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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관음증

관음증을 한자로 觀陰症이라 쓰는 줄 알았다. 볼 觀, 그늘 陰. - 그늘을 바라보다.   관음증은 한자로 觀淫症이라 쓴다. 볼 觀, 음란할 淫. - 다른 사람의 알몸이나 성교하는 것을 몰래 훔쳐보면서 성적인 만족을 얻는 증세라고 네이버사전은꼰대스럽게 풀이한다.   트위터 단어사전은 觀淫을, 타인의 계정을 사찰하며 그 사람이 쓴 트윗과 멘션(mention) 등을 찾아보는 것이라 산뜻하게 해석한다.   관광(觀光)이 병이 아니듯이 觀淫도 觀淫症도 병이 아니라는 견해다. 만약에 당신이 관음증을 질병이라고 우긴다면 지구촌 모든 SNS 참가자들을 다 환자 취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단, 인터넷에 만연하는 성범죄는 어디까지나 죄질이 저열한 범법행위로써, 지금 나의 주제에 크게 어긋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   觀은 황새 관(  )자와 볼 견(見)자가 결합한 모습.    은 새 추(  )자 위에 커다란 눈과 눈썹을 그려 놓은 황새 모양의 상형문자.    과 見이 합쳐진 觀은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황새처럼 넓게 본다는 뜻이다. (네이버사전)   그래서 觀光은 황새가 빛(光)을 바라본다는 뜻이 된다. 황새는 설악산을 크게 환호성을 지르며 구경하지 않는다. 애오라지 빛을 묵묵히 바라보는 황새는 고즈넉하게 그늘을 바라보는 당신만큼이나 시적(詩的)인 모양새다. ‘sightseeing’이라는 영어단어의 닝닝한 뒷맛과 비교해 보라.   ‘sight’에는 시야, 시력 외에 장관(壯觀)이라는 뜻이 깃들여져 있다. 눈에 뵈는 대상 자체에 역점을 둔 서구인들에 비하여 동양인들은 대상이 보이게끔 도와주는 ‘medium, 매개체’인 ‘빛(光)’이 주제가 되는 것이 흥미롭다.     당신과 내가 거창한 장관(壯觀) 여행에 오르지 않고, 오붓한 관광(觀光)길을 떠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觀淫症을 다시 분석한다.     淫자에는 음란하거나 무엇을 탐한다는 뜻이 담겼다고 사전은 해명한다. 淫은 물 수(水)와 가까이할 음(   )이 결합한 문자.    자는 허리를 숙인 채 무엇을 잡아당기는 사람 모습. 마치도 무엇인가를 가까이하려는 형상이다.     접근의 대상은 물! 급기야는 ‘물=욕정’이라는 은유법에 의하여 淫자가 욕정을 가까이한다는 뜻으로 변했다고 풀이하는 한자사전이참 고지식도 하지.   때는 바야흐로 11세기 초엽. 영국 코번트리(Coventry) 지역의 레오프릭(Leofric) 백작의 아내 고다이버(Godiva)가 과도한 세금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고통에 깊은 동정심을 품은 나머지 남편에게 세금을 내려줄 것을 간청한다. 남편은 그녀가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오면 청을 들어주겠다는 조건을 내세운다.   남편의 조건을 받아들인 그녀는 자신이 말을 타는 동안 모든 주민이 집에 머물면서 창문을 가리고 밖을 보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들은 고다이버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준다.     단 한 사람, 양복 재단사 톰(Tom)이 그녀의 알몸을 몰래 훔쳐본 후 나중에 장님이 된다. 이 전설에서 유래한 단어, ‘Peeping Tom’이 인류 최초의 관음증 환자로 기록에 남는다. 그리고 ‘Godiva’는 1926년 벨기에에서 만인의 사랑을 받는 고급 초콜릿 상표명으로 태어난다.   관음증의 대상이 벌거벗은 남녀의 몸에 국한돼야 한다는 법은 없다. 황새와 관광객은 어원학적으로 빛을 추구하는 법. 우주의 관광객 아인슈타인도 빛의 속도를 탐색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 학자들과 예술가들이 갤럭시와 인간의 진리와 정신활동을 관음(觀淫)하고 있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관음증 관음증 환자 관광객 아인슈타인 한자사전이참 고지식도

2025-04-01

[J네트워크] 관음증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본 이들의 최후는 성경과 신화, 전설로 전해진다.     구약성서 창세기 19장에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라”는 천사들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이야기’에는 다이아나와 악티온 이야기가 나온다. 사냥을 하던 악티온이 샘물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다이아나 여신을 놀라게 했다. 자신의 알몸을 보았다는 것에 분노한 여신이 악티온을 수사슴으로 만들어버린다. 악티온은 결국 자신의 사냥개들에 죽임을 당한다.     금기는 행복과 불행의 경계를 넘나들게 한다. 금기를 깨버린 순간은 달콤하지만 뒤이어 참혹한 대가가 따라온다.   중세 영국에서 탄생한 ‘레이디 고다이바’ 전설은 금기에 대한 인간 심리를 ‘관음증(voyeurism)’으로 접근한다.     마을의 영주인 레오프릭 백작은 백성에 대한 세금을 감면해 달라는 부인 고다이바의 부탁을 받는다. 영주는 “알몸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당신의 진심을 증명하라”고 했다.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말을 타고 거리를 돌았다. 모든 사람이 창문을 닫고 커튼을 내렸지만, 톰이라는 재단사는 고다이바의 나체를 엿봤다.     ‘훔쳐보는 톰’이라는 뜻의 ‘피핑 톰(peeping Tom)’이 관음증을 뜻하는 속어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이다.   봐서는 안 되는 것과 꼭 봐야(알아야) 하는 것의 경계가 모호한 시대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서 살 수 없다. 미디어의 발달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게 됐기 때문이다.     보기 싫은 것도 봐야 하고, 듣기 싫은 것도 들어야 한다. 자신이 설정한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의 구분은 타인에게 상대적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금기를 어겼다고 권선징악을 운운하는 것이 우스워졌다.   그래도 꼭 모두가 봐야만 하는 것은 있다고 우기고 싶다. 미디어는 관음증을 부추긴다. 자극적인 것에 대한 즐거움은 복잡한 사유를 해야 하는 수고를 갉아먹는다.     미국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수전 손태그는 ‘타인의 고통’에서 “의도했든, 안 했든 우리는 관음증 환자”라는 말을 남겼다. 대중이 지나치게 무엇인가에 탐닉한다면 언제든 손태그의 말을 되새겨봄 직하다. 미디어의 생산자가 됐든 소비자가 됐든. 위문희 / 한국 중앙일보 기자J네트워크 관음증 관음증 환자 악티온 이야기 레이디 고다이바

202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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