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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 [강석희 어바인 시장 자서전 '유리천장 그 너머'-44] "나 뽑아도 후회하지 않게 해주겠다" 읍소···미국 온지 3달만에 꿈에 그리던 직장 얻어

취업 원서를 낸 지 한 달 반쯤 지났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인터뷰에 응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고는 언제 어디로 와서 '미스터 지만도'를 찾으라고 했다. 순간 당황해서 '지만도'란 이름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지먼드' 정도로 알아들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이제 되었다 인터뷰를 하자고 전화가 왔으니 절반은 성공한 거다 나는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약속한 날 현장에 가서 '미스터 지먼드'를 찾았다.

직원들이 다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그런 사람은 없다고 했다. 황당했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며 '지먼드'를 찾고 있는데 한 직원이 "오우 지 만 도!" 하면서 나를 그에게로 안내했다.

찾아가 보니 가전제품 매장이었다. 나를 탈락시킨 조디스에서 세일즈 직원을 구하고 있던 이곳으로 내 입사 원서를 넘겼던 것이다. '메이저 LA 코퍼레이션'이라는 전자제품 유통 회사였는데 훗날 미국 최대의 전자제품 체인점이 된 서킷시티의 모태였다. 미스터 지만도는 이 회사의 서부 지역 매니저였다.

"미국에서 산 기간이 얼마나 되나요?"

"두 달 정도 됩니다."

"세일즈 경력은 있나요?"

"없습니다."

지만도는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가로젓기 시작했다.

"아니 경력도 없는데 무슨 배짱으로 지원했나요?"

"경력은 없지만 아버지가 하시는 세일즈를 많이 도왔습니다."

"미국 온 지 두 달밖에 안 되었다는데 영어에 자신 있나요?"

"자신 있습니다. 한국에서 영어 웅변대회에서 1등을 했습니다."

지만도는 긴가민가하는 표정이었다. 미국에 온 지 두 달밖에 안 된 외국인 풋내기를 채용한다는 것은 모험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간절한 내 태도에 약간 흔들리는 듯한 그의 표정을 간파하고 나는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석 달만 기회를 주십시오. 당신이 나를 뽑은 것이 실수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지만도의 얼굴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퍼졌다. 나의 간절함과 당돌함에 넘어간 표정 같기도 했다. 드디어 그가 물었다.

"그러면 언제부터 일할 수 있나요?"

직감적으로 그가 나에게 기회를 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라도 가능합니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일할 수 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세요."

지만도는 빙그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건물을 빠져나오면서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미국 사람들이 흔히 하는 제스처처럼 주먹을 몸 쪽으로 당기며 "예스!" 하고 소리쳤다. 미국 땅을 밟고 나서 암담했던 두 달 동안의 먹구름이 걷히는 순간이었다.

- 먹구름은 걷히고

1977년 9월 1일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꿈에도 그리던 미국의 첫 직장에 출근하는 날이었다. 첫 직장으로 향하는 내내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인터뷰를 하면서 석 달의 기회를 달라 절대로 후회하지 않게 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컸다. 세일즈는 물론이고 직장 생활 자체가 처음이니 이런저런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다.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은 다음 바로 매장에 투입되었다. 신참들은 주로 라디오나 워크맨처럼 작고 싼 물건을 취급하는 코너에 배치되었다. 고객들이 물건을 구경하고 있으면 옆으로 다가가 물건 고르는 것을 도와주고 기능을 설명하면서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자신이 상대한 고객이 물건을 사면 그 판매액의 몇 퍼센트를 커미션으로 받는데 기본급이 시간당 2달러 50센트이니 하루 8시간 일해야 한 달에 500달러 남짓의 월급을 받는 수준이었다. 기본급이 적으니 적극적으로 뛰어서 커미션을 많이 받아야 했다.

나는 10여 명의 세일즈맨들이 일하는 매장에서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다. 그러다 보니 동료 세일즈맨들도 처음에는 힐끗힐끗 이상한 사람 쳐다보는 듯한 눈길을 보냈고 고객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실수 연발이었다. 손님이 무슨 용어를 써가며 물어보는데 알아듣지 못해 얼굴이 빨개져서 다른 동료에게 달려가 물어보았다. 그러면 고객들은 대개 초보인가 보다 하고 다른 노련한 세일즈맨을 부르곤 했다.〈계속>

글=올림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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