법적 분쟁을 피하기 위해 소비자 불만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로 인해 금융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구제 창구로 자리 잡아 왔다.   하지만 CFPB의 업무 중단 소식이 전해지면서 소비자 보호의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은행 직원들이 “CFPB 포털을 통해 접수되던 소비자 불만이 더 이상 전달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는 소비자 보호 체계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논란이 거세지자 행정부 변호사들은 지난달 25일 법정 문서를 통해 “CFPB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간소화(streamline)하려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는 기존에 행정부가 “CFPB는 완전히 폐지돼야 한다”고 밝혔던 입장과 배치된다. 모순된 메시지는 소비자 보호 기구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만약 CFPB가 해체된다면 소비자들은 금융기관의 부당 행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대응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 사기 및 불공정 관행에 대한 조사와 제재가 줄어들면서 소비자들이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사회적 약자나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구체적인 예로는, 금융기관의 부당한 이자율 적용, 잘못된 대출 승인 절차, 불투명한 수수료 체계 등의 문제가 감시 없이 확산될 수 있다. 소비자들은 피해를 입고도 적절한 구제를 받기 어려워지며, 금융권의 자율 규제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또한, 금융 규제 완화는 금융시장 전반의 불안정성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소비자 신용 보호가 약화되면 대출 상환 능력이 낮은 소비자들은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며, 이는 결국 경제 전반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CFPB의 축소나 폐지는 단순한 행정적 변화가 아니라, 소비자 보호 체계 전반의 약화를 의미한다. 행정부는 이를 ‘폐지’가 아닌 ‘효율화’라고 설명했지만, 이러한 변화조차 장기적으로 소비자 금융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정부 효율화를 통한 부채 감소라는 목표 자체는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 권리를 보호하는 중요한 기관을 급작스럽게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것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다. 이러한 정책이 결국 소비자들을 보호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로 내몬다면, 결코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효율화 소비자 소비자 불만 그동안 소비자들 금융기관 입장

2025-03-02

[기자의 눈] 위기 대응 실패, 예산 문제가 아니다

LA시의 위기 대응 체계가 또다시 허점을 드러냈다.     지난달 대형 산불이 한창 확산하던 당시 한 주류 언론은 LA시소방국의 75대 이상의 소방차량이 정비되지 않은 채 주차장에 방치됐다고 보도해 논란이 됐다. 대응 인력은 충분했지만, 차량 고장으로 소방관들이 현장에 투입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2024~2025 회계연도에서 LA시는 LA소방국(LAFD) 예산을 1760만 달러 삭감했고, 그 결과 긴급 차량 정비가 중단됐다고도 했다. LAFD 국장은 “예산 삭감이 없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소방국 노조 역시 “출동 가능한 장비만 충분했어도 더 많은 대응이 가능했다”며 대응력 약화를 우려했다.   그러나 예산이 정말 부족해서였을까. 최근 LA시는 산불 복구 책임자로 스티브 소보로프를 임명하고 90일 근무에 5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해당 금액은 시장 연봉을 초과하는 수준이었다. 퍼시픽 팰리세이즈 주민들은 즉각 반발했다.     한쪽에서는 화재 피해로 집을 잃은 주민들이 대피소를 전전하는 상황에서, 다른 한쪽에서는 복구 책임자가 단 3개월 근무로 50만 달러를 받을 예정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배스 시장은 결정을 철회했고, 소보로프는 무보수로 일하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애초에 50만 달러 지급이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기부금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다. 시의회 일부 의원들은 “산불 복구를 위한 기부금이 특정 개인의 보수로 쓰일 뻔했다”며 투명성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LA시는 여론의 압박에 밀려 보수 지급 계획을 철회해야 했다.   소보로프의 역할 또한 불명확했다. 배스 시장은 처음에는 그를 “산불 피해 복구 총책임자”라고 발표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퍼시픽 팰리세이즈 역사적 상업지구 복구”로 업무 범위를 좁혔다.     하지만 소보로프 본인은 “연방 기관과 협력하며 광범위한 복구 작업을 수행 중”이라고 반박했다. 정책의 핵심 인물이 자기 역할조차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는 시 정부의 행정 조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행정의 혼선은 홈리스 문제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LA시는 홈리스 문제 해결을 위해 13억 달러를 배정했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불분명하다. 지난해 LA시의 홈리스 인구는 4만5252명으로, 전년 대비 2.2% 감소했지만, 이는 단순한 숫자 조정일 가능성이 크다. 노숙자 보호소 입소자는 17.7% 증가했지만, 거리에서 생활하는 인구는 여전히 많다. 단순히 시설 수용 인원을 늘린 것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홈리스 증가 원인 분석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국 주택도시개발부(HUD)의 지난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홈리스 증가율이 급등한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불법 이민자 유입으로 인해 통계가 왜곡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LA시는 이 같은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피난처 도시(Sanctuary City)’ 정책을 선언하며 불법 이민 단속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연방 지원금이 중단될 가능성이 커졌고, 트럼프 행정부는 LA의 산불 복구 기금 삭감을 검토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 정부는 불법 이민자를 위한 법률 지원 확대와 캠페인에 추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기존 주민들의 주거 불안을 해결하는 데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또한, LA시는 불법 이민자와 기존 홈리스 인구를 구별하지 않는 방식으로 통계를 집계하며,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사회정책학 교수 데니스 컬레인은 “불법 이민자와 기존 홈리스 인구를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정책적 혼선을 초래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조차 모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LA시의 홈리스 증가율 3.1%는 캘리포니아 내 다른 지역보다 낮지만, 이 수치가 불법 이민자 유입으로 인한 일시적 증가인지, 실제 홈리스 증가인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시의 정책 방향은 여전히 일관성이 없다. 홈리스 문제 해결을 위해 13억 달러를 책정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데이터 정리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책의 실효성을 평가할 근거가 부족하니, 정작 도움이 필요한 주민들에게 적절한 지원이 닿지 않고 있다. 홈리스 증가의 주요 원인이 이민 정책과 연결된 문제라면, 이에 대한 명확한 분석과 대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LA시는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정치적 선언과 예산 투입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LA시의 정책은 반복적으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홈리스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소방 예산을 삭감했고, 불법 이민자 보호 정책을 강화하며 연방 지원금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산불 피해 복구를 명분으로 특정 개인에게 50만 달러의 보수를 지급하려 했고, 불명확한 홈리스 증가 통계를 근거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니라, 정책 기조 전반의 근본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다.   결국, 문제는 예산 부족이 아니다. 시 정부는 우선순위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고 있으며, 실질적인 효과보다 정치적 선언에 집중하고 있다. LA시는 홈리스 위기를 단순한 숫자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명확하게 분석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위기 대응 위기 대응 예산 삭감 투명성 문제

