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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머리를 가슴으로, 가슴을 온몸으로

세상에 알아야 할 게 참 많습니다. 예전에 비해 지식의 폭이 훨씬 넓어지고 있습니다. 알아야 하는 과목도 늘었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지식도 끊임없이 솟아 나옵니다.     그럼 우리는 정말로 똑똑해졌을까요? 지식인은 많은데, 지혜로운 이는 적다는 한탄이 여기저기에서 나옵니다. 답답한 일입니다. 지식은 쌓여가는데 지혜는 오히려 옅어집니다.     지식인(知識人)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지식인이라는 말은 칭찬 같기도 하고, 나무라는 말 같기도 합니다. 지식인을 나무랄 때는 지식을 쌓아는 가지만, 지혜로 바뀌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세상에 지식(知識)이 넘쳐나니 지식인도 넘쳐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혜를 나타내는 한자 지(知)에는 날 일(日)이 더해 있습니다. 지식이 밝아져야 지혜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빛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식을 경쟁하고, 서로 잘났다고, 많이 안다고 하며 자신의 성적을 내세우는 세상, 자신을 숫자로 표현하는 세상은 어두운 세상입니다. 당연히 지혜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인공지능 앞에서는 무력한 사람들입니다. 인공지능의 속도와 정확성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아예 경쟁조차 되지 않습니다.     지식을 아는 것에 그치면 경영의 목표가 돈이 되고, 법의 목표가 돈이 되고, 의술의 목표가 돈이 됩니다. 모든 걸 돈에 초점을 맞추는 세상이 안타깝습니다. 이러한 세상은 지식이 머리에 머물러 있는 세상입니다. 세상일을 머리 아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슴도 아파야 옳은 해결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식을 단순히 암기하는 세상에서, 지식이 감정으로 옮겨가는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정보라고 합니다.     정보(情報)는 사정(事情)을 알린다는 뜻이고, 정보나 사정이나 모두 감정(感情)과 관련이 있습니다. 정(情)이 담긴 글자입니다. 이러한 세상이 바로 가슴으로 사는 세상입니다.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입니다. 무미건조한 정보가 아니라, 가슴으로 아파하는 정보입니다. 공감의 세상, 동감의 세상이란 머리에서 가슴으로 옮겨갔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가슴에서 다리로, 아니 온몸으로 퍼져나가서 핏줄이 돌 듯이 모세혈관까지 전해져야 합니다. 머리로 생각한 것을 가슴으로 옮기고, 가슴으로 느낀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겁니다.     사실 이 지점이 가장 어렵습니다. 책상 앞에서 생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멀리서 떨어져서 가슴 아파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실제로 뛰어들어 행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생각을 키우기 위해서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독서와 글쓰기가 내게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내가 읽은 대로, 내가 쓴 대로 행동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글 읽기에서 이런 읽기를 체독(體讀)이라고 합니다. 온몸으로 생각하며. 행동하며 읽는 것입니다.     주로 경전을 이렇게 읽습니다. 종교의 경전은 그저 읽기만 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실천이 중요한 겁니다. 마찬가지로 쓰기에서도 체서(體書)가 필요합니다. 이 말은 제가 만든 말입니다.   글을 쓰면서, 책을 읽으면서 지식인인 척하는 스스로가 부끄럽습니다. 그야말로 저는 지혜는커녕 지식인도 못 되었습니다. 배운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삶도 노력해야겠습니다. 세상을 위해서 행동하는 삶이 되기 위해 체독의 삶, 체서의 삶, 체학(體學)의 삶을 생각해 보는 오늘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가슴 모두 감정 해결 방향 칭찬 같기

2025-04-06

[건강 칼럼] 가슴 쓰리고 목 칼칼하면 ‘위산 역류’ 의심

박모씨는 40대 중반 남성으로 식품점을 운영하고 있다. 약 일 년 전부터 점점 목이 쉬는 것을 느꼈고, 3개월 전부터는 더 악화했다. 처음에는 감기에 걸려서 목이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좋아지지 않고 점점 더 나빠졌다. 또 가끔 기침하고 흰 가래가 나와서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나 음식을 삼키거나 숨을 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박씨는 과거에 특별한 질병을 앓은 적이 없고 복용하는 약물도 없었다. 생활 습관은 커피를 하루 3∼4잔, 담배를 하루 한 갑 피우고 있고, 술은 가끔 마시고 있다.     박씨는 직업 관계상 일주일에 6일 이상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 퇴근했다. 퇴근 후 저녁 식사를 늦은 시간에 하고 바로 잠을 자는 편이며,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특이점으로 지난 일 년간 몸무게가 10킬로그램 이상 늘었다. P 씨는 만성적으로 목이 쉬면 후두암 때문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주위에서 듣고 병원을 찾아왔다.     검진 상 혈압은 정상이고 체중은 과체중에 속했다. 인후에 흰 가래가 고여 있는 것을 발견했고 폐 음은 정상이었다. 현재의 병력과 검진을 바탕으로 위산 역류병(Gastroesophageal Reflux Disease, GERD)으로 일단 진단했다. 박씨는 커피, 과체중, 늦은 저녁식사 등이 위산 역류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위의 증례는 흔히 보는 ‘위산 역류병’의 예다. 현재 미국인의 10%가 위산 역류 증상을 매일 느낀다고 한다. 33%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역류 증상을 느낀다고 한다.     위산 역류가 생기는 가장 흔한 경우는 식도와 위 사이의 괄약근이 약해진 경우다. 선천적으로 괄약근이 약한 경우도 있지만, 기름진 음식이나 카페인, 알코올 등이 괄약근을 약하게 할 수 있다.     복부 비만도 복강 내 압력을 증가시켜서 역류를 증가시킬 수 있다. 식사 후에 바로 누워 있을 때도 체위성으로 위산의 역류를 유발할 수 있다. 다른 원인으로 맵고 짠 음식을 먹는다든지 칼슘 등을 과량 섭취할 때 위산이 증가해서 역류가 생길 수 있다.   위산 역류병을 진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병력이다. 특히 식사 후 가슴이 쓰리거나(heartburn)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목이 칼칼하고 흰 가래가 나온다거나, 노래를 부를 때 고음이 나오지 않는 등의 증상들은 모두 위산이 역류하는 경우로 볼 수 있다.     이밖에 내용물이 입으로 역류하는 느낌인 신트림(Regurgitation) 증상, 목의 이물감, 천식 증상, 메스꺼움, 때에 따라 치아부식 증상도 나타난다.     병력으로 진단이 확실하지 않은 경우 내시경을 해서 위산으로 인한 식도의 손상을 볼 수 있다. 또 위산 역류병이 의심 가는 경우 위산 억제제를 실험적으로 사용해 볼 수 있다.     오랫동안 위산 역류병을내버려 두면 각종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만성 역류로 인해 식도 하단부 세포가 변화하는 질환인 ‘바렛 식도(Barrett’s esophagus)‘다. 최근 미국에서 발병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 또한 만성 기침이나 천식이 악화하기도 한다.     ▶문의:(213)383-9388 이영직 원장 / 이영직 내과 원장건강 칼럼 가슴 위산 위산 역류병 위산 억제제 오랫동안 위산

