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조 백일장 - 4월 수상작] 냉혹한 생존현실 잘 그려, 꾸준한 습작의 힘
장원
전형우

곳곳을 헤엄치다 비린내 묻어올 때
그대로 말라 버렸다 꿈들이 휘어진 채
자멸 대멸 함께 넣어 우려내는 시간들
조무래기 취급으로 어설픈 이름 앞에
덜 자란 사회초년생 물결처럼 출렁인다
촘촘한 내일 향해 그물을 던져보면
쏟아지는 은빛이 내 안으로 몰려들어
또다시 팔딱이는 날 오늘을 건져낸다
◆전형우

차상
이금옥
파도가 밀려와 가는 길에 한 줄 쓰고
어제 쓴 글 지워져 오늘 또 쓰고 간다
분실물 찾아가세요 주인을 기다려요
철썩철썩 쏴아아 전화도 드렸지요
백사장엔 장문의 문자도 남겼어요
양심을 믿어 볼게요 버린 건 아니겠죠.
조간대 우편함에 보관도 가능하고
가는 길 오는 길에 배달도 해드려요
주소만 알려 주시면 택배로 보낼게요
백사장 시계탑은 말없이 앞서가고
오늘도 눈시울이 붉어진 노을 앞에
밀려온 해양쓰레기 갈 곳을 묻고 있다
차하
서노을
벽에서 기다리던 한 남자와 마주쳤다
붉은 머리 거친 수염 나이 들어 보여도
골똘히 쳐다보는 눈빛 얼비치는 푸르름
깜깜한 안팎에도 끊임없이 벼리던 꿈
굳게 다문 입술 너머 하나하나 말하건만
봉인된 이야기들은 붓질 속에 숨었다
그 비밀 궁금했나, 줄 이은 관객에게
정정한 그림들만 여정별로 기대서서
짧은 생 굽이굽이를 눈부시게 뱉는다
이달의 심사평
4월 장원에 전형우의 ‘멸치의 바다’를 올린다. 가냘프고 작은 존재가 바다라는 거대한 사회에 부대끼며 생존해 나가야 하는 상황으로 읽혀진다. 첫째 수에서 “헤엄치”고 “꿈”을 좇아도 “비린내”로 “말라버”린 냉혹한 현실에 처한 삶을 담아냈다. 둘째 수에서는 “어설픈” “사회초년생”이 “물결처럼 출렁”이며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으로 보여진다. 셋째 수에 이르러 “은빛” “팔딱이는” “오늘을 건져”올리는 상승이미지가 돋보였다. 같이 보내온 작품들도 서정성, 정형성을 반듯하게 잘 다스려 오래 습작한 힘이 느껴졌다.
차상에는 이금옥의 ‘비치코밍’을 선했다. 비치코밍은 바다 표류물이나 쓰레기를 주워 이를 활용한 작품을 만드는 환경보호운동이다. 위기에 처한 지구 환경문제에 눈을 돌려 바다가 사람에게 묻는 형식으로 쓴 작품의 남다른 발상이 이채롭다. “노을”이 “눈시울”을 붉히는가 하면 “해양쓰레기”가 “갈 곳을 묻”는 대목에선, 우리 인간들에게 경각심을 가지라 나무라는 것 같아 뜨끔하다. 함께 보내온 작품에도 네 수의 작품이 있어, 호흡이 긴 편도 좋지만 시어를 압축하는 힘도 지녀보았으면 한다.
차하는 서노을의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에서’다. 세 수의 작품이 무리 없이 잘 읽힌다. ‘고흐 전’에 가서 “벽에” 서 있는 고흐의 “눈빛”을 통해 별이 빛나는 하늘을 본 것 같다. 고흐에게 듣고 묻고 싶은 것이 많은데 “봉인된 이야기들은” 붓에 숨어있어 읽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묻어있다. 고흐의 한 부분을 찾아 아무도 쓰지 않은 나만의 작품을 써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심사위원 강정숙·이태순(대표집필)
초대시조
조한일

팬션을 파괴하고 카페를 폭파하는
대중들 집중포화에 현장은 화끈하다
21세기 신기전에 두 손 두 발 다 드는
속수무책 테러 현장 고객의 거리두기
진위를 확인하는 건 의미 없는 뒷북이다
진화하는 군중이 남겨놓은 고작 별 하나
낙인의 수단으로 목표물이 함락된다
별들을 손안에 넣는 소비지향 테러리스트
◆조한일

별이 언제부터 ‘테러리스트’들의 무기가 되었을까, ‘팬션을 파괴하고 카페를 폭파하는’ 별점테러, 별이 몇 개가 달리느냐에 어떤 이는 흥하고 어떤 이는 망하는 일이 현실이 되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세상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몇 년을 고생해서 일궈놓은 한 식당의 젊은 여자분이 ‘고작 별 하나’가 달린 ‘고객의 거리두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남편이 자살했다는 글을 올렸다. ‘진위를 확인하는 건’ ‘의미 없는 뒷북’일 수밖에 없다. 악의적인 후기를 단 고객은 별점테러를 하기 전에 먼저 소통하고 이해하는 노력을 할 수는 없었을까. 고작 별 하나보다 별 다섯 개라면 훨씬 더 우리들 삶이 훈훈해지지 않을까.
‘21세기 신기전’이 되어버린 별점테러, 상대방의 생사여탈권을 휘두를 정도의 영향력이 커지는 요즈음 객관적인 판단과 인과관계를 먼저 따져보는 일이 우선이다. 혹은 공급자의 안일함이 발화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 될 것 같다. 사회의 이슈를 놓치지 않고 주의 깊게 들여다본 시인의 통찰력이 우리에게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시조시인 손영희
◆응모안내
매달 20일까지 중앙 시조 e메일([email protected]) 또는 우편(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48-6 중앙일보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으로 접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등단하지 않은 분이어야 하며 3편 이상, 5편 이하로 응모할 수 있습니다. 02-751-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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