2025-02-10

[기자의 눈] 두 ‘한인 엄마 후보’에 거는 기대

얼마 전 한 흥미로운 기사를 접했다. 40대 한인 여성이 또 다른 한인 여성인 영 김 연방하원의원 지역구(가주 40지구·공화)에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주인공은 LA와 댈러스, 서울 등에서 아트 갤러리를 운영하는 에스더 김 바렛(Esther Kim Varet)이다.   선거가 앞으로 약 1년 9개월가량 남았기 때문에 실제 맞대결이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만약 현실화된다면 한인 후보들이 연방의원직을 두고 여야 대표로 경쟁하는 첫 사례가 된다. 그간 멀게만 느껴졌던 ‘한인 정치력 신장’이 어느 순간 눈앞에 성큼 다가온 듯하다.   실제 한인의 정치력은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성장했다. 첫 한인 연방하원의원은 김창준 의원(1993~1999년 재임)이다. 약 20년이 지난 2019년에 앤디 김 의원이 하원에 입성했다. 앤디 김 의원은 2024년 한인 최초로 상원의원에 당선돼 현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미셸 스틸, 영 김, 메릴린 스트릭랜드 하원의원 역시 2021년부터 의원직을 수행했다. 2024년 선거에서 스틸 의원이 낙선했지만 영 김과 스트릭랜드 의원, 그리고 새로 당선된 데이브 민 의원이 현재 ‘하원의 한인 3인방’으로 뛰고 있다. 이외에도 각 주와 지방 선거에서도 한인 선출직이 꾸준히 늘고 있다.   만약 영 김 의원과 김 바렛 후보가 실제로 맞붙게 된다면 그동안 한인 후보들의 선거 캠페인에서 보지 못했던 장면들이 연출될 수 있다.   지금까지 일부 한인 후보들은 한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당연하게 여겨왔다. ‘우리가 남이가’ 식의 논리가 작용하며, 선거 기간 동안 한인 사회에 얼굴을 자주 비추다가 당선 후엔 모습을 보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한인 후보들이 각당 대표로 서로 경쟁하게 된다면 ‘한인 프리미엄’은 사라지게 된다. 선거 과정에서 한인들의 목소리에 더 열심히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한인들 앞에서 연방 하원에 출마한 두 여성 한인 후보간 토론회가 개최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한인들이 한인 후보를 뽑아달라’는 호소는 통할 수 없다. 공약과 정책만으로 냉정하게 승부를 겨루게 된다.   영 김 의원 후보의 2024년 선거 운동 홈페이지와 최근 만들어진 김 바렛 후보의 홈페이지 등 현재까지 공개된 선거 캠페인 자료를 보면 두 후보는 비슷한 배경을 내세우고 있다. 둘 다 ‘이민자의 자녀’, ‘평범한 어머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중산층 보호와 세금 부담 완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이런 공통점을 고려하면, 후보 간 정책 차이를 명확히 가르는 논쟁은 필연적이다. 이는 한인 유권자들에게 더 풍부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려되는 점도 있다. 한인 프리미엄이 사라진 자리에 ‘이념 공방’이 고개들 수 있어서다.   실제 한인사회에서는 최근 영 김 의원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관련 발언을 두고 의견이 갈렸다. 김 의원이 “윤 대통령 탄핵 주도 세력은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려는 세력”이라고 발언한 것을 두고 비판 여론이 일었다. 그의 사무실 앞에서는 반대 시위가 열렸고, 온라인 청원 사이트 ‘체인지(change.org)’에까지 그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약 4600명이 이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하기도 했다. 김 바렛 후보도 벌써 “극단주의적인 공화당의 영 김 의원을 은퇴시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반면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은 김 의원의 발언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반박한다.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정당한 주장이라는 논리다.   1년 9개월 뒤 한인 사회가 두 후보를 두고 선택해야 할 기준은 분명하다. 이념을 뛰어넘는 바른 정책이다. 두 ‘한인 이민자’이자 ‘어머니’들이 토론장에서 분열된 정치가 아닌한인 사회를 위한, 그리고 미국을 위한 신선한 싸움을 벌이길 바란다. 김영남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한인 엄마 한인 후보들 한인 연방하원의원 한인 정치력

