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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나그네에게 봄이 오는가

북클럽에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에 대해서 읽었다. 늘 회자하는 피카소처럼 슈베르트도 이름만 알고 있었다. 낭만주의 시인 뮐러의 시를 읽고 감동한 슈베르트가 곡을 붙였다고 한다. 겨울 나그네는 24개의 시로 이루어진 가곡이다. 책의 무게감을 느끼며 처음에는 집중하기 힘들었다. 자꾸만 창가로 눈이 갔다. 회색 하늘 밑에 말라비틀어진 잔가지들이 보인다. 봄이 오기 전, 황량한 모습이다. 겨울 나그네 첫 번째 곡을 틀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첫 곡의 제목이 밤 인사다. 왜 시작부터 밤 인사인가? 밤에 어디 떠나는가? 퉁퉁퉁퉁, 피아노 음이 저음으로 내려간다. 나그네의 발자국이 터벅터벅 꺼질 듯이 무겁다. 음악이 내 감성을 자극했는지, 나는 1820년대 추운 북유럽을 배회하는 나그네가 되어본다. 나는 밤 인사의 가사를 따라간다. 음악은 애잔하고 비통하다.   ‘이방인으로 왔다가 이방인으로 떠나네… 그대의 어머니는 결혼도 언급했지만…’   가사는 뮐러가 쓴 시다. 시가 그렇듯이 자세한 서사는 피하고 있다. 나는 숨은 이야기를 상상해 보았다. 나폴레옹이 침략 전쟁을 시작할 무렵이다. 당시 독일은 통일 전이었기에 존재감이 없는 미미한 나라였다. 프랑스의 팽창을 보면서 독일인은 시대를 비관했다. 젊은 남자들이 봇짐 하나 지고 무작정 떠도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길 가다가 지치면, 연줄로 아는 귀족의 집에 들렀을지도 모른다. 무뚝뚝한 늙은 남편만 보던 귀족 부인들은 아름다운 청년이 식탁에서 괴테 운운하며, 세상 이야기를 해 주니 살맛이 났을 것이다. 머무는 동안 딸의 가정교사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렇게 해서 지체 높은 아가씨와의 로맨스가 시작되지만, 해피엔딩은 아닐 것 같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혼담을 약속한 이웃 마을 귀족 자제가 있기 때문이다. 아가씨는 가문을 위해서 애틋한 이별을 한다. 가정교사는 아가씨가 깊이 잠든 밤에 문소리 내지 않고 떠난다. ‘안녕 내 사랑…’으로 노래가 끝난다. 당시에 정처없이 헤매는 사람들은 또 있었다. 독일은 러시아를 치러 가는 나폴레옹에게 길을 내주어야만 했다. 전쟁에서 퇴각하면서, 군인들은 낙오자가 되었다. 군대를 버리고 도망치는 탈영병도 있었다. 말을 잃어버린 기병이 추운 겨울에 산속을 헤매고 있다. 바싹 마른 침엽수 사이를 찢어진 망토를 두르고 절뚝거리며 걷는다. 그루터기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그의 검은 코트 자락을 맴돈다. 까마귀는 흉조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갈 곳이 없는 그에게는 자멸의 길만 남은 것 같다. 제15곡 까마귀라는 제목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으니 연가곡에 얽힌 배경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유럽은 다시 왕정으로 복귀했고, 국민을 쥐잡듯하는 경찰국가가 등장했다. 왕으로 등극한 정치가가 사람의 숨통을 조여오니, 사람들은 시대에 순응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다. 이 시대를 비더마이어 시대라고 부른다. 비더마이어는 ‘멍청한 마이어 아저씨’라는 의미라고 한다. 사람들은 방으로 숨어들어서 피아노를 한 대 놓고 가수를 초청하여 이런 애절한 가곡을 들었다. 살롱 문화가 유행할 무렵이다. 힘없는 사람들이 나라를 대항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잘못하면 잡혀가는 세상인데. 애인을 그리워하는 노래 같지만 시대를 비관하는 현실 풍자가 숨어있다.   31세로 애잔한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슈베르트는 혼신을 다하여 겨울 나그네를 작곡했다. 슈베르트라는 이름에 무덤덤했던 나는 책과 음악에 빠져들었다. 200년 전 천재 음악가와 만나서 대화라도 나눈 듯하다. 지금 동시대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프리드리히 데이비드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그가 그린 ‘숲속의 추격병’이란 그림이 있다. 황량한 산을 고독한 남자가 떠도는 그림이다. 겨울 나그네에게는 봄이 올 것 같지 않지만, 내친김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보러 가야겠다.   김미연 / 수필가이아침에 나그네 겨울 나그네 천재 음악가 동시대 낭만주의

