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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목신(牧神)의 오후

서량/정신과전문의·시인

인상파 음악의 거두 드뷔시가 말라르메(Mallarme)의 시에 곡을 붙여 1894년 파리 초연에서 프랑스를 발칵 뒤집어 놓은 ‘목신의 오후’ 전주곡 멜로디를 당신은 기억하는가. 목신이 풀밭에 누워 비너스 여신을 포옹하는 꿈을 꾸는 그 나른하고 감각적인 화음 진행을.

희랍 신화에서 목축의 신, 판(Pan: 牧神)은 상반신은 사람이면서 하반신이 염소 비슷한 동물의 몸이었다. 음악을 즐기고 요정과 춤을 곧잘 추던 ‘Pan’은 양떼와 목동들을 보살피는 숲과 들의 신이었다.

그러나 당신은 적막하고 어두운 숲 속에서 어떤 미신적인 공포를 느끼지 않았던가. 성황당 앞에 우뚝 선 고목이나 잎이 울창한 은행나무를 어느 유년의 저녁에 얼핏 올려다 보았을 때 등골을 스치던 전율이 있지 않았던가.

음습한 숲 속이나 바람 부는 벌판에서 우리는 이유 없는 무서움에 소스라친다. 그래서인지 15세기 불어로 ‘panique’는 ‘공포’라는 의미였고 18세기 중반에 영어의 ‘panic’은 우리가 대경실색하는 ‘경제공황’이라는 의미를 파생시켰다.

불안(不安)하다는 것은 마음이 편치 못하다는 뜻이고 남성 우월주의적인 한자로 해석하면 ‘여자가 지붕 아래 있지 않은’ 상태다. 영어로 직역하면 ‘uncomfortable’.

‘comfort’는 라틴어로 ‘함께(com)’와 ‘힘쓰다(fortis: 음악용어의 forte와 같은 어원)가 합쳐진 단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양키들의 불안증세는 함께 힘을 모으지 못하는 고독한 인간조건을 묘사하고 우리의 불안증 또한 여자가 집에 없는 남자의 상황을 시사한다.

지금은 속어가 돼버린 ‘계집’이라는 말도 워낙은 여자가 ‘집에 계시다’를 강조하는 어원에서 왔다. 자고로 인류의 신경증세는 독력으로 자연에 대처하는 힘겨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신과에서 자주 쓰는 용어로 ‘anxiety’는 또 어떤가. 이 단어는 ‘anger(분노)’나 ‘anguish(번민)’와 어원을 같이한다. 독일어로 ‘angst(불안증세)’ 같은 말 뿌리다. ‘ang’은 전인도유럽어로 좁다는 뜻의 말이었다. 이를테면 교통체증이라던가 동맥경화증에서처럼 흐름이 원활치 못하다는 의미다. 우리말로 답답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곧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을 연상시키는 정황이다. 성경에서도 지적했듯 삶에 있어서 희희낙락하는 기쁨보다는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 정신신경증상이 진리와 진실에 도달하는 첩경임을 암시한다. 불안감은 생의 원동력이다.

‘anxiety’가 교통체증에서 오는 좌절감을 연상시킴에 반하여 ‘fear’는 고대영어에서 ‘danger(위험)’이라는 뜻이었다. fear는 숲 속, 혹은 성황당 입구의 초현실적 무서움이 아닌 아주 현실적인 위기의식이다. 당신이 네거리 신호등에 노란 불을 가로질러 급하게 차를 모는 도중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는 순간 건너 쪽에서 당신을 주시하고 있는 경찰차를 보고 가슴이 철렁하는 그런 몸 떨림에 해당된다.

전세계가 주목했던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이 끝났다. 그도 인류의 경제위기에 대해 무엇인가 위로(comfort: 함께 강해짐)하는 발언을 했다.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당신은 1933년 루즈벨트 대통령의 취임연설에서 역사에 남는 불후의 발언을 기억하리라. “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 ? 오로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일 뿐이다. http://blog.daum.net/stickp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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