2025-02-09

[기자의 눈] 트럼프 관세 폭탄, 한국의 협상카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와 멕시코를 상대로 보편 관세 25%를 선포했다가 한 달간 유예했다. 이에 캐나다는 ‘펜타닐 차르’를 임명하고 마약 밀매 조직을 테러리스트로 지정했으며, 국경 감시를 24시간 강화하기로 했다. 멕시코 역시 불법 이민자 및 마약 유입을 막기 위해 1만여 명의 군 병력을 미-멕시코 국경에 배치했다.   이제 시선은 한국으로 향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어떤 방식으로 높은 관세를 부과할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한국도 캐나다와 멕시코처럼 강력한 협상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 미국이 필요로 하는 ‘강력한 한 방’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을 고스란히 맞을 위험이 크다.   첫 번째로 한국이 고려할 수 있는 한 방은 조선업이다. 이미 여러 차례 언급된 바 있지만, 미국 해군의 향후 계획을 봤을 때 생각 이상으로 강력한 한 방이 될 수 있다.   미국 해군은 니미츠급 항공모함 USS 니미츠호를 비롯해 현재 운용 중인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과 오하이오급 원자력 잠수함 대부분 등 주력 군함을 대거 퇴역시킬 예정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향후 30년간 전투함 293척, 군수 및 지원함 71척 등 총 364척의 새 군함을 구매하고, 1조750억 달러를 투입해 항공모함과 잠수함 59척을 신규 건조할 계획이다.   그러나 미국 조선업은 이러한 대규모 계획을 감당하기에 한계가 있다. 현재 미국 해군의 함정은 미국 내 7개 조선소에서만 건조되며, 생산성이 낮고 비용이 높다. 반면, 한국은 세계적인 군함 건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높은 효율성과 빠른 건조 속도를 자랑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이지스 구축함 1척을 건조하는 데 약 8억 달러와 18개월이 소요된다. 반면, 미국에서는 동일한 함정을 건조하는 데 28개월이 걸리고 비용도 16억 달러로 두 배가량 많다.   미국 해군의 제해권과 패권 유지를 위해서는 한국 조선업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신규 함정 건조를 비롯해 MRO(유지·보수·운영) 사업까지 미국 해군의 운용 능력 증강을 위해서는 한국 조선업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트럼프 대통령도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업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세 협상에서 유용한 카드가 될 수 있다.   한국이 고려해볼 만한 또 다른 한 방은 방위산업 협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이 더 많은 국방비를 부담하길 원하며, 한국과 일본의 군사적 협력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 한국은 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적극적인 협력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단순히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두고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국방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나은 전략이다. 미국과의 방산 기술 협력을 확대하는 것이 그 방법이 될 수 있다.   양국은 미사일 방어 체계 강화와 우주력 증강이라는 공동 목표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합 미사일 방어 시스템 구축을 추진 중이며, 한국도 킬체인,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대량응징보복(KMPR)으로 구성된 3축 체계를 고도화하고 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기 정부에서 미국 우주군을 창설하고 최근에는 우주군 공격력 강화 계획을 세운 바 있으며, 한국도 한국형 NASA인 우주항공청 설립을 통해 항공우주 기술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한국이 미사일 방어 체계 및 우주 방위산업에 대한 투자 확대를 제안한다면, 트럼프 대통령도 긍정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한국이 먼저 협력 방안을 제시한다면 관세 인상보다 더 유리한 결과를 얻어낼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에서 상대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한 뒤, 이를 지렛대 삼아 원하는 결과를 끌어낸다. 한국은 그의 관세 압박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전에 강력한 한 방을 준비해 그의 장단에 맞춰주는 동시에 실익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또 한 번 미국발(發) 충격에 휘청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협상카드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 한국 조선업 도널드 트럼프

