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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전극을 꼽을까, 꽂을까

인간의 뇌 구조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한다. 교통사고로 15년간 식물인간 상태였던 환자의 신경섬유에 전극을 심어 지속적으로 전기 자극을 줬더니 눈동자와 머리를 좌우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깨어났다고 한다.   이를 소개한 기사를 보면 “뇌의 바깥쪽에 위치한 뇌 줄기에서 뻗어 나온 신경섬유에 전극을 꼽았다” “척추마비 원숭이의 뇌·척추 신경계에 탐침을 꽂아 사상 최초로 원숭이가 스스로 다리를 움직이게 했다” 등의 내용이 나온다.   이처럼 무엇을 박아 세우는 동작을 나타낼 때 ‘꼽다’와 ‘꽂다’ 중 어느 것을 써야 할까. “머리핀을 꼽았다” “책장에 책을 꼽았다” 등처럼 ‘꼽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꼽다’는 수를 세려고 손가락을 하나씩 헤아리는 일을 나타낼 때 사용한다. “손가락을 꼽아 가며 방학을 기다렸다”가 그런 예다. ‘꼽다’는 ‘골라서 지목하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이곳은 단풍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처럼 사용된다.   전극 ·머리핀·책 등 무엇을 쓰러지거나 빠지지 않게 박아 세우는 동작을 나타낼 때는 ‘꼽다’가 아니라 ‘꽂다’가 바른말이다. 따라서 “전극을 꽂았다” “책장에 책을 꽂았다”고 해야 한다. ‘꽂다’는 시선 등을 한곳에 고정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차가운 눈길을 상대에게 꽂았다”가 이런 경우다.우리말 바루기 전극 척추마비 원숭이 척추 신경계 전기 자극

2025-04-28

[우리말 바루기] ‘덧붙였다’ 유의 서술어 문제

“그는 ‘결과가 말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 혜택은 오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스 문장에서 ‘덧붙였다’는 쓰지 않아야 한다. 여기서는 ‘덧붙였다’ 대신 ‘했다’나 ‘밝혔다’를 쓰는 게 적절하다. ‘하다’와 ‘밝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만, ‘덧붙이다’는 그렇지 않다. ‘덧붙이다’는 앞에 한 말에 더 보탠다는 뜻이다. 추가로 붙이는 것이어서 중요성이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의미가 담긴다.   그럼에도 ‘덧붙였다’가 흔히 보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앞 문장의 서술어 ‘말했다’를 피하려고 한 거다. 같은 표현이 반복되면 지루해진다는 걸 의식했다. ‘했다’를 버린 건 밋밋하거나 흔해 보였기 때문일 수 있다. ‘덧붙였다’는 좀 더 선명하고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덧붙였다’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잊은 건 사실을 전달하는 언론 언어의 정확성과 가치중립이다. ‘혜택은 오래갈 것’이 덧붙인 말인지를 판단하는 건 독자의 몫이어야 한다.   ‘덧붙이다’는 다른 형태로도 나타난다. ‘부연하다’인데, 이 말 역시 정확하지도 가치중립적이지도 않다. “이어 ‘안전관리 체계를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부연했다.” 지나쳐 보인다. ‘부연하다’는 “설명을 덧붙여 자세히 말하다”는 뜻이다. 서술어의 다양화가 유행한다는 의심이 든다. 강조하지 않았는데도 ‘강조했다’고 하고, 설명이 아닌데도 ‘설명했다’고 쓴다. 사실 전달 기사의 서술어는 다양해질 필요가 없다.  우리말 바루기 서술어 유의 유의 서술어 뉴스 문장 안전관리 체계

2025-04-27

[우리말 바루기] 맞춤법 좀 틀려도 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다양해졌다. 그러다 보니 의사소통이 활발해지고 사회가 투명해지는 등의 장점이 나타났다. 그러나 우리말 측면에서 보면 좋은 점 못지않게 좋지 않은 점도 발생했다.   SNS로 주로 소통하는 젊은 세대가 줄임말을 자주 사용하다 보니 줄임말이 표준어를 압도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갑분싸’ ‘패완얼’ ‘낄끼빠빠’ ‘소확행’ 등은 많이 알려진 줄임말이지만 나이 든 세대 가운데는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렇게 줄임말은 세대 차이로 인한 의사소통의 문제를 가져오기도 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맞춤법에 어긋나는 단어의 범람이다. ‘며칠(○)/몇 일(×)’ ‘구지(×)/굳이(○)’ 등을 틀리게 쓰는 예가 흔하다. ‘데/대’나 ‘든/던’, ‘있다가/이따가’ 등의 차이를 알고 쓰는 이가 드물 정도다. ‘하지 않았다’를 ‘하지 안았다’로 쓰는 사람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사적인 소통에서뿐만 아니라 자기소개서나 보고서 등과 같은 공적인 글쓰기에서조차 이와 같이 틀린 단어나 줄임말이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 업체의 임원은 자기소개서를 평가할 때 “맞춤법이 틀리면 기본 소양이 부족하거나 회사 생활을 건성으로 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좋지 않은 인상을 받는다”고 말한 바 있다.   의사소통만 되면 되지 맞춤법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얘기하는 이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맞춤법을 제대로 모르고 글을 쓴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기본 소양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우리말 바루기 맞춤법 줄임말이지만 나이 기본 소양 회사 생활

