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이어준 ‘아버지 유물’ 28점
![서울역사박물관 조선통신사 전시 ‘마음의 사귐, 여운이 물결처럼’에 기여한 신기수씨의 딸 신이화 프로듀서(왼쪽)와 오사카역사박물관 오사와 겐이치 관장. 신기수씨는 재일교포 사학자로서 조선통신사 역사를 연구해 세상에 알렸다. [사진 서울역사박물관]](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5/04/30/64a73ebd-a84c-4379-a95d-70f90b04b74d.jpg)
임진왜란 후 200여년 동안 조선과 일본 간 평화 교류의 상징이던 조선통신사 관련 유물 111건 128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역사박물관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에 마련한 ‘마음의 사귐, 여운이 물결처럼’(6월 29일까지)에서다. 오사카역사박물관 등 일본 8개 기관을 포함해 총 19개 기관·개인의 소장품이 어우러진 역대 최대 규모의 조선통신사 전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유물 24건, 일본 지정문화재 8건, 한국 지정문화유산 4건 등 보물급 유물만 32건(중복 지정 제외)에 이른다.
지난 24일 언론 공개회 때 감회에 차서 전시를 둘러본 두 사람이 있다. 재일교포 사학자로서 평생에 걸쳐 조선통신사 역사를 연구하고 자료를 수집해 세상에 알린 신기수(1931~2002)씨의 딸 신이화 프로듀서와 2001년 141점의 ‘신기수 컬렉션’을 인수한 오사카역사박물관의 오사와 겐이치 관장이다. 이번 전시엔 ‘조선통신사어누선도병풍’(18세기) 등 신기수 컬렉션 28점도 나들이했다. 오사와 관장은 박물관의 전신인 오사카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 시절부터 신기수 선생과 반평생 교분을 맺었고 1994년 자체적으로 조선통신사 전시를 열기도 했다. “우리 박물관뿐 아니라 일본 내 주요 유물이 거의 다 건너왔고 기념할 만한 해에 전시가 열려 뜻 깊다”고 했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신기수 선생은 에도 시대(1603~1867)부터 한·일 관계를 연구하면서 특히 1607년부터 1811년 사이 12차례 조선통신사 사신 행차에 천착했다. 그의 저서 20여권과 기록영화 5편 가운데 ‘에도시대의 조선통신사’(1979)는 기념비적 다큐물로 꼽힌다. 교토 히가시야마의 절 센뉴지(泉涌寺)엔 일곱 번 찾아가 간청한 끝에 이곳에 소장된 ‘조선통신사환대도 병풍’을 카메라에 담았다. 1655년 제6차 사행 때 쇼군의 명령에 따라 제작된 이 금빛 병풍 한쌍은 통신사의 장대한 행렬 등이 담긴 역작이다(5월 25일까지 전시).
당시 조선통신사가 방문할 때마다 에도 막부는 금 100만 냥(17세기 일본 농업생산의 약 3%에 해당)을 쏟아부어 환대했고, 사신 행렬은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화제였다. 이를 일본인의 시선에서 그려낸 대형 두루마리 기록화 ‘조선통신사등성행렬도권’에는 에도 시민들의 호기심에 찬 표정이 생생하다. 그림 속엔 만화 말풍선처럼 “음식이 맛있어 귀국할 때는 못 알아볼 정도로 살이 쪘다고 한다” 등의 시민 반응도 곁들여져 있다.
신 프로듀서는 “아버지 말씀처럼, 한·일 관계는 좋은 날도 나쁜 날도 있을 테지만 과거에 이렇게 사이좋았던 시기가 있었단 걸 알게 되면 양국 관계가 헤맬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의 오지영 학예연구사는 “통신사는 국가 외교로 시작해 개인 간 유대로 확장됐고 문화 저변에 깊은 흔적을 남겨 한류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강혜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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