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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백의 아트다이어리] 누구나 때로는 비명을 지르고 싶다

전영백 홍익대 교수 미술사·시각철학
광장에서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 떠오르는 작가와 작품이 있다. 바로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친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의 ‘절규(The Scream)’ (1893)이다. 이 그림은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는 하늘 아래에서 얼굴을 감싸 쥔 채 절망에 빠진 인물을 나타내는데, 묘하게 오늘의 한국의 상황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다. 특기할 점은 이 그림의 상단 왼편에 연필로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는 것. ‘광인만이 그렸을 법한 작품!’ 스스로를 광인으로 빗대어 말한 화가는 15년 후 실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을 정도로 정신적 문제가 심각했다.

광인이 그린 듯한 뭉크의 ‘절규’
불안을 시각화해 미술사 새 장
극한 분열 시대에 크게 공감돼

에드바르 뭉크, ‘절규(Scream)’, 1893, 카드보드에 템페라 및 유성파스텔, 91㎝x73.5㎝. [사진 노르웨이 국립미술관(The National Museum of Norway), 오슬로]
‘절규’의 제작 배경은 뭉크의 일기에서도 발견되는데, 그는 두 친구와 황혼녘의 산책 중에 겪은 심리적 충격을 이렇게 기록했다. ‘(…) 갑자기 하늘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나는 기진맥진해져 울타리에 기대섰다. 푸르고 검은 도시 위에는 피와 불꽃이 솟구쳤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고, 나는 공포에 떨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때, 자연을 관통하는 무한한 절규를 느꼈다.’ 일종의 공황 발작과 같은 증상으로 화가는 마음속 격정을 그렇게 표현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인간의 해부학을 연구하고 시신을 절개했듯이, 나는 영혼을 해부하려 했다”는 뭉크의 말에서 개인사를 넘어 인간의 실존적 공포와 불안을 정면 대결하여 파고들려 했던 미적 분투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의 유년 시절은 비극으로 점철되어 모친은 그가 다섯 살 때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각별히 사랑했던 누이 소피 역시 그가 14세 때 같은 병으로 사망했다. 여성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실패하고 결국 평생 홀로 지냈던 뭉크는 오직 작품을 통해서만 여성들과의 복잡 미묘한 심리를 표현했다.

이처럼 뭉크의 예술적 주제는 개인적 트라우마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겠지만, 80세로 생을 마감한 작가의 의외로 길었던 생애와 그의 왕성한 창작의 에너지를 생각하면 작업의 의미를 개인적 트라우마로만 국한하는 것은 제한적 해석이라 볼 수 있다. 그는 약 1800점의 회화를 그렸고, 판화본과 스케치 등을 포함하면 적어도 2만7000점 이상을 제작했다. 뭉크는 역시 정신병원에 입원한 바 있던 십 년 연상의 빈센트 반 고흐와 함께 내면의 불안을 예술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경우라 할 만하다.

1890년대에 제작된 ‘생의 프리즈(The Frieze of Life)’는 뭉크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찬사받았는데, 철학적으로도 중요한 이 연작은 사랑·불안·질투·병·죽음 등 인간 존재의 온갖 어두운 주제를 포착하고 있다. ‘절규’도 물론 이 연작에 포함되어 있다. 강렬한 색채와 물결치는 곡선을 통해 정서적 격동을 나타낸 이 작품은 외적 현실보다 내적 경험을 강조한 상징주의 및 표현주의 미학을 나타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듯 인간 내면의 정서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생각이 19세기 말이 돼서야 가능했다는 것. 형태를 왜곡하고 주관적 색채 표현을 통해 외적 현실을 재현하기보다 내적 심리를 시각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미술사에서 ‘절규’는 단순히 작가의 개인사적 고뇌의 산물이라기보다 그 시대의 한 징후로 읽혀지게 된다.

미술창작의 시각적 표현은 종종 인간 내면의 어두운 정서나 무의식의 세계가 가진 파괴력을 직설적으로 발산할 뿐 아니라 미적으로 승화시켜서 삶의 에너지로 바꾸기도 한다. 뭉크 역시 미술의 창작을 통해 불안과 공포를 표현하려 했기에, 인생 중반기의 정신병원 경험을 딛고 80세의 삶을 강렬하게 살았던 것이다. 그는 생의 후반기에 이르러 국민적 작가로 존경을 받았을 뿐 아니라 표현주의 그룹의 선구자로 추앙받기도 했다. 그가 집중적으로 파고든 심리적 고통의 미적 표출은 미술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것이다.

우리는 종종 작품을 보며 작가가 체험한 내면의 고통을 자아와 동일시하며 승화의 과정을 거친다. 이것이 예술의 힘이고 감응력일 것이다. 오래전 북구의 한 화가가 그린 ‘절규’가 오늘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까지 격하게 공감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분열과 적대가 극으로 치닫고, 이성과 합리, 정의와 도덕성의 마지노선이 무너질 때 누구나 비명을 지르고 싶은 게 아닐까. 뭉크의 ‘절규’는 실로 시대와 지역을 넘어 남몰래 절규하며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들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세계는 지금 ‘절규의 시대’이다.

홍익대 교수 미술사·시각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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