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 [강석희 어바인 시장 자서전 '유리천장 그 너머'-46] 첫 보금자리 기쁨도 잠시…이삿날 TV 등 모두 도둑 맞아
델 데리고 매니저는 나를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가끔은 나에게 만족스럽다는 의미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나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눈빛도 조금씩 달라졌다. 내가 몇 등을 달리고 있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리 판매 실적을 올려도 다른 베테랑 동료들을 따라잡기는 어려울 게 뻔하니까. 크리스마스 시즌이 지났다. 회사 전체의 실적이 아주 좋아서 들뜬 분위기였다.
다음 해 1월 말 판매왕을 발표하는 날이 되었다. 서부 지역 사장은 세일즈맨 전원을 저녁식사에 초대해 매출이 신장된 데 대해 감사 표시를 하고 그날의 피날레인 세일즈 콘테스트 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상위직 세일즈맨 중 수상자를 발표한 다음 마지막으로 주니어 세일즈맨 시상이 있었다. 사장은 만면에 미소를 띠며 "한국에서 얼마 전에 이민 온 수키 캥이 1등을 했다"고 발표했다.
순간 나는 꿈을 꾸는 줄 알았다. '설마 내가?' 동료들이 박수를 치고 내 이름을 부르며 환호했다.
"오 마이 갓!"
내가 주니어 분야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하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날 아내와 나는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웃음다운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이민 1년 만에 꿈에 그리던 '마이 홈'을
취직하고 얼마 안 되어 우리는 누나 집에서 나오기로 했다. 이제 얼마간의 돈벌이가 생겼으니 더 이상 눈칫밥을 먹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누나 집에서 가까운 곳에 아파트를 구했다.
당시 방 2개짜리 아파트의 월 임대료는 240달러 정도였다. 그러나 한 곳에 갔더니 훨씬 싼 아파트가 있었다. 월 180달러짜리였다. 당연히 동네가 좋을 리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첫 보금자리를 찾은 기쁨에 기분이 들떴다. 월세 집이기는 하지만 이사 기념으로 누나가 RCA 컬러 TV를 한 대 장만해 주었다. 이사하는 날 우리는 이삿짐을 차에다 실어 조금씩 나르기 시작했다.
배가 고파 점심을 먹고 다시 짐을 나르러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도둑이 몽땅 짐을 들고 가버린 것이다. 컬러 TV도 결혼할 때 장모님께서 해주신 새 양복 여러 벌도 다 집어가고 집이 텅텅 비어 있었다.
'아 어떻게 이런 일이….' 기분 좋게 첫 출발하려던 날 우리 부부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 동료였던 마이크가 내 이야기를 듣고 딱했던지 자기가 쓰던 침대와 소파가 있는데 가져다 쓰겠느냐고 했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내 처지가 비참한 생각이 들어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을 울었다. 왜 그렇게 감정이 북받쳤는지. 세간을 새로 장만하려면 목돈이 들어가야 할 판인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나는 고맙다며 마이크의 침대와 소파를 받아들였다.
그럭저럭 임대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꾸몄지만 마음은 어수선하고 착잡했다.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후진 동네 낡아서 퀴퀴한 냄새가 배어 있는 아파트. 거기다 새로 시작한 직장에서는 허둥지둥 헤매고 있자니 마음이 곱절로 심란했다.
지금도 그 당시에 흘러나오던 음악을 듣게 되면 타임머신을 타고 간 것처럼 그때의 칙칙했던 심정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곤 한다.
사정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판매왕을 차지했는가 하면 취직한 다음 해 2월부터는 월급도 많이 올랐다. 견습 기간이 끝나서 정규 월급을 받게 된 것이다.
월 500달러 정도 받다가 2000달러까지 올랐으니 엄청난 인상이었다. 갑자기 크게 오른 월급 명세서를 보면서 이 정도면 떵떵거리고 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계속〉
글.사진=올림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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