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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 [강석희 어바인 시장 자서전 '유리천장 그 너머'-23] 한인들 교육기금 20만달러 내놓자 지역사회서 한인 보는 눈도 달라져

나는 즉각 시의회에 긴급 협동 기금 100만 달러를 교육구를 위해 기부하자는 내용의 안건을 제출했다.

커뮤니티에서 기금을 모으면 같은 액수를 시정부가 보태 교육구의 예산을 지원해 주는 매칭펀드기금을 모은 액수만큼 지원해 주는 방식를 제안한 것이다.

결국 매칭펀드로 교육구 예산을 도와주자는 안건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고 나는 한인사회를 상대로 기금 모금에 나섰다. 어바인 한인 학부모회를 포함해 한인 교회 한인 기업체 대표들을 만나 지원을 당부했다.

특히 기업체들에 대해서는 사회에서 버는 돈의 일부를 2세 교육을 위해 환원해 달라고 호소하면서 동참을 촉구했다.

그 결과 한인 커뮤니티에서 가장 먼저 20만 달러가 모였다. 어바인 시에서 그 액수만큼의 매칭펀드를 내놓았으므로 교육구는 한인사회의 노력으로 40만 달러의 예산을 늘리게 되었다.

한인사회에서 먼저 바람을 잡자 다른 커뮤니티와 단체들도 잇따라 모금에 동참했다. 교육구에서 한인 커뮤니티에 특별히 감사를 표하게 된 데서도 알 수 있지만 교육 기금 모금은 지역사회에서 한인사회를 다시 보게 한 계기가 되었다.

2008년 시장 선거에서도 가가호호 방문은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발바리 캠페인'은 이제 나의 트레이드 마크로 굳어졌다. 2006년 시의원 재선 때도 1만 가구를 돌았는데 이번에도 그 정도는 돌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08년 8월부터 본격적인 도보 캠페인에 나섰다. 이번에는 두 번의 선거를 치르면서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우드브리지 지역을 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보수적인 노인들이 많아 여태껏 민주당이 이긴 적이 없기 때문에 대충 포기하는 곳이었다. 선거 때마다 6대 4 또는 7대 3 정도로 민주당이 항상 지곤 했다. 그 지역에 공을 들이느니 차라리 부동층을 더 끌어당기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거의 외면해 왔던 것이다.

나는 우드브리지 지역을 다 훑기로 마음먹었다. 면전에서 구박당하는 일도 많으리라 짐작하며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반응이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문전박대하는 집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만나보니 의외로 우호적이었다.

"시의원 활동을 지켜봤는데 잘하더라" "유심히 봤는데 논리도 정연하고 화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는 칭찬도 받았다.

우드브리지 지역을 돌면서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선입견 때문에 시도해 보지도 않고 망설이고 주저했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는 반성과 함께 도전 정신과 자신감도 갖게 되었다. 내 생각이 결코 완벽할 수 없다는 것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 해보기도 전에 못한다는 가정은 금물이라는 것 하다가 포기하게 되더라도 일단은 실천해 보자는 것 우드브리지 캠페인은 나에게 이런 교훈을 주었다. 그리고 이 경험은 나를 주민들 앞에서 더욱 겸손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계속>

글.사진=올림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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