2025-03-27

[살며 생각하며] ‘나그네에게 봄이 오는가’

북클럽에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에 대해서 읽었다. 늘 회자하는 피카소처럼 슈베르트도 이름만 알고 있었다. 낭만주의 시인 뮐러의 시를 읽고 감동한 슈베르트가 곡을 붙였다고 한다. 겨울 나그네는 24개의 시로 이루어진 가곡이다. 책의 무게감을 느끼며 처음에는 집중하기 힘들었다. 자꾸만 창가로 눈이 갔다. 회색 하늘 밑에 말라비틀어진 잔가지들이 보인다. 봄이 오기 전, 황량한 모습이다. 겨울 나그네 첫 번째 곡을 틀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첫 곡의 제목이 밤 인사다. 왜 시작부터 밤 인사인가? 밤에 어디 떠나는가? 퉁퉁퉁퉁, 피아노 음이 저음으로 내려간다. 나그네의 발자국이 터벅터벅 꺼질 듯이 무겁다. 음악이 내 감성을 자극했는지, 나는 1820년대 추운 북유럽을 배회하는 나그네가 되어본다. 나는 밤 인사의 가사를 따라간다. 음악은 애잔하고 비통하다.     ‘이방인으로 왔다가 이방인으로 떠나네… 그대의 어머니는 결혼도 언급했지만…’   가사는 뮐러가 쓴 시다. 시가 그렇듯이 자세한 서사는 피하고 있다. 나는 숨은 이야기를 상상해 보았다. 나폴레옹이 침략 전쟁을 시작할 무렵이다. 당시 독일은 통일 전이었기에 존재감이 없는 미미한 나라였다. 프랑스의 팽창을 보면서 독일인은 시대를 비관했다. 젊은 남자들이 봇짐 하나 지고 무작정 떠도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길 가다가 지치면, 연줄로 아는 귀족의 집에 들렀을지도 모른다.     무뚝뚝한 늙은 남편만 보던 귀족 부인들은 아름다운 청년이 식탁에서 괴테 운운하며, 세상 이야기를 해 주니 살맛이 났을 것이다. 머무는 동안 딸의 가정교사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렇게 해서 지체 높은 아가씨와의 로맨스가 시작되지만, 해피 엔딩은 아닐 것 같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혼담을 약속한 이웃 마을 귀족 자제가 있기 때문이다. 아가씨는 가문을 위해서 애틋한 이별을 한다. 가정교사는 아가씨가 깊이 잠든 밤에 문소리 내지 않고 떠난다. ‘안녕 내 사랑…’으로 노래가 끝난다.     당시에 정처 없이 헤매는 사람들은 또 있었다. 독일은 러시아를 치러 가는 나폴레옹에게 길을 내주어야만 했다. 전쟁에서 퇴각하면서, 군인들은 낙오자가 되었다. 군대를 버리고 도망치는 탈영병도 있었다. 말을 잃어버린 기병이 추운 겨울에 산속을 헤매고 있다. 바싹 마른 침엽수 사이를 찢어진 망토를 두르고 절뚝거리며 걷는다. 그루터기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그의 검은 코트 자락을 맴돈다. 까마귀는 흉조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갈 곳이 없는 그에게는 자멸의 길만 남은 것 같다. 제15곡 까마귀라는 제목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으니 연가곡에 얽힌 배경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유럽은 다시 왕정으로 복귀했고, 국민을 쥐잡듯하는 경찰국가가 등장했다. 왕으로 등극한 정치가가 사람의 숨통을 조여오니, 사람들은 시대에 순응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다. 이 시대를 비더마이어 시대라고 부른다. 비더마이어는 ‘멍청한 마이어 아저씨’라는 의미라고 한다. 사람들은 방으로 숨어들어서 피아노를 한 대 놓고 가수를 초청하여 이런 애절한 가곡을 들었다. 살롱 문화가 유행할 무렵이다. 힘없는 사람들이 나라를 대항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잘못하면 잡혀가는 세상인데. 애인을 그리워하는 노래 같지만 시대를 비관하는 현실 풍자가 숨어있다.     31세로 애잔한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슈베르트는 혼신을 다하여 겨울 나그네를 작곡했다. 슈베르트라는 이름에 무덤덤했던 나는 책과 음악에 빠져들었다. 200년 전 천재 음악가와 만나서 대화라도 나눈 듯하다. 지금 동시대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프리드리히 데이비드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그가 그린 ‘숲속의 추격병’이란 그림이 있다. 황량한 산을 고독한 남자가 떠도는 그림이다. 겨울 나그네에게는 봄이 올 것 같지 않지만, 나는 내친김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보러 가야겠다. 봄의 기운이 외출을 부추긴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나그네 겨울 나그네 천재 음악가 동시대 낭만주의

