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도 술도 맘껏…인도지만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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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신혼여행 〈24〉 인도 고아

하지만 인도 남서부 아라비아해 연안에 자리한 고아(Goa)는 달랐다. 기차 밖 풍경부터 델리와 딴판이었다. 고아에 닿자, 푸른 야자나무 숲과 너른 논밭 그리고 바다가 시야를 꽉 채웠다. 2014년 12월 그 풍요로운 바닷가 마을에서 한 달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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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안은 이미 수용 인원을 한참 넘어선 듯했다. 인도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공간을 알고 싶다면 기차 내부를 들여다보면 된다. 아수라장 그 자체다. 태연하게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지인을 쫓아내고서야 나는 간신히 짐을 놓을 수 있었다. 바글거리는 사람들을 헤치고 잠시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면 그 틈을 또 다른 현지인이 메꿨다.

지옥에서 벗어난 뒤 만난 고아는 천국 같았다. 일단 고아에는 타 지역에선 쉽게 보기 힘든 세 가지가 있었다. 성당과 소고기 그리고 술이다. 450년 동안 포르투갈 지배(1961년 인도에 병합) 아래 있었던 고아는 힌두교도보다 기독교도가 많았다. 해서 도시 곳곳에 오래된 성당이 있었다. 성당 주변을 거닐다 보면 유럽의 휴양 섬에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힌두교의 영향력이 적어 고아에서는 소고기·돼지고기 등의 육류도 맘껏 맛볼 수 있었다. 수많은 지역에서 한 달 살기를 해왔지만, 고아만큼 해산물이 맛있는 고장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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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고아의 바닷가는 나라별로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었다. 이를테면 A해변은 독일, B해변은 영국, C해변은 일본, 이런 식이다. 우리가 머문 모르짐 해변은 러시아 구역이었는데, 겨울 성수기인데도 꽤 가성비 좋은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숙박 중개인 스웨따 덕분이었다.
당시 고아에서는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 숙박 시스템으로 집을 내놓는 이가 많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 영어가 가능했던 스웨따는 움직이는 복덕방 역할을 하며 민박과 여행자 사이에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장사 수완 좋은 그가 우리에게도 숙소를 안내해줬다. 이것이 우리가 뜬금없이 러시아 구역에 짐을 풀게 된 연유다.
벽보도 메뉴판도 모두 러시아어인 모르짐에서 우리는 어딜 가나 튀었다. 동북아시아에서 온 유일한 여행자였기 때문이다. 모르짐에 모인 러시아인들의 연말 파티는 꽤 공격적이었다. 밤새 클럽에서 술을 마시는 건 기본이고, 음주 상태로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길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이도 많았다.

어디 가나 ‘샌님’ 소리가 따라다니는 침착한 성격이지만, 고아에서만큼은 내 심장도 빠르게 요동쳤다.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연말을 즐겼던 그 겨울의 러시아인들처럼, 나도 하루쯤 놀아봤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볼 때가 있다. 양껏 취하고, 정신을 놓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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