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첫 신문 추정 ‘조보’ 발견
'라이프치거 차이퉁'보다 83년 앞서
조선왕조실록에 "선조가 폐간"언급
지봉스님 공개..."진품 가능성 커"
경북 영천시 야사동에 위치한 용화사 주지 지봉 스님은 “이달 초 고서적 경매사이트에서 입수했다”고 18일 말했다. 지봉 스님은 “지난 1월 경매사이트에 조보가 올라왔는데 4월까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내가 20년간 서지(書誌) 연구에 관심이 많았기에 입수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지봉 스님이 입수한 자료는 8장 분량이다. 조보에 게재된 것으로 보이는 기사들이 담겨 있다. 1577년 음력 11월 6일과 15일, 19일, 23일, 24일 등 모두 5일치다. 6일자에는 공의전(인성 왕후)의 안부를 묻는 내용, 경연(經筵·왕과 신하들이 국정을 협의하고 학문을 논하던 일)이 열리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어 있다. 15일자에는 소 수백 마리가 전염병에 걸려 죽었다는 내용도 실렸다. 23일자에는 그날의 날씨와 별자리를 기록한 내용이 있다. 24일자에는 형조정랑 이정형(1549~1607) 등 신하들의 인사(人事) 이동 내용이 적혀 있다.
조보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중 『선조실록』 1577년 음력 11월 28일자에 처음 등장한다. 선조가 우연히 조보의 존재를 알게 되자 대신들을 꾸짖는 내용이다. 또 조보 발행에 참여한 30여 명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고 『선조실록』은 기록했다.
선조가 조보 발행에 이렇게 분노한 이유는 민간이나 외국에 국가 기밀이 빠져나가고 왕실의 체면이 구겨진다고 여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봉 스님은 “조보 발행은 당시 조정에서는 매우 큰 사건이었다. 조보를 발행한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사라졌고 조보를 입수한 사람들도 이를 폐기하거나 숨겨야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번에 발견된 조보 추정 문서도 서적 표지를 만드는 데 재활용됐다가 뒤늦게 발견됐다.
남권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형태적·내용적 측면으로 미뤄 봤을 때 진품일 가능성이 크다”며 다만 아쉬운 점은 조보의 극히 일부만이 발견돼 문화재로 인정받기에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서지학자 김영복씨는 “조보는 중앙정부의 주요 결정이나 인사 사항 등을 지방 관청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며 “조선 후기의 필사본 조보가 그간 종종 나왔지만 (임진왜란 전인) 조선 전기의 인쇄본 조보는 아직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유물이 (8장의) 조각 형태로 나온 만큼 좀 더 정확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영천=김정석 기자,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김정석 기자,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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