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봉의 추억’ 잊힐 만하면 고영표가 나타난다

이런 흐름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우선 지난해까지 KBO리그는 ‘타고투저’가 뚜렷했다. 따라서 선발투수가 많은 이닝을 책임지는 경우도 급감했다. 또 하나. 신축 구장의 경우 포수 뒤쪽 공간이 좁아지고 파울 지역은 크게 줄어드는 등 타자 친화적으로 바뀌었다. 투수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완봉의 낭만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다. 잊힐 만하면 완봉투구를 펼치는 투수가 있다. KT 위즈 오른손 사이드암 고영표(34)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2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9이닝을 3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으로 막고 5-0 승리를 완성했다. 개인 통산 5호 완봉승. 한 번도 힘든 완봉승을 5차례나 기록한 그를 지난 22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만났다.
고영표는 “올 시즌 출발이 좋지 않아서 걱정이 많았다. 첫 등판에선 5이닝도 못 채웠다. 다음 경기에서도 안타를 7개나 내줬다”며 “다행히 체인지업 감각이 살아나 힘을 받았다. 전력분석팀에서 ‘체인지업 헛스윙 비율이 50%가 넘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최근에는 체인지업 비중을 높였다. 사라져가는 완봉의 낭만을 지킬 수 있어 기쁘다”고 웃었다.
요즘 KBO리그는 ‘구속의 시대’다. 시속 150㎞대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차고 넘친다. 고영표는 시속 130㎞대 투심 패스트볼과 110㎞대 체인지업으로 타자를 괴롭힌다. 매년 10승 안팎을 기록하고 완봉승도 5차례나 달성한 게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완봉승 5차례는 8차례인 류현진(38·한화 이글스)에 이은 현역 2위 기록이다.
고영표는 “투수라면 당연히 빠른 공을 원한다. 아웃을 잡아낼 확률이 커지기 때문이다. 나도 구속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라며 “그렇다고 구속이 전부는 아니다. 결국 타자의 범타를 끌어내는 게 중요하다. 내가 완봉을 많이 할 수 있던 건 구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영표는 “모든 운동선수가 똑같은데, 지고는 못 산다. 지난해 아쉬움을 곱씹으며 올 시즌을 준비했다. 올해는 최대한 많이 던져 불펜진 어깨를 가볍게 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또 “지난해 프리미어12에서의 부진도 씻고 싶다. 다시 국가대표가 될지는 모르지만, 기회가 온다면 팬에게 멋진 야구를 선물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고봉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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