2025-03-18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그대 있음에 내가 있으니

허생원은 젊은 시절 꽤나 돈을 모은 적도 있었지만 노름으로 다 날리고 집도 절도 없이 이곳 저곳을 떠도는 장돌뱅이다. 하지만 지난날 봉평 물레방앗간에서 마을 처녀와 보낸 하룻밤은 아득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무더운 여름 조선달과 봉평장을 파하고 가던 길에 충주집에서 애송이 장돌뱅이 동이와 시비가 붙어 손찌검을 한다. 그날 밤 하얀 메밀꽃이 소금을 뿌린 것 같이 산골 언덕배기를 수놓고 달빛마저 머금은 몽한적인 풍경 속을 세 사람은 장터로 떠난다. 이럴 때마다 허생원은 그 옛날 봉평에서의 애틋한 추억을 떠올린다.   냇가를 지나다 미끄러져 동이에게 업혀 그의 과거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동이가 왼손잡이인 걸 보고 아들임을 눈치채며 감회에 사로 잡힌다.   이효석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은 소설의 영역에서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작품으로 서정적이고 시적인 표현으로 가슴 저미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은 헤어져도 마냥 슬프지 않다. 긴 겨울 밤 삭풍에 문풍지 해져도 사랑은 얼어붙은 심장에 따스한 피를 돌게 한다.   사랑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해답이다. 사랑은 천만 개의 언어와 백만 개의 꽃송이로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생명의 꽃을 피운다.   외나무 다리에서 마주쳐도 사랑은 사랑을 위해 길을 터준다. 내 것이 아닌 것이 내 것이 되는 순간 타인의 존재가 내 삶의 무게와 합해진다. 사랑은 길이가 아니라 무게다. 가슴 뚫고 지나가는 바람이 허수아비라 해도 사랑은 추수가 끝난 들판에서 영원히 그대를 기다린다.   산다는 것은 허공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발을 땅에 굳건히 딛고 누군가를 위해 빛이 되고 그림자가 되는 일이다.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고, 함께 있어도 넘치지 않는 사랑으로 서로의 가슴을 끈으로 묶는다.   길을 떠났다. 빈자리를 채워 줄 무엇인가를 찿기로 했었다. 빈 손으로 돌아왔다. 연민과 그리움으로 가득 찬, 손에 잡힌 연날리기 줄을 놓아버리면 사는 것이 한결 자유로워진다. 뒤척임을 끝맺으면 별들이 어둠과 작별하는 새벽이 온다.   다시 시작 할 무엇이, 사랑할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존재하는 것들의 은밀한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해도 그대 있음에 내가 있다면 나의 존재는 살아가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존재(存在)’는 정신적인 ‘존’(存)함과 물질적인 ‘재’(在)함을 포괄하는 단어다.   실존하는 모든 것은 존재한다. 존재는 실존의 객관과 주관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눈을 뜨면 다시 저녁이 오기를, 하루가 시작되지 않기를 바라는 아픔으로, 기대도 희망도 없이 허무의 일기장에 낙서 하며, 삶의 목적과 존재의 이유를 묻는다 해도 살아있는 것만큼 소중한 기적은 없다.   강력한 부정은 긍정으로 가는 첫 단추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사실 만큼 정신적이고 물질적이며 살아가야 할 구원의 희망을 준다.   연결되지 않는 삶은 없다. 사랑은 모든 관계를 잇는 구심점이다. 내가 없으면 너도 없듯이 그대 사랑은 절뚝거리며 인생의 먼 길을 걷게 한다.   존재하는 것이 한 때 피어나고 사라지는 꽃잎 송별이라 해도, 메밀꽃 필 무렵 그대 손잡고 꿈결 같은 꽃 길 떠나는 사랑의 흔적으로 남는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그대 사랑 장돌뱅이 동이 가슴 저미

2025-03-18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관찰

가만히 너를 들여다보네 / 들여다보는 내 모습이 거기 보이네 / 그리움을 하나씩 숨기고 있네 // 그리움 속에는 / 흔들리는 들꽃의 반가움도 있고 / 나비의 날갯짓도 봄을 향해 펄럭이고 있네 // 들길을 걷는 너의 행복한 발걸음도 / 창가에 앉은 너의 심장 뛰는 소리도 / 내가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도 // 새벽공기를 가르며 그리움 앞에 서 있네     그냥 살았던 세월이 있었네. 햇살에 눈이 부셔도, 달빛이 그윽하여도 내 눈엔 보이지 않았네. 땅만 보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네. 눈 덮인 벌판에 더운 입김을 뿜어내며 싹이 자라는 시간에도, 나뭇가지마다 움이 트고 꽃망울을 맺는 기가 찬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네. 그렇게 지난 오랜 세월 동안 내 가슴은 쪼그라들었네. 심장의 박동 소리는 아련해졌고.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알게 되었네. 살았다고 사는 게 아니라네. 감사가 없었고 소중함이 사라졌었네. 고요한 시간은 낭비 같았고 무엇을 얻지 못하는 모든 시간은 공허했었네. 그러니 하늘로 향해 헛손질만 했었네.     언제부터인가 내겐 이상한 습관 같은 것이 내 속에 자라고 있었네. 그것을 나는 관찰이라고 말하고 싶네. 세상을 향한 기척이라고 생각하네. 어느 한 지점을 두고 사는 것과 살아가는 것의 미세한 차이를 알게 되었네. 거리를 걷다가도, 차를 타고 어디를 가다 가도 눈에서 지워지지 않는 풍경에 이끌려 걸음을 멈추는 일이 잦아졌네. 차를 한길에 세우고 들꽃을 바라보며 길가에 앉아 있기도 하였네. 모르는 길을 찾아 생소한 걸음을 나서기도 하였네. 그 시간,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풍경과, 색깔과, 밝기와 느낌에 마음을 빼앗겼었네.     같은 장소를 수도 없이 찾았지만 그때마다 선물처럼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었네. 비오는 날은 비가 오는 대로,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은 바람이 부는 대로, 눈발이 날리던 날은 눈이 오는 대로, 자세히 보면 색깔도 밝기도 느낌도 다 달라 보였네. 다가오는 풍경은 지금 지나치면 다시 만날 수 없는 단 하나의 풍경이기에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태웠네. 혹시라도 이 시간 가슴을 치는 단어 하나가 있다면 땅바닥에라도 적어 놓아야 했네. 한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길어졌네. 이 관찰의 습관은 나에게 소중한 교훈을 가르쳐 주었네.     움직이지 않는 나무도, 저 하늘에 떠 있는 해도,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도, 지그시 내려다보는 달빛도 모두가 말을 걸고 있다는 사실이었네. 다가가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지금 내가 들어야 할 말들을 하고 있었네. 간혹 들리기도 하였지만 아직 더 가까이 귀 기울여야 들리는 많은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네. 실패의 아픔도, 따뜻한 위로도, 넘치는 사랑도, 때론 헤어짐의 고통마저 그 모든 것은 감사이고, 소중함이고, 축복이 아닐 수 없었네. 세상을 바라보는 가슴의 높이와 넓이와 깊이가 들풀처럼 자라나는 것이었네.     푸른 문장에 손을 베었다 / 노을처럼 내 눈 속으로 붉게 물들어 왔다 / 눈을 비벼도 떼어지지 않는 하늘소리였다 / 살아있는 것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내내 / 아득한 밤하늘 너머 아직 빛이 있는 그곳에서 / 당신의 한 걸음 한 걸음의 행간을 따라 나도 걷고 있다 // 죽지 않았기에 함께 볼 수 있다는 노을이 운다 / 그것은 내가 버릴 뻔했던 날 선 푸른 문장이었다 / 손을 베이고 찾았던 노을이었다 / 눈보라 쏟아지던 밤 / 집으로 가라며 보내온 푸른 문장 // 언덕 아래 세상은 빗장을 걸고 잠들었는데 / 베인 손에서 자맥질하는 핸들이 눈길에 미끄러진다 / 나이 들어 함께 기대 보자던 석양이 슬프다 // 단풍 같은 눈이 내린다 / 새들은 날아 오르고 즈믄 밤바람 소리 / 뒷모습의 이름과 물결 소리를 듣는다 나 지금(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밤바람 소리 시간 가슴 물결 소리

