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 [강석희 어바인 시장 자서전 '유리천장 그 너머'-6] "너 같은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해"
친구들 격려에 천군만마 얻은 듯
그러나 당시 민주당은 에이그런 시장시장도 시의회 의결권이 있다과 시의원 2명을 포함해 3명이었기에 상대 공화당의 2명을 앞서 있었다. 물론 시의회에서는 당적을 내걸 수 없도록 정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민주당이 어바인의 집권당이었다. 시의회에서 수적으로 열세면 시장이라 할지라도 시정부의 중요한 정책 결정을 주도하기는 어렵다.
에이그런 시장은 민주당의 상징적 인물이어서 반대편의 공화당으로부터 항상 도전과 공격을 받고 있었다.
그는 2004년 말이면 임기가 끝나고 3연임 금지 조항에 묶이는 상황이어서 같은 팀인 베스 크롬 시의원을 시장 후보로 내세웠다. 임기를 마치고 다시 시의원에 출마하더라도 민주당 출신 시의원이 한 사람 더 당선되어야만 민주당이 다수파로서 계속 의결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에게 시의원 출마를 제안한 것은 상당한 정치적 모험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믿고 과감하게 출마를 제안한 에이그런 시장이 너무 고마웠다.
당시 현지 동포 언론들은 나의 출마 가능성을 시사하는 뉴스를 간간이 보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한 적이 없었다.
그날 에이그런 시장은 앞으로 한 달 동안 지인들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말했다. '시의원 출마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는데 당신들의 생각은 어떤가'라고 구체적으로 물어보라는 이야기였다. 그 반응을 보고 나서 최종 결정을 하라는 의미였지만 그는 이미 나의 지인들이 출마를 지지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선거가 있던 해인 2004년 1월 나는 800여 명의 지인에게 일제히 편지를 발송했다. 회신용 엽서에는 몇 가지 설문과 함께 나의 시의원 출마에 대한 의견을 묻는 칸을 두었다.
보통 미국에서는 이렇게 다수에게 편지를 보내고 회신을 받는 비율이 5퍼센트를 채 넘지 못한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내가 100여 통의 답장을 받은 것은 놀라운 수치였다. 물론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이어서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예상보다는 훨씬 많은 답장이 왔다. 그리고 더욱 깜짝 놀랐던 것은 정치 입문을 반대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어느 미국인 친구는 "It's about time! 이제 때가 되었다!"이라면서 내가 정치에 나서면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너 같은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친구들의 격려도 많았다. 확신이 없어서 미적거리던 내게 이들의 편지는 큰 힘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그래 가는 거야. 해보는 거야. 최선을 다하면 후회는 없을 거야.' 나는 스스로 최면을 걸며 에이그런 시장에게 나의 결심을 알렸다.
"그것 보시오. 내가 진작에 알아보지 않았소. 이제 뒤돌아볼 것도 없이 앞만 보고 뜁시다."
나는 그에게 많이 가르쳐주고 밀어달라 나는 열심히 뛰는 것밖에 아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 둘은 서로 손을 꽉 잡으며 한배를 타는 민주당 출마팀으로서 정치적 동지로서 의기투합했다.
아내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이제는 말려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자포자기했는지 내 결심을 전하자 뜻대로 하라고 마지못해 인정해 주었다.
사실 LA폭동 이후 내가 한인사회 활동에 전면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면서 아내는 속으로 불만이 적지 않았다. 아니 걱정이라고 표현해야 옳을 듯싶다. 정치나 정치인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은 터에 내가 슬슬 정치 활동을 넓혀 나가자 못마땅해 했다.〈계속>
글=올림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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