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전 역사 속으로…
스태튼아일랜드 리치몬드타운(Historic Richmond Town)“스티브씨의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회색 패티코트의 옷자락이 가볍게 흔들렸다. ‘와~’ 하는 짧은 탐성이 튀어나왔다. 예상치 못한, 기분좋은 놀라움이었다. 스태튼아일랜드의 리치몬드타운(Historic Richmond Town). 그곳엔 사람을 놀래키는 어여쁜 소녀가 있다.
뉴욕시에는 5개보로가 있다. 맨해튼·퀸즈·브루클린·브롱스 그리고 스태튼아일랜드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뉴욕’하면 맨해튼만을 떠올릴 뿐이다. 누군가 스태튼아일랜드 얘기라도 꺼낼라치면 대뜸 “거기 볼 거 하나도 없어”라는 말로 말문을 닫아버리기 일쑤이다.
하지만 뉴욕을 진정 알려면 5개 보로 구석구석 숨겨진 보물까지 찾아내 가봐야 한다. 이번주 바다를 건너 스태튼아일랜드로 날아( )가자. 행선지는 리치몬드 타운(Historic Richmond Town).
별로 특별할 것은 없다. 인적은 드물고 문화재( )로 추정될만한 건물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게 다야 ” 싶다. 기대는 무너지고 온 길이 아까워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마을 초입에 길게 놓인 나무막대기를 넘었다. 왼편에 네모나게 생긴 이상한 돌탑이 보인다. “뭐에 쓰는 물건인고 ” 일단 그냥 지나친다. 왼편에 박물관이라고 간판을 내건 건물이 보인다. (“아직 들어가지 말라”고 개인적으로 만류하고 싶다.)
박물관을 지나치니 나지막한 집 하나가 보였다. 들어갔다. 순간 진홍색 드레스를 차려입은 주인장이 눈에 들어왔다. 고동색 일색인 옛물건 사이에서 한 여성이 흔들의자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신기하다. 옆에서는 몸에 딱붙는 조끼를 입고 목위까지 검은색 타이를 올려 맨, 마치 동화에 나옴직한 키작은 백인남성이 덩덜아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바야흐로 리치몬드 타운의 진짜 모습이 공개되는 순간이다.
리치몬드타운은 지난 184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관광타운이다. 모두 1000에이커에 이르는 땅에 39채의 집과 상점이 보존·복원돼 있다. 삐그덕거리는 바닥, 먼지색이 더해진 고가구, 빛바랜 종이…. 모두다 150년전 그대로이다. 물론 일부는 나중에 수리·복원됐다.
지난 1958년 뉴욕시정부는 스태튼아일랜드역사학회와 비영리기관 등의 도움을 얻어 이 마을을 관광단지로 조성했다. 먼지도 닦아냈고 안내책자도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집에 어울리는 옛사람들을 데려다 놓았다.
마을 이집저집을 다니다보면 각 집마다 옛날 옷차림 그대로를 재현한 ‘주인장 배우’들을 만날 수 있다. 아무일도 없다는 듯 창가에서 책을 읽다 관광객이 들어오면 환한 미소로 ‘웰컴’을 외친다. 마을의 역사, 특히 그 집의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일을 한다. 아까 만난 진분홍색드레스 여성. 그도 이런 배우 가운데 한명이다.
자 ‘옛사람’들을 보고 처음과는 달리 이 마을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면, 이제 마을 어귀 ‘법원’으로 달려가자. 마을을 걸어다는 것은 무료지만 사진을 찍고 건물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유료. 입장권을 끊어야 하기 때문이다.
입장료는 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커다란 그리스풍 건물 1층 로비에서 살 수 있다. ‘방문객 안내소’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하지만 ‘현대의 행정’일 뿐 원래는 ‘제3카운티 법원’이었던 곳이다. 지난 1837년에 시작, 1919년에 문을 닫았다. 입장료는 어른은 5달러, 노인은 4달러, 학생과 15세 미만은 3.50달러이다. 5세 미만은 무료.
가슴에 스티커 입장권을 달았다면 이제 본격적인 마을탐방에 나서자. 시작은 처음에 만났던 진분홍색 주인장이 있는 곳.
이곳은 지난 1840년 스티브씨가 운영하던 잡화상점이었다. 스티브씨는 잡화가게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가정집 주인이다. 아직 말하지 않았던가. 이 마을 주인공들은 모두 필부필녀일 뿐이다.
글·사진〓정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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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면 ‘리치몬드 타운’으로 계속⇒
잡화상점에서는 주인장의 설명에 따라 구체적인 건물 역사를 들으며 옛사람들의 생활상을 공부할 수 있다. 또 실내 가득 쌓인 낡은 램프부터 동전, 프라이팬 등 갖가지 옛물건도 구경할 수 있다. 역사속으로 빨려들어간 들어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주인장 배우’와 사진도 찍을 수 있다.
구경이 끝났다면 이제는 바로 옆에 있는 스티브씨 집으로 건너가자. 서두에 말했던 ‘회색패티코트 소녀’가 사는 곳이다.
삐그덕 거리는 계단을 지나 현관에 들어서자 바로 “환영합니다”라는 소녀의 앳띤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돌려 마주한 소녀. 기껏해야 18살을 갓 넘어선 듯 앳띠다. 차분한 회색 드레스 아래로 둥근 패티코트의 끝자락이 경쾌하게 흔들린다. 기분좋은 흔들림이다.
관광객이 해야 할 일은 선한 미소를 가진 그와 함께 집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것. 별로 어려울 것 없다. 아래층에서는 부엌 화로를 달궈 음식을 만드는, 아니 음식을 만드는 척하는 인상 넉넉한 소녀도 만날 수 있다.
리치몬드타운에서 만나는 광경은 거의가 이런 모습이다. 잘 정돈된 옛집들을 둘러보고, 선한 미소를 지닌 ‘주인장 배우’들의 설명을 듣는다. 한두집을 지나다보면 조금씩 지루해질만도 하련만 실제 마을을 다니다보면 어느새 2~3시간을 훌쩍 넘는다.
주인장 배우들의 살가운 미소가 함께 있어 ‘지겹다’는 생각은 미처 할 틈이 없다. 차가운 유리창으로 막혀진 맨해튼 박물관의 그것과 비할 바가 아니다.
또 집집마다 특색이 있어 이들의 차이점을 찾는 것도 또다른 관광요령이다. 마을 앞쪽에 있는 ‘보엠씨 집’에서는 직접 요리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한가지. 마을 입구에서 지나쳐온 박물관도 꼭 들어가보자. 리치몬드 마을의 역사는 물론 스태튼아일랜드의 전체 역사도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2층 한켠에 마련된 옛 장난감 전시실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1840년대 미국 조상들이 소싯적에 가지고 놀았던 진기한 장난감들도 볼 수 있다. 박물관 입장은 무료이고, 특히 플래시 팡팡 터뜨리며 마음껏 사진도 찍을 수 있다.
개장 시간은 수~토요일 오전 10시~오후5시, 일요일 오후1시~오후5시이다. 문의:(718)351-1611,9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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