2025-03-17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눈물 대신 작은 점 하나

팔은 안으로 굽는다. 낙엽은 흩날리지만 지축 향해 몸을 의탁한다. 떠나 와 세상 이곳 저곳을 떠돌아도 조국은 영원한 목숨줄이다. 살아있는 동안 외로운 영혼을 가누고 지탱하는 피에로의 안식처다. 피에로(Pierrot)는 다른 광대와는 달리 슬픈 얼굴로 분장을 한다. 얼굴에 분칠을 하며 립스틱 짙게 바르고 원뿔형 모자 쓰고 타국에서 어울려 사는 나는 영원한 이방인이다.     시간이 지나도, 세월이 흘러도 그리움은 지워지지 않는다. 바람이 거세게 폭풍으로 몰아치고 먹고 사는 게 부대낄 때는 그리움은 둥지를 틀지 못한다. 텅 빈 가슴 속을 뚫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는 속으로 흐느끼지만 소리내어 울지 않는다.   무시 당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곡간을 가득 채우는 것이 성공이라 믿었다. 성공의 탑은 높이 쌓을수록 쉽게 허물어진다. 물질과 허영, 교만으로 생을 가득 채울 때는 비어 있는 것들의 평온과 기쁨을 알지 못했다. 가슴 뚫고 지나가는 세월의 바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비어 있는 것들은 산사에 울리는 새벽 종소리로 가슴 저미며 울려 퍼진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은 작은 신음소리로 비어있는 공간 속으로 번져 나간다.   멀리 떠나와도 조국은 산수화의 여백으로 남는다. 품을 수 없어도 그리움으로 남는다. 비어 있는 것은 보이지 않아도 가슴으로 만질 수 있다.   동양화의 여백은 그냥 빈 것이 아니라 기(氣)의 표상이고 응축(凝縮)의 미학이다. 화가들은 ‘산수의 기상(山水氣象)’을 묘사하기 위해 여백을 남긴다. 여백은 광(光)과 기를 확대시키고 여운을 표현하는 훌륭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필선을 최소화한 감필과 절파화풍으로 표현을 억제하는 여운을 통해 여백은 광대한 공간을 암시하는 ‘여백의 미’를 창조한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 아는 것보다 추구하는 삶, 실용적인 것보다 가치있는 것. 여백은 비어 있는 아름다움의 세계로 생의 깊이를 탐구한다.   동양화를 그릴 때는 산수, 사람, 집을 최소한의 형태로 표현해 여백을 남기는데, 광활한 자연의 기운을 담기 위한 장치다. 형상은 사라지지만 내면이 풍성해지는 역설로 ‘비움’은 채워지지 못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영혼의 술래잡기는 없는 것을 찿으려는 구도자의 발걸음마다 새겨진 고뇌다.     ‘전화 걸면 날마다 / 어디 있냐고 무엇하냐고 / 누구와 있냐고 또 별 일 없냐고 / 밥은 거르지 않았는지 잠은 설치지 않았는지 / 묻고 또 묻는다 / 하기는 아침에 일어나 / 햇빛이 부신 걸로 보아 / 밤사이 별일 없긴 없었는가 보다 / 오늘도 그대는 멀리 있다 / 이제 지구 전체가 그대 몸이고 맘이다.-나태주의 ‘오늘도 그대는 멀리 있다’   그리움은 공백에서 헤어나오려는 존재의 부대낌이다. 보이지 않는 그대 사랑을 향해 부단히 추구하는 붓놀림이고 멈출수 없는 생의 몸부림이다.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강물처럼 흐를 때면 그리움은 무시로 떠다닌다. 둥지 튼 여백을 가슴 깊히 간직하면 진눈개비 내리는 날에도 그대 사랑은 따스하다.   죽음과 이별, 고난과 상처의 무게에 짓눌려 못질 하듯 오늘을 살아도 그리움으로 비워둔 화선지에 눈물 대신 작은 점 하나 찍는다.   그대 사랑은 비어 있는 하늘의 끝자락에서 펄럭인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눈물 눈물 대신 가슴 저미 새벽 종소리

