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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절대 연명의료 말라"…한국인 절반도 교황처럼 떠난다[신성식의 레츠 고 9988]

경기도 용인 한 가정에서 남편이 말기암 아내의 잡고 있다. 주앙포토
" "교황은 생전에 늘 '집에서 눈을 감고 싶다'고 말했다. 결국 고통 없이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

프란치스코 교황 주치의 세르조 알피에리 의사의 말이다. 교황은 지난 21일 새벽 거처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응급실로 가지 않았다. 수년 전부터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 확고했다고 전해진다. 주치의는 "어떤 상황에서도 삽관(인공호흡을 돕기 위해 기도로 관을 넣는 것)하지 말라고 분명히 당부했다"고 말했다.

교황은 100달러(약 14만원, 아르헨티나 매체 보도)의 재산을 남긴 검박한(검소하고 소박한) 모습에 어울리게 검박하게 떠났다.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연명의료 거부와 각막 기증, 2021년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의 장기 기증이 떠오른다.
교황 계기로 본 존엄사 실태
연명의료 중단 절반 미리 정해
노인 20% 사전의향서 작성
"재택임종 확대 지원책 절실"

한국에도 연명의료 중단(일명 존엄사)이 점차 뿌리내리고 있다. '나의 마지막 길은 내가 결정한다'는 취지가 살아난다. 29일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연명의료 중단(거부) 이행자 7만61명 중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하 사전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를 쓰고 존엄사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사람이 각각 1만2936명(18.5%), 2만2663명(32.3%)이다. 둘을 합해 50% 넘은 것은 2018년 제도 도입 후 처음이다. 2018년 2월~2025년 2월 7년 간 존엄사 선택자 41만명 중에는 42%를 차지한다.

"참 잘 나섰다, 참 잘 살았다"
" "림프샘과 뼈까지 퍼져 가망이 없습니다." 의사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언제든 죽어도 아쉬울 게 없는 나이, 무슨 미련이 있으랴. 그래도 가슴 속에선 살고 싶다고…. (중략) 지독한 1년의 세월이 흘렀다. 점점 저승길로 한 걸음씩 내디디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호스피스에 입원했다. (중략)연명의료를 묻는 순간이 왔다. 이 고통이 끝나는 순간이구나. (중략) 사랑한다 너희들(자녀를 지칭). 그리고 요양원에 있는 나의 당신…. 내가 가는 곳, 긴 인생의 터널을 지나 소풍 가는 길, 참 잘 나섰다, 참 잘 살았다." "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의 2024년 수기 공모 장려상 '소풍 가는 날'의 일부이다. 딸이 아버지(78세 폐암 환자)를 돌보며 간병일기를 썼고, 이를 토대로 아버지의 입장에서 글을 썼다고 한다.

이 환자는 사전의향서 대로 떠났다. 그는 "나도 감당 안 되는 상황인데, 애들이 아빠를 보낼 수 있을까. (사전의향서 써두길) 참 잘했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연명의료 중단이란 임종 과정의 환자에게 심폐소생술·혈액투석·수혈,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중단(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사전의향서는 존엄사 뜻을 미리 정하는 문서이다.

존엄사 선택자 중 사전의향서 활용 비율이 2018년 0.8%에서 지난해 18.5%로 증가했다. 지난해 말 기준 작성자는 270만여명(누적 기준)이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20%가 작성했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나 임종기 환자가 의사와 함께 연명의료 여부를 정한 문서이다. 이 역시 환자의 뜻이 반영된다.
김주원 기자

환자가 이런 걸 쓰지 않았다면 배우자·자녀 등 2명이 "아버지(남편 또는 아내)가 평소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았다"고 진술해도 된다. 가장 아쉬운 방법이 환자의 뜻을 몰라 가족 전원 합의로 결정하는 것이다. 환자 뜻에 반할 가능성이 크다. 다행히 이 비율이 2018년 36.1%에서 지난해 20.2%로 줄었다.

"남편·애들 사랑받고 간다"
호스피스 서비스도 중요하다. 다음은 임종 직전의 50대 후반 대장암 환자와 호스피스 간호사와 마지막 대화.
" "밝은 빛이 나타나면 그저 기쁘게 훨훨 잘 따라가."(간호사) "
" "언니, 나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특별히 사랑받고 살았고, 많은 것을 누렸어. 후회 없는 삶이었어. 이렇게 많은 사람의 격려와 응원 덕에 편안해. 걱정하지 마."(환자 H) "
서울대병원 오은경 간호사의 저서『언젠가 사라질 날들을 위하여』(흐름출판)의 한 대목이다. 오 간호사는 "마지막 가는 길을 걱정하는 나를 도리어 H가 위로했다. 무거워하지 말라며"라고 안타까워했다.

"날 살리려 애쓰지 마요"
가정호스피스의 중요성도 날로 커진다. 수기 공모 최우수작 '그들은 가치 있게 존재하길 원한다'에서 베트남 참전 용사인 폐암 환자(77)는 재택임종 전 가정호스피스 간호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 "내가 좋아질 수 없다는 걸 알아. 날 살리려 너무 애쓰지 마요. 애들이 자꾸 나를 살리려고 하는 것 같아. 나는 죽으려고 애쓰는데…." "

간호사는 "전쟁터에서 동지들의 숱한 죽음을 체험했을 그는 죽음 앞에 구걸하지 않는 용맹한 군인 같았다"라고 썼다. 자녀들도 아버지에게 기저귀를 강요하지 않고 자존심을 지켜줬다고 한다.

병원 객사 여전히 75%
교황의 마무리와 다른 점이 사망 장소이다. 지난해 한국인 사망자의 75.1%가 병원에서 숨졌다. 재택 임종은 15.2%. 10년 전과 다름없다. 조정숙 연명의료관리센터장은 "재택임종을 늘리려면 복잡한 사망진단서 작성 절차를 개선하고, 입원환자만 가능한 연명의료계획서를 재택환자에게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대한재택의료학회 춘계 심포지엄에서 전문가들은 가정호스피스 기능 강화, 가족 교육 지원, 24시간 상담 체계 구축 등의 생애 말기 돌봄 강화를 제안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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