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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생존 한국인 피폭자 1622명의 소원

한국에서 원폭 피해자 1세와 2세들이 뉴욕에 왔다. 3일부터 7일까지 열리는 반핵운동가들과 함께 유엔 제3차 핵무기사용금지조약(TPNW) 당사국 회의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TPNW는 더 잘 알려진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한계를 넘어선 국제 협약이다. 핵무기 개발, 실험, 생산, 비축, 주둔, 이전, 사용 그리고 사용 위협과 이에 대한 지원을 전면 금지하는 조약이다. 2017년 129개국이 찬성했고 현재까지 94개국 서명, 73개국 비준까지 마쳤다.   이 조약을 이뤄낸 국제핵무기폐기운동(ICAN)은 2017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또 지난해에는 전 세계의 핵무기 폐기를 호소해온 ‘일본 원수폭 피해자 단체협의회’가 노벨평화상을 받으면서 TPNW가 관심을 끌었다.   뉴욕 방문에는 일본 단체 초청으로 지난해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함께 했던 이태제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 회장, 일본에서 40여 년간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을 위해 활동한 이치바 준코 ‘한국원폭피해자 지원모임’ 대표도 함께했다. 또 내년 뉴욕에서 원폭 피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묻는 ‘원폭피해자국제민중법정’ 개최를 준비 중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대표들도 왔다.   안타깝게도 TPNW에는 핵무기를 보유 국가들은 물론 미국 핵우산 아래 있는 한국, 일본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피폭자 70만 명(이 가운데 10%가 넘는 10만여 명이 한국인)이 미국의 핵폭탄 투하로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했는데 정작 그 국가들은 TPNW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그런 까닭에 원폭 피해자들이 중심이 돼 반핵운동을 펼쳐 나가고 있으며 특히나 일본과 달리 전범 국가도 아닌 한국의 원폭 피해자들이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고, 미국의 원폭 투하 8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8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핵전쟁 위협은 가실 기미가 없다.   이태제 회장은 “한국인 원폭 피해 생존자가 1622명, 원폭 피해 후손이 3100여 명”이라며 “노벨평화상 시상식에서 한국인 피해 현실을 최대한 알렸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1세 피폭자인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정원술 회장과 함께 한복을 입고 시상식에 참여했다. 비록 상은 일본 단체가 받았지만 한국인 피해자들이 함께 받은 것과 마찬가지다.     지난해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와 함께 한국은 노벨상 두 개를 받은 셈이다. 이분들의 소망은 2045년 원폭 100년이 되기 전 핵무기 없는 지구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바람과 달리 한국에서는 핵무장 지지 여론이 퍼지고 있다. 그리고 핵무기 관련 군비 제재 규정을 파기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겠다는 정치권의 어이없는 주장이 들리는 등 세상은 거꾸로 가는 듯하다.   한인사회와 미국의 평화운동가들이 원폭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행사가 7일 오후 7시 뉴욕 플러싱 글로우 컬처럴센터(문의 201-546-4657)에서 열린다.   미주한인평화재단은 지난해 미주한인단체로는 처음으로 ICAN에 가입했다. 그리고 원폭 피해자들의 활동을 힘닿는 대로 도울 계획이다. 미국의 시민단체가 인류 역사상 핵폭탄을 사용한 유일한 국가인 미국의 죄를 씻는데 나서야 하는 까닭이다. 김갑송 / 민권센터 국장기고 피폭자 생존 이태제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정원술 한국원폭피해자 지원모임

2025-03-05

[기고] 고 김병목 박사를 추모하며

지난해 11월6일 한인사회의 원로 김병목 박사가 향년 96세로 별세했다. 요즈음은 주변에 건강했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암에 걸렸다고도 하고, 심장 질환은 물론 이상한 증세로 부음을 알린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고 김 박사는 고령이셨지만 평소에 식사도 잘하시고 날마다 분주하게 사셨기에 100세를 거뜬히 넘기시리라고 기대했는데, 부인과 가족은 얼마나 놀라셨을까.     1981년에 추대를 받고 샌디에이고 한인회장을 역임한 후 평생을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했다. 의사 면허증을 연장하며 90세 넘도록 동갑내기 부부는 운전을 했다. 의료보험이 없는 한인들이 도움을 청하면 언제든지 청진기를 들고 달려가 진찰과 처방을 해주던 따뜻한 인술가였다.   그는 경성의전(현 서울의대)을 다니다 당시 문교부 소속 고문이었던 미국인(로버트 깁슨)의 도움으로 1948년 미군함을 타고 유학왔다. 1958년 콜롬비아 의대를 졸업하고 1962년 샌디에이고 스크립스 클리닉에서 흉곽 내과 전문의자격을 취득했다. 1971년부터 샌디에이고 주립대학의 의대 임상교수를 시작으로 라호야에 정착했다.   김 박사는 학문과 독서를 사랑했다. 한국 방문 때마다 책을 사와 거실 한편에 쌓아두고 탐독하곤 했다. 또 집안 곳곳에 집안 어른들의 가족 사진들과 명화들이 걸려 있어 가족애와 예술적 감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의 아들 바이런이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을 때, 김 박사는 의사로서의 현실을 실감하며 아들의 선택을 오히려 반겼다. 그는 “요즘은 의사들도 병원에서 세일즈를 해야 하니, 차라리 다른 길을 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늘 “의사의 본분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는 신념을 강조했다.   가족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장인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집으로 모셔와 지극정성으로 돌봤고, LA에 있는 아픈 처제와 처남을 찾아 장시간 운전하는 다정한 형부이자 매형이었다. 친척 간의 교류가 점점 줄어드는 현대사회에서 그의 따뜻한 가족애는 더욱 빛났다.   올해는 고 김 박사 부부의 결혼 70주년이 되는 해다. 지인들이 장례식을 문의했지만, 가족들은 조용히 애도하길 원했다.   그는 서대문 충정로에서 부친 김성환과 집안 어른들로부터 민족 교육을 받으며 역사와 소명 의식을 확고히 다진 애국자였다. 특히 인천의 맥아더 동상을 지키기 위해 매년 고국을 방문하며,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흔들리는 것을 깊이 염려했다.   한평생 한인사회와 조국을 위해 헌신한 김병목 박사의 삶은 그 자체로 귀감이 된다. 그의 헌신과 가르침은 후대에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최미자 / 수필가기고 김병목 박사 박사 부부 원로 김병목 샌디에이고 한인회장

2025-02-26

[기고] 정책의 일관성이 미래 경쟁력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위해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비밀리에 소련 핵과학자 영입을 추진했다. 당시 한 명의 소련 과학자 월급이 1만 달러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지속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김씨 왕조 체제를 유지하는 결정적 카드가 되었다.   이에 대응하는 대한민국의 정책은 정권에 따라 달랐다. 보수 정부는 한미 관계 강화를 통해 북한의 핵 개발을 강력히 견제하는 전략을 펼쳤다. 반면, 진보 정부는 대북 유화정책을 추진하며 마치 통일이 눈앞에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약화하기는커녕 더욱 강화되었다.     북한은 대남, 대미, 국제사회에 대한 일관된 전략 아래 체제 유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다.   이와 달리 대한민국 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이 급변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보수와 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북한에 대한 정책이 일관되지 못했고, 그로 인해 효과적인 대응이 어려웠다는 점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 좋은 정책이 마련되더라도 다음 정부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은 대한민국의 정책적 연속성 부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대북정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정책 전반이 단기적 성과에 집중되면서 장기적인 비전과 연속성이 부족하다. 이는 과학기술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선진국들이 AI, 로봇, 양자컴퓨터 등 미래 핵심 기술 분야에서 지속적인 연구와 투자로 성과를 내는 반면, 대한민국은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단절되거나 축소되면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기초과학이 무너지면 응용과학 또한 설 자리를 잃는다. 기초과학 연구는 학교와 연구소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뒷받침할 연구비 투자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연구자들에게 막중한 책임감을 부여함과 동시에, 연구 환경과 혜택을 보장하여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제적 특허 취득과 산업계로의 기술 이전이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출산율 저하로 인해 기초과학 인재 양성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기술 강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기초과학을 활성화하고, 연구자들이 AI와 같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최적의 연구 환경에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경제 상황이 어려울수록 가장 먼저 삭감되는 것이 기초과학 연구비인데, 특히 기후변화 및 환경 연구에 대한 예산이 줄어드는 것은 큰 문제다.   선진국들은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일관된 정책을 유지한다. 새 정부는 이전 정부의 정책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며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 이러한 정책 연속성은 대한민국에서도 반드시 정착되어야 한다.   정치, 경제, 과학, 대북 정책을 포함한 모든 국가 정책이 일관성을 유지한다면,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도 흔들림 없는 국가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특히, 지난해 연구비 삭감으로 인해 과학계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점을 고려할 때, 일관된 정책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일관성 있는 정책은 국제적 변동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오히려 대한민국의 생존 능력을 배가시킬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정책 운영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필수적인 전략이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기고 일관성 경쟁력 과학기술 정책 대북 유화정책 정책적 연속성