2025-02-04

[기자의 눈] 한식의 고급화는 경험 너머의 체험

먹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외식산업에도 관심이 많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한식 세계화를 통해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을 때 아쉬운 것은 한식의 고급화에 대한 부분이었다. 김밥이나 불고기와 같은 대중적인 음식에서 한식의 매력은 한 번 먹어본 사람이라면 모두 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기술이 뛰어나고 창의적인 셰프들이 경쟁하는 파인 다이닝 분야에서는 한식의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할리우드 스타가 고추장을 사는 사진을 찍고 배포하기 위해서 몇십만 달러를 쓰는 낡은 방식으로는 한식의 고급화는 이루기 힘들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 세계에 불어 닥친 한국문화 열풍으로 인해서 한식이 주류 외식업계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고 이에 따라서 변화도 많이 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한식의 고급화다.   지난해 말에는 뉴욕에서 처음으로 미슐랭 3스타를 받은 한식당이 탄생했다. 임정식 셰프의 정식당이다. 서울에 있는 정식당 본점에서 식사한 적이 있기에 개인적으로 정말 반가운 뉴스였다. 정식당에서의 식사는 경험에 더 가깝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닌 셰프의 아이디어를 오감으로 즐길 수 있었다. 물론 가격은 비쌌다. 하지만 식사가 아닌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돈값’을 한다고 느꼈다.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정식당보다 한 수 위였던 곳은 서울의 에빗이었다. 지난해 최고의 화제 프로그램인 흑백요리사에서 백수저로 나왔던 조셉 리저우드 셰프가 운영하는 곳이다. 호주인 셰프가 한식을 독창적으로 해석한다고 해서 큰 기대를 안고 갔는데 오히려 기대를 뛰어넘었다.     증강현실(AR)을 통해서 식탁 위에 작은 동물들이 뛰어다니는 애니메이션을 감상한 뒤에 음식을 먹는 건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지리산에서 셰프가 직접 채취했다는 개미를 동결건조해서 셔벗 위에 얹어주는 것을 보면서 이런 한식은 다른 어떤 식당에서도 보기 힘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경험이 아니라 체험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서울에서 몇 군데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다니며 느꼈다. 한식의 고급화는 충분히 가능하다. 아니 한발 더 나아가 이미 아주 높은 단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가속화되는 한식의 고급화는 올해 제임스 비어드 상에서도 볼 수 있었다.   제임스 비어드 상은 요식업계의 아카데미라고 불리는 권위 있는 상이다. 35년간 최고의 셰프나 레스토랑은 물론 바, 베이커리, 바텐더, 소믈리에, 조리 관련 서적 등에 상을 수여했다. 올해 제임스 비어드 상에는 앞서 소개한 정식당의 임정식 셰프를 비롯해 한인 셰프가 12명이나 후보에 올랐다. 일식부터 베이커리까지 분야도 다양했고 하와이부터 오클라호마까지 지역도 다양했다.     이에 더해 워싱턴 D.C.와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인 레스토랑 사업가들도 후보에 올렸다. 두 사람 모두 고급화된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그야말로 외식업계 전 분야에 걸쳐 한인들의 활약이 뛰어났다. 제임스 비어드 상에 한인 후보가 많은 것은 고급화된 한식이 국내 외식업계에 성공적으로 침투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한식의 매력을 많은 사람이 알게 되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특히나 한식의 고급화라는 ‘숙원사업’이 성과를 보인다는 점에서 더 고무적이다. 물론 한식이 더 발전해 나가려면 한식의 ‘근본’을 알고 있는 한인들의 지원과 비판도 필요하다. 아무리 고급스러운 음식이라도 ‘한식’이라는 범주를 벗어나는 순간 매력 없는 무국적 음식이 돼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인들도 고급화된 한식을 먹어보고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솔직하게 공유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LA지역에도 한식을 기반으로 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이 많다. 흑백요리사를 보면서 ‘미식’이라는 취미를 즐겨보고 싶어졌다면 고급화된 한식당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아마도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이다. 한식을 먹지 않고 ‘경험’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조원희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고급화 한식 한식 세계화 다이닝 레스토랑들 한인 셰프

2025-02-03

[기자의 눈] 트럼프의 부동산 정책, 한인타운에도 통할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 첫날인 지난 20일 수십 개의 행정명령을 무더기로 서명하며 여러 방면에서 급진적인 정책 전환을 예고했다. 이날 발표된 행정명령 중 주목할만한 안 중 하나는 주택 비용과 기타 주요 생활비에 대한 긴급 가격 완화 지시다.   트럼프는 치솟는 집값과 공급 부족 등 주택 문제에 대한 강력한 개선 의지를 보이며 공급확대와 규제 완화, 행정부 수장들에게 주기적인 진척 보고 등을 명령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보가 LA한인타운의 주택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든다.   행정명령의 핵심은 규제 완화와 주택 공급 확대다. 트럼프는 주택 건설 규제 비용이 신규 주택 가격의 약 24%를 차지한다는 전국주택건설협회(NAHB)의 분석을 언급하며, 불필요한 규제를 제거하면 건설 비용이 크게 낮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저소득층과 중산층 가구가 내 집 마련을 더 쉽게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미다.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NAR)는 성명을 내고 트럼프의 행보에 대해 주택 공급이 증가하고 시장 안정성이 강화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 캠페인 기간 연방 토지를 주택 건설을 위해 개방하는 방안도 꾸준히 제안해왔다. 이 방안은 저세율과 저규제를 결합해 새로운 주거 지대를 창출하고, 청년층과 중산층을 대상으로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계획은 환경 문제와 지역 정부와의 협력이 원활히 이루어진다면, 물론 단기간에 대규모 주택 공급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LA한인타운을 비롯해 주택난이 발생한 지역들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규제 완화의 효과는 주로 연방 차원의 정책 변화보다 주와 지방 정부의 협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건축 허가와 규제는 주 및 지역 수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연방 정부의 규제 완화가 실제로 현지 건설 환경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LA시는 자체적으로 엄격한 건축 규제와 임대료 통제 정책을 가지고 있어, 연방 차원의 규제 완화가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연방 토지를 활용한 주택 건설 계획은 지리적 한계가 있다. 연방 정부가 소유한 토지는 대부분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LA한인타운은 이미 높은 인구 밀도와 제한된 토지 자원을 가지고 있어 연방 토지 활용이 직접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 또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하고 싶은 도심 지역과 연방 토지가 위치한 외곽 지역 간의 불일치가 이러한 계획의 실효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트럼프가 서명한 행정명령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트럼프는 30일마다 행정부 부서 수장들에 소비자 비용 감소에 대한 진행 상황을 보고하도록 지시했지만, 구체적인 정책 도구나 목표는 쏙 빠져있다. 이는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게 만들고, 주택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진전을 방해할 뿐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과거 정책들이 기업 친화적 성격을 띠며 실제로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정책 역시 유사한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의 정책은 주택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를 보여주지만, LA한인타운의 고유한 상황과 맞물려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규제 완화와 연방 토지 활용은 전체적인 주택 공급 확대에 기여할 수 있지만, 한인타운처럼 이미 포화 상태인 지역에서는 그 효과가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역 사회와의 협력, 구체적인 실행 계획, 그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포괄적인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시도가 진정으로 LA한인타운의 주택 문제를 완화할 수 있을지는 과거보다 앞으로의 정책 세부사항과 실행 결과에 달려 있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한인타운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정책 변화 주택 문제

