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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건 살이] 추억을 만난 현실의 무게

만남과 헤어짐의 삶이라. 군필 남자들이나 아는 냄새 풀풀 나는 이야기겠지만 훈련소를 마친 동기들 사이에서 흔히 나누는 말이 있다. “휴가 나가면 꼭 연락해서 술 한잔하자.”     하지만 막상 휴가가 되면 대부분 연락이 끊기고, 전역하면 영원히 만나지 않는 사이가 되곤 한다. 인연이란 게 늘 그렇다. 처음에는 아무리 가까웠다 해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끝내 잊히기도 한다.   드넓은 미국 대륙 안에서의 1세대 한인으로의 삶을 돌아보면 훈련소를 나온 이등병의 삶과 딱히 다를 게 있을까 싶다. 신분이 없고 돈이 없던 시기에 만나서 차 한 잔에 뜨거워진 사이가 있는가 하면, 우정이 영원하리라 믿었던 과거의 친구들은 어느새 마음이 닿을 수 없는 인연이 되어버린 경우도 있다. 시공간의 제약은 생각보다 더 쉽게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다.   얼마 전 업무 차 LA를 다녀왔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옛 직장 동료와 상사를 만났고, 고등학교 시절 친했던 친구가 미국으로 발령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찾아가기도 했다. 오랜만의 재회였지만, 나는 과거의 추억 속에서 친구를 찾았고, 그는 현실의 무게 속에서 나를 마주했다.     한 시간 남짓 이어진 대화는 어딘가 어색했고, 나는 찜찜한 기분으로 자리를 떠났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내 마음이 좋지 않음을 확인하고 섭섭하다는 문자를 보냈는데, 보내고 나서도 맘이 여전히 편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진 관계가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도, 그 당연함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과거의 친구를 떠올리지만, 현실의 우리는 이미 너무 다른 길을 걸어왔다. 태평양을 건넌 뒤에 나는 두고온 인연에 에너지를 쏟지 않았다. 내가 기대했던 친구와의 농담 따먹기는 고등학교 때의 추억일 뿐이었다.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느라 정신없이 바빴던 나도, 새로운 환경 속에서 나름의 삶을 꾸려온 그도, 서로가 놓쳐버린 시간들을 다시 메우기는 어려웠다.   조용필의 노래 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멀리 떠나가는 사람에게 말해주면…”     이역만리 타지에서 내가 소중히 해야 할 것은 어쩔 수 없이 내 가족이고 그 다음이 같은 땅에서 만난 인연들일 수밖에 없다. 물론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이어지는 끈끈한 사이도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가는 마음이 아플 때가 종종 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말이 있다. 그렇다면 ‘마음에서 멀어지지 않으면, 눈에서도 멀어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본다. 눈에서 멀어지는 건 인연일테지만 추억은 남는다.   글이 산으로 간다. 소중한 것을 잃고 싶지 않지만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없다.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식장 주례 선생님 앞에서 금석 같은 맹세를 하고 평생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지만 때로 작은 말 한마디에 서로 상처받고 할퀴는 일도 있는가 하면, 이바구가 잘 맞아서 매주 보던 한인타운의 친구도 훈련소에서 자대 배치받는 기차 타는 마냥 어느 날 타주로 떠나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났을 때, 서로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변화이며,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가 영원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물질이든, 가치이든, 사람이든.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변하는 존재이기에,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갈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일은 오리건에 올라와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들과 오랜만에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이제 함께 지낸 지 5년이 됐다. 그동안 서로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나를 아끼고 걱정해주는 이들과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이어가길 바란다. 모든 것이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이 순간만큼은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추억은 남을 테니까. 이유건 / 회계사오리건 살이 추억 무게 고등학교 시절 이역만리 타지 결혼식장 주례