2025-02-25

[기고]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아이티 대지진이 나던 2010년에 처음 만난 브니엘고아원은 이후로 우리의 집중적인 지원 대상이 되었다. 원장인 마담 도리스는 워낙 신실하게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고, 자주 이사를 하는 형편 가운데서도 늘 아이들을 공부시키는 일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이었다. 아이들에게 엄격했지만 그만큼 또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고 있어서 믿음이 더 가기도 했다.   우리가 식량 공급만큼 중점을 두는 교육 지원은 적잖은 예산이 필요하다. 해마다 여름이면 가을학기 수업료와 아이들 교복, 교과서 등이 큰 부담이 되었다.     브니엘고아원의 마담은 돋보기를 쓰고 재봉틀에 앉아 아이들 교복을 만들어 입혀 우리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해마다 50명 아이의 학비는 1만 달러를 넘었고, 이 금액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교육비 중에서 큰 부분이기도 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고아원 왕래가 힘들어지더니, 갱단 때문에 길이 막히고 연락이 끊어졌다. 그때 마담 도리스는 디렉터와 스태프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도미니카공화국을 거쳐 마이애미로 왔다고 했다. 갱단 때문에 우리 지원을 고정적으로 받기 어려워졌고, 연락 두절이 잦아지자, 마담은 미국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한때 65명까지 늘어났던 아이들의 생계와 학비를 책임지고 있었다.   캐나다로 간 우리 스태프 스티브가 한동안 애써서 마침내 마담과 연락이 되었을 때, 마담은 아이들 31명이 학교에서 쫓겨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칼로레아를 패스한 아이들 세 명이 아이티 북부 캡헤이션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는 소식도 전했다. 대학에 간 아이들도 일단 수업료를 다 못 내서 계속 학교에 편지를 보내어 미루고 있다고 했다. 대학생 세 명이 캡헤이션의 마담 친구 집에 머무는데 한 달에 식비와 아이들 교통비 등으로 200달러가 든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우리와 연락이 끊어진 사이에 졸업해야 하는 고학년 아이들 학비는 마련했지만, 중학교와 초등학교 아이들 학비는 외상으로 했었는데, 학교에서 해가 바뀌면서 그만 나오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게다가 고아원 아이들 밥 먹이느라 모처럼 대학에 보낸 아이들 학비는 생각도 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우리가 좀 더 열심히 연락하고, 어떻게든 돌아가는 상황을 꼼꼼하게 알아보아야 했는데, 연락이 안 되자, 잘 있겠거니 하고 있었다. 마담이 미국에 갔다는 소식을 풍문처럼 듣고 난 후에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우리 짐을 더는 것이라고 무의식 속에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마담은 친척 집에 얹혀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고 얻은 수입으로 50명 아이의 먹거리와 교육을 오롯이 책임져야 했다. 아이들을 대학에도 보냈지만, 대학생 한 명당 800달러도 안 하는 일 년 학비를 버거워하고 있었다.   아이티 고아원은 외부의 도움이 없으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고아원의 홀로서기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는, 고아원 아이들을 먹이고 가르치려고 마담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막연히 하나님께서 돌보시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담이 수완이 좋으니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그냥 믿고 있었다.   마담에게 아이들 학비를 송금한다고 스티브에게 연락하면서 하나님께, 아이들에게, 마담 도리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어졌다. 늦었지만 다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라고 하면서 까닭 없이 부끄러웠다. 헨리 조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기고 미안 마담 도리스 아이티 고아원 마담 친구

2025-02-24

[기고] 과연 헌법재판소의 선택은

밥 에드워드와 스콧 암스트롱은 저서『The Brethren』을 통해 1969년부터 1976년까지 연방 대법원의 내부를 조명했다. 한국어로는 『지혜의 아홉 기둥』으로 번역된 이 책은 12명의 대법관 중 11명의 사무실에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는 과정과 판사들 간의 관계, 정치적 영향력, 그리고 법적 판단의 논리를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이 책에는 판사 간의 협력과 갈등, 그리고 법적 원칙과 정치적 압력이 얽힌 복잡한 과정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법적 판단이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과 현실의 괴리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미국의 보수와 진보는 서로 달라도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구사한다. 보수는 전통적 가치와 자유를 중요시하고 정부 개입을 최소화와 자유시장 경제를 지지한다. 정책은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며, 전통적인 가족 모델이나 법과 질서를 유지하려는 정책이 우선이다.     반면 진보는 변화와 평등,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며 정부의 개입과 복지 확대를 지지한다. 환경 보호나 인권 보호, 사회적 안전망 확장 등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정책이 우선이라고 기술하고 있다.그러나 대법원 판사들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최대치를 구하고 협력한다.   한국의 보수(우파)와 진보(좌파)와는 다르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안보 문제에서도 큰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이념적 차이가 좌우로 인한 정치적 분열과 사회적 갈등은 국가의 발전과 사회적 통합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분단국가로 남북 관계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보수는 강경한 대북 정책을 선호한다. 북한의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을 강력히 반대하고, 안보 강화와 UN의 결의를 준수함과 동시에 한미일 안보협의체를 유지하는데 주력한다.   이에 반해 진보는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지향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이미 6·25 동란과 각종 군사 도발 그리고 미사일과 핵무기 등 북한의 대남전략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협상을 통한 평화는 북한에 이용만 당한 정책이었다.요즈음 세계가 한국의 헌법재판소에 쏠려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 동포사회에서도 탄핵에 대한 찬반논란이 뜨겁다. 특이한 것은 보수와 진보의 확연히 다른 주장이다.     진보는 윤 대통령이 시대착오적인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여 국정과 국격을 실추시킨 내란 우두머리로 낙인찍고 탄핵 찬성을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이에 맞서 보수는 부정선거와 중범죄 혐의를 받는 당 대표자를 지키려고 정부 관료 등 탄핵을 남발하고, 망국적 예산 폭거를 자행했다며 ‘비상계엄’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탄핵반대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 모두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린다. 문제는 어느 당 대통령에 의해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임명되었느냐에 따라 재판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염려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로 인해 재판관의 성향이 낱낱이 드러나고, 어느 쪽이냐에 타라 재판관에 대한 이념으로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헌법재판관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판결의 내용은 다양한 법적, 사회적 요소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개인적인 예측을 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이념적인 굴레에 덮여 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사회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엄동설한에도 길거리로 나와 찬반을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헌법재판소는 헌법과 법률을 근거로 한 독립적인 기관으로, 재판관의 판결이 사상적 이념을 떠나 정치적인 압력과 외부의 영향도 받지 않아야 한다. 그럴 때 사회적 통합이나 갈등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 재판관 모두는 이념을 떠나 ‘The Brethren’의 재판관들처럼 공정하길 바란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기고 헌법재판소 선택 정치적 사회적 사회적 갈등 사회적 불평등

