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美군함·상선, 파나마·수에즈운하 무료 통행해야" 여기 담긴 속내는[글로벌 리포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군함과 상선은 파나마 운하와 수에즈 운하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요 해상 길목에서 미국은 통행료를 내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녹아든 발언이다. 그는 세계 해상 운송과 안보 분야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도 과시했다.또한 그간 수에즈 운하 바닷길을 공격해온 후티 반군의 비호세력인 이란, 파나마 운하에서 영향력이 큰 중국까지 견제하겠다는 속내도 담았다. 이같은 트럼프의 엄포에 글로벌 통상로 두 곳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미국 선박은 군함이든 상선이든 파나마 운하와 수에즈 운하를 무료로 통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썼다. 그는 이어 "그 운하들은 미국 없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며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에게 이 사안들을 챙길 것을 요구해왔다고 덧붙였다. 폭스뉴스는 "이를 통해 미국 기업은 연간 수 억 달러를 절감할 수 있다"고 짚었다.

특히 파나마 운하에 이어 이번엔 수에즈 운하까지 언급한 것이 눈에 띈다. 홍해와 지중해를 잇는 수로인 수에즈 운하는 1869년부터 운영됐다. 수에즈 운하는 세계 해상 무역의 12%가 통과하는 핵심 수로이자 미국 해군 군함이 정기적으로 통과하는 곳이기도 하다.
최근 예멘의 후티 반군이 수에즈 운하를 오가는 이스라엘과 서방 선박을 공격하면서 세계 무역에 차질이 빚어졌다. 2023년 10월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발발한 이후, 후티 반군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지원하겠다는 명분으로 이들 상선을 공격해왔다. 이에 세계 물류의 동맥인 홍해 항로가 막히면서 물류대란이 벌어졌다. 선박들은 수에즈 운하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가는 우회로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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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티 공격에 이집트 10조원 손실
지난해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운하 수입이 60% 급감하면서 이집트는 70억 달러(약 10조원)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됐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후티 반군의 활동을 저지하겠다며 총력전을 펼쳤다. 트럼프 입장에선 미국이 나서서 후티 반군을 공격해주니 대가로 '통행료 면제'란 보상을 받아야 한단 논리가 작용한 걸로 보인다.
트럼프가 취임 후 첫 대규모 해외 군사작전으로 명령한 것도 지난달 15일 이뤄진 후티 반군 소탕이었다. 미 국방부는 이달 초 중동에 항공모함 전단을 추가로 배치하며 공세를 강화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션 파넬 미 국방부 대변인은 "지역 안정을 촉진하고, 지역 내 자유로운 상업 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해리 트루먼 항모전단 외에 칼빈슨 항모전단이 합류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홍해를 거쳐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선박에 대한 후티 반군의 공격을 억제하겠다는 뜻이다.
트럼프는 후티 반군을 공격하는 명분으로 물류 보호를 내세웠지만, 이란을 압박하려는 속내도 있었다. 이란은 후티 반군에게 군수 자금 등 재정적인 지원을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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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물류 보호" 외치며 이란 압박도
트럼프의 이란 압박은 현재 진행형이다. 트럼프는 이란에 핵무기 생산 저지를 목표로 하는 핵 협상 합의를 요구하면서 합의가 불발될 시 이란이 "큰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미국과 이란은 오만에서 3차 핵 협상을 마쳤으며, 내달 3일 4차 협상에 돌입한다.
AP통신은 "트럼프의 후티 반군 공습은 이란과의 협상을 위한 압박 수단의 하나로 여겨져 왔다"고 전했다. 지난달 17일 트럼프는 "이란은 후티 반군의 대미 공격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며, 심각한 후과를 겪게 될 것"이라고 대놓고 으름장을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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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운하는 "중국 견제용"
파나마 운하는 트럼프의 '중국 견제'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요충지다. 세계 전체 해상 무역의 5%, 미국 컨테이너선 물동량의 40%가 처리되는 곳이다. 유사시 미 해군이 대서양-태평양 사이를 신속히 이동하는 데 필수 지역이기도 하다.
미국이 1903년 ‘파나마-미국 조약’을 통해 파나마로부터 운하 건설 및 영구적 사용에 관한 권리를 획득한 뒤 파나마 운하 건설을 마쳐 1914년에 개통했다. 1914~1977년 파나마 운하의 운영은 미국이 맡았으나 파나마가 운하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양국 간 갈등이 불거졌다. 결국 1977년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이 파나마 운하를 파나마에 넘겨주는 조약에 서명하면서 갈등은 봉합됐고, 이를 계기로 운하의 소유와 운영권은 파나마 정부로 넘어갔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카터 시절 파나마에 넘겨준 파나마운하의 통행료가 비싸다"면서 파나마 정부를 상대로 운하를 반환하라고 요구해왔다. 2023 회계연도의 경우, 파나마 운하를 통한 통행료 수입은 33억 달러(약 4조 7480억원)에 달했다고 폭스뉴스가 보도했다.
트럼프 취임 후 미 국무부에서 "파나마 정부가 앞으로 미국 정부 소유 선박에 파나마 운하 통행료를 면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으나, 파나마 측이 이를 곧바로 반박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트럼프가 파나마 운하를 되찾고 싶어하는 이유는 중국의 존재감과 맞물려 있다. 중국은 파나마 운하 화물 수송량의 21%를 점한다. 지난 10년간 중국은 파나마에 대한 금융 투자를 늘리고, 파나마 군 및 경찰과 밀착해 영향력을 키워왔다. 파나마의 5대 주요 항구 중 2곳은 중국 소유다. 이와 관련, 최근 파나마를 방문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미국과 파나마가 협력해 운하를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되찾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파나마 운하를 장악하기 위해서라면 군사 행동을 취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이와 관련, 미 해군 제독 출신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최고연합군 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스타브리디스는 지난 1월 블룸버그에 "미국이 파나마 운하를 점령하려 하는 것은 어리석고 어려운 일"이라고 기고했다.
다만 이날 올린 글에서 트럼프는 파나마 운하 '반환' 자체에 대해선 명시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외신들은 파나마 정부의 반대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을 고려해 트럼프가 목표를 현실적으로 조정하려는 신호일지 주목된다고 짚었다. 폭스뉴스는 "루비오 국무장관이 트럼프의 지시를 파나마와 이집트와의 협정을 통해 추진할지는 불확실하다"고 보도했다.

서유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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