2025-01-30

[기자의 눈] 디지털 시대, 뉴스 객관성을 찾아서

21세기에 접어들며 뉴스 소비 방식은 빠르게 변화했다. 디지털 기기가 뉴스 소비의 중심이 되면서 정보 접근 경로와 형태가 더욱 다양해졌다.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86%가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를 통해 뉴스를 소비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은 뉴스 소비를 더욱 개인화하며, 뉴스의 객관성과 신뢰성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제기하고 있다.   뉴스는 과거에도 객관적이지 않았다. 신문과 방송 등 전통적 언론사는 정치적 성향과 가치관에 따라 보도의 방향과 워딩을 조정하며 각 언론사들의 관점을 드러냈다.     같은 사건이라도 접근 방식에 따라 강조점이 바뀌면서 독자가 받아들이는 메시지는 크게 달라졌다. 이러한 편향성은 오늘날 디지털 플랫폼으로 인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디지털 플랫폼은 뉴스 소비의 개인화를 가속화했다.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54%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접한다고 답했다. 지난해 틱톡 사용자 중 52%는 뉴스를 소비한다고 밝혔으며, 이는 지난 2020년의 22%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관심사에 맞춘 뉴스를 제공해 정보 소비를 편리하게는 하지만 더 편향적이고 선택의 폭 역시 제한한다. 짧고 빠른 정보 전달에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깊이 있는 이해보다는 단편적 정보 소비를 부추긴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선택은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깊이 연결돼 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페이스북과 유튜브, 트루스 소셜과 럼블 같은 플랫폼 사용자중에서 높은 비율을 보인다.     반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인스타그램, 틱톡, 왓츠앱(WhatsApp)을 주요 뉴스 소비 수단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플랫폼과 정치적 성향의 결합은 정보 소비에서 명확한 편향성을 드러낸다.   뉴스를 비판적으로 소비하려면 출처와 의도를 세심히 살피는 노력이 필요하다.     디지털 플랫폼은 정보 접근성을 확대했지만, 정보의 신뢰성과 정확성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뉴스는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하지만, 반대되는 관점을 접할 기회를 줄이며 정보 균형을 해칠 가능성을 높인다.   AI 기술은 뉴스 소비의 객관성을 높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AI 역시 편향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계되며, 이를 만든 개발자의 가치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AI가 생성한 뉴스는 객관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는 여전히 주관성이 개입될 가능성이 크다. 객관성은 완벽히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일지 모르지만, 이를 향한 노력은 필수적이다.   뉴스 소비는 세대별로도 다른 경로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18~29세 연령층의 91%는 디지털 기기를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반면, 65세 이상의 86%는 TV를 통해 뉴스를 소비한다.     이러한 차이는 세대별 정보 소비 경험이 크게 다르며, 각 세대가 접근하는 정보의 성격도 다름을 보여준다. 객관성을 추구하려면 디지털과 전통 매체의 뉴스들을 교차 검토하거나, 다양한 정치적 성향의 매체를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정보의 편향성을 인식하고 균형 잡힌 시각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다.   객관성은 단순히 많은 뉴스를 접하는 것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정보를 소비하고 해석하며 스스로 판단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디지털 플랫폼은 정보 접근성을 확대했지만, 동시에 정보 과부하와 신뢰성 문제라는 새로운 도전을 가져왔다.     객관성에 완전히 도달할 수는 없더라도 비판적 사고와 책임 있는 정보 소비를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정보의 편향성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오늘날 뉴스 소비자들에게 필수적인 과제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디지털 객관성 정보 접근성 뉴스 소비 디지털 플랫폼

