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아내들의 이유있는 '파업'
이웅진 / 선우 대표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너희들은 돼지야'라는 메모를 남기고 집을 나간다. 엄마가 집을 나가자 남은 가족들은 엄마가 하던 일을 하는데 결국 집안은 돼지우리처럼 지저분해지고 결국 그 동안 엄마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엄마는 묵묵히 가족을 위해 희생했지만 가족은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엄마의 존재를 오히려 무시했다.
어른들이 이 동화를 읽고 내린 결론은 '주기만 하면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부부관계도 마찬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헌신적으로 하되 상대에게 그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상기시켜 주는 것도 중요하다. 생색을 내라는 것이 아니라 고마움을 알고 그 마음을 표현하게 하라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외국인 부부가 겪은 일이다. 남편은 직장에 다니고 아내는 세 아이를 돌보며 살림을 하는 전업주부다. 아내는 명퇴나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피해 열심히 일하는 남편에게 고마워하고 그래서 늘 헌신적이다.
하지만 남편은 아내의 일을 당연하게 여기고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남편의 독단적인 행동에도 아내는 '뭘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그의 오만에 지치고 말았다. 그녀의 선택은 '돼지책'의 엄마와 같은 가출이 아니라 보다 현실적인 접근이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한달 동안 남편을 위해 하던 일들을 중단한다는 것이다. 식사준비 세탁 청소 약속을 알려주는 것 매일 챙겨야 하는 일들을 준비해주는 것 등을 남편 스스로 하라는 것 다만 아이들은 부부문제와 별개이니 그녀가 돌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파업은 일주일 만에 끝났다. 며칠 동안 혼자 밥하고 다림질을 하던 남편이 항복을 한 것이다. 나가서 돈을 버는 일은 대단하고 집에서 내조하는 일은 하찮게 여기던 남편은 처음에는 아내의 행동에 큰 충격을 받고 화를 냈지만 점차 아내의 일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물론 이 부부의 얘기는 흔치 않은 경우다. 아내의 해결방식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효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자신의 가치 혹은 자신이 하는 일의 중요성을 스스로 아는 것이야말로 꼭 필요한 삶의 자세다. 이기적이거나 잘난척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당당함은 남녀관계를 탄력있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떤 이유에서든 상대의 가치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상대가 그런 생각을 하더라도 자신이 스스로를 방어하는 적극성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얼마나 특별하고 멋진 사람인지 상대가 알게 하라. 한편으로 상대의 존재도 귀하게 여겨라. 정말 사랑하는 사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두 사람이 함께 한다는 그런 충만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