2025-04-24

[우리말 바루기] 촉촉히 vs 촉촉이

‘깨끗이’일까, ‘깨끗히’일까? 한글 맞춤법 제51항은 이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 준다. “부사의 끝음절이 분명히 ‘이’로만 나는 것은 ‘-이’로 적고, ‘히’로만 나거나 ‘이’나 ‘히’로 나는 것은 ‘-히’로 적는다.” 분명히 ‘이’가 아니면 ‘히’를 붙이란다. 그렇다면 ‘깨끗히’일 듯한데, ‘깨끗이’가 맞춤법에 맞는다. 맞춤법 해설에 따르면 ‘ㅅ’ 받침 뒤에서는 무조건 ‘이’가 붙는다. 느긋이, 따듯이, 버젓이, 빠듯이, 산뜻이…. 여기에 어떤 시비도 붙지 않는다.   그럼 ‘솔직하다’의 ‘솔직’에는 ‘이’가 붙을까, ‘히’가 붙을까? 모두의 예상대로 ‘히’가 붙는다. 맞춤법은 ‘이’나 ‘히’로 나니 ‘솔직히’로 적으라고 한다. 맞춤법 해설에는 ‘엄격히’와 ‘정확히’도 제시돼 있다. 이 말들은 ‘ㄱ’ 받침 뒤다. 다시 말해 ‘하다’가 붙는 말의 ‘ㄱ’ 받침 뒤에는 ‘히’를 붙인 거다. 이런 예에 비춰 보면 ‘촉촉하다’의 ‘촉촉’에도 ‘히’가 붙어 ‘촉촉히’로 적어야 한다. 이런 예가 없더라도 ‘촉촉히’가 현실적이다. 그렇지만 ‘촉촉이’가 표준어다. 표준어를 따른다면 ‘비가 촉촉이 내린다’고 적어야 한다.   ‘깊숙하다’의 ‘깊숙’에도 ‘이’가 붙은 ‘깊숙이’가 표준어다.‘두둑이’ ‘빽빽이’ ‘삐딱이’ ‘수북이’라야 한다. 국어사전들이 이렇게 안내한다. 그런데 이 말들은 순우리말이고, ‘히’가 붙은 ‘솔직, 엄격, 정확’은 한자어다. 이 외 다른 한자어들에도 ‘히’가 붙는다. ‘가득히, 넉넉히, 똑똑히, 빼곡히, 아득히’는 순우리말인데도 ‘히’다. 일관성도 없고 이유도 뚜렷하지 않다. ‘촉촉하다’의 ‘촉촉’ 등에도 ‘히’를 붙이는 게 상식 같다.우리말 바루기 맞춤법 해설 한글 맞춤법 솔직 엄격

2025-04-22

[우리말 바루기] '햇나물'과 '해쑥'

‘햇나물’과 ‘해쑥’봄에는 ‘햇것’들이 가득하다. 아직 아침저녁으로 쌀쌀할 때도 있지만 들판에는 새로 나온 쑥이 머리를 내밀고, 나무에는 푸릇푸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개나리·진달래·벚꽃 등도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다. 매년 돌아오는 모습이지만 새롭게 자라나는 것들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싱그럽게 한다.   “봄에는 햇나물로 비빔밥을 만들어 보자”에서 쓰인 ‘햇나물’과 같이 ‘해마다 나는 물건으로서 그해에 처음 나오는 것’을 가리킬 때 보통 접두사 ‘햇-’을 붙인다. ‘햇나물’ 외에도 ‘햇가지’ ‘햇과일’ ‘햇감자’ ‘햇곡식’ ‘햇솜’ 등 예로 들 수 있는 단어가 무척 많다.   그렇다면 그해에 새로 나온 쑥을 가리킬 땐 ‘햇쑥’이라고 하면 될까? ‘햇쑥’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해쑥’의 잘못된 표현이라고 나온다. 우리말에서 단어의 첫소리가 된소리(ㄲ, ㄸ, ㅃ, ㅆ, ㅉ)나 거센소리(ㅊ, ㅋ, ㅌ, ㅍ)로 날 때에는 ‘햇-’이 아닌 ‘해-’를 쓰도록 하고 있다. ‘쑥’의 경우 단어의 첫머리가 된소리인 ‘ㅆ’으로 시작되므로 ‘햇-’이 아닌 ‘해-’가 붙어 ‘해쑥’이 되는 것이다.   ‘팥’과 ‘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단어의 첫머리가 거센소리인 ‘ㅍ’과 ‘ㅋ’으로 시작되므로 ‘햇팥’ ‘햇콩’이 아닌 ‘해팥’ ‘해콩’으로 써야 바른 표현이 된다. ‘햇것’ ‘햇나물’ ‘햇병아리’ 등은 단어의 첫머리가 ‘ㄱ’ ‘ㄴ’ ‘ㅂ’으로, 거센소리나 된소리가 아니므로 ‘햇-’을 붙이면 된다.   내일은 햇나물로 만든 비빔밥, 해쑥으로 만든 부침개로 봄을 물씬 느껴 보는 건 어떨까.우리말 바루기 햇나물 햇나물로 비빔밥 첫머리가 된소리인 보통 접두사