2025-01-23

[기자의 눈] 시카고 블루맨을 떠나보내며

시카고 리글리필드 야구장 인근 홀스테드와 브라이어길이 만나는 곳은 젊은 사람들이 붐비는 소위 말하는 번화가다. 대중교통수단이 많고 인근에 대형 병원과 쇼핑센터, 음식점, 주점 등이 밀집해 있어 항상 보행자가 북적되는 이곳을 찾을 때마다 활력이 넘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CTA 벨몬트역도 가까워 접근성도 좋다. 시카고 네이버후드로는 레익뷰 지역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브라이어 스트리트 극장이 위치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극장에서 30년 가까이 장기 공연을 하고 있는 작품이 바로 블루맨이다. 이 작품은 출연자가 대화를 하지 않는 마임극이다. 대신 머리와 손 부분에 진한 파란색으로 페인트 칠을 하고 검은색 옷을 입은 세 명의 출연자가 몸짓으로만 연기한다.   6년 전쯤 한국에서 온 고등학생 그룹과 함께 이 공연을 관람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전까지는 피상적으로만 접했던 블루맨 공연을 직접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사실 2000년대에 개인용 컴퓨터를 쓴 경험이 있다면 블루맨은 인텔 TV 광고를 통해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먼저 접했을 것이다. 당시 거의 모든 개인용 컴퓨터에는 인텔칩이 들어가 있었는데 인텔이 신제품을 광고하면서 블루맨을 투입한 광고를 만들어 전세계에 내보냈기 때문이다.     흰색 바탕의 스튜디오에서 파란색 블루맨들이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고 공연에서도 보여주는 파이프를 이용한 연주 실력을 뽐내다가 펜티엄 3, 펜디엄 4 프로세서를 소개하는 TV 광고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 블루맨을 알리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실제로 관람한 블루맨 그룹 공연도 광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3명의 블루맨들이 출연해 다양한 연기와 율동, 공연 등을 펼친다.     특별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면 안개를 이용해 객석까지 현장감을 살리는 장치를 했다는 점과 아이폰을 이용해서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던 것, 관객들을 무대로 불러와 공연을 함께 꾸민다는 점 등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관람객들이 기념품을 구입하는 기프트 샵에 출연진들도 나와 정겹게 기념 사진을 촬영해 주기도 했다.   당시 공연장에는 시카고 주민들과 함께 타주, 타국에서 온 관람객들로 가득 찼다. 이렇게 시카고의 명물이 된 블루맨 공연이 시카고에서의 장기 공연을 끝낸다고 한다. 구체적인 시카고 무대 공연 중단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어려워진 시카고 공연계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시카고에서 끝내는 무대는 올해 봄 플로리다주에서 이어진다고 한다.   시카고는 뉴욕의 브로드웨이와 함께 볼 것이 많은 도시로 유명하다.     시카고 브로드웨이에서는 다양한 작품들이 지금도 무대에 오른다. 히트한 작품도 있지만 시카고에서 첫 무대를 여는 작품도 종종 있다. 시카고에서 역시 장기 공연을 펼쳤던 뮤지컬 ‘해밀턴’을 비롯해 ‘위키드’ 등 시카고에서 성공한 유명 작품도 즐비하다.     무엇보다 시카고의 풍부한 문화적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공연장을 꼽는 주민들이 많다. 시카고에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있고 리릭 오페라가 활동하고 있으며 시카고 시어터와 굿맨 시어터, 해리스 시어터 밀레니엄파크와 같은 무대가 많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수준 높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조금만 떨어진 도시에 가더라도 이같은 문화적 다양성을 느낄 수 없는 곳이 많다.   시카고에서는 또 여름이면 야외 공연도 풍성하다. 다운타운 밀레니엄파크 제이 프리츠커 파빌리온에서는 무료로 영화 상영과 오페라, 클래식 무대가 펼쳐지곤 한다. 서버브에서는 라비니아 공연을 즐기는 평범한 가족들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시카고다.   블루맨 공연이 시카고에서 중단된다는 소식에 아쉬워할 수밖에 없지만 아직까지 시카고에서는 이렇게 쉽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이 즐비하다.   가끔 한국에서 시카고를 찾는 사람들에게 다운타운에서 즐길 거리는 소개해주곤 하는데 가장 반응이 좋았던 곳이 재즈 공연이었다.     크지 않고 화려하게 내외부를 꾸미지도 않은 다운타운 골목길에 위치한 재즈바에서는 약간의 입장료만 내면 수준높은 재즈 공연을 라이브로 즐길 수 있는데 시카고의 멋진 야경과 함께 매우 잘 어울린다는 평이 많다.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무대가 많다. 다만 잠시 눈을 돌려 이를 찾아보려는 노력이 없었고 시간적 여유가 따라주지 않았을 뿐. 그러니 찾으려고 하는 개인적인 관심과 투자만 있으면 다른 것은 이미 다 갖춰진 셈이다. 박춘호 / 시카고지사 기자기자의 눈 시카고 블루맨 시카고 주민들 시카고 리글리필드 시카고 네이버후드