2024-10-29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하루 한 뼘씩 자라는 잎새들

무식이 하늘을 찌른다. 각종 모종 얻어 심은 한국 고추가 풍성하게 매달렸다. 요리책에 ‘홍고추’로 고명을 얹으라 해서 내년엔 빨간색 고추 모종 구해달라고 어르신께 부탁했다. “조금만 기다려 봐요. 초록색 고추가 빨갛게 익을테니.” 웃으시는 소리가 들린다. 세상에! 초록색 고추가 하나 둘 빨강색으로 물들었다.   올 여름 유기농 채소 가꾸느라 세월 가는 줄 모른다. 한인 어르신, 이웃 아저씨, 인터넷 뒤지며 연구에 몰두한다. 배우는 것만큼 기쁜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아는 것이 힘이다, 먹어야 산다’를 열창하며 그동안 아는 체하며 까불었던 과거에 고개 숙인다. 애들 키우며 사업하느라 발뒷꿈치가 갈라 터지도록 이리 뛰고 저리 달리느라 ‘흙 밟아 본 적이 없다’는 나의 처절한 변명.   근동에서 땅 부자로 소문난 아버지는 내가 두살 되던 해 돌아가셨다. 논 밭에 나가 본 적이 없던 어머니는 그 때부터 혼신을 다해 농사일에 매달렸다. 머슴이고 집사인 삼만이 아재와 농사꾼들과 함께 하루 종일 밭고랑을 매고 풀을 뽑았다.   유년의 기억 속 어머니는 하얀 수건을 머리에 동여매고 무명 소복을 입고 있다. 옥이언니 등에 업혀 밭고랑을 오락가락 하다가 칭얼대면 언니는 핑크색에 동백 꽃무늬가 새겨진 박음질이 촘촘한 포대기를 풀고 어머니 품에 날 내렸다. 어머니 가슴을 비집고 젖줄이 곤고한 젖무덤을 더듬으면 황토색 흙냄새가 스며 들었다.   “현풍댁은 저리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네. 일꾼들만 부려도 잘 먹고 살텐데.” 동네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찼다. 어머니 오른쪽 손목은 모진 호미질로 휘어졌다. 땅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삶의 터전이지만 남매의 미래를 약속하는 희망이였다. 어쩌면 어머니는 청상과부의 한많은 아픔을 매일 땅 속에 묻고 있었는지 모른다.   ‘애들은 자고 나면 한 뼘씩 큰다’며 대청마루 기둥에 어머니는 숯덩이로 금을 그어 키를 쟀다. 자식들이 흙에서 돋은 채소처럼 푸릇푸릇 건강하게 자라 땅 속 깊이 뿌리내리고 흔들려도 꺾이지 않는 수양버들로 살아남기를 바랬다.   정말이지 텃밭의 채소들은 자고 나면 한 뼘씩 자란다. ‘호박꽃도 꽃인가’란 염려는 무식의 대참사다. 다섯 손가락 벌린 채 관능적으로 굽은 연노란 꽃잎을 밀어내고 매끄럽고 반질반질한 호박이 달린다. 조롱조롱 매달린 방울 토마토는 물주며 군것질 하듯 따먹고 삼만이 아재 주먹처럼 단단한 토마토는 너무 열심히 먹어서 얼굴이 빨게질까 걱정이다. 지중해식단에 몰입해 올리브오일 듬뿍 부어 오븐에 구워 얼리면 겨울내 양식이 된다. 소금에 살짝 간 한 가지는 구워 얼린 뒤 토마토 소스에 마쯔렐라 치즈 뿌려 오븐에 구워내면 멋진 이태리 요리가 된다.   어머니 생전에는 손가락 까딱 안하고 차려주신 음식을 잘 먹었다. 도와드리는 척 폼 잡다가 흡입식으로 퍼먹고 ‘피곤할 텐데 쉬어라’는 말 떨어지기 무섭게 소파에 늘부러졌다. 당신이 떠나면 ‘뭘 해 먹고 사나’ 걱정 되신 어머니는 요리 잘하는 분에게 요리 비법을 전수시키며 딸의 안위를 신신당부 했는데 파토가 났다.   추석이다. 갖은 나물과 전 부쳐 지인들과 나눠 먹던 엄마 생각에 콧등이 찡하다. 궁하면 통한다. 슬픔을 거두고 약식과 감주 만들어 친구들과 먹을 생각을 한다. 음식을 니눠먹는 것은 사랑의 향기를 가슴에 담는 일이다.   최선을 다해 게으름 안 피우고 살게 되기를. 땅을 친구 삼아 머리 숙이는 일에 익숙해지면, 훗날 지구를 향해 홀가분하게 작별의 손 흔들 수 있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잎새들 어머니 가슴 어머니 생전 어머니 오른쪽

2024-09-18

[등불 아래서] 헌신도 함정이 있다

어느 마을에 농부가 있었다. 마침, 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두 마리를 낳았다. 너무 기뻤던 농부는 아내에게 "이렇게 복을 받았으니 한 마리는 하나님께 드리자"고 말했다. 몇 개월이 지나 송아지를 모두 장에 내다 팔려고 가는 길에 그만 한 마리가 웅덩이에 빠져 죽고 말았다. 농부가 가슴을 치며 말했다. "아 하필 하나님의 송아지가 죽다니"   조금은 치사한 우리의 마음을 보여주는 우스개다. 그럼 "모든 것을 드린다"는 말은 어떤가. 이야말로 참된 신앙의 표현이 아닌가? 믿음의 대상에게 무언가를 바치는 일과 이를 받은 신이 바라는 바를 이루어주는 일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제물을 가져가서 제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며 신에게 비는 인간의 모습을 상상한다. 성전을 짓고 제물을 바치는 것이 신을 섬기는 방식인 것이다.   정말 하나님은 제물이 필요할까? "내가 설령 배가 고프더라도 너희에게 달라고 말하겠느냐? 온 세상과 그 안에 가득한 것이 다 나의 것이다." (시편 50:10-12) 말하자면 하나님은 우리를 내보내서 제물 만들어 오라고 시키는 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 왜 읽기도 어려운 제사 이야기를 성경에 적어놓았을까? 제사와 제물은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쪼개지고 태워지는 제물처럼 우리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이 약속을 십자가에서 지키셨다.     우리는 갖다 바치면서 신을 섬기는 일에 익숙해 있다. 왜냐하면 두렵고 불안해서 우리가 만든 신들이기 때문이다. 신앙을 지닌 이들조차도 갖기 쉬운 오해는 우리에게 생명을 포함해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손으로 섬기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예배당을 화려하게 짓고 우리의 정성이라고 부른다. 아닌 것처럼 기도하면서도 봉사와 선교를 하나님 앞에 천국 가는 보험처럼 바친다.     격화소양이라는 말이 있다. 신발을 신고 가려운 곳을 긁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살피지 않고 우리의 최고를 바치려는 모든 시도는 다름 아닌 격화소양이다. 시원할 리가 없다.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분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섬기시기 위해 우리 안에 오신 분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물은 우리의 상한 심령이다. 주님께 나아오는 유일한 조건은 아픈 마음이요, 지친 어깨요, 자신의 연약을 보는 눈물이며 말조차 하기 힘든 탄식이다. 하나님이 주신 십자가와 부활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살게 하는 이유이다.   [email protected]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등불 아래서 헌신도 함정 헌신도 함정 농부가 가슴 제사 이야기