2025-03-17

[문화산책] 한가위 보름달, 나그네 젖은 눈

9월17일이 민족의 명절 추석이란다.   둥밝은 보름달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그리운 고향 찾아가 부모님께 문안드리고, 푸짐하고 맛있는 잔치 음식과 송편 배불리 먹고….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윗날만 같아라”는 말이 어울리는 명절.   한국에서는 해마다 추석이면 대단한 귀향 전쟁이 벌어지는 모양인데, 뉴스를 보니 올해는 의료분쟁 때문에 그렇게 흥겹지 못할 것 같다. 이번 추석에는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자는 다짐을 하기 바쁘다는 소식이다.   우리 타향살이 나그네에게는 추석 같은 명절이 반갑기보다 그저 강 건너 불 보기, 남의 일 같기만 하다. 한국에 부모님이 살아계신 이들은 전화로라도 안부를 여쭐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젖은 눈으로 멍하니 보름달 올려다보며 부모님 생각에 잠긴다. 디아스포라의 서글픔이다.   나처럼 삼팔따라지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이렇다 할 고향도 없는 무향민(無鄕民)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저, 떠나온 나라의 친구들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달을 보고 있겠구나, 그런 막연한 그리움… 나그네의 젖은 눈.   “나는 오나가나 나그네다. 이 길손의 눈은 늘 젖어 있다고 스스로 느낀다. 먼 데 있는 친구들 혹은 나그네들의 손을 잡고 서로 껴안고, 글썽한 눈끼리 눈으로만 얘기하고 싶을 때가 자주 있다. 그리움의 달무리에 정이 번지면, 시와 시인을 또 자극하는 시간의 바다가 출렁거린다.” -고원 시집 ‘나그네 젖은 눈’ 머리글의 한 구절   시인은 ‘달 둘이 떠서...’라고 노래한다. 고향에도 지금 내가 사는 이곳에도 같은 달이 뜬다는 표현, 고국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의 표현이다. 달이 어디 둘 뿐이랴? 하나의 달이 천(千)개의 강을 고루 비춘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이다. 온 세상을 고루 비춘다. 그러니까, 지구 구석구석에 사는 나그네 모두가 같은 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것이다.   요새는 떠돌이 나그네, 이방인, 경계인, 유랑민 같은 말 대신에 ‘디아스포라’라는 멋쟁이 서양말이 널리 쓰이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디아스포라 정신’ ‘디아스포라 문학’ 같은 식으로….   이 말은 본디 제 나라에서 핍박받고 쫓겨난 사람들, 난민을 뜻하는 정치성 강한 용어였다. 그런데 지금은, 떠나온 곳은 있는데 돌아갈 곳이 마땅치 않은 이주민을 뜻하는 말로 폭넓게 쓰이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우리도 디아스포라인 셈인데, 어쩐지 어색하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볼 필요는 충분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문화예술에서는 디아스포라가 창작의 큰 원동력으로 작용해왔다. 유대인 예술가들의 막강한 업적과 영향력이 대표적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변방의 힘’ 같은 것이다.   디아스포라라는 낱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어 ‘-너머’를 뜻하는 dia와 ‘씨를 뿌리다’는 뜻의 spero의 합성어라고 한다. 즉, 뿌리 뽑힌 떠돌이 나그네 삶의 고달픔과 슬픔을 뜻하는 이산(離散)과 새로운 세계의 개척이라는 적극적인 뜻의 파종(播種)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씨를 뿌린다’는 말이 매우 매력적이다. 새로운 땅에 뿌리내린 우리 이민자들의 존재 의미를 말해준다. 고향 타령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말, 간절한 그리움을 창조적 힘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한가위 보름달을 우러르며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할지가 선명해지는 것 같다. 우리가 이 땅에 뿌린 씨앗인 우리 2세들을 잘 가꾸고 보살펴, 풍성한 추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 그러기 위해서 정신적 정체성을 바로 세우도록 이끌어 주십사….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한가위 보름달 한가위 보름달 떠돌이 나그네 나그네 모두