2025-04-21

[우리말 바루기] 몸무게가 준 이유

“몸무게가 많이 줄은 것 같죠?”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는 유명인의 경험담이 새로운 유행을 만들곤 한다. 간헐적 단식도 효과를 봤다는 여러 사례가 방송을 타면서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체중과 관련해 “몸무게가 많이 줄은 것 같죠?”라고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줄은’은 ‘줄다’의 잘못된 활용형이다. ‘줄은’을 ‘준’으로 고쳐야 바르다.   어간이 ‘ㄹ’ 받침으로 끝나는 동사나 형용사에 ‘ㄴ’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결합할 때에는 어간 받침의 ‘ㄹ’이 탈락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줄다’의 어간 ‘줄-’과 어미 ‘-ㄴ’이 결합하면 어간 받침의 ‘ㄹ’이 탈락해 ‘준’이 된다.   “허리 사이즈가 좀 줄어들은 것 같아요”도 마찬가지다. ‘줄어들다’를 활용할 때 ‘줄어들은’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줄어든’으로 바루어야 한다.   ‘늘다’의 어간 ‘늘-’과 어미 ‘-ㄴ’이 결합할 때에도 어간 받침의 ‘ㄹ’이 탈락해 ‘는’이 된다. “체중이 좀 는 듯하네요”와 같이 사용해야 올바르다.   실제 언어생활에서 잘못된 활용형을 쓰는 경우가 많다. 동사 ‘날다’에 어미 ‘-는’이 결합하면 ‘나는’이 된다. “날으는 양탄자”가 아니라 “나는 양탄자”가 바른 표현이다.     노랫말에 나오는 “거칠은 들판” “낯설은 타향” “찌들은 내 마음” “녹슬은 기찻길”도 “거친 들판” “낯선 타향” “찌든 내 마음” “녹슨 기찻길”로 표현해야 된다. 발음을 편하게 하려고 습관적으로 ‘으’를 집어넣는 경향이 있으나 어법에 어긋난다. “검게 그을은 팔” “노랗게 물들은 잎” “땀에 절은 옷” “입안이 헐은 이유”가 모두 같은 유형의 표현이다. ‘그은’ ‘물든’ ‘전’ ‘헌’으로 각각 고쳐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몸무게 어간 받침 체중 감량 허리 사이즈

2025-04-17

[우리말 바루기] ‘헬스장을 끊다’?

친구가 “헬스장을 끊었다”고 했다. 헬스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만뒀다는 것일까, 아니면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일까.   같은 말이 이렇게 정반대로 해석될 수 있다니 재미있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아마도 ‘끊다’를 ‘등록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이가 많을 것 같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끊다’의 뜻풀이 중 정확하게 이런 의미로 올라 있는 것은 없다.   사전을 보면 ‘끊다’는 “고무줄을 끊다”에서처럼 실·줄·끈 등의 이어진 것을 잘라 따로 떨어지게 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또한 “소식을 끊다” “교제를 끊다”에서처럼 관계를 이어지지 않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밥줄을 끊다” “담배를 끊다” 등에서와 같이 어떤 것을 중단하거나 하지 못하게 하는 일에도 ‘끊다’를 쓴다.   그렇다면 왜 ‘등록한다’는 뜻으로 ‘끊다’가 쓰이게 됐을까. ‘끊다’의 여러 가지 의미 중에는 “한복감을 끊다” “기차표를 끊다”에서와 같이 옷감이나 표 따위를 사다는 의미도 있다. 옷감을 잘라서 사는 것을 ‘끊다’고 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차표 또한 종이 승차권을 쓰던 시절엔 ‘끊다’를 ‘구매한다’는 의미로 사용했던 것이다.   표를 구매하는 행위를 ‘끊다’고 표현하던 것이 굳어져 헬스장이나 수영장 등에 등록하는 일도 ‘끊다’고 표현하게 된 것이다. 헬스장 등에 입장할 수 있는 회원권을 구매하는 일이 ‘입장권을 사다’는 의미와 연결돼 ‘끊다’가 ‘등록하다’는 의미로 확장된 것이라 할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헬스장 가지 의미 종이 승차권