2025-03-03

[마음 읽기] 결혼을 꿈꾸는 이들에게

2012년 7월, 해남 땅끝 미황사에서 ‘청년출가학교’라고 하는 인문학 프로그램을 열었다. 그때 나는 법인 스님·금강 스님과 함께 8박 9일 동안 지도법사로 참여했다. 최종 41명만 선발됐지만, 당시 지원자가 무려 272명이나 있었을 정도로 꽤 인기가 많았다. 그해 여름은 청년들이 가졌던 고뇌의 열정 또한 뜨거웠던 모양이다.   10년이 지난 얼마 전, 청년출가학교 때 함께했던 한 청년이 자신의 배우자가 될 사람과 함께 청룡암에 찾아왔다. 이제는 ‘1+1’이 된 것이다. 그리고 청하기를, “어려운 부탁이 있는데요. 스님, 주례를 좀 서주세요” 했다. 허 참! 장례식장도 아니고 결혼식장에 와 달라고 하다니, 그것도 아직 젊은 독신 비구니에게, 뭐? 주례를?   순간 결혼식장의 아찔한 풍경이 뇌리를 스쳤다. 아, 이건 쫌! 당혹감을 농담으로 감추고는 다시 생각해 보라며 만류했다. 우리는 각자 한 달의 기한을 두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다만 양가 부모님과 친척들, 친구들이 다 좋다고 하면, 그땐 나도 거절하지 않고 주례를 봐 주겠다고 약속했다.   한 달 후, 설마 하던 일이 현실이 됐다. 주위에서 다 좋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마음을 달리 먹는 수밖에. “그래 뭐, 생각해보니 독신 비구니 스님이라고 장례식만 가라는 법은 없지, 결혼식에도 가서 행복한 가정의 탄생을 축복하고, 사랑하는 이들의 언약을 보증하는 증명법사가 되어주면 좋지. 아니, 이참에 그냥 주례 전문 스님으로 나서볼까? 하하하.”   드디어 지난 일요일,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신랑 신부 못지않게 긴장한 상태로 생애 첫 주례를 섰다. 가기 전 머릿속을 헤집던 아찔한 풍경도 지금은 행복한 여운으로 가득하다. 아마 남은 생 동안 나는 그들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때때로 기도할 것이다. 새 가정을 이룬 그들의 수호자가 되어 일생 내내 틈틈이 빌고 또 빌어 주리라.   그간 주례를 약속한 후, 누가 어떻게 결혼을 하는지, 주례는 누가 서는지, 무슨 말을 남겼는지 등등 관심이 커졌다. 일생 관심 밖이던 ‘결혼’에 대해 참 많이도 생각했다. 덕분에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았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이유로 헤어지는지, 왜 결혼은 어렵고 이혼은 쉽게 하는지, 독신이나 비혼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문득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절에 들어올 당시만 해도 고향 마을에서는 비구니가 된다는 것에 정신병자 취급을 했다. 스무 살도 안 된 여학생이 머리 깎고 비구니가 되겠다 하니, 어머니는 가슴을 쳤고 아버지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무셨다. 주위 어른들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쑥덕거리며 비난을 쏟아냈다. 생각해보면 내가 인연을 끊어낸 것이 아니라, 매몰차게 끊어낸 쪽은 외려 가족들과 이웃들이었다.   출가하겠다는 여성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1990년 당시를 떠올려 보면, 여자가 일생 독신으로 산다고 하면 뭐 크게 하자 있는 사람이겠거니 할 정도로 섬뜩한 선입견이 주변에 수시로 작동했다. 30년 전만 해도 독신 여성에게는 위협적인 비난과 편견이 늘 따라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에 비하면 지금이야 주변 반응이 그나마 괜찮다. 결혼적령기의 남녀는 서로 합의로 혼인을 하고 가정을 구성할 권리가 있지만, 그렇더라도 이젠 비혼이건 독신이건 상관없다는 생각, 결혼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 삶의 형태가 결혼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점차 확산된 듯하다.   사실 결혼적령기가 되면 이제 다 성인인데,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누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삶에 끼어들거나 간섭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서로에게 불편한 감정을 만들곤 한다. 더군다나 결혼연령이 점점 더 늦어지는 추세라서 이제는 ‘결혼적령기’라는 말도 사라지는 분위기다. 절에 오시는 보살님들도 자식들이 나이는 상관없으니 언제라도 가정을 꾸렸으면 하고 바라거나, 그도 아니라면 편하게라도 살면 좋겠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바람보다도 본인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첫 주례 기념으로 오늘은 결혼을 꿈꾸거나 결혼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덧붙일까 한다.   “세상 모든 이들에게는 충분히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고, 우리는 모두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숭고합니다. 이러한 우리가 아득히 먼 시간부터 서로를 그리며 찾아와 이 땅에서 누군가를 만나 인연을 맺었다면, 수천생의 인연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사랑을 담아 말 한마디, 손길 하나에도 정성으로 대하십시오. 서로를 존중하면서 일생 온화한 부부로 살기를 기원합니다.” 원영 스님 / 청룡암 주지마음 읽기 결혼 독신 생각 결혼 순간 결혼식장 사실 결혼적령기