2025-01-16

[기자의 눈] 알 아사드의 몰락과 김정은

50년간 시리아를 통치해온 알 아사드 가문이 마침내 몰락했다.   지난해 12월 7일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시리아에서 비밀리에 도주했다. 이에 따라 13년간 이어진 내전도 종식될 수 있을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알 아사드 정권 몰락 이후 상황이 개선될 것이란 낙관적 전망을 하는 전문가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지난 7일 다마스쿠스 공항은 지난해 12월 초 이후 처음으로 운항을 재개했고 많은 시민들이 축제 같은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새로 들어서는 정치 지도자들 역시 평온한 정권 교체를 약속했다. 다만 경제를 악화시킨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가 알 아사드 정권 몰락 이후 바로 해제되지 않은 점이 시리아의 가장 큰 고민이다.   독재자 알 아사드의 야반도주를 보며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 정권의 몰락을 상상해봤다. 알 아사드의 측근들은 7일 밤 시위대와 타협하는 방안의 연설을 준비했다. 촬영에 사용될 카메라와 조명 등도 설치됐다. 시리아의 국영방송이 이를 보도할 방침이었다.   그런 충성심을 보인 직원들을 버리고 알 아사드는 말 한마디 없이 도주했다. 이에 직원들은 큰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대통령궁으로 몰려오는 시위대가 두려워 도주한 것인데 직원들에게 알리지 않아 직원들은 연설 준비를 하며 대기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몰려오는 시위대를 피해 도주했으며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한다. 대통령궁 문도 못 잠그고 도망쳐 시위대가 점령하게 됐다.   지난해 연말부터 전세계는 여러 큰 뉴스를 접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북한의 우크라이나전 참전, 시리아의 몰락, 그리고 미주 한인 독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봤을 역대 최악의 LA 산불 사태.   잠잠하나 했던 북한은 다시 극초음속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하며 한반도에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물론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가 북한을 규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하면 김정은과 다시 회담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달 12일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김정은을 알고 있고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화염과 분노’에서 ‘러브레터’로 이어진 시기가 재현되려나.   2024년은 독재자 및 철권 통치자들에게 있어 안 좋은 한 해였다. 15년 동안 철권통치를 해오던 방글라데시의 여자 수상 셰이크 하시나가 학생시위대에 쫓겨나 인도로 망명했다. 이란에서는 온건·개혁 성향인 마수드 페제슈키안 대통령이 취임한 뒤 성직자 집단들의 힘이 악화하고 있다.     니콜라스 마두로가 있는 베네수엘라에서는 야당 인사 탄압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세가 커지고 있다. 미얀마의 군부 정권(junta) 역시 반군과의 오랜 내전으로 ‘파탄 국가(failed state)’라는 오명을 썼다.   이란은 각종 제재로 화폐 가치가 폭락하고 주민들의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세계 최대 천연가스 및 석유 매장 국가임에도 전력난으로 정전이 빗발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게 되면 상황은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고문과 강제 노동, 강제 낙태가 만연하고 한국 방송을 봤다고 사형되는 전 주민이 감옥인 나라가 북한이다. 언론이 철저히 통제돼 내부 소식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북한 주민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쿠데타라는 개념을 모르기 때문에 폭동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한 고위급 탈북자의 전언이다.     올해는 해방 80주년을 맞는 해다. 북한 주민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또 한 번의 해방을 맞기를 바란다. 모든 독재자는 망하는데 김정은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하다. 알 아사드와 같을까 더 비참할까. 닿을 수는 없겠지만 북한 주민들에게도 새해 인사를 전한다. 김영남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김정은 아사드 아사드 정권 아사드 대통령 아사드 가문

2025-01-12

[기자의 눈] 자랑스런, 부끄러운 탄핵

미국에서 바라본 한국의 탄핵 사태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이 공존한다.   주한미군으로 2차례 복무한 육군 중사를 최근 만났다.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 의식이 부럽다”며 한국의 탄핵 정국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지도자를 국민이 끌어내린 게 대단하다”며 “국민이 나서서 민주주의 절차를 주도해 이뤄낸 성과”라고 언급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탄핵 사태에서 자랑스러운 점이 있다면 전 세계에 한국 국민의 강력한 민주주의 의식을 보여주며 ‘국가=국민’ 공식을 증명해냈다는 것이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에 이어 국민은 다시 한번 거리로 나왔다. 분노와 감정에 휩쓸려 강경한 시위를 펼치기보다, 아이돌 가수 응원봉을 들고 K팝 노래를 부르며 평화적인 목소리를 냈다. 이러한 국민의 품격있는 정치적 참여는 세계적인 주목을 모으기 충분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민주주의를 혼란에 빠뜨린 대통령을 향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한 결과 탄핵안이 가결됐다”며 “시민들로 가득 찬 거리가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워싱턴포스트는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신호”라는 조앤 조 웨슬리안대학 동아시아학 교수의 분석을 전했다.   주류 언론들의 평가처럼 성숙해진 한국 국민의 민주주의 의식은 단순히 투표로 국민대표를 선출하는 수준을 넘어, 대표자들에게 지속해서 책임을 묻고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보여줬다. 이에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일부 여당 의원들이 응답했고, 결국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가결됐다.   반면, 자랑스러운 모습 뒤 부끄러운 그림자도 자리 잡고 있다. 탄핵은 극히 예외적이고, 중대한 사유에 한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야당은 헌법적 도구인 탄핵을 정치적 도구로 변질시켜버렸다. 이에 정치적 불안정성을 고조시키고, 외교무대에서 코리아 패싱 우려를 다시 한번 초래했다.   야당은 정치적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에 윤 대통령에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탄핵했다. 물론 명분은 있었다. 한 총리가 12.3 비상계엄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제기됐고, 양곡관리법 등 쟁점법안 6개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아울러 한 총리는 특검법과 헌법재판관 3명의 임명도 미뤘다.   하지만 설사 한 총리가 탄핵에 비협조적인 자세를 취했다고 해도 야당은 정부와 정치적 협력을 통해 국정 정상화를 이루고 정치적 대립을 최소화해야 했다. 그러나 야당은 지속해서 선을 넘으면 탄핵하겠다는 등 한 총리를 향해 협박성 발언을 쏟아냈고, 결국 그도 탄핵했다.   이를 두고 AP통신은 지난달 27일 “두 명의 국가 최고위직 탄핵은 한국의 정치적 혼란을 악화시키고, 경제적 불확실성을 심화하는 동시에 대외 이미지를 손상시킬 것”이라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 권한대행 탄핵은 정치적 혼란 해결 과정에서 한국 양당의 협력이 실패한 결과”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국의 정치적 혼란이 깊어짐에 따라 외교무대에서 한국의 신뢰도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한국은 ‘트럼프발 불안정성’을 걱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향후 4년간 한미관계의 건전성을 확보하고 불안정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차기 트럼프 정부와의 물밑접촉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한국은 연속 2차례 탄핵으로 튀는 성격의 남의 나라 대통령을 걱정하다가 되레 얼마나 더 튈 수 있고 불안한 나라인지 보여주고 말았다.   이번 탄핵 사태는 국민 주권 실현의 계기가 됐지만, 동시에 탄핵이 정치적 도구로 변질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줬다.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이 대립 대신 협력을 통해 국정 안정과 외교적 신뢰 회복에 집중하길 기대한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탄핵 대통령 탄핵소추안 탄핵 사태 한국 국민

