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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 [강석희 어바인 시장 자서전 '유리천장 그 너머'-5] '10만 달러는 모르겠지만 1만가구 방문은 자신있소'

차량을 구입할 때 복잡한 영문 계약서 때문에 소수계 이민자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를 시정하기 위해 중국계 주디 추 의원이 계약서 이중언어 표기 법안을 제안했을 때도 나는 한인단체들과 함께 이를 이슈화하고 서명 운동 등을 펼쳐 법안 통과에 일조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나는 우리가 정치에 눈을 뜨면 뜰수록 소수계 이민자들의 권익이 커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점점 더 정치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정치란 잘만 하면 재미와 보람 스릴을 맛볼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에이그런 시장과의 인연을 계기로 나의 활동은 더욱 속도가 붙기 시작했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변에서는 나를 정치 활동가 정치 지망생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선 나는 발을 뺄 수도 그렇다고 부인할 수도 없는 '정치권 인사'가 되어버렸다.

일요일 아침에 에이그런 시장은 그물에 갇힌 고기를 건져 올리듯 손쉽게 고기를 잡은 것이고 나는 스스로 그들의 그물에 다가간 셈이 되었다.

자기편 한 명을 끌어들이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관찰해 왔을 그의 입장을 생각하니 그분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라도 이제는 '노'라고 말하기엔 시간이 너무 흘러버린 것이다.

"주위에서 한번 뛰어보라는 권유가 많아서 해볼까 하는 의향은 있습니다만 아직 확신이 서지를 않습니다. 제가 살아온 경험을 비추어볼 때 뭐든 하게 되면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 같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신이 설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수용도 거부도 아니었다. 어쩌면 유보적인 승낙에 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정쩡한 반응을 보이자 에이그런 시장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의미 있는 미소를 던졌다.

그러고선 눈을 한 번 지그시 감았다 뜨더니 반쯤은 친근하게 반쯤은 사무적인 어투로 말문을 열었다.

"수키 내가 지금 당신이 두 가지 약속을 지킬 수 있는지를 물어보겠소. 만약에 이 두 가지를 지킬 수만 있다면 나는 당신을 다음 시의원으로 만들기 위해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소."

그는 나에게 두 가지를 물었다. 하나는 10만 달러 정도의 정치자금을 모을 자신이 있느냐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내가 어바인 시에서 얼굴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니 적어도 1만 가구 이상을 두 발로 걸어서 가가호호 방문하며 유세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어림잡아 6만 가구 가운데 1만 가구를 방문하여 다시 말해서 초인적인 발품을 팔아서 얼굴 알리기를 할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10만 달러를 모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자신은 없다 그렇지만 한번 해보겠다고 말했다. 1만 가구를 두 발로 걸어서 유세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자신 있다고 대답했다.

돈을 모으는 일이야 내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집집마다 방문하는 일은 내가 부지런하기만 하면 되니까 못할 게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동안 주말도 제대로 쉬지 않고 일만 하다시피 살아온 터라 몸으로 때우는 일쯤은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얼핏 25년 전 미국 땅을 처음 밟은 뒤 두 달여 만에 전자제품 유통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면접을 보던 장면이 떠올랐다. 시간만 흘렀을 뿐 그때의 상황과 너무 흡사했던 것이다.

면접관들은 이민 온 지 두 달밖에 안 되는 동양계 청년이 뭘 하겠나 싶은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먹고사는 문제가 절박했던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석 달만 기회를 주십시오. 당신들이 실수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드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그 광경이 떠올라 나는 혼자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내 대답을 들은 에이그런 시장은 활짝 웃으며 충분히 가능성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었다.〈계속〉

글.사진=올림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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