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에세이] 주물숭배(呪物崇拜)
‘주물 숭배’(Fetishism)는 원래 “만들어진”이란 뜻의 라틴어 facticius가 프랑스에서 fetiche로 변형된 결과다. 초자연적 힘을 지닌 자연적 물건, 또는 사람이 만들었어도 인간을 지배하는 능력이 있는 물건까지 포함된다. 그러니까 부적이나 염주 같은 것도 여기에 속한다.15세기 후반부터 포르투갈 선원들이 서아프리카의 노예 해안 (지금의 기니 만)에 드나들었을 때 그 지역 흑인들이 자연물이나 인공물 또는 일정한 동물들을 경외하면서 여기에 예배를 들이는 것을 보았다. 선원 자신들이 속한 천주교에서도 성자의 유물이나 성스러운 도구, 또는 주문(呪文)같이 “만들어진 것”을 숭배하는 것을 연상하여 부른데서 기인한다.
굳이 종교학자가 아니더라도 기독교, 특히 역사가 오래된 천주교나 그리스 정교회에서 대대로 내려온 주물숭상의 습관이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간과 신과의 직접적인 관계에서 인간과 “만들어진” 물건사이의 관련으로 차차 바뀌어 온 결과임을 알 수 있다.
특히 피는 주물로써 원시종교나 기독교나 마찬가지로 중요한 역할을 해 왔으며 식민 시대 아프리카에서는 백인의 머리털이 강력한 힘을 지닌 물체에 속했다. 이것은 주물숭배를 종교적 및 인류학적 입장에서 본 견해의 일부다.
19세기에 칼 마르크스는 생산의 주체인 인간의 노동이 소외되면서 차차 상품에 주물적인 힘이 부여되어 왔으며 그 결과 사람들은 상품을 숭배한다고 하여 주물을 숭배하는 시장이 자본주의의 근간이라고 생각했다. 유물론적인 접근이었다.
정신의학에서는 프로이드가 최초로 ‘주물숭배’(Fetishism)를 일차적으로 성적 기관이 아닌 신체의 일부, 또는 신체와 접촉된 사물에 대해 성적 애착을 느끼는 일종의 ‘성적 도착행위’로 정의했다.
그는 거세불안에 관련시켜 주물숭배의 원인을 설명했다. 남아는 어려서 어머니에게도 물론 아버지 같이 남근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몰래 훔쳐본 결과 어머니에게 남근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 많은 소년들은 경악에 빠진다. 그런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소년이라면 얼굴을 돌렸을 때 눈에 들어오는 어머니의 내복, 브래지어, 팬티, 신발, 손수건 같은 물체가 주술의 대상이 되고 만다. 따라서 나중에 소년이 자라 자위행위를 할 나이에 도달했을 때 이런 물건이 있어야만 오르가즘에 도달할 수 있다. 프로이드 후에도 주물숭배의 심리적 원인으로 태어나면서 무엇을 배우기 이전에 발생하는 ‘각인’(Imprinting)이란 현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반복적 경험에 인한 ‘조건반사’, 또는 ‘학습’에 의한 효과로 보는 견해도 등장했다.
예를 들어 2003년 4월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실험 생물학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수컷 쥐를 가지고 실험한 결과 이들은 자기가 익숙한 우리에 넣어두면 단순히 익숙하다는 점만으로 두뇌에는 성적흥분을 야기하는 화학제의 분비가 크게 증가되었다고 한다. 그 우리에 암놈이 있든 없던 또는 암놈의 냄새가 있든 없던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래서 일부 연구자들은 주물숭배도 어려서 어머니의 체취가 담긴 내의라던가 자라서 상대방 여성이 걸쳤던 속옷에 습관이 들어 발생한 단순한 조건반사나 학습의 결과일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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