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한국 사회, 어디로 가야 하나?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 불능, 사회 내부의 균열은 결코 단숨에 생겨난 문제가 아니다. 오랫동안 공들여 키워온 경제조차 성장동력을 잃어가고 있으니, 그간의 발전이 부분적으로 허상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제라도 우리는 정치·경제·사회를 망라해 곳곳에 뿌리내린 병폐를 실사구시 정신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저품질 한국정치 근본 개혁 필요
제왕적 대통령제, 극단 대립 불러
다당제 바탕 의원내각제 바람직
정당 간 조율과 협상의 문화 기대
제왕적 대통령제, 극단 대립 불러
다당제 바탕 의원내각제 바람직
정당 간 조율과 협상의 문화 기대
조순 선생은 생전에 “이 나라 정치는 모든 대통령을 실패로 이끌고, 모든 정당을 실패로 이끌고, 모든 정치인을 실패로 이끌며 국민을 괴롭혀 왔다”고 통탄했다. 한마디로 한국 정치는 제왕처럼 군림하는 대통령, 정치 신인을 가로막는 폐쇄적 정당 구조, 그리고 국민과 동떨어진 국회가 뒤엉켜 극도로 낮은 생산성을 보이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다수 정치 지도자들이 국가를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균형·안정·공정이라는 기본 원리 대신 편 가르기와 맹목적 권력 쟁취를 우선시하는 풍토가 만연해 있으니, 다른 무엇보다 정치 분야의 근본적 개혁이 가장 시급하다.
나는 우리 정치의 품질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내각책임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양당제가 아닌 다당제를 채택할 필요가 있다. “양당제로도 정치 혼란을 막지 못했는데 다당제라면 오히려 혼란이 더 심해지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양당제와 대통령제가 그간 ‘보수’와 ‘진보’라는 간판 아래 끊임없는 권력 다툼만 벌이며 우리 정치를 황폐하게 만든 장본인이 아니었던가.
제왕적 대통령제와 양당제가 초래한 문제는 단순히 권력 다툼에 그치지 않는다. 보수·진보를 표방하는 양당은 국민과 국가를 위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국민의 삶과 직결된 주요 정책마저 정쟁의 도구로 삼아 왔다. 계속 반복된 극단적 대립과 갈등은 경제적 불확실성을 키우고 사회적 불안을 심화시켰다. 이런 소모적인 환경에서는 국가의 장기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의 정치 구조로는 더 이상 한국 사회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각제와 다당제는 우리 나라 정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내각제에서는 의회 다수당이 내각을 구성하기 때문에 의회와 정부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의회의 불신임 결의로 언제든 정부 내각을 교체할 수 있으므로 정부는 끊임없이 견제받으며, 최종적으로는 국민이 선거를 통해 새로운 의회와 내각을 결정하여 균형을 맞출 수 있다. 한편 다당제에서는 기존의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틀을 넘어 교육개혁, 환경보호, 중소기업 육성과 같은 구체적인 가치를 표방하는 정당들이 등장하고 정치 신인들이 기회를 얻으며, 정치 전반에 새로운 활력과 다양성이 풍성해질 것이다. 정당 난립에 따른 불필요한 혼란은 일정 비율(이를테면 5%) 이상 유권자 지지를 얻은 정당만 인정하도록 하면 막을 수 있다.
또한 제1당이라도 단독으로 안정적인 내각 구성이 어렵기 때문에, 2~3개의 작은 정당과 연립하여 조각(組閣)할 가능성이 높아 정당 간의 조율과 협상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양당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퇴행적 혼란은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각 당이 자신들의 전문성과 정책적 가치를 가지고 연정에 참여하면서 정치적 책임감과 자부심을 높이고, 정계의 자체정화도 기대할 수 있다.
사실 대통령 중심제와 양당제가 18세기 미국에서는 적합한 제도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계 여러 사례가 보여주듯, 21세기 한국에서는 대통령과 의회 간의 극단적 대립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4·19 혁명 직후 내각책임제가 1년도 못 가 실패한 점을 들어 반대하지만, 당시 내각제는 5·16 군사 쿠데타로 제대로 뿌리 내릴 기회조차 없었다. 불과 1년 남짓의 짧은 기간으로 성패를 논하기엔 무리가 있고, 무엇보다 현재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식견과 성숙도는 그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현재 한국 사회는 장기적인 저성장과 양극화로 중산층이 흔들리고 있다. OECD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최저 출산율이란 오명은 우리 사회가 처한 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럴 때일수록 기존의 고정관념을 벗어나 새로운 질적 도약을 모색해야 한다. 그 시작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벗어나 의원내각제로 개헌하는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야 하나?” 이제 그 답을 내놓아야 할 때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