2022-06-26

[기고] 결혼을 꿈꾸는 이들에게

2012년 7월, 해남 땅끝 미황사에서 ‘청년출가학교’라고 하는 인문학 프로그램을 열었다. 그때 나는  스님·금강 스님과 함께 지도법사로 참여했다.     10년이 지난 얼마 전, 청년출가학교 때 함께했던 한 청년이 자신의 배우자가 될 사람과 함께 청룡암에 찾아왔다. 그리고 청하기를, “어려운 부탁이 있는데요. 스님, 주례를 좀 서주세요”했다. 장례식장도 아니고 결혼식장에 와 달라고 하다니, 그것도 아직 젊은 독신 비구니에게, 뭐? 주례를?   순간 결혼식장의 아찔한 풍경이 뇌리를 스쳤다. 다시 생각해 보라며 만류했다. 우리는 각자 한 달의 기한을 두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다만 양가 부모님과 친척들, 친구들이 다 좋다고 하면, 그땐 나도 거절하지 않고 주례를 봐 주겠다고 약속했다.   한 달 후 설마 하던 일이 현실이 됐다. 주위에서 다 좋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마음을 달리 먹는 수밖에.     “그래 뭐, 생각해보니 독신 비구니 스님이라고 장례식만 가라는 법은 없지, 결혼식에도 가서 행복한 가정의 탄생을 축복하고, 사랑하는 이들의 언약을 보증하는 증명법사가 되어주면 좋지. 아니, 이참에 그냥 주례 전문 스님으로 나서볼까?”   드디어 지난 일요일 신랑 신부 못지않게 긴장한 상태로 생애 첫 주례를 섰다. 가기 전 머릿속을 헤집던 아찔한 풍경도 지금은 행복한 여운으로 가득하다. 아마 남은 생 동안 나는 그들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때때로 기도할 것이다.     그간 주례를 약속한 후 일생 관심 밖이던 ‘결혼’에 대해 참 많이도 생각했다.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았다. 얼마나 많은 이유로 헤어지는지, 왜 결혼은 어렵고 이혼은 쉽게 하는지, 독신이나 비혼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문득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절에 들어올 당시만 해도 고향 마을에서는 비구니가 된다는 것에 정신병자 취급을 했다. 스무 살도 안 된 여학생이 머리 깎고 비구니가 되겠다 하니, 어머니는 가슴을 쳤고 아버지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무셨다.     출가하겠다는 여성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1990년 당시를 떠올려 보면, 여자가 일생 독신으로 산다고 하면 뭐 크게 하자 있는 사람이겠거니 할 정도로 섬뜩한 선입견이 주변에 수시로 작동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이야 주변 반응이 그나마 괜찮다. 결혼적령기의 남녀는 서로 합의로 혼인을 하고 가정을 구성할 권리가 있지만, 그렇더라도 이젠 비혼이건 독신이건 상관없다는 생각이 점차 확산된 듯하다.   사실 결혼적령기가 되면 이제 다 성인인데,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누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삶에 끼어들거나 간섭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서로에게 불편한 감정을 만들곤 한다.     더군다나 결혼연령이 점점 더 늦어지는 추세라서 이제는 ‘결혼적령기’라는 말도 사라지는 분위기다. 절에 오시는 보살님들도 자식들이 나이는 상관없으니 언제라도 가정을 꾸렸으면 하고 바라거나, 그도 아니라면 편하게라도 살면 좋겠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바람보다도 본인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첫 주례 기념으로 오늘은 결혼을 꿈꾸거나 결혼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덧붙일까 한다.   “세상 모든 이들에게는 충분히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고, 우리는 모두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숭고합니다. 이러한 우리가 아득히 먼 시간부터 서로를 그리며 찾아와 이 땅에서 누군가를 만나 인연을 맺었다면, 수천생의 인연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사랑을 담아 말 한마디, 손길 하나에도 정성으로 대하십시오. 서로를 존중하면서 일생 온화한 부부로 살기를 기원합니다.” 원영 스님 / 청룡암 주지기고 결혼 사실 결혼적령기 순간 결혼식장 스님 주례

