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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인물열전] 와스디, 최초의 페미니스트

이상명 교수/미주장로회신학대 신약학

요사이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퍼스트레이디들이 있다. 한 명은 엘리제궁을 박차고 나간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의 전 부인이었던 세실리아와 남성 우월주의 기질이 강한 남편인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와 이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베로니카 라리오가 그들이다.

전통적인 퍼스트레이디 상과는 동떨어진 이들의 행보는 가십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들보다도 훨씬 오래 전에 퍼스트레이디였지만 공지영의 소설 제목처럼 무소의 뿔처럼 자신의 성적 존엄성과 권리를 지키고자 자신의 길을 갔던 성서 속 최초의 페미니스트가 있다.

그녀는 왕후 와스디이다. 에스더서가 보도하는 와스디 항명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당대의 대제국이었던 페르시아(바사) 왕인 아하수에로가 즉위한 지 삼년에 제국의 부와 위엄을 만방에 알리기 위해 큰 잔치가 배설되었다. 그 때 왕은 주흥이 일어나서 왕후인 와스디의 아리따운 용모를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신하와 백성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잔치의 여흥은 왕명에 대한 와스디의 단호한 '아니오'로 일순간 찬물을 끼얹게 되었다. 공개적 망신살을 당한 왕은 격노하여 현자들과 상의한 후 각 도에 조서를 내려 와스디를 폐위시켰다.

폐위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왕명 거역이고 또 하나는 이 일로 인하여 전국의 아내들이 남편들을 멸시할지도 모르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조처였다.

와스디가 왜 왕명을 거역했는지 성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다만 짐작컨대 한껏 취기 오른 뭇 사내들 앞에서 한낱 노리개나 눈요기 거리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주체성을 지키려 한 때문이리라.

그러나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철저한 가부장적 남성 우위의 사회에서 그것의 정점에 서있는 왕에게 항명했으니 그녀의 용기가 사뭇 대단하다. 와스디는 소위 '인형' 같이 살아가는 왕후가 되기보다는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를 원했던 무소의 뿔처럼 당찬 여인이었다.

여성과 남성 사이 성의 차이를 인식하되 성을 차별하는 어떠한 행위도 용납지 않는 사회가 희망 있는 사회가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와스디의 '아니오'가 더욱 비장하게 느껴지는 것은 성차별 없는 세상에서 우리의 딸들이 마음껏 나래를 펼치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 땅의 아버지들의 한결같은 마음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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