2025-04-16

[우리말 바루기] 구어체 표현 삼가야

요즘 들어 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표현이 ‘~거’라는 말이다. “괜히 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거다”처럼 ‘거’나 ‘거다’ 표현이 많이 쓰인다. 여기에서 ‘거’ ‘거다’는 ‘것’ ‘것이다’를 입으로 말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즉 구어체 표현이다. 구어체(口語體)란 글이 아닌 일상적인 대화에서 주로 쓰는 말을 가리킨다. 말할 때는 편리하게 발음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것’이나 ‘것이다’ 대신 ‘거’나 ‘거다’로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글을 쓸 때는 주의해야 한다. 글에서 이런 표현이 나오면 맛이 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글의 문장은 말보다 완전하고 체계적이어야 한다. 글에서 말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표현이 나온다면 글로서의 가치를 지니기 어렵다. 글을 쓸 때는 “괜히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처럼 적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자 메시지에서 줄임말을 많이 쓰거나 받침을 잘 적지 않는 버릇이 든 것도 이 같은 현상을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문자 메시지에서는 속도가 생명이기 때문에 의미 전달만 가능하다면 정확성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해논 것이 없다” “따논 일이나 마찬가지다”처럼 ‘놓은’을 줄여 ‘논’으로 표현하는 것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해논’은 ‘해놓은’, ‘따논’은 ‘따놓은’의 줄임말이다. “재밌는 이야기들을 옮겨놨다”처럼 ‘재밌는’이나 ‘옮겨놨다’도 마찬가지다. 각각 ‘재미있는’과 ‘옮겨놓았다’의 축약어다. 우리말 바루기 구어체 표현 구어체 표현 문자 메시지 의미 전달

2025-04-15

[우리말 바루기] ‘오뚝한 코’가 된 사연

“오뚝한 코에 눈매가 매섭다.” “코가 우뚝하고 눈매가 날카롭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와 마주쳐 몽타주를 만드는 데 참여했던 버스기사와 안내원은 그의 생김새를 이렇게 기억했다.   유력한 용의자의 모습을 묘사할 때 사용된 “오뚝한 코” “코가 우뚝하고” 중 어떤 표현이 맞을까? ‘오뚝하다’ ‘우뚝하다’ 모두 도드라지게 높이 솟은 상태를 일컫는 말로 쓸 수 있다.   ‘오똑하다’는 표준어가 아니다. 한 매체가 공개한 용의자의 고교 때 사진을 보고 “몽타주처럼 눈매가 날카롭고 코가 오똑하네”라고 표현하는 이가 많다. 이때의 ‘오똑하다’는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말이다. “코가 오뚝하네”나 “코가 우뚝하네”로 고쳐야 한다. ‘오뚝하다-우뚝하다’가 짝을 이루는 게 바르냐고 의아해하지만 ‘오뚝하다’ ‘우뚝하다’만 표준말로 인정하고 있다.   ‘오똑하다’를 취하지 않고 ‘오뚝하다’를 표준어로 삼은 이유는 양성모음이 음성모음으로 바뀌어 굳어진 단어는 음성모음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음성모음화 현상을 인정한 결과다. 우리말에는 양성모음은 양성모음끼리, 음성모음은 음성모음끼리 어울리는 모음조화 현상이 있는데 지금은 이 규칙이 많이 무너져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깡총깡총’이다. ‘깡총깡총’을 버리고 언어 현실을 반영해 ‘깡충깡충’을 표준어로 정했다. 발딱발딱 일어서는 아이들의 장난감도 ‘오똑이’가 아닌 ‘오뚝이’로 써야 한다. ‘-동이’도 ‘-둥이’가 표준어다. ‘-둥이’의 어원은 ‘동이(童-)’이지만 음성모음화를 인정해 ‘막둥이’ ‘쌍둥이’처럼 사용한다.우리말 바루기 사연 음성모음화 현상 음성모음 형태 모음조화 현상

2025-04-14

[우리말 바루기] ‘반나절’은 몇 시간일까

한국의 KTX가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KTX는 대부분의 목적지 역에 3시간 내외에 도착한다. 따라서 여기에서 얘기하는 반나절은 3시간을 의미한다. 한나절은 6시간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다음 기사를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 반나절 만에 석방’이란 제목의 기사인데 기사 내용에는 “그가 6시간20분 만에 풀려났다”고 돼 있다. 여기에서는 반나절이 6시간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반나절이 3시간인지 6시간인지 저마다 달라 헷갈린다.   의문을 풀기 위해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한나절’을 ‘1)하룻낮의 반(半) 2)하룻낮 전체’ 두 가지로 풀이하고 있다. 또한 ‘반나절’은 ‘1)한나절의 반 2)하룻낮의 반=한나절’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하루를 낮과 밤 둘로 쪼개 하룻낮을 12시간이라고 본다면 ‘한나절’의 풀이 중 ‘하룻낮의 반’은 6시간, 또 다른 풀이인 ‘하룻낮 전체’는 12시간을 의미한다. ‘반나절’ 또한 사전 풀이에 따르면 ‘한나절의 반’인 3시간과 ‘하룻낮의 반=한나절’인 6시간을 뜻한다. 즉 ‘반나절’은 3시간, 6시간 모두에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KTX가 전국을 반나절(3시간) 생활권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나 반나절인 6시간 만에 ○○○을 석방했다는 기사 모두 맞는 말이 된다.   국립국어원은 실제 언중의 쓰임을 토대로 2011년 두 번째 풀이를 사전에 추가했다고 밝혔다. 현실을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다 보니 오히려 혼란을 초래한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든다. 수치와 관련한 기준은 정확할 필요가 있다.우리말 바루기 반나절 시간 반나절 생활권 다음 기사 기사 모두

