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퍼블릭 에너미 (Public Enemies)
공공의 적과 영웅, 반영웅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공공의 적’ (public enemy)이란 용어는 1930년대부터 미국에서 사용되던 용어다. 특히 시카고에서 전문 은행털이범으로 명성을 떨치던 존 딜린저를 FBI의 젊은 국장 에드가 후버가 ‘공공의 적 제 1호’로 지목한 것이 이 영화의 배경이 된다.
대공황 시대. 모든 국민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허덕일 때 은행만 이윤을 챙기고 있어 서민들의 불만이 높다. 이때 존 딜린저 (조니 뎁 분) 일당이 등장하여 은행만을 전문적으로 털어 서민들로부터 영웅시 (또는 반영웅시) 된다.
FBI에서는 이들을 ‘공공의 적 제 1호’로 지목하고, 특급 수사관 멜빈 퍼비스 (크리스천 베일 분)를 중심으로 전담반을 설치, 존 딜린저 일당 검거에 총력을 기울인다.
조니 뎁이 분한 존 딜린저는 엄연히 악당임에도 너무나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은행 갱이면서도 매너가 좋고, 최대한 살상을 자제하며, 동료들 간의 의리도 남다르며, 사랑하는 여인에겐 헌신적인 낭만파의 모습을 보여 준다. 조니 뎁이 이전까지 보여온 것과는 다른 성격의 캐릭터임에도 멋진 연기를 펼치고 있다.
이에 비하면 크리스천 베일이 분한 멜빈 퍼비스는 상대적으로 한결 초라하다. 은행 갱들에 비해 오히려 치사한 방법을 동원해 수사를 펼치는 수사관들 중에선 비교적 신사적인 면모를 지키고 있지만, 그래 봐야 존 딜린저의 매력에 미치지 못한다. 현재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들이라고 할 만한 두 배우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을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겠다.
<라 비 앙 로즈> (2007)로 작년도 아카데미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마리온 꼬띠야르가 존 딜린저의 애인 빌리 프리쉐 역으로 나오는데, 이 둘의 만남과 이후 전개되는 애정 행각이 영화의 흐름과 잘 섞이질 못한다. 영화에 비쳐진 대로라면 빌이 존을 받아들인 건 순전히 호강, 또는 신분 상승을 위한 목적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영화 말미에서 존 딜린저가 영화를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클락 게이블 주연의 <맨하탄 멜로드라마> (1934)라는 영화다. 곧 그에게 닥쳐올 운명을 예시하는 듯한 내용인데, 실제로 존이 그때 그 영화를 봤는지 흥미롭다.
스토리가 뻔한 영화지만 초반에는 예상보다도 더 지루하게 진행된다. 2시간
20분에 이르는 영화가 계속 이러면 어쩌나 싶을 정도다. 그러나 다행히 뒤로
가면서 영화에 긴장과 생기가 살아나 후반에 들어서는 마이클 만 감독다운
화면을 보여 준다. 그의 장기인 총격전 씬도 ‘역시!’ 하는 탄성을 자아낸다.
영화가 끝난 후 자막을 통해 멜빈 퍼비스가 1960년에 자살했다고 나오는데 관객을 오도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존의 애인 빌리는 결국 그토록 떠나고 싶어했던 고향 위스콘신으로 돌아갔다고 나온다.
다이아나 크롤이 부른 ‘바이 바이 블랙버드’가 영화 전편에 걸쳐 적절하게 깔린다.
참고로, 사실을 따지자면, 존 딜린저 일당은 유명은 했지만 작은 패거리에 지나지 않았고, 당시에는 알 카포네와 메이어 랜스키 같은 기업형 갱단이 세력을 잡고 있었다.
최인화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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