2024-09-09

[팔로스버디스 현장 르포] 내려앉는 지반에 가슴 무너지는 주민들

1주일에 30센티미터다.   팔로스버디스(PV) 소재 포르티기스벤드와 시뷰 지역의 지반이 내려앉는 속도다. 이 두 곳에는 한 달 전 사태가 시작되면서 가스와 전기 공급이 차례로 중단되고 있다. 대피 주의보까지 내려졌다. 급기야 주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지원에 나섰지만 정작 주민들은 ‘고립무원’의 상태를 호소하고 있다. 특히 전기 서비스 중단은 합선과 전기선 파손으로 이어지며 화재를 야기할 수 있어 불가피한 조치였다.   본지는 5일 PV 지역 중 피해가 가장 심각한 돈틀리스 드라이브와 스탈워트 드라이브 교차로를 직접 가봤다.   갈라진 지반 사이로 도로 아래 묻혀 있던 파이프라인들이 드러난 게 눈에 띈다. 한 주택은 구조가 심각하게 손상되어 거주 자체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이곳 주민들은 집밖에 나와 있거나 문을 열어둔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공사 관계자들이 길을 막아서며 “지반이 여전히 불안정하고 위험할 수 있으니 붕괴된 지역에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한 주택에서는 가동 중인 발전기 두 대가 보인다. 이웃끼리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긴급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     특이한 게 보인다. 대부분의 집의 창문과 대문이 활짝 열려 있다. 전기 공급 중단으로 에어컨 등이 작동하지 않아 더위를 조금이라도 식히려고 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이다.   돈틀리스 드라이브에 거주하는 주민 크리스씨는 이웃에게 “작업자들이 임시 전기선을 설치할 예정”이라며 “마트에 다녀올 텐데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이웃에게 “집에 얼음이 많으니 필요하면 말하라”고 외쳤다.   상황은 암울하다. 당국도 딱히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남가주 에디슨사 관계자는 “상황 점검을 위한 크레인이나 중장비 접근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며 시설과 장치에 대한 수리 보수는 당연히 불가능하다”며 “지반의 움직임이 멈추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설상가상이다. 지속적인 지반 균열로 6일(금)부터 추가로 54가구에 가스 공급까지 중단된다. 시뷰 지역 서부의 29가구와 포르티기스벤드 비치 클럽의 25가구도 영향을 받게 된다.     남가주가스컴퍼니는 서비스 중단으로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을 위해 긴급 재난 구호 프로그램이 제공될 수 있다고 5일 밝혔다.   주민들은 외부 대피를 꺼리고 있다. 집을 나오면 딱히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시정부에 대한 불만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 주민은 “경고(Warning)를 내려놓고 사실상 대피 장소나 재정 지원은 없는 상태”라며 “대피하지 않은 주민들은 부엌과 세탁기를 같이 쓰고 음식을 나누며 버티고 있다”고 시의회에서 호소까지 했다.     정작 주정부가 선포한 비상사태 항목에는 재정적 지원이 포함되지 않았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PV시정부는 주정부에 재정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라데라 린다 지역에는 임시 전봇대 설치를 예고한 상태다.   시뷰 지역 한 주민은 “이번 상황을 경험하면서 시정부의 관심과 지원도 실제 주민들에게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며 “인내심으로 버티는 시간만 남은 듯하다”고 전했다.     피해 규모가 측정되지 않아 보험 보상 요청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개별 주택 보험의 규정과 계약 내용에 따라 보상 여부도 구분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지반만 무너져 내리는 게 아니다. PV 주민들의 가슴도 지금 무참히 내려앉고 있다. 최인성·정윤재 기자팔로스버디스 현장 르포 주민 가슴 정작 주민들 주민 크리스씨 이곳 주민들

2024-09-05

[건강 칼럼] 목·어깨 통증 원인은 ‘견갑거근’

목이 잘 안 돌아가고, 통증이 있는 경우, 수차례 치료에도 불구하고 잘 안 낫는다면 ‘견갑거근’ 손상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견갑거근은 상부 경추(C1-4번) 옆면에서 시작해 견갑골(날개뼈)의 가장 윗부분인 상각내측에 부착되는 근육이다.     견갑거근의 기능은 목의 회전을 보조하고, 목을 앞으로 숙일 때 머리 무게를 감당한다. 견갑골을 들어 올리거나, 어깨회전을 담당하고, 견갑골이 척추 중심으로 모아주어 가슴을 펼수 있게 도와준다.     견갑거근 손상으로 인한 증상은 1. 어깨를 중심으로 견갑골(날개뼈)의 내측 즉, 목과 어깨가 만나는 지점부터 등을 타고 통증이 내려가고 팔의 뒷부분까지 방사통이 생긴다. 2. 목이 잘 안 돌아가고, 목을 한쪽으로 돌릴 때 같은 방향쪽으로 목통증이 생기고, 심한 경우 목을 움직이지 않아도 통증이 지속된다. 3. 팔을 들어 올리는데 제한이 생겨 오십견 등의 어깨 관절 문제로 오인하기도 한다. 4. 심한경우 호흡에도 영향을 줘 들숨에 어깨와 등 통증이 심해지고, 간혹 가슴 통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견갑거근으로 어깨 통증이 생기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거북목과 일자목, 라운드 숄더 때문이다. 라운드 숄더란, 머리가 앞으로 빠지면서 어깨가 앞으로 말려 들어가며, 가슴이 처지고, 배가 나오고, 등이 많이 굽어 있는 현상을 말한다. 2. 컴퓨터, 모바일폰 등으로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있는 경우 3. 오랜 좌식 생활, 추위로 인한 웅크린 자세, 피로감, 무거운 물건을 한쪽으로 자주 메는 습관 4. 교통사고 5. 스트레스 6. 지팡이나 목발을 너무 길게 사용하는 경우 7. 고개를 한쪽으로 돌린 채 자거나, 엎드리거나 옆으로 자는 경우도 견갑거근 목통증을 유발한다.     견갑거근 통증의 한방 치료는 운동을 병행한 침치료(MSAT)가 효과적이다. 과하게 긴장된 목근육의 가동성을 빠르게 회복하고 근육을 강화하는 치료다. 그외 경결된 근육을 풀어주면서 이완하는 침치료와 부항치료도 병행한다. 더불어 심하게 경직된 근육과 인대를 완화하고 강화하는 약물치료는 병의 급진전을 막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     ▶테니스공을 이용한 견갑거근 마사지   벽에 기대거나 바닥에 누운 상태에서 견갑거근이 끝나는 지점인 날개뼈 가장 윗부분과 날개뼈 중심부위에 테니스공을 놓고, 본인의 힘으로 눌러가며 가장 아픈 부위를 찾아 마사지한다.     ▶목통증에 효과적인 혈자리   1. 견정혈: 고개를 숙였을 때목 뒤 가장 튀어나온 목뼈에서 어깨 끝까지 일직선상의 중간 지점이다. 지압 방법: 어깨 반대쪽 손의 중지를 견정혈에 대고 기분 좋을 정도의 느낌으로만 지압한다.     2. 풍부혈: 뒷목 정중앙, 머리뼈와 목뼈가 만나는 오목한 지점이다. 양손 중지를 모아 풍부혈을 지그시 누르면서 마사지한다.     3. 풍지혈: 양쪽귀 뒤에 튀어나온 뼈를 지나 움푹 파인 곳으로 뒤통수뼈가 끝나는 선상에 위치한다. 엄지나 검지 손가락을 이용해 조금 힘주어 자극한다.   ▶목 통증에 좋은 한방차   1. 모과차: 근육경련, 진정, 소염, 진통효과가 있다. 혈액순환이 원활하도록 돕는다.     2. 오가피차: 뼈를 보강하고 혈액순환을 촉진시킨다. 목 통증과 디스크에 효과적이다.     ▶문의:(213)944-0214 박언정 원장 / 해성한방병원건강 칼럼 어깨 통증 어깨 통증 가슴 통증 어깨 관절