2025-04-13

[우리말 바루기] 전화번호 읽는 법

213-345-6789   위 전화번호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213 다시 345 다시 6789”라고 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전화번호뿐만 아니라 은행 계좌 번호를 읽을 때도 숫자 중간중간 ‘다시’를 넣어 읽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처럼 복잡한 숫자를 나열할 때 ‘-’ 표시가 나오면 ‘다시’라고 자연스럽게 읽곤 한다. 그러나 이 ‘다시’라는 표현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다시’는 영어 ‘dash’에서 온 말이다. 우리말로는 ‘줄표’를 뜻한다. 일본인들이 영어의 원래 발음인 ‘대시’가 아니라 ‘다시’라고 쓰던 것이 한국으로 넘어와 우리말처럼 굳어진 것이다. 따라서 영어 발음에 맞게 ‘대시’라고 하든가 우리말인 ‘줄표’라고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213 다시 345 다시 6789”라고 하든가 “213 줄표 345 줄표 6789”라고 읽어야 한다. 우리말인 ‘줄표’로 하면 좋겠지만 잘 쓰지 않던 말이라 다소 어색한 측면이 있다. “213에 345에 6789”로 읽거나 숫자와 숫자 사이를 잠시 쉬어 가며 읽으면 어떨까 싶다.   이와 같이 일본식 영어 발음이 우리말처럼 굳어진 예는 이 밖에도 많다. “따불로 드릴게요”와 같이 ‘따불’이란 말을 쓰기도 하는데 이는 ‘double(더블)’의 일본식 발음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인조 가죽을 의미하는 ‘레자’는 ‘leather’, 재봉틀을 의미하는 ‘미싱’은 ‘machine’, ‘마후라’는 ‘muffler’, ‘빠꾸’는 ‘back’을 일본식으로 읽은 표현이다.우리말 바루기 전화번호 영어 발음 숫자 중간중간 숫자 사이

2025-04-10

[우리말 바루기] ‘딴죽 걸기’와 ‘딴지 걸기’

‘딴지’란 말이 부쩍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1998년 딴지일보가 창간되면서다. 이때만 해도 ‘딴지’는 표준말이 아니었다. 엄연히 ‘딴죽’이란 표준어가 있었지만 이 매체가 주목받으면서 “딴지를 걸다” “딴지를 놓다”처럼 표현하는 일이 더 늘어났다.   ‘딴죽’과 ‘딴지’란 말이 공존하는 현장은 서점에서도 쉽게 마주한다. “상식에 딴죽 걸다” 못지않게 “세상에 딴지 걸다” 같은 책 제목도 눈에 많이 띈다.   실생활에서 ‘딴지’란 단어가 빈번하게 사용되는데도 비표준어란 꼬리표는 늘 따라다녔다. 여전히 ‘딴죽’으로 고쳐 써야 한다고 알고 있는 이가 많다.   지금은 ‘딴지’와 ‘딴죽’ 모두 표준말이 됐다. ‘딴죽’만 계속 표준어로 인정해 오다 2014년 실제 언어생활에서 사용 빈도가 높은 ‘딴지’를 별도 표준어로 추가했다. 두 낱말의 뜻은 조금 다르다. ‘딴죽’과 더불어 ‘딴지’도 표준어로 인정하되 두 낱말의 미묘한 어감 차이를 반영해 사전에 올렸기 때문이다.   ‘딴죽’은 이미 동의하거나 약속한 일에 대해 딴전을 부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등재됐다. 주로 “딴죽 걸다” “딴죽 치다” 형태로 쓰인다. “오늘 결정한 안건에 대해 나중에 딴죽을 걸면 안 돼” “굳게 약속하고선 이제 와 딴죽을 치면 어떡하니?”처럼 사용한다.   ‘딴지’는 주로 걸다, 놓다와 함께 쓰여 일이 순순히 진행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거나 어기대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사전에 올랐다. 적극적인 참여 의사가 함축돼 있다. “무슨 일을 하든 꼭 딴지를 놓는 사람이 있지요” “이번 일에는 딴지를 걸지 않아야 할 텐데…”와 같이 사용한다.우리말 바루기 딴지 딴지 걸기 별도 표준어 사용 빈도

2025-04-09

[우리말 바루기] ‘카나리아색’은 어떤 색?

