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 [강석희 어바인 시장 자서전 '유리천장 그 너머'-29] 웅변대회 수상 휩쓸어 '영어 본색' 발동···대학가에서 영어 잘하는 학생으로 유명세
방학 동안 우리는 미국 공보원에서 살다시피 했다.방학 때마다 영어 연극 대회가 열렸는데 우리는 이 대회를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 영어로 말하는 것도 힘든데 익숙지 않은 연기까지 해야 하니 준비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숫기가 없고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스스로 믿었던 내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외워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작과 표정을 섞어서 연기하는 경험은 나를 또 다른 세계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연기도 곧잘 한다고 했다. 감춰진 끼 같은 것이 발동한 것일까.
무대에 한번 서보고 나니 점점 더 자신감이 생겼다. 무대 공포증도 없어졌다. 주위에서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더 신이 났다. 칭찬은 사람의 끼를 끌어내고 발산시키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어느 모로 보나 평범하고 수동적이었던 내가 클럽 활동을 통해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고나 할까.
나는 변화하는 내 자신이 신기했다. 영어에 푹 빠져 있는 동안 대학 생활 2년이 훌쩍 지나갔다.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입영통지서를 받고 나서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서예를 시작했다. 그때 시작한 서예가 지금까지 취미 생활의 한쪽을 차지하게 되었다. 지금도 묵향회라는 서예 동호회 모임에 참여하며 즐기고 있다.
나는 자랑스러운 육군 병장으로 34개월의 군복무를 마쳤다. 군단 본부에서 당번병을 했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 시간이 많았다. 제대를 6개월 정도 앞두었을 즈음 영자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영어 본색'이 발동한 것이다.
1975년 9월 제대하고 복학하자마자 파인트리 클럽 멤버들이 모이는 곳을 찾았다.
'더 그룹(The Group)'이라는 이름 아래 영국 대사관에서 모이고 있었다. 대학 초년 시절 알고 지냈던 선배들은 나를 보더니 무척 반가워했다. 당시 영국 대사관 3등 참사관이었던 워릭 모리스라는 사람이 우리 모임의 어드바이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영어 웅변대회 준비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모리스는 원고도 수정하고 발음도 잡아주면서 자상하게 지도해 주었다.
인구 문제를 주제로 코리아 헤럴드 웅변대회에 참가해 당당히 대학부 1등을 차지 국회의장상을 받았다.
학창 시절 내내 영어 외에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었던 나는 영어 웅변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면서 자신감이 더욱 충만해졌다. 내친김에 중앙대학교 주최 영어 웅변대회에도 나가 1등을 차지했다. 모교인 고대에서 개최한 대회에서도 1등을 했으나 타 대학에서 1등을 했기 때문에 자격이 없다고 해서 상을 반납하기도 했다.
각종 영어 웅변대회를 휩쓸자 서울의 대학가에서 영어에 좀 관심이 있다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내 이름이 꽤 알려지게 되었다.
영어 스타가 된 나는 '파인트리'나 '더 그룹'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영어 공부를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자문을 구하는 친구도 많았다. 그래서 후배들을 모아 영어 공부 모임을 만들어 영어 웅변 테크닉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가르치면서 배운다고 정작 이런 활동을 통해 이득을 보는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우리는 또 '굿 윌 데이Good Will Day'라고 해서 미군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교류하는 모임도 가졌다. 미군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면서 영어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다.
돌이켜보면 파인트리 클럽에 가입해 영어와 깊은 인연을 맺었던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은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기였다.
영어를 통해 얻은 성취감 덕에 나는 무슨 일이든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의지를 다질 수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별다른 포부가 없었던 내가 영어 공부를 계기로 꿈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막연한 '아메리칸 드림'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으로 훌쩍 떠나버린 형 그 형 때문에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동경심을 품어왔는지도 모른다.〈계속>
글= 올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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