2024-08-27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떨림과 감동, 심장이 뛰는 소리

가끔 사는 게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한다. 인생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럭저럭 살게 된다. 무의미하게 사는 것만큼 지루한 인생은 없다. 사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단념 하면 아무 것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포기하고 애착을 갖지 않는 삶은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인생은 감동하고, 감동시키는 자가 승리한다. 심장 박동을 치열하게 뛰게 하는 것은 용기와 감동이다. 감동은 떨림이다. 감동은 어떤 난관과 고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타인과 세계를 끌어안는 힘이다.     감동과 울림, 떨림이 없는 일상은 맹목적인 반복일 뿐이다.     별 거 아닌 인생을 별나게 사는 사람은 심장이 뛰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캄캄한 밤 반짝이는 별을 헤고, 떠오르는 햇살이 어둠을 지우기 시작하면 희망이란 단어를 가슴에 품는다. 단 하루도 같은 색깔의 물감을 풀지 않는 하늘은 곁을 지나간 수 없는 얼굴들을 파노라마로 펼친다. 새벽달 머리에 이고 영롱하게 맺힌 이슬은 여린 풀잎 사이를 빙그르르 돌며 땅으로 떨어진다.     제일 먼저 손 내미는 바람과 악수하고, 여린 잎새 바르르 떠는 풀잎에 인사하며, 그저께부터 짚을 물어 둥지 만들고 알을 품는 어미새를 지켜본다. 살아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이유 없이 목숨줄 견디는 것은 없다.  .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중략) /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중략) 내 가슴이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중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도 소중하다. 너를 기다리는 나는, 네가 오지 못해도 너에게로 간다. 기다림의 끈을 묵으면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생명 같은 의미가 되고 꽃이 되고 지친 삶의 매듭을 푸는 열쇠가 된다.   누구인가를 기다리고, 무엇인가 열심히 추구하는 삶은 지루하지 않다. 기다림은 희망의 젖줄이다. 희망은 가슴을 벅차게 한다. 가슴 속에 소용돌이 치는 불꽃을 간직한 사람은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     요즘 자주 눈물을 흘린다. 눈에 밟히면 마음도 변한다. 꼭꼭 숨겨두고 빗장을 채우고 막아둔 감정의 댐이 무너지고 있는 걸까. 황무지처럼 메말랐던 생의 바다에 단비가 조금씩 내린다. 밤이면 먼 바다가 뒤척이는 아픈 소리가 들린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부터 귀가 밝아지고 가슴이 쿵쿵거리며 뛴다.     나이 들었다고 포기하고, 사는 게 힘들다고 탄식하고, 이제 다 살았다고 체념하면 죽음은 물안개처럼 발등을 적시고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끝이 어딘지 마지막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른다. 모르는 것을 미리 짐작하고 두려워하는 건 바보짓이다.     감동은 가슴 떨리는 파도의 아우성이다. ‘임은 뭍같이 까딱 않아도’ 산산조각이 난 사랑을 붙들고 바위는 파도가 흐느끼는 심장의 소리를 듣는다.     밋밋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신바람 나는 도약을 꿈꾸는 일은 얼마나 아찔한 반전인가. 떨림과 감동, 변신 없이 두 손 놓고 떠밀려 갈 수는 없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감동 심장 감동 심장 감동 변신 가슴 애리

2024-07-09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그대 가슴에 반딧불을

마음 가는 곳에 길이 있다. 두리번거리면 길을 잃는다. 긴가 민가 할 때는 처음 필이 꽂힌 데로 가면 된다. 사는 것이 힘들고 부대껴도 눈 부릅뜨고 찾아 나서면 어둠 속에서 길이 보인다. 수 천 개 수 만 개로 구비구비 돌아 종착역이 보이는 철로 옆에 서면 한 송이 코스모스가 가는 목을 흔든다. 인생이란 열차에 무임승차 했으니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선택이다.     얼마 만인가! 반딧불 꽁지 따라 동그라미를 그리던 시간들이. 새집 지어 이사 온지 삼 년째 뒷마당에서 반딧불이 샤갈의 연인처럼 허공에 붕붕 떠 다닌다. 너무 반가워서 옛동무 만난 듯 개똥벌레인 딱정벌레의 꽁무니를 쫓아 다닌다.   보일락말락 개미만큼 작은 검정색 몸뚱아리가 깜박거리며 꽃망울처럼 오렌지 빛을 내뿜는다. 꼬리에 불을 달고 어둔 길을 잘도 날아 다닌다. 손바닥 내밀면 잠시 주춤하다가 다시 날아간다. 반딧불은 어둠 속에서 빛(光)으로 말(言)을 주고 받는다. 가끔씩 회전목마처럼 엉겨 붙을 때는 사랑의 말들을 속삭일까?   유년의 작은 꽃불로 반짝이던 반딧불은 도시로 이사 오고 자취를 감췄다. 미국 온 뒤 집 짓고 마당에 나무를 촘촘하게 심었지만 반딧불은 유년의 강을 따라 기억의 바다에서 사라졌다. 떠나간 것들은 마른 풀잎의 추억으로 흩어진다.   30촉짜리 희미한 전구를 대들보에 매달기 전에는 해가 저물면 옥이 언니와 살평상에 누워 별이 뜨기를 기다렸다. 사립문을 지키는 수양버들이 황토빛 마당에 먹물을 풀고 더위에 지친 누렁이가 꼬리 접고 스르르 눈을 감으면 반딧불은 배 밑에 숨겨둔 색 주머니를 풀고 영롱한 빛을 내뿜는다.   ‘손강은 겨울이면 눈빛으로 책을 읽고, 여름이면 차윤은 명주주머니에 반딧불을 잡아넣어 책을 비추어 공부했다’는 형설지공(螢雪之功) 고사를 알 리 없는 삼만이 아재는 “우리 희야 글 공부 해야지”라며 빈 유리병에 반딧불을 가득 담았다.   몸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생물인 반딧불은 빛의 세기, 깜박거리는 속도, 꺼졌다 켜지는 시간 차들을 다르게 해서 끼리끼리 서로를 알아본다.   그 동안 왜 땅만 쳐다보고 살았을까? 코발트빛 하늘과 구름을 바라본 적 없다. 미친 듯이 화랑을 경영하고 창작예술센터를 운영했다. 대형 기획전 준비로 발뒤꿈치가 갈라지고 흡입식 식사와 스트레스로 한 달에 한 번씩 급체로 시달렸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인데…’ 하시며 어머니는 늘 걱정하셨다.   빛이 너무 밝으면 하늘의 별을 못 본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서로 알지 못한다.   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 쌓인, 작은 연못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집을 지었다. 바람의 흔적 따라 지은 집을 ‘유배지’라 부른다. 세상 인연과 먼지 떨쳐버리고 하고 싶은 일하며 산다. 비대면 온라인 비즈니스는 팔랑개비처럼 잘 돌아간다.   구상했던 작품 쓰고 하늘과 땅, 바람이 맞닿은 곳에 붓을 잡고 다시 둥지를 튼다. 밤이면 청승맞게 꺼억 꺼억 우는 개구리와 물오리들도 새벽 잠이 깬 아기 사슴이 코스모스 만발한 길을 산책할 쯤 조용해진다. 텃밭에는 갖가지 채소와 푸성귀가 다투어 풍성하고 과일나무는 외롭지 않게 종류별로 짝수를 심었다.   흙과 자연은 배신 때리지 않는다. 머리 숙이고 친해지면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다. 그대 향한 나의 손짓이 개똥벌레 꽁지에 매달린 작은 빛이라 해도, 지금부터 영원까지 그대 품 속에 사랑이 움트기를.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반딧불 가슴 발광생물인 반딧불 반딧불 꽁지 개똥벌레인 딱정벌레