“카나리아색 좀 빌려줄래?” “카나리아색은 없는데. 대신 크롬노랑색을 빌려줄까?”   이처럼 ‘카나리아색’이나 ‘크롬노랑색’이란 얘기를 들으면 무슨 전문 용어인가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단어들은 색연필이나 물감, 크레파스, 색종이 등 어린이나 청소년이 많이 사용하는 문구류에 적혀 있는 색이름이다.   무슨 의미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색이름은 이뿐이 아니다. ‘대자색’ ‘상아색’ 등도 이름으로 색깔을 유추해내기 어렵다. 그래서 국가기술표준원은 최근 문구류 산업표준(KS) 7종의 색이름을 보다 쉽게 바꾸어 공표했다.   ‘카나리아색’은 ‘레몬색’, ‘크롬노란색’은 ‘바나나색’, ‘대자색’은 ‘구리색’, ‘상아색’은 ‘연노랑’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레몬색’ ‘바나나색’이라 하면 그 색깔이 어떠한지 쉽게 연상될 뿐 아니라 표기나 발음도 쉬워 대부분 사람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외래어 대신 우리말로 표준색 이름을 바꾸었다는 의미도 있다.   이번에 바뀐 색이름 중에는 이름과 실제 색의 차이로 혼란을 유발하는 것도 포함됐다. ‘진보라’라고 하면 ‘진한 보라색’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진보라’는 연한 보라색을 지칭하고 있어 헷갈리기 십상이었다. 이번에 ‘진보라’를 ‘밝은 보라’로 바꿔 의미가 혼동되지 않고 의사소통이 원활해질 수 있도록 했다.   ‘진갈색’과 ‘진녹’도 마찬가지 이유로 ‘밝은 갈색’과 ‘흐린 초록’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 밖에 ‘연주황’은 ‘살구색’, ‘밝고 여린 풀색’은 ‘청포도색’, ‘녹색’은 ‘초록’, ‘흰색’은 ‘하양’, ‘개나리색’은 ‘진노랑’으로 바뀌었다.우리말 바루기 카나리아색 표준색 이름 진한 보라색 대신 크롬노랑색

2025-04-08

[우리말 바루기] 워라밸은 ‘일삶균형’

요즘 젊은 직장인들은 ‘워라밸’을 중요시한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영어의 ‘워크 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에서 온 말이다. ‘Work-life balance’는 1970년대 후반 영국에서 개인의 업무와 사생활 간의 균형을 묘사하는 단어로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워라밸’은 각 단어의 앞 발음을 딴 우리말 신조어다.   얼마 전 고용노동부는 ‘워라밸 실천 기업’ 10개를 선정해 발표했다. 워라밸 점수가 높은 중소기업을 평가해 뽑는데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이렇게 정부기관까지 워라밸이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이 단어가 더욱 널리 쓰이게 됐다. 일과 가정(퇴근 후 삶)의 균형을 찾는 경향을 ‘워라밸 트렌드’, 이러한 것을 추구하는 세대를 ‘워라밸 세대’라 부른다. ‘워라밸 기업’ ‘워라밸 정책’ ‘워라밸 열풍’ ‘워라밸 문화’ ‘워라밸 혼수 가전’ 등 ‘워라밸’이란 용어가 여기저기 나온다.   ‘워라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해마다 발표하는 ‘베터 라이프 인덱스(Better Life Index, BLI)’의 지표이기도 하다. OECD는 주거·소득·교육·환경 등 11개 영역으로 나누어 각국을 평가하고 순위를 매긴다. 11개 영역에는 ‘Work-life balance’도 포함돼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BLI 순위, 즉 워라밸 순위는 41개국 가운데 35위였다.   ‘워라밸’이 관심사이다 보니 이 용어를 무리하게 끌어다 쓰는 경우도 있다. ‘호텔 워라밸 패키지’ ‘워라밸 단지 분양’ ‘워라밸 모바일 게임’ 등은 ‘워라밸’을 남용한 경우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처럼 ‘워라밸’은 콩글리시일 뿐 아니라 남용되거나 부적절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렵다 보니 ‘워라벨’이라 표기한 곳도 있다. 그럴 바엔 이를 번역한 우리말인 ‘일삶균형’ 정도로 부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언어의 우선적인 가치는 전달이다. ‘워라밸’은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전달력이 떨어진다.우리말 바루기 life balance better life 라이프 인덱스

2025-04-07

[우리말 바루기] 햇병아리, 해쑥, 햅쌀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파릇파릇 나무가 새 옷을 입고 햇병아리들이 나들이를 나오는 모습을 보니 봄이 완연하다. 봄은 이렇게 햇것들로 가득하다.   ‘햇병아리, 햇것’에서처럼 해마다 나는 물건으로 그해에 처음 나오는 것을 이를 때 접두사 ‘햇-’을 붙인다. 햇과일, 햇곡식, 햇나물 등 예를 들자면 수도 없이 많다.   봄에 제철을 맞는 ‘쑥’에 접두사를 붙이면 어떻게 될까. ‘햇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해쑥’이 바른 표현이다. 맞춤법 규정에 따르면 단어의 첫소리가 된소리(ㄲ, ㄸ, ㅃ, ㅆ, ㅉ)나 거센소리(ㅊ, ㅋ, ㅌ, ㅍ)로 날 경우엔 ‘햇-’이 아닌 ‘해-’를 쓰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쑥, 해콩, 해팥 등처럼 적는다.   그렇다면 ‘그해에 새로 나온 쌀’은 어떻게 표기해야 할까. 온라인상에는 ‘햇쌀’이라고 쓰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쌀’이 된소리(ㅆ)로 시작하기 때문에 어문 규정을 떠올리며 ‘해쌀’로 써야 하나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햇쌀’과 ‘해쌀’ 모두 잘못된 표현.   ‘쌀’의 경우 원래 중세 국어에서 단어의 첫머리에 ‘ㅂ’이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쌀’에는 ‘ㅂ’을 첨가해 ‘햅쌀’을 바른 표기로 삼고 있다. ‘벼+씨’를 ‘볍씨’로, ‘조+쌀’을 ‘좁쌀’ 등으로 표기하는 것도 같은 사례다.우리말 바루기 햇병아리 햅쌀 맞춤법 규정 햇과일 햇곡식 중세 국어