2022-06-24

단돈 500불로 근사한 야외 결혼식

결혼식 비용으로 500달러 정도만 쓴 LA커플이 있어 화제다.     조엘·키아라 브로큰브러 부부는 2016년 라스베이거스에서 만나 사랑을 키운 뒤 지난 2월 12일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식 정보 업체 더 낫(The Knot)이 1만5000쌍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2021년 평균 결혼식 비용은 2만8000달러.     하지만 브로큰브러 부부는 허례허식 대신 스몰웨딩을 택했다. 결혼생활을 빚으로 시작하고 싶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우선 결혼식 장소는 샌게이브리얼산 절경을 배경으로 한 앤젤레스 크레스트 하이웨이로 정했다.     참석 인원이 75명 이하일 경우 당국의 허가도 필요 없고 대관료는 무료였다.   다음은 예복과 장식. 웹사이트를 통해 신부의 웨딩 드레스과 신랑 정장을 각각 47달러, 100달러에 구입했다. 가장 큰 지출은 결혼식장 전면에 필요한 백그라운 아치로 200달러가 들었다.   꽃은 신부의 대모가, 그리고 웨딩케이크는 숙모가 해결했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은 비용이 드는 리셉션은 하객들이 직접 계산하는 방식을 택했다. 각자 자신의 음식과 술을 부담했다.   신부 키아라는 “하객 중 단 한 사람도 불평하지 않고 우리 의견을 존중해줬다”고 말했다. 브로큰브러 부부는 자신들의 스몰 웨딩이 다른 신혼부부에게도 귀감이 되길 바란다면서 결혼식의 목적은 결혼생활과 그 두 사람의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수연 기자결혼식 야외 야외 결혼식 결혼식장 전면 결혼식 비용

