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 [강석희 어바인 시장 자서전 '유리천장 그 너머'-39] 서키시티 근무할때 한국 모르는 고객들엔 품질 좋은 골드스타 TV 만드는 나라"설명
-골드스타가 도대체 뭐야?한국은 나를 키워주고 꿈을 길러준 곳이다. 추억과 우정이 살아 있는 곳이고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묻혀 계신 곳이며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이제는 미국에 산 기간이 한국에서 산 기간보다 점점 더 길어져 가고 있지만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은 없다.
2 3년에 한 번씩 방문할 때 마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비록 몸은 미국에 있지만 모국에 대한 뜨거운 애정은 식기는커녕 오히려 더 새로워진다. 내가 미국에 오자마자 취직한 서킷시티에서 햇병아리 시절을 보내던 1978년쯤의 일이다.
당시 한국 최고의 전자제품 회사인 금성사가 '골드스타'라는 브랜드로 TV를 미국에 처음으로 수출했고 우리 회사는 이 제품을 납품받아 막 판매를 시작할 때였다.
세일즈맨과 간부들이 모두 참가한 판매 전략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골드스타 TV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골드스타? 골드스타가 도대체 뭐야." 한 매니저가 골드스타란 이름을 몇 차례 반복하자 짓궂은 세일즈맨들이 가소롭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키득거렸다. 이름부터가 웃긴다는 것이다. 당시 한국의 전자제품이라는 게 지금으로 치면 동남아 어느 나라 제품 정도의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유일한 아시아계 직원이었던 나는 그들이 한국의 대표 기업 제품을 거론하면서 조롱하는 듯한 반응에 무척 기분이 상했다.
부아가 치밀어오른 나는 손을 번쩍 들어 발언권을 요구했다. 그때 내가 자제심을 보이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한국에서 온 사람입니다. 나는 골드스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한국에서 가장 품질 좋은 전자제품을 만드는 회사이고 한국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회사입니다. 한국에서는 골드스타 제품이라면 누구나 신뢰하고 있습니다. 나도 그 회사 제품을 애용했는데 품질에서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신뢰해서 함께 일하는 것처럼 골드스타에 대해 확신을 갖고 팔아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애원하듯 강권하듯 동료들에게 골드스타의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한국 전자제품이 미국에 수출되어 팔린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로서는 감격할 일인데 동료 직원들이 이를 조롱하듯 받아들이니 서운하기 그지없었다.
직원들은 회의가 끝난 뒤 나에게 다가와 "수키 미안하다. 너를 믿고 우리가 열심히 팔아볼 테니 걱정하지 마라"며 위로했다.
한국을 떠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한국에 있을 때는 그다지 의식하지 못했던 내 몸속의 '코리아 유전자'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해외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이래서 생긴 것일까.
세일즈맨들은 나를 의식해서인지 골드스타 제품을 열심히 팔았다. 가격도 싸고 품질도 뒤지지 않는다는 말에 고객들은 서서히 골드스타라는 이름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삼성 12인치 흑백 TV는 금성 TV보다 조금 늦게 우리 회사에 들어왔다. 다행히 먼저 금성 제품이 소개가 되어서 그런지 삼성은 그런대로 잘 팔렸다.
물론 그 당시에는 두 제품이 가장 싸게 팔렸다. 삼성 전자레인지도 그때쯤 들어왔다.
당시 일제 소니 제품은 가장 비쌌지만 품질이 좋아 소비자가 선호하는 제품이었다. 초창기에 미국 시장에서 푸대접받던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들이 이제는 세계 최고의 제품으로 우뚝 선 모습을 보면 정말 자랑스럽고 감회가 새롭다.
눈에 금방 띄는 아시아계 직원이었던 나는 고객들로부터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들었다.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그런 나라가 어디 있냐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고객들을 만나면 "삼성이나 골드스타 같은 좋은 TV를 만드는 나라가 바로 코리아다 코리아는 5000년 역사와 고유 문자를 갖고 있는 문화 국가"라고 장황하게 설명했다. 사실 대한민국을 자랑하려 해도 '유구한 역사' 말고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 시절이었으니까.
〈계속>
글=올림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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