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 [강석희 어바인 시장 자서전 '유리천장 그 너머'-43] 누나네 집에 빌붙어 살던 두 달여 시간, 취직도 못한 나는 패배자의 심정이었다
- 아내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고누나네 집에 '빌붙어' 살던 두 달여의 시간은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이들 넷에 어른 넷이 복닥거리는 그 공간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신문의 구인란을 뒤지며 전화하는 것이 내 하루 일과였다. 취직은 쉽지 않았다. 경력자를 모집하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내 영어를 듣고서는 그냥 끊어버리는 곳도 많았다. 미국 생활의 생존 도구라 생각하고 영어에 매달렸고 한국에서는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막상 미국인들에게는 귀에 거슬리는 외국인 액센트의 영어일 뿐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올 때 손에 2000달러 정도를 쥐고 있었는데 LA에 내려와 중고차를 한 대 샀더니 수중에 남은 돈이 거의 없었다. 돈은 떨어지고 취직은 안 되고 형이나 누나에게 도움을 청할 상황도 아니고….
막막하고 외로웠다. '괜히 미국에 온 것은 아닐까 한국에서는 알아주는 영어 실력이니 마음만 먹으면 대기업에 취직해서 순탄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일까' 후회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마음은 급한데 취직의 가능성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한국산 강석희'는 결국 무용지물인가. 답답한 마음에 아내와 함께 집 근처에 있는 뉴포트비치로 차를 몰고 나가 망망한 태평양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저 건너편에 있는 한국이 그립고 부모님 생각이 간절했다. 어머니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너무나도 듣고 싶었다. 그러나 힘들다고 전화를 할 수는 없었다.
아내의 얼굴에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말없이 아내의 어깨를 보듬어주는 것 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보 힘들지? 조금만 참아줘."
"아니에요. 당신이 너무 힘들어 하는 게 안쓰러워서…."
나는 하마터면 아내에게 '우리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까' 하고 물어볼 뻔했다. 그 말이 목구멍까지 기어 나오려 할 때 나는 심호흡을 하며 이를 지그시 물었다. 그때 아내가 울고 매달리며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차가운 바닷바람에 머리가 점차 맑아졌다. 축 처졌던 마음도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나는 나약해지려는 스스로에게 채찍을 가했다. 태평양을 건너며 내 인생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라고 잘살아보겠다고 그렇게 다짐을 했건만 불과 두 달도 못 되어 무릎을 꿇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뉴포트비치에서 우리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집으로 돌아왔다.
- 나를 뽑은 것이 실수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겠소
며칠 후 LA로 오라고 나를 부추겼던 친구 조원용이 불쑥 찾아왔다. 신문을 오려 왔는데 하시엔다 하이츠라는 지역에 들어설 '조디스'라는 대형 할인 매장에서 직원을 채용한다는 구인 광고였다.
일단 공개 모집이니 입사 원서를 내보기로 했다. 친구는 내게 세일즈 분야로 지원하라고 조언했다. 미국에서는 세일즈 분야에서 일해야 비전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넉살이 좋은 사람이 못 되니 세일즈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친구는 무조건 세일즈를 지원하라고 다그쳤다. 나는 세일즈 분야로 아내는 사무직으로 각각 원서를 냈다.
이곳저곳 시도했다가 내리 좌절만 경험한 터라 별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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