2025-02-11

[기고] 북극의 시한폭탄

최근 러시아 연구진이 북극의 영구 동토층에서 메탄가스 폭발을 예측하는 실험 장치를 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단순한 과학적 성과가 아니라, 기후 변화가 초래할 ‘시한폭탄’을 경고하는 신호다. 북극이 따뜻해지고 동토층이 녹으면서, 지하 깊숙이 갇혀 있던 메탄이 폭발적으로 분출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흔히 이산화탄소(CO₂)를 지목한다. 그러나 메탄(CH₄)은 이산화탄소보다 28배 더 강력한 온실가스로,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 특히, 북극의 동토층에는 수백만 년 동안 축적된 막대한 양의 메탄이 갇혀 있다. 지금까지는 동토층이 마치 뚜껑 역할을 하며 가스를 차단해왔지만, 이제 그 뚜껑이 녹아내리면서 지구 대기 속으로 엄청난 양의 메탄이 방출되고 있다.   그동안 메탄가스 분출은 산발적으로 발생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에서 거대한 웅덩이와 분화구가 잇따라 발견되고 있으며, 과학자들은 이를 메탄 폭발로 인한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폭발이 더욱 빈번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빈도가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이 과정이 ‘되돌릴 수 없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동토층에서 방출된 메탄은 온난화를 가속화하고, 더 빠른 동토층 해빙을 초래한다. 이는 더 많은 메탄을 방출하는 악순환을 만든다. 즉,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 변화는 단순한 ‘지구 온난화’가 아니라, 폭발적인 기후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의미다.   러시아 연구진은 이번 실험을 통해 가스 분출을 예측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폭발이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지진이나 화산 폭발처럼 사전 모니터링을 통해 위험 신호를 감지하는 방법이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를 완벽히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최근 연구에서는 동토층에서 생성된 메탄 마운드(지표면이 부풀어 오르는 현상)가 폭발의 주요 징후라는 점이 확인됐다. 2024년 8월 30일, 러시아 야말 반도에서 연구 중이던 두 개의 마운드 중 하나가 실제로 폭발했다. 이 마운드는 연간 50cm 이상 성장하며 위성으로도 관측될 정도로 컸다. 문제는 이런 마운드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북극 동토층 지하에 최소 60억 톤 이상의 메탄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한다. 이 메탄이 한꺼번에 대기 중으로 방출될 경우, 현재의 기후 변화를 훨씬 더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메탄 폭발의 위력은 10톤 TNT 폭발과 맞먹는 수준으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거대한 시한폭탄이 북극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우리는 두 가지 선택 앞에 서 있다. 하나는 과학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당장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라며 외면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금이라도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물론 개인이 동토층 폭발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각국 정부와 산업계가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온난화 속도를 늦추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북극의 메탄 폭발이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는 분명하다.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이 경고를 무시한다면,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도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기고 시한폭탄 북극 메탄가스 폭발 북극 동토층 메탄 폭발

2025-02-03

[기고] 김종림의 순국 52주년을 추모하며

을사년 새해는 미주이민 122주년이며 광복 80주년의 해이다. 공군전우회는 독립운동가 김종림의 순국 52주년 추모행사와 신년 하례 모임을 지난 9일 열었다.   특별히 잉글우드 메모리얼파크에서의 헌화와 추모 행사는 오늘날 한국공군의 기원이 되는 북가주의 ‘윌로우스 비행학교’ 설립에 전폭적인 재정 후원을 한 미주독립운동가 김종림(1886~1973)의 삶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표시였다.     김종림은 일제 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동지회 대표 등을 역임한 애국지사다. 하와이 이민 후 1907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벼농사로 한인 최초의 백만장자 명성을 얻었다. 1920년초에는 상해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을 만나 임시정부 수립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08년에는 전명운, 장인환 의사의 스티븐슨 저격 의거가 일어나자 공립신보의 인쇄원으로 동포 사회에 소식을 전했다. 또 이듬해 국민회(공립협회와 하와이 한인협성회 통합)의 교육업무에도 관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김종림은 1942년 56세의 나이에도 캘리포니아 예비군으로 입대했다. 2남1녀 자녀중 두 아들은 미 해군에 지원해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과 싸웠다. 큰아들 진원(제임스)은 알루샨 열도에서 통신부사관으로 복무했고, 둘째아들 두원(돈)은 해군 상륙정 승무원으로 필리핀 해역에서 교전을 치른 후 미국이 승리하자 점령군으로 일본에서 근무했다.   광복 후 예순의 나이에도 새크라멘토 밸리에서 벼농사를 지었고, 1946년 동지회 북미총회가 창립한 한미주식회사가 임페리얼 밸리에서 1000에이커의 벼농사 사업을 시작했을 때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농사 감독의 일을 맡아했다.     미주 한인사회의 복리증진에 힘썼고, 본인이 세운 1세대 이민자를 위한 양로원에서 1973년 1월26일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유해는 잉글우드에 있다.   그의 삶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이 목표였다. 당시 미주한인들이 항공력을 키워 일본을 공격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비전을 세우고 용기 있는 행동을 한 것은 조국과 동포 사회에 희망을 주었고 후손들에게 큰 자부심으로 기억된다.   김종림의 둘째 아들 두원(돈)과 친구 사이였던 도산 안창호의 막내아들 랄프 안 은 생전 인터뷰에서 “김종림은 미주 한인 최초의 백만장자로 윌로우스 한인비행 학교의 모든 재정을 도맡아 운영했다. 이후 사업에 실패해 어려움도 있었지만 평생 위엄을 지키고 산 분으로 기억하며 존경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국립항공박물관은 지난 2020년 윌로우스 비행학교 개교 100주년을 맞아 개관 기념조형물을 제작했다. 이를 통해 오늘날 대한민국 공군의 상징적 기원으로 교육하고 있다.                                                                                               윌로우스 비행학교 설립을 가능케 전폭적 재정지원을 한 김종림의 삶에 존경을 표하며, 대한민국 공군전우회(회장 이계훈)는 그의 순국 52주년을 추모하며 머리 숙여 감사 드린다. 심인태 / 한국공군전우회 LA지회장기고 김종림 순국 미주독립운동가 김종림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동지회 추모 행사

2025-01-27

[기고] 정상과 비정상

1945년에 출간된 조지 오웰의 대표작인 ‘동물농장’은 역사적 정치 풍자 소설이다.   존스가 운영하는 ‘맨더빌 농장’의 동물들이 농장주의 압제에 대항하여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라는 구호를 앞세워 늙은 수퇘지 메이저의 부추김에 빠져 반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동물들은 ‘무릇 두 발로 걷는 자는 적’ ‘네 발로 걷는 자나 날개를 가진 자는 친구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등 ‘일곱 계명’을 주창한다. 모든 동물이 인간의 착취가 없는 평등한 이상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돼지의 지도자 나폴레옹이 스노볼을 내쫓은 뒤로부터 동물들은 옛날보다 더 혹독한 여건에서 혹사당하기 시작한다.   나폴레옹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서 동물들은 권력을 남용하는 돼지들에 의해 억압당하게 되었고, 그들은 점차 인간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애초 반란의 목적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리사욕에 빠졌다.     동물농장의 초기에 세운 ‘일곱 계명’은 동물들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돼지들은 이 계명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변경하면서 원래의 이상은 점차 희석되고 왜곡되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원칙은 결국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지 않다”는 계명으로 변하게 되었다. 농장에 살던 동물들은 대부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특히 개나 양처럼 돼지의 명령을 따르는 동물들은 현재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충성하는 모습만 보였다. 그러니 돼지들의 부패나 변칙적인 행동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지 않았다.   외부의 인간들이 ‘동물농장’을 위협하고, 자원을 분산시켜 내부의 안정감을 방해했다. 결국 인간들과의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한 타협과 배신으로 ‘동물농장’의 이상은 파괴되었다. 그들이 가진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들의 실패는 권력의 부패, 무지한 대중 그리고 배신이 결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동물농장이 풍자한 정치적 역사 배경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에 이르기까지 소련에서의 정치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혁명을 호소하는 늙은 돼지 메이저는 마르크스를, 독재자 나폴레옹은 스탈린을, 나폴레옹에게 내쫓기는 스노볼은 트로츠키를 상징한다.   성공한 혁명이 어떻게 변질되어 가는지, 권력을 가진 지도자들이 어떻게 국민을 속이고 핍박하는지를 면밀하게 그린 이 우화는 현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물농장 속 나폴레옹과 돼지들은 모든 시대에 존재 가능한 교활한 권력자와 그 집단을 상징한다. 동물농장에서 권력 자체만을 목표로 하는 혁명은 주인만 바꾸는 것으로 끝날 뿐 본질적 사회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매서운 질타는 비관이 아니라 권력의 타락을 막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통찰도 동반하고 있다.     동물농장이 함축하는 또 다른 메시지는 동물들의 무지와 무기력함이 권력의 타락을 방조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권력에 맹종하고 아부하는 순간 사회는 병들어 가고 피폐해진다.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신념을 토로하고, 자유를 향한 인간 능력에 깊은 신뢰를 표명해야 한다.   권력 쟁취 자체만을 목표로 하는 혁명은 주인만 바꾸는 것으로 끝날 뿐 본질적 사회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하고 나락으로 추락할 뿐이다.   사람들이 권력에 맹종하고 아부하는 순간 사회는 좀먹는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는 특정인의 독점물이 아니라 함께 누리는 행복이다. 이것이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박철웅 / 일사회 회장기고 비정상 정상 지도자 나폴레옹 자유민주주의 가치 독재자 나폴레옹

