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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 [강석희 어바인 시장 자서전 '유리천장 그 너머'-36] 초등학교때 훌쩍 미국으로 이민 떠난 큰형, 가끔 보내준 미국 물건은 주변의 자랑거리

원교 형과의 만남은 아무런 그림이 없던 내 인생을 뒤흔들어놓았다. 대학 2학년을 마치도록 인생의 로드맵도 없이 방황하고 있는 나의 자화상을 확인하고는 마음이 급해졌다.

형은 철없이 우왕좌왕하던 내 인생에 따끔한 침을 놓았고 나는 어렴풋하지만 서서히 내 삶의 모습을 그려보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형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톨릭 신앙이 형의 사상적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앙이라는 것이 이렇게 사람으로 하여금 한 차원 높은 생각을 품게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형을 따라 명동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가본 성당의 분위기는 엄숙하고 생경했지만 종교를 통해서 내가 더 멋진 모습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내친 김에 영세를 받고 싶었는데 영세를 받으려면 일정한 교리 학습 과정을 밟아야 했다. 그러나 군 입대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 영세를 받지 못했다.

원교 형은 몇 년 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형의 진실된 삶과 확고한 인생관을 배우며 살고 있다.

내가 자라난 종로 5가 쪽에 종로성당이 있었다. 그 성당에 안젤라라는 세례명을 가진 한 여학생이 다녔다. 같은 학교 후배였다.

키는 자그마했는데 눈이 참 맑고 그야말로 천사 같았다. 말없이 고운 모습으로 예배를 보는 그녀를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안젤라에게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성스러움이 풍겼다. 나는 천사의 기운을 뿜어내는 그녀를 이성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다. 몇 개월 동안 흘깃흘깃 훔쳐보는 것이 전부였다.

원래 숫기가 없기도 했지만 그녀만 나타나면 나는 왠지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였다. 그것이 첫사랑이었을까.

참 싱거운 짝사랑이었다.

나는 마음을 접고 논산훈련소로 향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초등학교 4학년 코흘리개 시절 나보다 12살 위였던 큰형은 훌쩍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서 살려고 갔다는 말을 들었을 뿐 워낙 나이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에 자세한 배경은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형이 미국으로 떠난 다음부터 나는 마음 한구석에 '미국이란 어떤 나라인가' 늘 궁금증을 품게 되었고 친구들한테는 미국에 형이 산다고 자랑하곤 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형은 가끔 부모님께 편지를 보내왔다. 녹음테이프에 육성을 담아 소포로 보내오기도 하고 미국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자동차가 우리네 신발처럼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라는 것 고속도로가 여기저기 뻥뻥 뚫려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달려갈 수 있다는 것 땅이 넓고 공원이 많아서 놀러 갈 곳이 무척 많다는 것 한국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서 대부분 잘 산다는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고생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우리 형제들은 형의 미국 생활 이야기를 부모님을 통해 전해 듣곤 했다.

형으로부터 연락을 받는 날이면 멀리 떠나보낸 자식 생각에 어머니의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지만 나는 어린 마음에 풍선이 부풀어오르는 듯한 대리 만족을 느끼곤 했다.

가끔은 형이 미제 물건을 보내주기도 했다. 덕분에 한국에서는 부잣집 아이들이나 입는 비싼 미제 브랜드 옷도 가끔 입을 수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형이 보내주는 미제 커피나 비타민 같은 건강 식품을 주위 친구들에게 자랑하시는 게 큰 기쁨이었다.

그 시절은 미국 이민이 크게 부러움을 사던 때였다. 친구들은 나에게 "너도 미국 갈 거니? 형이 초청 안 해?" 하면서 마치 내가 언젠가는 미국에 갈 것으로 예상하는 듯했다.

나는 미국에 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형으로 인해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가 내 안으로 자꾸 파고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친구들이 나에게 언젠가는 미국에 갈 수 있겠다는 암시를 줄 때마다 미국은 저 멀리 상상 속의 나라가 아니라 형이 살고 있는 것처럼 나도 갈 수 있는 나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계속〉

글.사진=올림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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