2024-06-18

[문예 마당] 눈물 젖은 손을 잡고 -양용님 영전에

눈부신 5월의 햇살이     천사의 도시 LA를 비추던 날     우리의 친구, 아름다운 아들은 갔습니다.       어버이날을 누린 그 행복한 웃음소리가     아직도 메아리 되어 남아 있건만.   우리의 아들, 착한 어린이의 가슴을 지닌 양용님은     무참히 갔습니다.       민중의 지팡이, 약한 시민의 등불로     큰소리치던 경찰의 총에 영문도 모른 채     쌍둥이 형, 40년간 보듬어 준 부모 가슴에     한을 남긴 채 우리의 친구는 그렇게 떠났습니다.       다시는 보지 못할 사랑스러운 모습     다시는 이 세상에서 듣지 못할 목소리     이제 우리는 함께 일어나 손에 손을 잡고     눈물 젖은 손을 잡고 정의 앞에 용감히 섰습니다.   웨스턴 길이 뻥 뚫리도록 크게 외칩니다.       누가 그 아름다운 청년 가슴에 총을 쐈는지?   분명히 밝혀질 때까지,     눈물 젖은 손은 함성이 되어     천사의 도시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정의는 이길 것이고 억울함은 밝혀질 것이고 코리안의     행진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양왕, 아름다운 우리의 친구, 코리안 청년 아픔 없는     평화로운 하늘나라에서 부디 영면하소서   눈물 젖은 우리 코리안의 손을 함께 잡고서. 정린다 / 시인문예 마당 눈물 영전 친구 코리안 청년 가슴 부모 가슴

2024-05-30

[문예 마당] 가슴에 묻은 친구

솔솔 부는 바람, 친구와 알라모아나 비치로 산책하러 나갔다. 초저녁부터 동쪽 하늘의 구름 사이를 비집고 커다란 금 쟁반이 떠오르고 있다. 서쪽 마루에 걸려 있는 석양빛에 곁들여 하늘과 땅 사이에 바닷물은 황혼빛으로 물들고 있다. 넘실거리는 바닷물 위에선 은과 금 자락의 댄스파티가 한창이다. 마주 보고 있는 와이키키 비치에 즐비하게 늘어선 빌딩들은 빛의 반사로 황금빛을 띠며 반짝이고 있다. 잠시 후면 사라질 휘황찬란한 풍경이다.     이 아름다운 저녁을 바라보며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처음 하와이에 와 지상천국이라고 느껴져 이곳으로 초청하고 싶었던 사랑하는 친구이다. 50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 잊을 만도 하건만, 좋을 때나, 슬플 때나 생각나는 그리운 친구이다. 같이 웃고 울던 단짝이었던 친구의 얼굴이 달과 해 사이를 넘나들며, 어른거리는 파도를 타고 다가오고 있다. 항상 내 곁에 있을 것 같은, 손을 내밀면 잡힐 듯이 느껴지는, 어디에선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듯하여 하늘을 쳐다보기도 한다.     나보다 훨씬 키가 큰 그녀는 늘 나를 ‘꼬마야’라고 불렀다. 찬 바람이 불던 부산 기차역에서 홀로 나를 배웅하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 눈앞이 흐려진다.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그 자체가 마음을 아리게 한다.   한국에서의 일이다. 친구는 시외에 살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이었다. 친구가 시외버스를 타고 집에 가려는데, 사람이 버스에 오르기도 전에 버스가 급히 출발하는 바람에 버스 바퀴에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 친구는 석 달 동안 누워 있으면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천주교를 믿는 그녀는 청순한 마음으로 성스러운 수녀가 되겠다는 꿈을 꾸며 수녀원에 들어갔다. 몹시도 추운 겨울이었다. 숙대 근처에 있는 수녀원이었다. 훈련받는 동안 방한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뜨거운 핫팩을 안고 자다가 다쳤던 다리에 화상을 입어 고생하기도 했다. 내가 방문했을 때 자색 저고리에 검은색 짧은 치마를 입은 그녀의 모습이 몹시도 추워 보였다. 그런데 몇 달 동안 훈련을 다 받고 수녀원을 나온 후 그녀는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그녀는 수녀원에서의 생활이 바깥세상과 다를 것이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수녀원을 나온 후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그 후 결혼을 하고 귀여운 두 왕자를 낳았다. 첫아들을 안고 찍은 사진을 보내온 것이 마지막 사진이었다. 그녀는 ‘임신성 고혈압’으로 고생하였다고 한다. 둘째를 낳으면서 고혈압이 극도로 악화해 반신 마비까지 와서 친정에서 3개월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회복했지만 한쪽 손의 마비는 풀리지 않았다. 그녀는 육체적으로도 괴로웠고, 기대에 어긋난 남편에 대한 불만족 등으로 힘들어했다. 그래도 버티고 견디어야 하지 않았을까, 고물거리는 어린 것들 때문에라도 살아야 하지 않았을까? 그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나의 생각이지만, 나는 그녀의 마음을 백번 이해하고 감싸주고 안아주고 싶다.   헤르만 헤세의 ‘사랑이나 지성보다도 더 귀하고 나를 행복하게 해 준 것은 우정이다’라는 말이 내 가슴을 두드리고 있다. 친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가. 자책해 보지만 곁에 있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핑계일 뿐이다. 그 당시 나도 미국생활에 적응하느라 무척이나 힘든 기간이었다.     가버린 친구를 잊어버리려, 지워버리려 노력하기보다는 그를 기억하고 그와 같이 지냈던 일들을 가슴에 담고 그리워하련다.   손녀가 뮤지컬 해밀턴에 나오는 노래를 부르는데 유독 내 귀에 남는 가사가 있다. ‘When my time is up, have I done enough?/Will they tell my story?/Will they tell your story?/Who tells your story?(내 시간이 다 되었을 때, 나는 충분히 이뤄낸 걸까?/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할까?/사람들이 너의 이야기를 할까?/누가 당신의 이야기를 전할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며 웃고 살기에도 부족한 인생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사람들은 미소를 잃고, 에너지를 소진하며 힘들게 살고 있다. 언젠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를 사랑했던 주위 사람들이 우리를 아름답게 기억되고 회자될 가치가 있는 삶이 되기를 바라는 작은 소원이다.   김평화 / 수필가문예 마당 가슴 친구 버스 바퀴 임신성 고혈압 your story

