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지 않는 궁궐에 혹하다…덕수궁 양식 건축에 깃든 100년 전 ‘꿈’
" “미국의 집은 모두 돌이나 벽돌로 지어 불길이 부근의 다른 곳까지 번질 걱정이 없다.” "
- 초대주미공사 박정양이 미국을 시찰·견문하고 쓴 기록 『미속습유』(1888) 중에서

개항 이후 궁궐에 건립된 서양식 건축물인 양관의 역할을 조명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오는 7월 13일까지 서울 중구 덕수궁 내 돈덕전과 정관헌에서 진행되는 ‘대한제국 황궁에 선 양관 - 만나고, 간직하다’ 특별전이다. 전시에선 대한제국 당시 황궁이었던 경운궁을 중심으로 주요 양관들(구성헌, 정관헌, 중명전, 돈덕전, 석조전 등)의 건축 배경과 특징을 돌아보고 관련 유물 110여 점을 만난다.


이후 아관파천(1896~1897)를 끝내고 거처하게 된 경운궁에는 수옥헌과 정관헌이 건설돼 왕실 유산 수장처로 사용됐다. 특히 정관헌의 경우 고종이 커피를 마시고 연회를 열던 곳이라는 속설이 있는데, 전시는 정관헌에 보관됐던 ‘대군주보’ 등 여러 유물을 진열하면서 이 같은 오해를 바로잡고자 했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의 홍현도 학예연구사(건축학 박사)는 “정관헌에서 고종이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은 확인되는 게 없으며, 일제강점기 때 덕수궁이 공원으로 개발되고 해방 후 1960~70년대에 정관헌이 카페로 사용되면서 이 같은 오해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이어서 “오히려 순헌황귀비(고종의 후궁)가 정관헌을 ‘존경하여 받드는 곳(尊奉之所)’이라 밝힌 기록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승녕부일기』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다.


이렇게 변화한 궁궐 건축은 마침내 생활 양식까지 바꿨다. 온돌 대신 벽난로나 방열기(라디에이터)를 이용해 공기를 데우고 의자와 침대를 사용하게 된 입식 생활이 소개된다. 또한 황제와 외국 사절이 만나는 폐현례 때 엎드려 절을 올리던 기존 방식 대신 서양식 예법대로 서서 인사를 하는 타공례(打恭禮)가 도입됐음을 별도 공간에서 연출해 보여준다.

지난 2020년 10월부터 두달 가량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에서 열린 특별전 ‘대한제국 황제의 궁궐’의 후속 전시 성격을 띠면서 당대 서양식 건축이 어떻게 정착됐는지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궁’하면 떠오르는 조선 목조 건축이 아니라 서양식 문물을 수용하고 접목한 대한제국기 궁궐의 과도기적 의미를 곱씹을 만하다. 화요일~일요일 오전 9시~오후 5시30분(입장 마감 오후 5시). 무료(덕수궁 입장료 1000원 별도).
강혜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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