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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 [강석희 어바인 시장 자서전 '유리천장 그 너머'-1]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 선포' 성사 뿌듯

에이그런 시장은 나의 정치적 스승이자 동반자
첫 만남서 '시차원서 추진 해달라' 강력히 요청

이 책엔 인간 강석희가 이민 1세대로서 갖은 어려움과 한계를 극복하고 어바인의 수장으로 등극하기 까지의 과정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본지는 OC섹션 창간 특집으로 강 시장의 자서전을 연재하기로 했다. '유리천장 그 너머'는 언어와 문화차이로 고전하는 1세들은 물론 후세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장벽도 노력 여하에 따라 뚫고 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 줄 것이다.

◇ 제 1장 내 이름은 수키 캥
-정치적 스승과의 운명적 만남


"내년 1월 13일이면 우리 한국인이 처음 미국 땅을 밟은 지 100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우리가 무엇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냥 가만히 있으면 미국 사람들은 우리의 이민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게 될 겁니다. 우선 우리가 사는 어바인 시정부 차원에서라도 미국 이민 100주년을 기념할 수 있도록 우리가 앞장을 서야 하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우리가 가만있을 수 없죠." 2002년 8월 당시 오렌지 카운티의 '한미연합회'라는 동포사회의 정치력 신장을 위한 시민단체의 이사장을 맡고 있던 나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김률 변호사와 함께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나는 10여 년간 어바인에 살다가 인근의 애너하임으로 이사 가 8년여를 산 뒤 다시 어바인으로 막 이사를 한 상태였다. 어바인에서는 공적인 일을 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시정부 쪽으로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2003년 1월 13일을 기해 어바인 시정부가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의 해'로 선포해 줄 것을 요청하기로 했다. 중간 다리 역할은 김 변호사가 맡았다. 그는 당시 재선 임기 중이던 래리 에이그런 시장과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어서 친분이 있다고 했다.

김 변호사의 주선으로 나와 김 변호사 에이그런 시장 그리고 부시장 이렇게 4명이 시장 집무실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훗날 나의 정치적 스승이자 멘토가 된 에이그런 시장과의 첫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에이그런 시장은 자신감이 넘치는 인상이었다. 하기야 시의원과 시장을 번갈아 맡으며 20년 이상 어바인을 대표하는 지역 정치인의 대명사로 자리획 굳힌 인물이니 오죽하겠는가. 둥근 쇠테 안경 너머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백전노장의 백인 정치인에게 한국 이민자를 위해 시정부에서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의 해'로 선포해 달라는 주문이 과연 먹힐까. 나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어렵게 내가 말을 꺼냈다.

"지금 미국에는 200만 명이 넘는 한인 이민자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민을 시작한 역사가 내년이면 100년을 맞습니다. 한인들은 교육 수준이 매우 높아 성공적인 이민사회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미국 한인동포의 절반 이상이 LA를 비롯해 캘리포니아 남부에 밀집해 살고 있습니다. 어바인은 한인동포들이 가장 좋아하는 도시이며 최근에 유입 인구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대충 이렇게 배경 설명을 하고 2003년이 한인 이민자가 미국 땅을 밟은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이니만큼 시정부 차원에서 이를 기념해 달라는 뜻을 전했다.

◇스승이자 동반자 에이그런 시장

에이그런 시장이 다인종 문화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사람이란 것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왜 이제야 찾아오셨습니까. 나도 LA지역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코리아타운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한국 이민자들이 미국 땅을 밟은 지가 벌써 100년이 됐습니까? 아 이민 역사가 그렇게 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놀랍군요. 당연히 시정부 차원에서 기념을 해야지요."

어바인이 살기 좋은 도시로 소문나면서 교육 수준이 높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소수계 특히 아시안 이민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에이그런 시장은 다인종 문화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는 20년 전 시장으로 있을 때 어바인 시의 자매결연 프로그램을 처음 입안하고 이후 일본의 쓰쿠바 시 타이완의 타오위안 시 그리고 멕시코의 에르모시요 시 등과 자매결연을 맺어 다인종 문화에 대한 식견과 이해가 깊은 인텔리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어느 도시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는 상황에서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의 해'를 선포하려면 정치적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을 우려하던 차여서 에이그런 시장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나는 이런저런 화제를 꺼내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대화는 두 시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우리는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미국에 오게 된 배경 서킷시티라는 전자제품 유통 회사에서 15년간 세일즈맨과 매니저로 일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아울러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한인사회의 정치력 신장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는 말도 전했다.

에이그런 시장도 자신이 왜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시의원과 시장으로서 일하고 있는지 공직자로서 자신이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서로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주다 보니 코드가 맞았다고나 할까 흥이 났다. 나는 에이그런 시장과의 흥미로운 대화를 끝내면서 '아 저 정도의 인물이라면 적극적으로 도와주어도 후회가 없겠다 아니 적극적으로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고 보니 아마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에이그런 시장은 나에게서 한인 커뮤니티의 좋은 지도자감이란 인상을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날의 인연을 계기로 에이그런 시장과 나는 암묵적인 정치적 동반자요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그가 57세 내가 49세 때였다.

민주당 당적인 에이그런 시장은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수재다. 지역사회에 봉사하겠다는 신념이 강했던 그는 어바인에서 1978년부터 1990년까지 12년간 시의원을 지내며 시의원 중에서 선임되는 간선 시장도 몇 차례 지내다가 공화당 측의 낙선 운동에 밀려 8년간 정치적 공백기를 보내기도 했다. 1992년 대선 때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을 정도로 배포가 크다.

또 인지도가 낮다고 후보 토론회에서 배제하자 거칠게 항의하여 당시 토론회가 열렸던 시카고를 들썩거리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한편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굽히지 않는 성격 때문에 불필요하게 적을 많이 만든다는 비판도 받는 인물이다.

글.사진 제공=올림출판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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