2025-01-22

[기고] 준비 안된 이별의 빈자리

누나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날은 12월치고는 따뜻했지만, 잔뜩 흐렸다.     허겁지겁 먼길을 달려 버지니아 리치먼드의 한 병원 신경과학 중환자실에서 만난 누나는 혼수상태로 산소호흡기를 달고 여러 개의 주사를 맞고 있었다. 아무 반응이 없는 누나는 기계에 의지하여 숨을 이어갈 뿐 작은 움직임도 없었다.     수많은 기계가 시시각각 그의 상태를 점검하는 중에 산소와 알지 못할 약물들이 희망을 희석하더니 끝내 누나는 깨어나지 못했다.   하루를 지나 겨울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매형과 가족들이 모여 연명 치료를 중단하기로 동의했다. 산소호흡기가 제거된 후 14분이 지나자, 누나의 상태를 보여주던 모든 그래프가 수평선으로 바뀌었다. 조금씩 낮아지며 애태우던 숫자들이 파르르 떨며 꺼지더니 병실로 어둠이 들어왔다.     순식간에 슬픔보다 더 큰 이별의 무게가 우리를 누르고 있었다. 누나는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날까지 친지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서 보냈다. 워싱턴에 사는 아들은 고모가 병원에서 숨을 거둘 때 임종하고, 장례식 전에 집에 다녀온다고 갔다가 고모가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를 집에서 받았다며 또 통곡했다.   나보다 세 살 위의 누나는 사십여 년 전에 미국에 이민왔다. 그리고 부모님을 초청하고, 우리 형제가 다 미국에 자리를 잡는데 넉넉한 뒷배가 되어주었다. 신앙심이 깊어 이민 초기에 아버지를 도와 교회를 개척하기도 했고, 찬양을 좋아하고 잘해서, 집이나 교회에서 찬양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교회 성도와 이웃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해서 인근에 누나의 밥을 먹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누나가 출석하던 교회는 매년 아이티 후원 헌금을 한다. 지난해 가을, 올해에는 예년보다 많은 헌금이 되었다며 누나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아이티 고아들을 사랑하시는 증거라고 했다.     우리는 새해 1월에 누나의 교회를 방문하기로 약속했었는데, 누나는 성탄절을 불과 일주일을 앞두고 교회 회중 앞에 차갑게 누운 것이다.     장례 예배는 조문객들이 큰 예배당을 가득 메운 채 진행됐다. 모두 너무 놀라며 한결같이 슬퍼했다. 매형에게도 누나의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교회의 모든 이들에게 누나의 빈자리는 참 클 것이다. 그러나   누나는 나에게 가장 큰 빈자리를 남기고 갔다. 아이티 사역을 하면서 아내와 어머니와 누나의 기도가 큰 기둥이 되어주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누나는 우리 아이티 사역을 더욱 세세히 묻고 기도했다. 아이티에 가면 가는 대로, 못 가면 못 가는 대로, 우리와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며, 서로 기도의 파트너가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서로에게 기도의 동반자였던 누나를 하나님께서는 어느 날 갑작스레 하늘 찬양대로 부르신 것이다.아이티가 갱단에 의해 폭력적 상황이 되어가고 있을 때, 일주일에 서너 번씩 누나는 문자 메시지로 아이티 상황을 물어왔고, 기도했다. 그렇게 가까이서 기도해 주던 기도의 동역자가 너무 서둘러 하늘로 간 것이다. 물론 우리는 누나가 천국에서도 여전히 우리와 아이티 고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리라 믿지만, 준비 안 된 이별의 빈자리는 너무 컸다.   그러나 지금도 수많은 기도의 동역자가 있어 그분들의 기도로 아이티 고아 구호 사역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하늘로 데려간 누나를 대신하여 사랑하시는 고아들을 위해, 앞으로 더 많은 기도의 동역자를 보내주시리라 믿는다. 우리 사역은 기도가 아니면 헤쳐 나갈 수 없는 일이므로. 헨리 조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기고 이별 아이티 고아들 아이티 상황 번씩 누나

2025-01-14

[기고] ‘야심성유휘’<夜深星逾輝>의 진리

낙관보다는 비관으로, 확신보다는 회의로 얼룩진 지난해의 그림자를 지우며 을사년 새해를 맞이했다. 하지만, 지구촌은 아직도 전쟁, 테러, 여객기 참사, 탄핵으로 인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희망과 절망이 뒤범벅된 상태여서 사람들의 마음이 어둡기만 하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삶의 균형과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 빛과 어둠은 삶의 일부로 서로 공존하게 마련이다.   밤은 어둠과 고난을 상징한다. 우리가 어려운 상황 한가운데 있을 때, 모든 것이 어둡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허나 어려운 시기일수록 그 속에서 더 큰 깨달음이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인생의 어려움이나 고난이 깊어질수록, 희망이나 긍정적인 요소가 더 돋보이게 된다.     그런 시점에서 점점 더 뚜렷하게 빛을 발하는 별들은 고난 속에서도 희망과 기회가 존재함을 일깨워 준다.     별은 수소를 헬륨으로 바꾸는 핵융합 반응을 하면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천체이다.     별처럼, 우리도 내면의 강인함과 인내심으로 성숙해져서 긍정적이며 상황을 앞서서 주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별이 밤하늘의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듯,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발견할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한다.     마치 별이 어둠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듯, 우리의 인생에서도 어려움이 있어야 그것을 이겨낸 성취와 기쁨이 더욱 값지게 느껴지게 된다.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별은 이러한 역경 속에서 오히려 빛을 발하는 존재의 아름다움과 가능성 그리고 희망을 상징한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빛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듯, 어려운 시기일수록 희망과 내면의 강인함이 더욱 빛을 발해야 한다.     밤이 깊어질수록 별이 더 밝게 빛난다는 것은 어려움이 깊어질수록 인내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음을 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려운 시간을 지나면서 더 강해지고, 결국 그 과정이 우리에게 빛을 비추게 되기 때문이다. 별빛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뚜렷하게 보이듯이, 우리도 어려움을 통해 더욱 성숙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밤이라는 어두운 시간이 지나가면 아침이 오듯이, 힘든 시간이 끝나면 희망과 기회가 찾아온다는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고난의 시기를 지나면, 결국엔 더 밝은 미래와 성취가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사람의 진정한 가치나 잠재력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고난을 겪을 때,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힘과 지혜가 발휘될 수 있다. 어려운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말고, 고난을 통해 성장하면, 마지막에는 밝은 빛이 있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절망 대신 희망을 갖게 되고, 삶의 도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빛과 어둠, 이 둘을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전면에서 직시하는 용기이고 지혜라고 한 철학자는 말했다. 왜냐하면 빛은 어둠을 만들고 어둠은 빛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야심성유휘(夜深星逾輝), “밤이 깊어 갈수록 별은 더욱 밝게 빛난다.” 먼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이다. 손국락 /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기고 진리 상황 한가운데 핵융합 반응 을사년 새해

2025-01-13

[기고] ‘지금 이순간’, ‘함께 한 사람’

