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실수 금지'하면 조직은 일 안해"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
" “기업들 요새 어려운데, ‘한국인이 갑자기 바보가 되어서’일까요? 아닙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서’입니다.” "
삼성전자 반도체 ‘초격차’를 만든 권오현 전 회장의 직격이다. 그는 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주도권을 놓친 이유에 대해서도 “한 마디로 리더십의 능력 부족”이라고 말했다. 권 전 회장은 1985년 삼성전자에 반도체 연구원으로 입사해 2008년 반도체총괄 사장, 2012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랐다. 2017년 삼성전자가 인텔을 제치고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에 오르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이후 삼성종합기술원 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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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가 실패 막으면, 조직은 아무 일 안 해”
그는 “한국 조직장들이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 성공의 덫’에 잡혔다”라고 지적했다. 후발 주자인 한국이 선두 국가·기업을 재빨리 베끼며 성장한 시대에는 실수를 줄여 시간·돈을 아끼는 게 중요했지만, 지금과 같은 AI 시대에는 베낄 정답이 없다는 거다. 권 전 회장은 “카피할 게 없는데 실수를 안 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라며 “그게 지금 한국 최대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리더의 ‘권한 이양’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의 리더들은 대개 권한을 나눠줄 때 발생하는 비효율과 실수를 참지 못하고 꼼꼼히 지시·관리·점검을 하는데, 그러면 구성원들이 지시만 기다리며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것. 권 전 회장은 “이제 효율로 큰 사업을 일으키는 것이 불가능해졌는데, 한국은 여전히 효율로만 움직이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젊은이들에게는 ‘질문하기’를 주문했다. 과거에는 지식 습득이 중요했지만 이제 지식으로는 AI를 이길 수 없기에, 사물의 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하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
사회적으로는 석·박사 인력을 충분히 배출해야 한다고 했다. 남의 기술을 베끼는 걸 넘어선 연구개발(R&D)을 하려면, 기업에 석박사 인력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 최근 의대 열풍에 대해서는 “공과대학은 그들을 유인하려고 무엇을 했는지 돌아봐야 한다”라면서 “공대는 ‘시험에서 적게 틀리는 사람’을 받으려 하기보다 ‘호기심 많은 학생’을 받아서 잘 훈련할 생각을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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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반도체 ‘열심히’ 아닌 판 바꿔야
그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타이거 우즈를 골프로 이길 수 없고, ‘장기 두자’고 판을 바꿔야 한다”라며 “시스템 반도체의 성공은 판을 바꿔야 하므로, 국가적인 정책 방향을 잡고 시스템 구현을 향해 차근차근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날 객석에서 삼성이 HBM에서 부진한 이유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권 전 회장은 말을 아끼면서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리더십의 능력 부족”이라고 말했다.
심서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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