2025-01-07

[기자의 눈] AI가 4초만에 만든 여행계획

“평소에 나는 즉흥적인 사람인데 가족들이랑 여행 갈 때만은 철저하게 계획적인 사람이 된다.”     온라인에서 많은 공감을 받은 문장이다. 기자도 그랬다. 혼자서 여행을 갈 때는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고 그저 훌쩍 떠나는 것을 좋아한다.     가족과 함께 갈 때는 다르다. 어디에 몇 시에 도착해서 어딜 구경하고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교통수단을 통해 어떻게 이동하는지 아주 세세한 계획을 짠다. 심지어는 가려고 한 식당이나 관광시설이 문을 닫으면 갈 ‘예비 계획’까지 준비해놓는다. 그리고 이 모든 걸 문서로 만들어 모든 가족구성원에게 최소 3주 전에 전달하고 숙지를 요구한다.     물론 아무도 보지 않는다. 결국엔 그 종이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검색하면서 다음 행선지가 어딘지 직접 말해준다. 왜 하필 이 역할을 맡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가족 여행의 가이드가 됐다.   지난해 연말에는 부모님이 뉴욕과 워싱턴DC로 일주일 간 여행을 가게 됐다. 비행기, 호텔, 렌터카 등을 모두 예약하고 나서 가는 지역마다 여행계획을 짜드려야 했다.     여행계획을 짜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먼저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시설, 식당, 카페, 쇼핑센터 등을 모두 검색한다. 가야 할 곳 리스트를 만들고 혹시 여행가는 날짜에 문을 닫는지는 않는지 꼼꼼히 체크한다. 이후에는 온라인 지도를 켜고 어디에 위치한 지 보면서 효율적인 동선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행계획 짜는 일이 쉬웠다. 인공지능(AI)을 통해 모든 걸 해결했기 때문이다. 퍼플렉시티(Perplexity)라는 AI 검색엔진에 지역을 넣고 여행계획을 짜달라고 하니 내가 하면 4시간 걸릴 일은 4초 만에 해결해줬다. 물론 100% 신뢰할 수는 없어 검증도 해야 하지만 수고가 훨씬 줄어든 것은 확실했다.   개인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산업계에서도 AI를 통한 생산성 향상은 크게 다가오고 있다. 노동통계국의 추정치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국내 노동 생산성이 전년 동기 대비 2% 성장했다고 한다. 5개 분기 연속 2% 이상 상승한 것이다. 팬데믹 이전 5년간 평균 성장률이 1.6%였던 것에 비하면 상승세가 뚜렷하다. 전문가들은 이런 생산성 향상의 가장 큰 원인으로 AI를 꼽았다.   생산성 향상은 창업 붐과도 관계가 깊다. 센서스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월별 사업체 등록 건수는 15만7678건이었다. 팬데믹 이전과 비교하면 50%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이전에는 많은 인력이 필요했던 일을 적은 인원으로 처리할 수 있으니 창업을 하기 훨씬 더 수월해진 것이 주요 원인이라는 진단이 많다.     신규 사업체들은 AI를 비롯한 신기술 도입에 적극적이고 이를 통해서 적은 인력으로 높은 생산성을 내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소규모 창업이 국내 고용을 이끌고 있으며 미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뛰어난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이유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AI가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더 명확해 지고 있다. 많은 사람은 AI의 발전이 대규모 실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지만, 오히려 반대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단 생각도 든다.     AI를 통해서 노동생산성이 올라가고 1990년대의 IT붐과 같은 사회 전반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도 있다. 지나치게 ‘장밋빛’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4%에 달하는 생산성 향상의 고점이 다가온다는 전망도 있다.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하기 때문에 긍정적이고도 부정적인, 양가적 감정을 들게 한다. AI가 그려낼 미래도 그렇다. 하지만 AI가 인간의 친구로서 생산성을 높이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거라고 믿어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긍정적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글 또한 작성하는 데 AI를 통한 정보 검색, 번역, 요약, 교정 등의 도움을 받았다. 칼럼을 쓰는 ‘생산성’은 이전보다 확실히 올라갔다. 조원희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여행계획 생산성 향상 가족 여행 관광시설 식당

2025-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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