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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 최대 격전, 게티스버그(Gettysburg)

사흘전투서 5만여명 사상...곳곳에 상흔 

 겉보기에는 평화롭고 소박한 시골마을인 게티스버그, 그러나 이곳 드넓은 들판에는 전장에서 희생된 수많은 젊은 영혼들이 깃들어있다.

게티스버그(Gettysburg)는 남북전쟁 최대의 격전지다. 워싱턴에서 270번-15번 도로를 타고 펜실배니아방향으로 약 1시간반정도 달리면 왼쪽으로 길게 드러누운 캐톡틴 마운틴이 끝나면서 광활한 야산자락에 게티스버그가 자리잡고있다. 곳곳에 크고 작은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들에는 소들의 풀뜯는 모습이 목가적이다.

 인구 1만여명이 살고있는 게티스버그는 140년전 사상 유례없는 격전을 치룬 전쟁터답지 않게 옛 건물들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길가에는 빈집을 공짜로 가져가라는 사인도 눈길을 끈다.

 루트 134번 테니타운 로드로 접어들면 반경 42마일의 국립군사공원으로 지정된 베틀필드(Battlefield) 한 중간쯤에 비지터센터가 있어 방문자들을 맞는다. 이곳에서 방문자들은 셔틀버스로 격전지를 돌아보는 가이드투어를 받거나 전자맵을 보며 주변 유적지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자신의 자동차로 직접 돌아볼 경우도 이곳에서 투어맵을 받아 드라이브를 시작하는게 편리하다.

 베틀필드는 곳곳에 산재한 사적지 16곳 18마일구간을 정해진 트레일을 따라 한바퀴 도는데만 2~3시간이 소요된다.입장료및 주차비는 무료.

 자녀들과 함께 게티스버그를 방문하면 이만한 산교육장이 따로없다. 격전지마다 엄숙하고 당시의 비참했던 모습을 재현해 놓아 역사를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베틀필드는 남군 로버트 리(Robert Lee)장군과 북군의 조지 미드(George G. Meade)장군의 군대가 1863년 7월1~3일 3일간에 걸쳐 치열한 격전을 벌였던 곳. 미드 장군은 전략상 요충지인 게티스버그 구릉에 포진해 값진 승리를 일궈냈다. 전쟁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단 3일만에 5만여명의 젊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했고, 베틀필드에는 전사자를 기념하는 1400개 이상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또 당시 사용됐던 400여개의 대포와 장군들의 동상이 간략한 설명과 함께 늘어서있다.

 국립묘지(National Cemetery)에 고요하게 서 있는 링컨동상을 보노라면 그의 게티스버그 명연설이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듯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링컨은 게티스버그 전투가 있었던 해 11월, 전사한 병사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제에서 ‘of the people, by the poeple, for the people’이라는 민주주의 대원칙을 밝혔다. 2~3분의 짧은 연설이었지만 오늘날까지도 생생하게 전해내려오는 명연설이다. 그래서 게티스버그는 중·고등학교들의 단골 수학여행지이기도 하다.

 게티스버그 다운타운에는 역사박물관, 레스토랑, 호텔, 기념품가게 등이 들어서 있으며, 길거리에는 전통복장을 한 군인이나 주민들이 자주 눈에 띈다.

전쟁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해놓은 왁스박물관(Civil War Wax Museum)를 비롯, 20여개의 각종 박물관들도 관광객들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게티스버그는 올해 전쟁140주년을 맞아 7월4일부터 6일까지 남북전쟁 재현 축제와 전쟁콜렉션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문의는 717-338-1525.

게티스버그는 또 34대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가 살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세계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아이젠하워는 1950년 이곳에 주택을 구입, 대통령이 된 뒤에도 이곳을 ‘작은백악관’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잘 정돈된 가든, 농장, 주택은 물론 아이젠하워를 기념하는 다양한 이벤트가 눈길을 끈다. 이곳을 관람하려면 비지터센터에서 티켓을 구입한뒤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www.nps.gov/eise

 ■전쟁소사=게티스버그 전투는 남북전쟁의 대 전환점이 됐다. 1863년 당시 북군 그랜트 장군에게 자꾸 밀리던 남군의 로버트 리 장군이 보급로 확보를 위해 7만5천명의 병사를 이끌고 펜실베니아로 진격해 들어간 것이 발단. 북군은 이를 저지하기위해 전략에 탁월한 조지 미드 장군을 게티스버그에 파견했다. 미드 장군은 9만여명의 병사들과 함께 세미트리 리지 언덕에 먼저 진을 쳐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이때 남군의 주력부대는 북버지니아군. 3일간의 일진일퇴 공방끝에 7월3일 정면돌파를 시도한 남군이 시메트리 언덕에서 되레 큰 타격을 입고 퇴각함으로써 전쟁은 막을 내렸다. 이 전투에서 남북군 젊은병사 5만1천여명이 사상했다.

게티스버그 전투는 총 17만여명의 병사들이 참전했으며, 대포 634기, 탄약 569톤이 동원됐고, 말도 5천여마리가 희생됐다. 리 장군은 마지막날 하이워터 마크 전투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퇴각한이후 결국 전세를 회복하지 못했다.

 ■가는길=495 벨트웨이에서 I-270을 갈아탄뒤 북쪽으로 계속가면 I-270이 끝나면서 자연스레 루트15번 노스로 접어든다. 게티스버그 이정표를 따라 루트15번으로 계속 직진, 왼쪽의 캐톡틴 마운틴을 지나면 루트134번이 나온다. 이곳에서 좌회전, 루트134 웨스트를 따라 약 20분쯤가면 길옆에 비지터센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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