2024-09-12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랑이 꽃피는 겨울 나그네

금이 간 장독으로 장을 담글 수 없다. 장은 모든 음식의 밑간이 된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입동(立冬) 무렵 음력 10월 또는 동짓달이 되면 동네 아낙들이 우리집 부엌에 모여 장 담그기 할 메주를 쑨다. 가마솥에 물을 넉넉히 부어 솥바닥에 눌러 붙지 않게 콩을 삶는데 메주콩 비린내가 나지 않게 한번 불에 올린 솥은 끓어 넘치더라도 뚜껑을 열지 않고 뭉근하게 뜸을 들인다. 탁탁 장작 타는 소리와 타오르는 불길로 내 두 뺨은 홍시처럼 빨갛게 달아오른다. 잘 삶은 콩은 둥글게 빗어 달라붙지 않도록 꾸덕꾸덕해질 때까지 겉말림을 한 뒤 새끼줄로 엮어 통풍이 잘 되는 삼만이 아재 방 천장에 매달아 띄운다.     정월달 날씨 좋고 손이 없는 날, 어머니는 장 담글 준비를 한다. 장 담그는 일은 일년 농사만큼 안주인에겐 중요한 일이다. 장은 가족의 일년 양식이다.     명주보자기로 머리를 싸맨 어머니는 며칠째 병정처럼 줄지어 선 장독들을 아기 머리 감기듯 조심조심 씻는다. 어떤 장독은 내 키보다 크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장독에 햇빛이 닿으면 눈앞에 별사탕이 우르르 쏟아진다.   모든 것은 정성이다. 사랑도 가족도 장 담그는 일도. 사람 사는 모든 것이 정성이다. 허투루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사랑은 준만큼 받는다. 안 주면 못 받는다.     오색 찬란한 사랑의 꽃다발도 시들면 향기가 사라진다. 린타나 꽃은 한송이에 여러가지 색깔의 꽃이 핀다. 사랑은 꽃과 같다. 피고 지고 다시 핀다. 거미줄에 걸려 ‘사랑할 때와 죽을 때’가 있고 독약을 삼키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기도 한다. 사랑은 운명적이다. 빠져 나올 수 없는 덫이 되기도 한다. 사랑은 황홀하지만 유효 기간이 짧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사랑에 빠지면 곧이 듣는다. 사랑은 환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 눈에 콩깍지가 씌이면 안과에 가도 치료가 불가능하다.     장미라고 똑같은 장미꽃은 아니다. 여러 갈래의 사랑을 노래한다. 장미와 비슷한 ‘리시안 셔스’의 꽃말은 ‘변하지 않는 사랑’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해바라기는 ‘당신만을 바라봅니다’로 ‘일편단심, 동경, 기다림’이다. 올망졸망한 미니 장미는 ‘끝없는 사랑’이다. 빨간 장미는 ‘낭만적인 사랑’이고 핑크 장미는 ‘사랑의 맹세’다. 주황색은 ‘첫사랑의 고백’이고 흰장미는 ‘사랑, 평화, 순결’을 의미하는데 프로포즈용으로 적합하다. 청순하고 고급스러운 카라는 ‘천년의 사랑, 순수, 순결’을 뜻하는데 다섯송이 카라를 바치면 ‘아무리 봐도 당신만한 여자는 없습니다.’라는 순종을 의미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빨강색 튤립은 ‘사랑의 고백’이다. 불행하게도 아무도 내게 튤립을 바친 사람이 없다. 사랑도 자급자족이 되면 족하다. 해마다 튤립 구근을 앞뜰에 심는다. 봄이 오면 사랑을 고백하듯 제일 먼저 목을 내미는 튤립은 여왕처럼 고귀하다. 보라색 튤립은 ‘영원한 사랑’ 분홍은 ‘애정’ 주황은 ‘수줍음과 부끄러움’이다. 이 풍진 세상에 모든 꽃들의 의미를 기억하는 사람은 천재이거나 바보다. 어차피 사랑은 미친 굿판, 신들린 듯 사랑할 때가 가장 매혹적이다.   나는 작고 앙증맞은 꽃들이 섞인 꽃다발을 좋아한다. 딸은 생일날이나 명절에 빠짐없이 꽃을 보낸다. 아들은 누나가 보내는 카드에 제 이름 적어 달라고 부탁하는 얌체족이다, 장가 가더니 일장월취, 크리스마스 리스를 매년 보낸다. 솔냄새가 좋아 집안에 걸어놓고 아들 며느리 손주가 그리우면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세월이 장 맛을 달달하게 만든다. 며칠 남지 않은 달력의 빈칸에 동그라미 그리며, 사랑의 향기를 바람에 실어 보낸다. 흩어져 다시 돌아오는 계절따라 겨울나그네의 길을 떠난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나그네 사랑 사랑 평화 사랑 순수 겨울 나그네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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