2025-04-06

[우리말 바루기] ‘하던지 말던지’는 없다

유튜브를 시청하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유튜브는 영상과 음성을 주로 하지만 자막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성이 있더라도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자막을 집어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막을 보면서 특히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다. 바로 “하던지 말던지” 형태의 표기다. “하든지 말든지”가 맞는 표현이지만 제대로 적힌 자막을 보기 어려울 정도다. 맞춤법의 기본적인 사항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인데 이렇게 많이 틀리고 있다는 것이 의아할 정도였다.   과거 우리말바루기에서도 다룬 적이 있지만 이것만은 꼭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게재하게 됐다. 간단하다. ‘-든지’는 선택, ‘-던지’는 과거다. ‘-든지’는 “사과든지 배든지 아무 것이나 좋다” 등처럼 쓰인다. 따라서 “하던지 말던지”는 내용상 선택을 나타내므로 “하든지 말든지”로 고쳐야 한다. ‘-던지’는 “얼마나 술을 먹었던지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와 같이 과거를 뜻할 때 사용된다.   ‘-든가/-던가’도 마찬가지다. “가든가 말든가 마음대로 해라”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에서처럼 ‘-든가’는 선택, ‘-던가’는 과거를 의미한다. 준말로 ‘-든’과 ‘-던’도 쓰인다. “사과든 배든 아무 것이나 좋다”에서의 ‘-든’은 ‘-든지’, “선생님께서 기뻐하시던?”에서의 ‘-던’은 ‘-던가’의 준말이다.   결론적으로 ‘-든’ ‘-든지’ ‘-든가’ 등 ‘든’이 들어간 것은 선택, ‘-던’ ‘-던지’ ‘-던가’ 등 ‘던’이 들어간 것은 과거라는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내용상 선택

2025-04-03

[우리말 바루기] ‘나의 살던 고향’의 오류

봄꽃들이 주변에서 꽃망울을 터뜨렸다. 한인들도 꽃구경을 다니느라 바쁘다. 이렇게 봄꽃이 만개하는 계절에는 어릴 적 시골에서 보며 자랐던 무성한 꽃들이 생각나면서 고향이 더욱 그리워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노래가 ‘고향의 봄’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이원수 시, 홍난파 작곡)   노래 제목은 ‘고향의 봄’이지만 ‘나의 살던 고향’으로 제목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그만큼 첫 구절인 ‘나의 살던 고향’이 귀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나의 살던 고향’은 음식점 이름이나 홈페이지 제목 등에 두루 쓰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나의 살던 고향’은 ‘의’가 잘못 쓰이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 ‘내가 살던 고향’이 정상적인 우리말 어법이다. 이처럼 주어(‘내가’) 자리에 ‘의’가 쓰이는 것은 일본어 조사 ‘노(の)’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어에서 ‘노(の)’는 여러 문장성분으로 쓰인다. 우리말의 ‘의’와 비슷한 용법으로 소유격조사로 주로 사용된다. 더불어 ‘노(の)’는 일본어만의 특수 용법으로 주격조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주어 ‘나의’가 바로 이런 용법을 닮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말에선 ‘의’가 주격조사로는 쓰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의 살던 고향’이 익숙하다 보니 이와 비슷한 구조의 말이 흔히 사용된다. “정치의 변화하는 모습을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가 그런 표현이다. ‘정치의’를 ‘정치가’로 고쳐야 한다. “우리의 나아갈 길은 정해졌다”는 ‘우리의’를 ‘우리가’로 바꿔야 한다. 이 밖에도 ?‘~의’를 남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스스로의 약속’은 ‘스스로 한 약속’,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은 ‘저마다 타고난 소질’이 우리식 표현이다. ‘소득의 향상과 식생활의 서구화’도 ‘명사+의(の)+명사’로 이루어진 일본어식 표현으로 ‘의’가 필요 없다.우리말 바루기 고향 오류 주격조사 역할 산골 복숭아꽃 홍난파 작곡

