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철의 시시각각] 알박기와 낙하산

탄핵 이후 공석 기관장 대거 공모
야 “새 정부 이전 인사 말라” 경고
‘알박기’ 비난…‘낙하산’이 근본 문제
야 “새 정부 이전 인사 말라” 경고
‘알박기’ 비난…‘낙하산’이 근본 문제
이런 관행에 제동을 건 게 문재인 정부 시절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산하 기관장에게 사임을 종용했다는 폭로가 나오자 정권과 사이가 좋지 않던 검찰이 버티던 기관장 대신 압박한 장관을 수사해 기소했다. 2022년 초 김은경 전 장관이 징역 2년을 확정받은 것은 공직 사회에 큰 충격이었다. 실무자들은 처벌 위험을 감수하기를 꺼리고, 시키는 입장에서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게 됐다.
그 덕을 가장 많이 본 것이 문재인 정부다. 2022년 초부터 대선이 치러진 3월 초까지 임명한 공공기관장이 13명, 상임이사와 감사가 46명에 달했다. 선거에서 이긴 국민의힘은 알박기 인사라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이때 임명된 기관장 상당수는 정권 교체 후에도 임기를 다 마쳤다. 김제남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은 임기가 끝났는데도 후임 인사가 안 나 아직도 재직 중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부터 공공기관장 인사를 미뤘다. 처음엔 4월 총선이 끝난 뒤 탈락자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하지만 그 뒤로도 오래 방치했다. 그랬던 분위기가 계엄 사태 이후 확 달라졌다.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가 가결된 지난해 12월 14일 이후 빈자리를 채우겠다며 공고한 공공기관 임원이 96명에 이르고, 이 중 14명은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이 난 이달 4일 이후 공고됐다. 급하게 진행되는 인사에서 대단한 전문성이나 식견을 가진 분들이 뽑힐 것 같지도 않다. 검사 출신 변호사, 전직 국회의원이나 보좌관들, 친정부 성향 공무원 이름만 오르내린다.
민주당은 ‘알박기 인사 저지 특위’까지 만들어 반발하고 있다. 이미 대선에서 이긴 듯하다. 지난주 특위는 “새 정부 출범 전까지 어떤 공공기관 인사도 단행하지 말라”고 윽박질렀다. 3년 전 기억은 전혀 남지 않은 모양이다. 민주당이 정권을 차지하더라도 제대로 된 인사를 하리란 보장도 없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캠코더(대선 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인사라는 혹평을 받았다. 그야말로 누가 낙하산을 내려보내느냐를 다투는 이전투구일 뿐이다.
현재 공공기관장을 뽑는 절차는 임원추천위를 만들어 공모를 받는 것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3배수 정도로 압축한 뒤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거쳐 소관 부처 장관에게 보고한다. 장관이 대통령에게 추천하고, 대통령은 마지막에 임명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공모부터 내정설이 나돌고, 실제 그런 인사가 기용되기 일쑤다. 복잡한 절차와 임추위·공운위 같은 위원회는 그저 잘못된 인사를 뽑았을 때 책임을 희석해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적어도 장차관이나 대법관, 검찰총장같이 대통령실이 직접 개입하는 인사를 잘못하면 정권이 휘청인다. 하지만 뽑아놓은 기관장이 정치판을 기웃거리다 떠나버려도, 경영을 엉망으로 해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이쯤 되면 면피용 절차는 걷어치우자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국정 운영에 꼭 필요한 자리는 임명권자가 직접 검증해 뽑고 책임도 지라는 것이다. 대신 나머지 자리는 소관 부처에 과감하게 넘기고 일절 간여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당은 20대와 21대 국회에서 추진하다 무산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관장 임기가 임명권자보다 길지 않게 하는 이른바 ‘알박기 방지법’이다. 그런데 알박기를 막은 뒤 자신들이 낙하산을 꽂을 요량이라면 공감을 받기 어렵다. 국민 입장에선 낙하산이나 알박기나 도긴개긴일 뿐이다.
최현철([email protected])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