톨스토이 작품 중에 ‘세 가지 질문’이라는 단편 소설이 있다. 이 작품은 인간의 삶에 있어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어느 왕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유명하다는 현자들에게 ‘세 가지 질문’에 조언을 구하는 내용이다. 왕은 현자들의 각기 다른 답을 듣고 고민에 빠진다.     왕은 많은 현자를 만났지만 그들은 재물만 탐했지,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왕은 재물에 별 관심이 없는 현자를 직접 찾아가 세 가지 질문을 한다. 그러나 현자는 왕에게 대답해 주지 않는다. 왕은 그곳에서 현자의 일을 도우며, 또 피를 흘리며 달려오는 사람을 돕고 하루를 보낸다.     왕은 그곳을 떠나기 전에 현자에게 다시 ‘세 가지 질문’을 한다. 그때 현자는 왕이 이미 ‘세 가지 질문’에 답을 얻었다고 한다. 현자는 이해하지 못하는 왕에게 하루 동안 경험한 것을 복기하며 ‘세 가지 질문’에 답을 찾도록 도와준다.   현자는 첫째,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는 질문의 답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인 이유는 이 순간만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에, 가장 중요한 일이 타인에게 선을 베푸는 것과 도움을 주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인생에서 진정한 의미는 개인적인 성취나 이익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들을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둘째, “누가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인가”의 답은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이고, 미래나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 함께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선을 베푸는 것과 도움을 주는 것이 진정한 개인적인 성취나 이익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들을 돕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셋째,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의 답은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하고 실행하는 것이 인생에서 진정한 행복과 의미를 찾는 길임을 말한다.   왕은 세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자기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결국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직하고 진지하게 수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2025년 새해를 맞았다. 의례 이맘때면 한 해의 좌우명 같은 거대한 목표를 세우고, 실천사항까지 만들어 벽에 걸어놓기도 했다. 매년 반복되는 연례행사처럼 된지도 오래다.     물론 실천 가능한 것도 있어 보람을 얻기도 했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이참에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에 자신을 대입시켜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어 거창한 계획보다 ‘지금’ 이 순간을 마음 판에 새기며 바로바로 실천에 옮기기로 작정해 본다. 왜냐하면, 후회는 ‘지금’ 이 순간이 지나고 바로 찾아오기에 말이다. 2025년은 세 가지 질문에서 해답을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먼저,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어떤 가치관이나 기준을 따라야 할지 고민하지 말고, 각 순간의 중요성을 밑그림에 놓고,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성찰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기고 톨스토이 작품 순간인 이유 단편 소설

2025-01-09

[기고] 군복의 존엄 누가 망치나

세계 각국 군인의 제복에는 각 나라별 체계가 있다. 계급장 등 부착물들은 각개인의 소속과 직위등을 표시하며 군복은 군인들에게 존엄과 자부심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군복은 군인들이 임무를 수행할 때 필요한 보호와 기능을 제공하면서 군인들의 단결과 연대감을 강화시키며 군인들의 역할과 임무를 외부에서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또 군인들이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에도 항상 안전과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군인은 초급장교인 소위 계급부터는 통수권자인 대통령명으로 임관하고 계급에 따라 직책이 부여된다. 병사들과 달리 장교들은 주로 지휘관 또는 참모로서 직위에 맞게 책임도 뒤따른다. 장교가 되기 위해선 소정의 교육과 훈련으로 사관학교로부터 각군 참모대학과 외국유학까지 진학해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심사 후 진급되기도 한다. 상당한 국가예산이 투입되는 대목이다.   예를 들어 장성으로 진급되려면 적어도 25년 이상의 현역 군복무와 직위에 따라 교육과정을 거친다. 물론 전시에는 탁월한 전술능력을 갖추어야 하고 전공이 있을 때 훈기장을 수여받고 진급에 도움을 준다. 아무튼 군의 꽃이라 일컫는 장성이 되기까지 무수한 노력과 인증이 필요하다.     요즘, 한국의 신문·방송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탄핵과 계엄’이란 단어가 끊이지 않는다. 언론보도야 그렇다지만 국민의 대변자라며 걸핏하면 국회의원이 청문회라며 고급장교들을 불러다 아버지가 자식을 야단치듯 호통치는 모습을 적잖이 본다.     지역주민을 대변한다는 국회의원이 젊음과 일생을 희생하는 군인들에게 민망할 정도로 벽력같이 호통을 친다.     물론 법에 의해서 청문을 하고 법에 의해 징벌한다지만 언론에 비친 군 고급장성들의 모습은 마치 전쟁에서 패한 적장처럼 비참해 보인다는 생각은 아마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전쟁을 경험했다. 6.25 당시 대전에서 적 인민군에 생포된 미25사단장 띤 소장의 당당한 장군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전 정부시절 3성 장군인 모 사령관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일도 생각난다. 유사시 군인은 목숨을 걸고 싸운다.     어떤 이들은 ‘장성들이 줄줄이 구속된다면 북한이 도발해올때 누가 싸울건가’라며 안타까워 한다.     군이 정치에 관여해선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또 정치가 군을 이용하거나 폄하해선 더욱 안 된다는 건 민주정치의 질서요 예의다. 그래서 다시 보고 싶지않은 TV에 나타난 군복의 비참한 현실이 많은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군은 상명하복이 법이요 철칙이다. 즉 군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비상시 지휘관의 명령에 불복 또는 항명은 곧 자살 행위다.   군인은 제1의 본분으로 충성을 다짐한다. 군복은 군인들의 헌신과 희생을 기리며, 그들의 존엄과 자부심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군복은 군인들의 용기와 헌신을 기억하고, 그들의 역할과 임무를 존중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의 4류 정치판에서 국가를 위해 충성할 위대한 군통수권자는 다시 없는 것일까.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기고 군복 존엄 현역 군복무 유사시 군인 존엄 누구

2024-12-26

[기고] 노숙자 할머니와 평행우주

새벽과 아침의 경계선에 있는 오전 6시지만 서울역은 많은 인파로 붐볐다.     대전행 KTX 열차를 타려면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다. 오전 9시 KAIST 특강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서울역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맥도널드에서 빅 브렉퍼스트와 커피를 주문해서 테이블에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심한 지린내가 났다. 식사를 하다말고 쳐다보니 남루한 옷을 입은 노숙자 할머니가 테이블 옆에 우두커니 서서 쳐다보고 있었다.     청소를 하던 직원이 달려와 할머니를 빗자루로 떠밀면서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직원에게 그러지 말라고 야단을 쳤다. 그리고 할머니께 아침 식사를 하셨느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할머니께 잠시만 기다리시라고 한 후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 대기줄에 섰다. 그런데 갑자기 의자 위에 두고 온 가방이 생각 났다. 가방 속에는 여권과 현금 그리고 컴퓨터가 들어 있었다. 만약, 노숙자 할머니가 가방을 가지고 달아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과 함께 자꾸만 눈길이 그쪽으로 갔다.     마침내 할머니를 위해 빅브렉퍼스트와 커피를 쟁반에 담아 와서 식사를 권했다. 처음엔 할머니와 아침 식사를 함께할 생각이었지만, 지독한 냄새 때문에 도저히 식사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열차 시간을 핑계 삼아 먼저 자리를 떴다.   아침 햇살 속에 깨어난 가을 들녘의 풍경 위로, 빅 브렉퍼스트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승강장으로 걸어가는 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숙자 할머니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그때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혹시, 치매로 인해 나를 자신의 아들로 생각하진 않았을까. 강의 내용을 검토하기 위해 자료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지만 집중하기 어려웠다.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기차는 나의 복잡한 마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전을 향해 속력을 내며 달렸다.   특강을 마치고 귀경하는 열차 안에서도 아침에 일어났던 일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왜 나는 노숙자 할머니와 식사를 함께하지 못했을까. 사람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그렇게도 참을 수 없었던가. 왜 나는 열차 시간을 핑계로 먼저 자리를 떴을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 나에게는 슬로건에 불과한 것인가.     사실 노숙자 할머니를 처음 본 순간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의 스승이셨던 김동길 교수님께서 오래전 광주행 고속버스 내에서 문둥병 환자와의 동승을 거부하는 승객을 위해 당신의 자리를 양보하시고 그 환자와 나란히 앉아 광주까지 가셨던다는 말씀이 생각났다.     그래서 김 교수님의 제자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나도 할머니께 식사를 대접하고 함께 식사를 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런 자괴감으로 나 자신과의 부정적인 대화를 하던 중에 창가에 비친 저녁 노을을 바라보다가, 문득 최근에 읽은 미치오 카쿠 박사의 ‘평행우주(Parallel Universe)’가 떠올랐다. 평행우주는 가상의 우주 모형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우주가 아닌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평행선상에 위치한 또 다른 세계를 말한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또 다른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인 것이다.     넓은 의미로 평행우주는 여러 개의 우주가 있다는 다중 우주를 의미하기도 한다. 즉, 차원은 같지만 다른 세계인 것이다. 문득, 노숙자 할머니도 또 다른 세계에서는 행복한 일상 생활을 하고 있진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할머니는 오늘 아침에도 깨끗한 옷을 차려 입고 웃음이 가득한 집에서 가족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계셨을 것이다. 손국락 /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기고 평행우주 노숙자 노숙자 할머니 그때 할머니 사실 노숙자