2024-05-16

[우리말 바루기] ‘배 속’과 ‘뱃속’의 차이

태명과 관련해 반드시 띄어야 하는 말이 있다. “열 달 동안 무럭무럭 자라라는 의미에서 뱃속 아이를 ‘열무’라고 부른다”처럼 쓰면 안 된다. ‘배 속’으로 띄고 [배 속ː]으로 읽어야 한다.   ‘배 속’과 ‘뱃속’은 다른 뜻으로 사용된다. 신체 내부를 관찰하는 내시경으로는 ‘뱃속’을 들여다볼 수 없다.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 뱃속은 ‘마음’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만 올라 있다.   신체 부위인 배 안을 가리킬 때는 ‘배 속’과 같이 띄어 쓴다. 사전에서 ‘태아’를 검색하면 ‘어머니 배 속에 있는 아이’라고 나온다. “그들의 검은 뱃속을 미처 몰랐다”의 경우에는 육체적인 배를 뜻하는 게 아니다. 음흉한 속내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므로 ‘뱃속’으로 붙여 적고 [배쏙/밷쏙]으로 발음한다.   띄어쓰기 하나로 뜻이 달라지는 단어로는 ‘가슴 속’과 ‘가슴속’도 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거칠게 울려 나오는 기침 소리”와 같이 가슴 안쪽 부분을 이르면 ‘가슴 속’으로 띄어야 한다. “가슴속에 고이 간직한 추억”처럼 ‘마음속’의 의미라면 ‘가슴속’으로 붙인다.   문제는 ‘속’이 붙는 단어들의 의미와 띄어쓰기에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콧속’은 코의 안쪽, ‘귓속’은 귀의 안쪽을 나타내지만 붙인다. ‘뱃속’과 ‘배 속’이 다른 뜻임을 간과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효율성 측면에서 ‘뱃속’의 의미를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우리말 바루기 뱃속 뱃속 아이 가슴 안쪽 현재 표준국어대사전

2024-04-10

[이 아침에] 설날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음력 설을 앞두고 어릴 적 듣던 노래가 가슴에 맴돈다. 가래떡처럼 길기만 한 세월이 헤아릴 수 없이 흘렀지만, 아직도 어릴 때의 설날이 꺼지지 않은 잉걸불같이 가슴에 남아있는 것은 웬일일까. 기다림과 설렘으로 맞았던 그 시절의 설날은, 그리울 때면 가슴 한구석에서 꺼내 볼 수 있는 나만의 무지갯빛 추억이다.   새해가 시작되는 정월 초하루 설날에 먹는 떡국에는 여러 가지의 상징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우선 떡국의 재료인 가래떡에는, 새해에 세워 놓은 밝고 올곧은 의지를 한 해라는 긴 세월 동안 변함없이 지켜나가라는 뜻이 숨어 있는 듯싶다. 거기엔 세월이 상징적으로 담겨 있는 까닭이다.   반듯한 교자상 위에 놓인 떡국을 바라본다. 하얀 떡국 떡은 아마도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지난 한 해를 비워내고, 새롭게 시작되는 깨끗한 새해를 맞이하라는 순수함의 상징 아닐까. 흰색에는 완전함과 완성의 의미도 있으니, 새해를 시작으로 바른 뜻을 세워 그것을 마지막까지 완성하라는 의미도 품고 있을 것 같다.   자세히 보면 떡국 맨 위에는, 계란으로 수놓은 노란 지단과 빨간 실고추와 검은 김과 소고기, 그리고 청색 파가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다. 이것은 옛 조상들이 믿었던 음양오행설로, 동쪽의 청색과 서쪽의 백색, 또 남쪽의 적색과 북쪽의 흑색, 그리고 중앙의 황색에서 유래된 것이 아닐까.   새해에 먹는 떡국에 선조들의 우주관과 음양오행 사상이 깃들어 있으니, 우리는 새해 첫날이면 조상들의 아름다운 역사와 전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다가오는 한 해를 보다 밝은 희망과 새로움으로 이루라는 의미인가 보다.   곱게 김이 오르는 떡국 한 수저를 정갈하게 입에 떠 넣는다. 알맞게 잘라 놓은 쫄깃한 가래떡이 입 안에서 고소하게 퍼진다. 어쩌면 긴 가래떡을 가지런하고 둥글게 썰어 넣은 의미는 가정과 사회에서 모나지 않은 융화와 조화 그리고 풍요로운 유대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리라.   떡국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떡국을 만든 쌀에는 땅의 기운과 하늘의 비와 대기의 바람과 해의 따사함이 깃들어 있다. 새해 첫날 떡국을 먹으며 나는 지수화풍 모두를 몸에 담으니, 그야말로 몸과 자신이 태어난 땅은 둘이 아니고 하나인 신토불이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하늘과 바람 그리고 땅과 물의 순리에 따라, 이웃과 정을 나누며 착하게 살라는 의미이기도 하리라.   어린 시절 색동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받쳐 입고 할머니와 부모님께 정성껏 세배를 드리고 나면, 문득 몸과 마음이 단정해지고 겸손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색동저고리의 동심은 사라졌지만,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새해마다 받은 보이지 않는 조상님 들의 음덕으로 이만큼 건재하지 않은가 생각하니 새삼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온다. 한 살이 더해지는 새해에는 밝은 희망을 안고 더욱 성숙하고 베푸는 한해를 지어 가야겠다며 각오를 다진다. 김영애 / 수필가이 아침에 설날 새해 첫날 가슴 한구석 청색과 서쪽

2024-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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