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신학]“하나님의 눈길이 머무는 인생”
세상의 화려한 주목을 떠나, 주님의 마음을 좇아서 아낌없이 떠나셨던 한 분을 소개한다.필자의 모교 은사이신 시카고의 트리니티신학교의 웨인 그루뎀 교수다. 사실 처음에 필자는 그분이 유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필자가 졸업하고, 그 분이 트리니티를 떠나서, 당시엔 거의 신학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지금의 아리조나주의 피닉스로 옮기시면서 하신 말씀을, 신학교 동문 뉴스레터를 통해서 보게되고 다시금 그 분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 분이 당시에 사모님께서 몸이 많이 않좋아서, 요양차 피닉스 지역을 방문하셨다. 사모님이 그곳에서 몸도 회복되고 좋아하시는 것을 보면서, 교수님은 그곳으로 이사하는 것을 제안하셨다. 사모님은 개인적으로는 좋지만, 문제는 교수님이 가르칠만한 곳이 그 곳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트리니티에서는 당시에 파격적으로 연구교수직을 제의해서, 따뜻한 봄학기는 시카고에서, 추운 가을과 겨울엔 피닉스에 있도록 하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교수님은 미련없이 당시에 이름도 없던 피닉스신학교로 옮기셨다. 그리고 그 뉴스레터에 다음처럼 남겼다. “우리가 사역지를 정할 때, 그곳의 크기나 상태나 숫자의 외적인 것에 의해서 결정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미련없이 약 20여 년을 몸담았던 신학계에서 잘 알려진 그 신학교를 떠나셨다. 과하게 표현하면, 일종의 학문적, 사회적 유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성경의 사무엘상 16장(1-13절)을 생각해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바로, 하나님의 관심은 왕궁에 있었던 사울이 아니라, 양치는 목장의 다윗이었다. 그 분의 관심은 화려한 장소와 인생이 아니라 세상, 심지어 가족들도 무관심했던, 심지어 냄새나는 곳인 양치는 목장에 있던 막내 다윗에게 멈췄다. 무엇보다도 불순종하는 화려한 인생과 장소보다 순종하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인생과 장소에 하나님의 눈길이 머물렀던 것이다.
요즘 각종 미디어나 뉴스를 통해서 보면 우리 시대엔 하나님의 관심은 화려한 장소, 화려한 위치, 화려한 인생에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일들이 부쩍 많아보인다. 심지어 교회와 목회, 신앙생활에서도 이런 어리석은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슬픈 현실이다.
필자는 사무엘서의 말씀을 통해서 세상의 화려함에 압도당하기 쉬운 우리 시대에, 주님의 눈길이 머물럿던 다윗의 신앙에 다시 한번 주목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불순종하는 세상적인 화려한 곳과 존재이기를 포기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심지어 ‘냄새가 날지라도 날마다 순종하는 양치기의 삶을 경주하기’를 조용히 다짐해본다. 아울러 우리 동역자 모두가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눈길이 머무는 인생과 가정, 목회, 일터에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성경은 순종하는 인생에게 하나님의 눈길이 머물 것을 약속한다. “네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신명기 11장 12절).
바라기는 필자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이번 한 주간도 ‘하나님의 눈이 머무는 인생이요 가정, 목회, 직장’이 되길 기도한다. 마치 다윗처럼. 화려한 궁궐에 갇혀있는 불순종의 사울이 아니라....
심현찬 / 워싱턴트리니티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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