2024-12-24

[기고] 쿠데타 콤플렉스

12·12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은 518을 거쳐 결국 정권을 잡고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미국을 방문한다. 1981년 1월 28일의 일이다. 레이건이 대통령에 취임한 것이 1월21일이니 일주일 만에 가장 먼저 인사(?)를 드리러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의 환영을 받았지만 독재자 전두환의 미국 방문에 대해 미국의 여론은 좋지 않았다. 언론은 그를 ‘Military Strong Man’으로 칭했고 정계의 반응도 차가 왔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자들은 치명적인 콤플렉스에 빠진다. 박정희도 전두환도 모두 그랬다. 박정희는 경제발전에 승부를 걸었다. 국민을 잘살게 만든다면 정통성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장기집권의 욕심에 빠지면서 불행한 최후를 맞는다. 전두환은 목숨을 걸고 수행한 12·12 쿠데타를 일으켰다. 모든 정적을 제거하고 국민에게마저 총칼을 들이대고 나서야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그는 어떻게 쿠데타의 콤플렉스를 해결하려 했을까? 어떻게 하면 국민의 관심을 정치로부터 돌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래서 올림픽을 유치하고 프로 스포츠 리그를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그도 국민적 지탄과 내란의 수괴라는 판결을 받았다.     쿠데타의 콤플렉스는 국민을 힘들게 만든다. 정통성을 갖추기 위해서 우두머리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 누가 ‘성공하면 혁명’이라고 했던가? 그 순간부터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쿠데타의 명분과 정통성을 찾는 작업에 들어간다.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피곤함은 국민의 몫이다.   서아프리카의 국가들에게는 군부 쿠데타가 단골 메뉴이다. 내전도 불사한다. 그들에게 쿠데타의 명분은 혼란과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한다는 것이다. 다 쓸어버리고 새로이 시작하여 번영을 이루자는 것이다. 공산주의로부터 나라를 구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쿠데타가 실패한 것은 천만다행이다. 성공했다면 원래 콤플렉스가 심했던 인물에게 더 큰 콤플렉스가 추가되면서 국가가 혼란에 빠질 뻔한 전대미문의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그와 비호세력을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한진 / 알토스 비즈니스그룹 대표기고 콤플렉스 쿠데타 쿠데타 콤플렉스 군부 쿠데타 레이건 대통령

2024-12-19

[기고]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의 2024년 탄신일을 축하하는 날이다. 인류애와 세계평화를 의미하는 축제의 날로서 세상은 그야말로 기쁨과 즐거운 분위기로 한창이다.     이맘때쯤이면 6.25 한국전쟁이 치열했던 1951년 연말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한 일촉즉발 위기의 전투 기억이 새롭다.   전투지역은 강원도 양구 북방 25km에 있는 1090고지다. 이 고지에서 크리스마스인 12월25일에 전투를 했다고 하여 이후 이 고지를 ‘크리스마스 고지’라고 부른다.     따지고 보면 6.25 전쟁에서 한국군과 북한군과의 실제 전투는 불과 30%, 나머지 70%는 대부분 대규모 인해전술로 공격하는 중공군과의 전투였다.     한국전쟁사에는 처절한 전투를 상징하는 지역 이름들이 꽤 많다. 피의 능선을 비롯해 단장의 능선, 펀치볼, 철의 삼각지, 김일성 고지, 스탈린 고지, 모택동 고지와 함께 ‘크리스마스 고지’등이 있다.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는 크리스마스에 중공군과 한국군이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벌어진 전투다.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는 1951년 12월25일부터 12월28일까지 4일에 걸쳐 치러졌다. 240만 중공군 병력중 제 68군 204사단과 국군 보병 7사단이 나흘동안 수차례에 걸쳐 싸워 고지의 주인이 낮과 밤으로 바뀌었다. 치열한 전투로 흰 눈에 뒤덮였던 고지는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었고, 피아간 부상자들의 신음소리 또한 천지를 울렸다.   돌이켜보면 압록강을 넘어 남침한 중공군과의 지루한 싸움이 계속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휴전회담이 한창이던 1951년, 군사분계선 설정 문제로 설전을 벌이던 양측은 11월27일부로 조건부 잠정 군사분계선을 설정하고 30일간의 휴전에 합의했다. 그러나 휴전선 문제로 설전을 벌이던 중공군은 결국 이 약속을 어기고 재공격을 감행했다. 고지를 사이에 두고 밀고 밀리는 공방전의 연속에 피아간의 피해는 그야말로 핏물의 홍수였다.     처절한 혈투 끝에 승리했지만 고지는 순식간에 죽음의 동산으로 변해버렸고 결사 항전한 아군은 22명이 전사 21명이 실종됐다. 우리 군은 중공군 172명을 사살하고 5명의 포로를 생포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당시 이 전투에서 국군 7사단의 중대장이던 이순호 대위의 크리스마스 고지 진지 방어 임무 수행담이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다. 적의 공격으로 고지가 함락되면서 다급해진 중대는 수류탄과 총검으로 중공군에 맞섰지만, 적의 공세에 밀려 부대가 포위됐고 삽시간에 적과 아군이 한데 엉키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 대위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끝까지 진지를 탈환할 것을 각오하고 직접 수류탄을 던지며 총검을 휘두르는 백병전 속으로 뛰어 들었다.     중대장 이 대위는 전투 중에 적의 총탄이 왼쪽 팔과 우측 정강이 두 곳을 관통하는 중상을 입으면서도 중대원들과 함께 수류탄 투척과 총검전을 벌이며끝까지 진지를 지켰으나 가슴에 흉탄이 관통하면서 장렬히 전사했다.     양구 두메산골엔 지금도 크리스마스 고지전 당시의 아픔과 슬픔이 남아있다. 크리스마스 고지에 평화롭게 울리는 캐롤송을 듣고 있자면 핏빛 물든 곡성이 들리는 듯 해 가슴이 찡해 온다. 크리스마스에는 전선에 복무중인 대한민국 장병들에게 평안이 넘치는 시간이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올 성탄절에도 ‘하늘엔 영광, 땅 위엔 평화로다’라는 메시지가 가득할테지만 지구 한 편에선 아직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 전쟁하는 그곳에 임하옵소서!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기고 크리스마스 전투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기억 군사분계선 설정

