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 [강석희 어바인 시장 자서전 '유리천장 그 너머'-31] 경관이 총 잡으며 "건물에서 뭐했나" 질문에 겁에 질려 한 말이 한심하게 "아이 돈트 노우"
- 그놈의 영어 때문에영어 때문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첫 직장에 처음 출근하던 날이었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가야 할 때가 다 되었는데 차가 꽉 막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것이다.
첫날부터 지각할까 봐 안절부절 못하던 중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가만 보니 중간 차선이 텅 비어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이게 웬 떡이냐 싶은 마음에 얼른 중간 차선으로 달렸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 오토바이가 나타나더니 "Pull over!(차를 한쪽으로 세우시오)"라고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마치 무슨 죄를 지은 것 같은 느낌에 겁이 덜컥 나 경찰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솔직히 'pull over'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경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내가 그냥 차를 몰고 가자 경찰이 내 차에 바싹 다가와 차를 옆으로 대라고 손짓하는 게 아닌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차를 길옆에 세우고 경찰의 처분(?)을 기다렸다. 그런데 5분이 지나도 경찰이 오지 않았다. 그냥 갈까 하다가 혹시라도 지시 불응으로 간주돼 처벌을 받을까 봐 계속 기다렸는데 2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나는 경찰이 다른 바쁜 일이 있어서 나를 포기했나 보다 생각하고 자리를 떠났다. 물론 30분 가량 지각했다.
매니저와 동료들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걱정스레 물었다. 사정을 설명했더니 직원들이 일제히 박장대소했다.
"수키 너 그 차선이 왜 비어 있었는지 아니?" 하고 묻기에 모른다고 대답했더니 "미국에서는 마지막 가는 분에 대한 예의의 표시로 장례 행렬이 지나갈 때 절대로 운구차를 가로질러서 가지 않는 거야"라고 설명해 주었다.
미국 관습을 몰라서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내가 취직하고 나서 아내도 잠깐 회사에 다닐 때의 일이다. 아내는 야간 근무를 하기 때문에 밤 12시쯤 일이 끝났다.
차가 한 대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매일 아내를 데리러 가야 했다.
하루는 평소처럼 자정이 넘은 시간에 아내를 차에 태워 나오는데 갑자기 앞에서 불빛이 환해지더니 경찰이 우리 차를 세웠다.
원래 미국에서는 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되면 차에서 나오지 말고 운전대를 잡고서 경찰의 지시에 순서대로 응해야 한다.
그런데 당시 그런 행동 수칙을 알 리 만무했던 내가 차에서 내리자 경찰은 권총이 있는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아마 "당신 그 건물에서 뭐 했어?"라고 물었던 것 같은데 워낙 겁에 질려 있었던 터라 경찰이 하는 말이 한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 돈트 노우"라고 대답했다.
그 건물에서 무슨 볼일을 보고 나오느냐고 물었는데 내가 모른다고 말했으니 경찰이 기가 찰 법도 했다.
경찰이 신경질조로 "모른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라고 되물었다. 그제야 겨우 알아듣고 아내를 차로 픽업해서 나오는 길이라고 이야기했다.
겁에 질린 내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이곳은 새로 공사를 하는 지역인데 공사 현장에서 여러 번 도난 사고가 있어서 수상한 사람들을 잡는 중이었다"고 경찰이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매니저로 일하던 시절에는 익숙지 않은 발음 때문에 종종 실수를 했다. 영어의 발음은 때로는 상상을 초월한다.
예를 들어 'San Jose'라는 도시가 있다. 한국의 표기법으로는 새너제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샌호세'로 발음한다.
또 'Duarte'라는 도시 이름이 있다. 이것은 '듀얼트'가 아니라 '듀아리'라고 발음한다.
미국에서는 우범자들이 벽에 페인트로 낙서를 많이 하는데 그것을 '그래피티(graffiti)'라고 한다. 나는 이 단어의 액센트가 첫 번째 음절에 있는 줄 알고 직원들 앞에서 '래'에 액센트를 주어 '그래피티'라고 발음했다.
회의장에 폭소가 터졌다. 알고 보니 '피'에 액센트가 있어서 '그러피티'라고 발음해야 하는 것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