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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 [강석희 어바인 시장 자서전 '유리천장 그 너머'-54] 신발가게로 돈은 벌지만 왠지 체면 안서…1년만에 '폼나던' 서키시티에 다시 입사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자 조금씩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가게를 해서 돈을 더 번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한테 명함 내밀기도 좀 그렇고….'

서킷시티는 미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회사였다. 어디서 누굴 만나더라도 서킷시티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그렇게 큰 회사의 매니저라니 대단하군' 하면서 나를 다시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신발 가게를 하면서는 솔직히 체면이 서지 않았다. 돈은 벌지만 일하는 재미와 보람은 줄었다고 할까.

'내가 너무 성급하게 사표를 냈나?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는데 잘나가다가 한 번 흔들렸다고 직장을 관둔 건 지나친 만용이 아니었을까.'

후회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말쑥한 차림으로 직원들을 지휘하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렸던 직장 생활이 그리워졌다. 가끔씩 옛 직장 동료나 아는 사람이 가게를 찾아오면 어쩐지 창피하고 기가 죽는 느낌이었다. 부하였던 사람도 괜히 근사해 보이고 '서킷시티 직원'이라는 신분이 멋진 계급장이나 되는 듯 부러웠다.

재입사하면 더 겸손한 태도로 일하세요

회사에 사표를 내고 신발 가게를 연 지 1년쯤 지난 1987년 가을 친하게 지냈던 옛 상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부 본사에서 파견되어 미국 서부 지역 사장을 맡고 있던 제리 로슨이었다.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다면서 식사나 한번 하자고 했다.

"수키 당신이 사표를 내고 나갈 때 내가 붙잡지 못해서 정말 미안했소. 그때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내가 당신을 지켜줄 수 없는 상황이었소. 우리 다시 시작해 봅시다."

깜짝 놀랐다. 퇴사를 한 지 1년이나 지났는데 다시 돌아와 달라고? 왜 나를 다시 찾았느냐고 물었더니 항상 나를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서킷시티에서 중요한 역할을 잘해낼 것으로 믿는다면서 어떤 자리를 원하는지 제안해 보라고 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표 낸 것을 후회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절묘한 타이밍에 나를 찾은 것이다.

2주 후에 나는 서킷시티의 첫 매장인 오렌지시 매장에 부매니저로 재입사했다. 아내도 가게 주인보다는 큰 직장의 월급쟁이가 내게 더 어울린다며 환영했다. 내 어깨에 힘이 빠져 있던 것을 아내도 눈치 채고 있었던 모양이다. "당신이 회사에서 처음에 너무 잘나가는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오만에 빠졌던 것 같아요. 이제 한 번 좌절을 맛보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니만큼 예전보다 더 겸손한 태도로 일하세요."

따끔한 아내의 충고에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입사하자마자 판매왕을 차지하고 승진을 거듭해 20대 나이에 아시아계로서는 유일하게 총매니저가 되었으니 스스로는 겸손하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는 새에 오만에 빠져 미움을 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불러서 '모셔가는' 형국이었지만 나는 다시 불러준 회사가 오히려 고마웠다. 나는 전보다 더 고개를 숙이고 어깨의 힘을 뺐다.

서킷시티에서의 2막이 시작되었다.〈계속>

글.사진=올림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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