2024-12-15

[기고] 과일계 에르메스의 추락

‘과일계의 에르메스’로 불린 샤인머스켓은 불과 6년 만에 왕좌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왜일까? 이에 대한 반성해야 할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샤인머스켓은 일본에서 개발한 신품종으로 특허를 내지 않은 덕분에 한국에서도 재배할 수 있었다. 특히,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일본 여자 컬링선수가 이 포도를 먹는 것이 카메라에 잡혀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이에 대한 일본정부의 비판도 아울러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품종을 포함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과 시간은 지속적으로 수많은 연구비와 끊임없는 투자의 성과물로 대변된다. 어느 나라에서든 신품종은 특허로 보호받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한국은 우수한 인재가 많은 덕분에 신품종을 개발하는 노력은 최고 수준이지만, 지속적인 투자에는 다소 인색한 편이다. 이는 모든 연구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두 번째는 농수산물에 대한 브랜드화의 실패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각 지자체에 맞는 특산품, 즉 브랜드를 만드는 노력에 정부, 지자체 및 생산자가 합심한 결실이다.   예를 들면, 고베육(Kobe meat)이 그렇다. 고베에서 생산된 소에 맥주와 마사지등으로 특화된 육류가 그것이다. 또한, 마케팅에서도 일정한 공급으로 최상의 가격을 받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미국내에서는 고베육이 일본 소고기의 대명사로 불린다.   일본에서는 고베육 이외도 수많은 브랜드화된 육류가 지역별로 많다. 최상품으로 제값을 받고 있는 정책이 지자체별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소고기뿐만 아니라, 다른 농수산품도 마찬가지이다.   한국도 지자체별로 특성화된 농수산품이 있다. 예를 들면, 경산의 사과, 해남의 김, 흑산도의 홍어, 거제도의 멸치 등을 나열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화된 농수산품에는 재배 자율성이 보장되어 있어 브랜드화에 역행하고 있다. 홍어는 흑산도 뿐만 아니라 나주와 군산에도 주요 생산지라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번 샤인머스켓처럼 값이 비싸고 제값을 받는 것이라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과잉 재배 및 생산으로 경쟁력의 하락은 물론, 국내 생산자들끼리의 과잉의 공급으로 궁극적으로 자멸하고 마는 단순 시장구조 및 제도에 맹점이 있다.   국가 및 지자체의 자율성에도 큰 문제가 있으며 각성하지 않으면 앞으로 이런 이슈는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브랜드화에 필요한 지자체의 각고의 노력 및 투자가 끊임없이 요구된다. 한 지역에서 나는 것을 다른 지역에서는 생산할 수 없다는 법적 제도도 필요하다.   이와 비슷한 것이 지자체가 내세우는 축제가 있다. 이것과 마찬가지의 개념을 고려해야 한다. 보령의 진흙(메드)축제, 전주의 비빔밥 축제, 여수의 거북선 축제,  평창의 송어 축제 등 수많은 축제가 있다.   한 지역 내에서 한해동안 축제가 여러 차례 열리는 곳도 많다. 이는 희소성 및 부가 가치성을 하락시키는 주범이다. 일정 또한 빡빡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 축제를 통해서 그 지역의 향토 역사 및 가치를 발굴해야 하며, 그에 따른 식재료의 브랜드화에 매진해야 하고, 이웃 지역과 조화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좋은 것은 받아들이면서 내 것으로 만드는 노력이 브랜드화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모방에서 창조를 만드는 기업정신인 소니는 일본의 대표적 기업으로 성장했던 것도 이러한 브랜드화가 일본 내에 내재하여 있기 때문이다.   작금은 기후변화로 대한민국이 온대성에서 아열대로 바뀌면서 농산물의 재배 및 생산품이 달라진다. 또 수산물 역시 종이 달라진다. 사과는 경상북도에서 강원도로 생산지가 북상한 오래며, 명태는 동해서 사라진지 꽤 시간이 흘렀다. 최근에는 제주도의 감귤이 충주에서 재배된다는 사실이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지자체 및 정부가 이에 대한 대응책을 얼마나 잘 수립되었는지 국민에게 설명해야 하고, 그에 맞는 다른 브랜드를 개발해야 한다. 먹거리는 이제 배를 불리는 것이 주체가 아니라 건강의 척도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기고 에르메스 과일계 과일계 에르메스 정부 지자체 한해동안 축제

2024-12-11

[특별 기고] CRA를 굳이 공화당으로 부르는 분들께

최근 미주중앙일보를 비롯해 남가주 한인신문에 한미동맹연합회라는 한인 단체가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중앙회를 설립했고 임원단이 인준됐다’는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공화당 LA 중앙회 임원 인준’(중앙·11월28일자 22면) ‘한미동맹연합회, 가주 공화당 센트럴 LA 임원진 인준’(한국) ‘공화당 LA 중앙회 챕터 임원 인준’(조선) 등이었다. 이 보도는 여러 문제를 지닌다.   첫째, 공화당이라는 표현을 쓴 게 문제다. 영어로 공화당은 Republican Party이며, 캘리포니아 공화당은 당연히 California Republican Party(CRP)다. 한미동맹연합회가 설립했다는 소위 ‘공화당 로스앤젤레스 중앙회’ 또는 ‘공화당 센트럴 로스앤젤레스’라는 단체는 캘리포니아 공화당이 아니다. 공화당 정치인이나 후보들의 전단지 배부, 선거운동 등 기타 정치 활동을 주목적으로 하는 보수시민 자원봉사단체인 CRA(California Republican Assembly)다.   이는 정당이 아니다. 길에서 선거유세를 돕거나, 깃발을 날리고 안내문을 뿌리는 등의 선거운동 지원을 주요 활동으로 삼는다. 이처럼 CRA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자원봉사단체인데도, 한인신문들은 마치 진짜 공화당인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CRA는 불과 15명만 모으면 캘리포니아 어디서든 지부(chapter)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면 CRA 본부에 연락해 “여기 부에나파크인데 친구들 15명이 모여 CRA를 조직하고 싶다”고 하면, 기본조건 충족 여부 등의 절차를 거쳐 부에나파크 CRA 지부를 새로 설립할 수 있다. 누구든 시민권을 지닌 한인 15명만 모으면 새로운 CRA 지부를 캘리포니아 어디서든 설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화당 연맹’ 또는 ‘공화당 위원회’로 번역되는 Republican Assembly는 정당인 공화당과는 판이하게 다른 조직이다. 그런데도 두 곳 모두 Republican이란 단어를 공화당으로 번역해 마치 공화당 지부를 설립한 것처럼 선전한 셈이다. 이 단체가 공화당인 줄 잘못 알고 가입한 한인들은 마치 자신이 공화당원이 된 것으로 착각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남가주 한인사회에서 벌어진 것이다.   둘째, 중앙회(Central)라는 표현도 문제다. 도대체 이 단어를 왜 LA 앞에 부쳤는지 저의가 의심스럽다. 그냥 ‘LA CRA’라고 하면 될 텐데, 굳이 Central을 붙여 ‘LA 중앙회’라고 하면 한국 정서상 ‘뭔가 중심이 되는 곳’ 또는 ‘본부 성격이 되는 곳’이라는 착각을 자연스레 할 수 있다.   셋째, CRA 지부장은 ‘president’로 표기해야 하는데, 이를 마치 정당의 우두머리처럼 총재, 차석은 부총재로 각각 번역해 호칭하고 있다. 지부장과 총재는 어감이 완전히 다르다.   이런 세 가지 이유로 이 기사는 독자에게 혼돈과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CRA는 미국인만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단체다. 과연 이 단체가 시민권을 지닌 한인만 가입시켰는지, 또 회원 모집할 때 시민권자라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설명했는지도 의문이다.     한인들이 미국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려는 의도는 좋지만, CRA를 공화당으로 표기하고 불필요한 ‘중앙회’란 표현을 쓴 것은 번역의 의도적 오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의도가 없었다면, 한미동맹연합회뿐 아니라 한인 언론도 미국정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적어도 정당과 시민단체는 구분해야 한다.   마이클 심 / 전 메사추세츠대 경제학부 겸임교수특별 기고 공화당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캘리포니아 공화당 공화당 로스앤젤레스

2024-12-09

[기고]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축하하는 날이다. 인류애와 세계평화를 의미하는 축제의 날로 세상은 기쁨과 즐거운 분위기로 한창이다.     이맘때쯤이면 6·25 한국전쟁사에 남을 치열했던 전투 하나가 생각난다. 시기는 1951년 연말,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시기에 강원도 양구 북방 25Km에 있는 1090고지에서는 한국군과 중공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가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 시작돼 나중에 ‘크리스마스 고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따지고 보면 6·25전쟁에서 한국군이 북한군과 전투를 벌인 것은 전체의 30%에 불과하다. 나머지 70%는 대규모 인해전술을 앞세운 중공군과의 전투였다. 한국전쟁사에는 처절한 전투를 상징하는 이름들이 꽤 많다. 피의 능선을 비롯해 단장의 능선, 펀치볼, 철의 삼각지, 김일성 고지, 스탈린 고지, 모택동 고지 등이 있고 ‘크리스마스 고지’도 그중 하나다.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는 1951년 12월 25일부터 12월 28일까지 총 4일간 이어졌다.  중공군 제 68군 204사단 소속 부대와 국군 보병 7사단 소속 부대가 전투를 벌여 고지의 주인이 낮과 밤으로 바뀔 만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혈전을 펼쳤다. 하얀 눈으로 뒤덮였던 고지는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었고, 피아간 부상자들의 신음이 천지를 울렸다고 한다.   압록강을 넘어 남침한 중공군과의 지루한 싸움이 계속되었던 시기였다. 휴전회담이 한창이던 1951년, 군사분계선 설정 문제로 설전을 벌이던 양측은 11월 27일부로 조건부 잠정 군사분계선을 설정하고 30일간의 휴전에 합의했다. 그러나 중공군은 약속을 어기고 재공격을 감행했다. 고지를 사이에 두고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계속되면서 피아간의 인명 손실은 컸다.     국군은 처절한 혈투 끝에 승리했지만 흰 눈으로 덮여있던 고지는 순식간에 죽음의 동산으로 변해버렸다. 결사 항전한 아군은 22명 전사에 21명 실종, 중공군은 172명이 전사하고 5명이 포로로 잡혔다.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에서 진지 방어 임무를 수행했던 고 이순호 대위의 전공 담이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다. 적의 공격으로 고지가 함락되면서 다급해진 이 대위의 중대는 수류탄과 총검으로 중공군에 맞섰지만, 적의 공세에 밀려 부대가 포위되는 상황을 맞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적과 아군이 한데 엉키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대위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끝까지 진지 방어를  각오하고 직접 수류탄을 던지며 총검을 휘두르는 백병전 속으로 뛰어들었다. 결국 이 대위는 전투 중에 왼쪽 팔과 우측 정강이 등 두 곳에 관통상을 입었지만 중대원들과 함께 수류탄을 던지고 총검을 휘두르는 혈투를 벌여 끝까지 진지를 지켰다. 그러나 그는 가슴에 관통상을 입고 끝내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이처럼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졌던 크리스마스 고지는 이제 적막이 흐르는 평온한 곳이 됐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고지가 있는 강원도 양구 두메산골엔 지금도 아픔과 슬픔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제는 캐럴이 평화롭게 울려야 하는 크리스마스 고지지만 그곳에서 인생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숨진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찡해 온다.     남북은 아직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 원컨대 휴전선을 지키는 장병들이 크리스마스 때만이라도 평안의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늘엔 영광, 땅 위엔 평화로다.’ 지구 한편에선 아직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 전쟁하는 그곳에 임하옵소서!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기고 크리스마스 전투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하나 실종 중공군

