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 [강석희 어바인 시장 자서전 '유리천장 그 너머'-14] 역시 정치란 진흙탕 싸움인가
"왜 그러세요 사모님. 제가 혼자서 이렇게 돌아다니는 게 안쓰러워서 그러시는 거예요? 괜찮습니다. 힘들지 않습니다.""그게 아니고요… 우리 집에서 강 선생님께 세 표를 드릴 수 있었는데 남편이 지난주에 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미안하게도 두 표밖에 드릴 수가 없어요." 그러면서 눈물을 글썽글썽하는 것이었다. 남편의 유골이 오기로 예정된 날이라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초인종 소리가 나서 배달원이 온 줄 알고 나왔노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남편의 죽음으로 한 표를 못 주게 되어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내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차올랐다. 우리는 서로 손을 꼭 잡고 눈시울을 붉혔다. 나도 황무지 같은 곳에서 한 표 한 표를 구하느라 힘든 캠페인을 하고 있지만 당신의 고통은 얼마나 더 크겠느냐며 마음의 위로를 전했다.
"꼭 당선되어 돌아가신 남편의 뜻에 보답하겠습니다. 힘내세요."
이런 인연이 있었던 김 여사도 어바인 시장 선거를 치르면서 우연히 한 후원 모임에서 만났다. 김 여사는 사별한 남편 이야기를 하면서 기억나느냐고 물었다.
"아 그때 그 김 여사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죠."
그날 대화를 나누던 장면이 마치 엊그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감격적인 재회였다.
나는 지난 3년 반 동안 한 한국어 라디오방송의 정치 칼럼니스트로서 매주 금요일마다 칼럼을 방송했다.
그때 김 여사 이야기도 방송에 소개한 적이 있었다. 나와 김 여사 로라 베이든 두 여성과의 애틋한 만남과 재회가 화제가 되면서 사람들은 나의 인간적인 면모를 다시 보게 되었노라고 말했다. 이 같은 나의 경험담은 청취자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숱한 에피소드와 인연이 생겨났지만 두 여성과의 만남과 재회 그리고 우정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감동적인 만남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반드시 당선되어서 이분들에게 보답해야겠다는 나의 결의도 점점 단단해져 갔다. 또한 공인이 되려면 책임감과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느끼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주민 앞에서 겸손해져야겠다고 누누이 다짐했다.
발바리 유세는 길고도 힘든 여정이었지만 나 스스로에게도 많은 교훈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수키 캥은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캠페인이 종반전으로 넘어가면서 사람들은 나의 당선 가능성을 조심스레 언급하기 시작했다. 한인 언론들도 후보 단일화가 실패했을 때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지만 갈수록 뒷심을 발휘하는 한인 후보들을 보면서 서서히 강석희 최석호 두 사람의 동반 당선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사실 선거운동 초반은 위태로웠다. 각 정파에서 후보를 확정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갈 즈음인 2004년 초 우리 민주당에 큰 위기가 닥쳤다.
재선이 유력시되던 크리스 미어스 부시장 겸 시의원이 갑자기 출마를 포기하고 반대쪽 후보팀을 지지하며 에이그런 시장 낙선 운동에 뛰어든 것이다. 미어스 시의원은 자신이 민주당의 시장 후보로 낙점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에이그런 시장이 베스 크롬 시의원을 시장 후보로 추천하자 이에 반발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보수 성향이 짙은 오렌지 카운티에서 유일하게 민주당이 다수파를 차지하고 있는 어바인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하고 있던 공화당은 이번 선거에서 반드시 다수파의 자리를 찾으려고 작정한 듯했다. 막대한 정치자금을 은밀하게 지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계속>
글= 올림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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