2022-04-19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한 해를 보내며

금년은 나 같은 늙은이에게는 별 기억이 없는 해다. 무엇을 한 듯 한데 워낙 생각나지 않는 무미한 것이었는지, 실제 치매를 앓고 있는 중인지 이렇게 건조할 수가 없다. 나이가 먹을 만큼 먹어서 그런가 참 재미없는 세상이다. 그러나 완전히 간 것은 아니다. 아직도 뭘 할 만큼 기력은 남아있다. 허리가 불편해 그렇지 사지를 잘 건사할 힘이 모자란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의욕이 샘솟듯 하고 그 옛날을 더듬어 보기도 한다.   비록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인으로 태어난 걸 자랑한다. 그들은 "나"보다 "우리"를 사랑한다. 우리 엄마 우리나라지 내 엄마 내 나라는 없다. 한국인은 느려터진 것은 참지를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그리고 계산은 순식간이고 명확해 고스톱 한 판을 30초를 넘기지 못하고 해치우는 사람도 많다. 지금 한국이 한 세기도 안돼 숨을 몰아가며 한판에 발전시킨 것을 멀리서 보고 있으면 뿌듯하다. 미국에서는 오래 전 타 인종에 한때 주눅이 들 때가 있었으나 날이 갈수록 모국이 발전해가니 한국인을 싸 잡아 보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동네를 만들고 자식 교육에 열을 올리고 이재에 밝으니 타 동네 사람이 쫓아 오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한국인은 악착같다. 불의를 보고 거품 무는 거야 당연하다고 하지만 모국에서나 이국에서나 같이 총까지 들고 맞대결하는 사람은 우리 밖에 없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광주가 살아있지만 LA에서는 그 무서운 검은 아저씨들을 질리게 만드는 것을 보면 진돗개가 사람을 닮았는지 사람이 개를 닮았는지 어느 날은 구분이 안 간다. 남자들이야 군대를 다녀와 전투력이 남아 있겠다 하지만 아줌마들의 걷어붙인 행주산성 막가파 전투력을 보면 꼭 그렇지 만은 아닌 것 같다. 시장 좌판도 아줌마들이 끼고 있지 남정네는 멀리서 지겟다리만 지키고 앉아있다.   그럼에도 한국인은 유독 비빔밥을 좋아한다. 다른 민족에게는 보기 힘든 밥상이다. 뭔가 복잡하다 하면 한 그릇에 다 몽땅 집어넣고 5분이면 끝난다. 한국의 산하를 둘러봐도 옛것과 최첨단이 섞여 눈이 어지러울 지경인데 한눈에 다 비벼 버리고 세계에서 제일 빨리 걷는다. 일본과 축구를 하는 날이면 온 국민이 너 죽고 나 죽자지 동점은 가당치도 않다. 한다 하면 화끈하게 하지 시시한 게 없다. 한마디로 다이내믹이다.   그러면서도 한국인은 감정이 유달리 풍부해 정이 많다. 어려운 사람을 돕기를 좋아하며, 결혼식장 장례식장은 아무리 바빠도 찾아간다.  영화를 보고 아직도 눈시울을 적시는 사람이 많다.   해외의 동포라고 그 DNA가 사라진 건 아니다. 아니 나도 아직은 쓸만한 잔재는 남아있어 지금처럼 기억 없는 세월을 보내느니 내일 새로운 해가 뜨면 무언가를 해야겠다. 이왕이면 언제까지 살는지 모르겠으나 요즘 첨단이라는 블록체인에서 EFT로 나의 창작물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Web 3.0에서 암호화폐로 투자도 하고 싶다. 채굴까지도 해봤으면 하는데 그건 정말 늙어 망령 났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최근 와튼 스쿨의 "마이로 기옌" 국제 경영학 교수가 쓴 "2030 축의 전환"이라는 책이 요즘 유행이다. 그 중 일부 서문에 보면 한국의 역동적 발전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2030년 이후의 세계는 8가지 축으로 한 번도 안 가본 세상이 나온다. 그리고 그것이 곧 다가올 피할 수 없는 장래다. 그러지 않아도 한국인은 외국인에게는 다방면에서 연구 대상이다. 특히 요즘 "K 문화"를 보고는 꼭 "김정은" 같지는 않다고 한다. 아니 둘 다 뭉툭거려 연민의 정을 갖고 보면서도 언젠가는 오천년 묵은 화산이 폭발해 세계를 뒤흔들 암묵적 외경스러운 존재로 생각한다. 그냥 그대로 내년에도 파이팅이다. ([email protected])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옛것과 최첨단 역동적 발전 결혼식장 장례식장

202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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