2025-04-02

[우리말 바루기] 제쳐야 하나, 젖혀야 하나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등 해외 리그에서 뛰는 한국 축구 선수들의 활약에 밤을 새워 축구를 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축구 팬들은 “손흥민 선수가 상대 선수를 제치고 첫 골을 넣었습니다” 등과 같은 진행자의 해설이 이어지면 밤샘으로 인한 피로가 절로 잊히는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축구 경기 중 상대 선수를 피하며 돌파하는 장면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바로 ‘제치다’이다. 그런데 이를 ‘젖히다’라고 써야 하는 것이 아닌지 헷갈리곤 한다.   ‘제치다’는 ‘거치적거리지 않게 처리하다’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축구 경기 등에서 상대 선수를 거치적거리지 않게 처리한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표현은 ‘젖히다’가 아닌 ‘제치다’임을 알 수 있다.   ‘젖히다’는 “의자를 뒤로 젖히다” 등처럼 ‘뒤로 기울게 하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커튼을 걷어 젖히다”에서와 같이 ‘안쪽이 겉으로 나오게 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간혹 “이강인 선수가 상대 선수를 제끼고 기가 막힌 프리킥을 선보였습니다”와 같이 ‘제끼다’를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제끼다’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비표준어라고 명시돼 있다.   그렇다면 “응원가를 불러 제치다/ 불러 젖히다/ 불러 제끼다” 중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일까. ‘제끼다’가 비표준어라는 걸 떠올려 보면 ‘불러 제끼다’ 역시 틀린 표현이란 걸 알 수 있다. ‘젖히다’는 앞말이 뜻하는 행동을 막힌 데 없이 해치운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그러므로 “응원가를 불러 젖히다”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다.우리말 바루기 상대 선수 축구 경기 한국 축구

2025-04-01

[우리말 바루기] ‘콧망울’이 아니라 ‘콧방울’

미세먼지가 자주 발생하는 계절이다. 더불어 꽃가루까지 흩날리기 십상이다. 이런 때가 특히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들에게는 괴로운 시기다. 재채기·콧물 등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인터넷에는 이럴 때 응급처치할 수 있는 방법이 다음과 같이 소개돼 있다.   “콧물이 흐르거나 코막힘 증상이 심할 땐 손가락 끝으로 양쪽 콧망울 옆을 지그시 눌렀다 떼기를 몇 차례 반복하면 효과가 나타난다.”   코끝 양쪽으로 둥글게 방울처럼 내민 부분을 가리킬 때 이처럼 ‘콧망울’이라 쓰곤 한다. 눈알 앞쪽의 도톰한 곳이나 눈동자가 있는 곳을 뜻하는 ‘눈망울’, 아직 피지 않은 어린 꽃봉오리를 가리키는 ‘꽃망울’ 등을 연상해 ‘콧망울’로 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으로 ‘콧방울’이 바른말이다. 코끝이 두 개의 방울이 달려 있는 것같이 생겼다는 점에서 ‘콧방울’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콧방울을 벌름거리며 웃었다” “콧방울이 크고 두둑해야 복이 있다” 등처럼 사용된다.   “콧볼이 너무 넓고 두툼해 고민이야”처럼 ‘콧방울’을 ‘콧볼’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은 유독 코평수가 커”처럼 ‘코평수’라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콧볼’ ‘코평수’는 사전에 없는 말로, 통속적으로 사용하는 입말이다. 모두 ‘콧방울’로 바꿔 써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콧망울 콧방울 양쪽 콧망울 코끝 양쪽 알레르기성 비염

2025-03-31

[우리말 바루기] ‘~에 있어서’를 빼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있다’를 찾으면 “(~에/에게 있어서 구성으로 쓰여) 앞에 오는 명사를 화제나 논의의 대상으로 삼은 상태를 나타내는 말. 문어적 표현으로, ‘에’ ‘에게’ ‘에서’의 뜻을 나타낸다”는 풀이도 보인다. 다른 국어사전들도 비슷한 풀이를 하고 있다. 이 사전의 풀이처럼 ‘~에 있어서’는 문어적이어서 말에서보다는 글에서 더 많이 보인다. 말로 할 때도 ‘~에 있어’로 시작하는 사람을 보면 이렇게 쓴 글을 많이 읽어서 입에 밴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그리 편하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에 있어서’와 관련해 예문이 두 개 있는데, 한번 확인해 보자. “국어사 시대 구분에 있어서의 제 문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구분에 있어서’와 ‘인간에게 있어서’가 낯설지 않은 독자도, 조금 불편한 독자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이런 표현이 군더더기 같아 보여서 편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첫 번째 문장에서도, 두 번째 문장에서도 ‘있어서’는 불필요해 보인다. ‘있어서’를 빼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에 있어서’가 없는 “국어사 시대 구분의 제 문제”가 오히려 더 간결하고 쉬워 보인다. ‘~에게 있어서’를 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도 더 편하게 읽힌다.   일상의 다른 문장들에서도 ‘~에 있어서’는 없어도 될 때가 많다. “문제 해결에 있어서 소극적이다”도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다”가 간결하다. 아니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소극적이다”라고 표현해도 되겠다. “이 부분에 있어서도”는 “이 부분도”여도 된다.우리말 바루기 문어적 표현 문제 해결

2025-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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