2024-12-08

[기고]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이민정책 전망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트럼프 정부 2기의 이민정책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불법체류자가 단속 대상이라 합법체류자는 안심해도 된다는 측도 있지만, 그의 ‘불체자 대규모 추방’ 공약이 이민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민변호사협회(AILA)와 이민단체의 전망을 참고해 보자. 이들의 전망을 요약하자면 크게 세 가지다. (1) 트럼프의 ‘대규모 추방’ 공약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쉽지 않다. (2) 불체자들이 추방되면 경제에 영향을 줄 것이다. (3) 합법 이민 절차 역시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먼저 대규모 불체자 추방부터 살펴보자. 센서스(2023년 7월 기준)에 따르면 미국 내 불법 체류자 숫자는 약 1170만 명으로, 미국 전체 인구의 약 3.5%를 차지한다.  미국 정부는 2024년 하루 평균 4만1500명의 불체자를 구금하면서 약 34억 달러의 비용을 썼다. 이 중 61%는 범죄기록이 없는 단순 불체자였다.   미국이민위원회(American Immigration Council)의 제레미 로빈스 사무총장은 “이만한 숫자를 추방하려면, 지역사회를 샅샅이 수색해 불체자를 찾아내야 하는데 인력과 비용이 추가로 든다”며 “불체자를 본국으로 돌려보내려면 수용시설과 이민 판사도 더 많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결국 모든 불법 체류자를 추방하는 데는 약 3150억 달러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4.2%-6.8%를 차지하는 막대한 액수다. 로빈스 사무총장은 “이런 막대한 예산을 추가집행하는데 초당적인 의회 지지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만약 미국 노동력의 4.8%를 차지하는 불법체류자가 모두 추방되면 미국 경제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민정책연구소(Migration Policy Institute)의 줄리아 겔랫 부국장은 “불법체류자를 추방한다고 해서 꼭 미국 근로자에게 일자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민자 노동력이 사라지면 고용주는 외주를 주거나 아예 폐업할 수도 있다”며 “이민자들과 미국 근로자들은 노동시장에서 상호 보완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합법 이민은 어떨까? 미국이민변호사협회(AILA) 이사인 그렉 첸 변호사는 “트럼프는 불체자 대규모 추방에 대해 언급했지만, 매년 수십만 건에 달하는 취업비자, 가족이민 비자, 인도주의 비자 등 합법 이민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첸 이사는 트럼프 행정부 1기 동안 영주권 발급이 줄고 이민 문호가 좁아졌다고 지적한다. 국토안보부(DHS) 에 따르면, 트럼프 재임 동안 신규 영주권 취득자는 2016년 118만 3500명에서 2020년 70만 7400명으로 감소했다. 트럼프 집권 4년 동안 영주권 취득자가 거의 ‘반 토막’이 난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 집권 후인 2023년에는 신규 영주권 취득자가 117만 3000명으로 회복됐다.   첸 이사는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이민 문호는 좁아졌다. 이는 이민 케이스 처리에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뜻”이라며  “일반적으로 3~6개월이 소요되는 취업, 가족 비자는 처리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트럼프의 ‘대규모 추방’ 위협은 실행 가능성과는 별도로, 이민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한인 사회도 새 행정부의 이민정책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이종원 / 변호사기고 이민정책 트럼프 트럼프 행정부 트럼프 집권 트럼프 정부

2024-12-04

[기고] 희망이 사라진 성탄절 될 것인가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 소망으로 설레는 12월이다. 하지만 추방에 대한 공포로 웅크리고 있는 불법체류자들은 암담하기만 하다.   필자는 40여 년 전 봉제 공장을 경영하며 겪었던 마음 아픈 장면이 떠오른다. 1970년대 말 LA다운타운에서 대대적인 불법체류자 단속이 이뤄졌던 날이다. 당시 봉제공장은 그 지역 고층 건물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많았다.     어느 날 갑자기 종업원들이 우왕좌왕하며 큰소리로 이민국 단속반이 왔다고 소리쳤다. 9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대여섯대의 흰 밴이 길을 가로막고 건물 앞에서 불법체류자 단속을 하는 것이 아닌가. 건물 전체가 바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개중에는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도 있었고, 연약한 여종업원들은 하나둘 수갑에 채워져 울부짖으며 밴 안으로 끌려갔다.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공포의 현장이었다.   그 후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이민 개혁 및 통제 법안 (Immigration Reform and Control Act, IRCA)’을 만들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불체자 사면안으로 이들에게 영주권 취득 기회를 부여했다. 그 후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는 불법체류자들에게 영주권 신청 기회를 줬다. 그 덕에 불법 입국자 또는 합법적인 입국 후 불법체류자가 된 사람들이 대거 구제되었다.     이젠 정부의 대사면 정책은 사라졌다. 사면을 기대했던 불법체류자들에게 오히려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그들에게 올해는 희망이 사라진 성탄절이 될지도 모르겠다.   내년 1월 20일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 즉시 불법 입국자를 막고, 1100만 명에 달하는 불법체류자를 대대적으로 추방하겠다고 공언했다. 특히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대까지 동원해 대규모 추방 작전에 나서겠다고 선언하면서 불법체류자들의 공포감은 더 커지고 있다.   미-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을 재개하고 국경 순찰 인력을 증원해 불법입국자를 차단하겠다고 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이끄는 정부효율부(DOGE)도 불법 입국자 ‘피난처 도시’ 선포 등 불법체류자 추방에 협조하지 않는 주에는 연방정부 지원 예산을 우선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이 불법체류자 단속을 강화하는 것은 불법 이민을 줄여 미국 내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우선 제공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노동시장은 물론 산업 전반과 부동산 시장 등에도 복합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왜냐하면, 트럼프 당선인의 이민 규제가 특정 산업의 노동력 부족 현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농업, 건설업, 서비스업 등 이민자 노동력에 크게 의존하는 업종에서는 인력 부족으로 생산성 저하와 비용 상승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동안 불법체류자에 대한 관용적 정책이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자리뿐 아니라 각종 사회 문제와 재정 지출을 불러왔다. 그러니 유권자의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실 불법 이민 차단은 강력한 단속도 필요하지만, 상대국의 협조도 요구된다. 트럼프 당선인이 강력한 관세 부과를 들고나온 배경 중 하나도 이런 이유라고 본다.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즉시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대치하는 쌍방이 협력하여야 한다. 아무리 특별 조치로 강력히 대응해도 쌍방의 이해가 맞아야 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고율의 관세를 불법 입국자 문제 협상의 지렛대로 사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강력한 이민 정책이 경제 전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게 된다. 불법체류자의 고통이 덜한 이민 정책을 기대해 본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기고 성탄절 희망 불법체류자 추방 불법체류자 단속 이민국 단속반

2024-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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