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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선] 개헌, 이재명에게 블랙홀이기만 할까

강찬호 논설위원
“형님, 이재명 대표도 개헌을 하겠답니다. 그러니 내일 직접 연락해보세요.”

지난 2일 가수 조영남의 팔순 잔치가 열린 서울 모처. 잔치에 참석한 정대철 헌정회장 앞에 정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나타났다. 그는 ‘형님’으로 모셔온 정 회장에게 이렇게 말한 뒤 “총리를 국회에서 뽑는 ‘책임총리제’와 현행 경성 헌법(국민투표로만 바꿀 수 있는 헌법)을 연성 헌법(국회에서 개정 가능한 헌법)으로 바꾸는 ‘투 포인트’ 개헌이 저와 이재명의 구상”이라고 했다.

지지율 1위 달리나 ‘비호감’도 1위
‘독주’ 우려 국민 불안 해소가 숙제
권력분산 개헌, 돌파구 될 수 있어

정대철은 귀가 번쩍 뜨였다. 현직 의원 300명과 전직 의원 1158명으로 구성된 헌정회는 12·3 계엄 직후 “이 난국을 초래한 87년 헌법을 뜯어고쳐야 나라가 산다”며 ‘선(先) 개헌 후(後)대선’ 캠페인을 띄워 올린 상태였다. 하지만 키를 쥔 원내 1당 대표 이재명은 정대철을 ‘큰 형님’으로 예우해온 사이임에도 개헌에 대해서만은 침묵을 지켜왔다. 그랬던 이재명이 측근인 정 의원을 통해 개헌할 뜻을 밝혀온 것이다.

정대철은 이튿날인 3일 오후 이재명에게 전화해 “개헌할 생각 있나요”라고 물었다. 이재명은 그럴 뜻이 있다고 밝히고, 책임총리제·연성 헌법 등 두 가지 골자로 개헌한다는 구상에도 동의의 뜻을 표했다고 정대철은 필자에게 전했다. 정대철은 즉각 “좋습니다. 시간이 촉박하니 책임총리제 등 한두 가지만 이번 대선 때 국민투표에 부쳐 개헌하고, 나머지는 내년 지방선거 때 추가로 개헌하면 되지 않겠어요”라고 제안했고 이재명은 이에 대해서도 동의의 뜻을 표했다고 정대철은 전했다.

정대철은 가뭄에 단비 같았던 이날의 통화 내용을 5일 모 일간지에 흘렸다. “이재명, 헌정회장에게 ‘조기 대선 전 개헌에 동의’ 뜻 밝혀”란 제목이 시꺼멓게 박힌 기사가 터졌다. 다음날인 6일엔 우원식 국회의장이 특별담화를 내고 대선·개헌 동시투표를 제안했다. 개헌이 정국의 화두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튿날인 7일 이재명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개헌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내란 종식이 먼저”라며 대선 전 개헌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놀란 정대철은 정동영에게 전화해 “어떻게 된 거야”라고 추궁했다. 정동영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헛헛헛”이란 웃음소리만 냈다고 정대철은 전했다. 정대철은 22일 필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동영 의원도, 우원식 의장도 처지가 우습게 됐다. 이 대표가 ‘큰 형님’으로 부르는 내게까지 개헌하겠다고 해놓고 사흘 만에 뒤집은 이유를 모르겠고, 안타깝다. 그날 이후 이재명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데 통화한 바는 없다. 그러나 그는 유연한 정치인이니 언제든 입장을 바꿔 개헌하자고 나올 수도 있다. 그날까지 끈기있게 개헌을 추진하겠다.”

3년 전 대선 때 민주당 후보 이재명은 강력한 개헌론자였다. “대통령 임기 1년을 단축해서라도 권력 분산 4년 중임제 개헌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지난 2월 말 SBS 유튜브 대담에서도 “(개헌을) 안 할 수는 없다. (입장이) 바뀐 게 없다”고 밝혔다. 이랬던 그가 대선이 임박하자 입장을 180도 뒤집은 셈인데,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집권 가능성 높은 정치인은 호헌을, 집권 가능성 낮은 정치인은 개헌을 추진하기 마련이다. 이명박·박근혜·윤석열도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대선 주자 시절이나 집권 초기엔 개헌에 미온적이었다. 반면 임기 말 레임덕 신세가 되면 개헌카드를 뒤늦게 꺼냈다가 차기 대선 주자들에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니 이재명 전 대표 입장에선 “왜 나에게만 개헌을 강요하나”는 반발심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헌이 정말 그에게 ‘블랙홀’이기만 할지는 의문이다. 이 전 대표는 독보적인 수치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비호감도 조사에서도 늘 선두를 차지한다. 사법리스크 탓만은 아니다. 거대 의석으로 국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의 지도자인 그가 대통령이 돼 행정권까지 거머쥘 경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비호감의 핵심 원인일 공산이 크다. 이런 유권자의 불안감을 낮추려면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에 동참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해법 아닐까. 민주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던 경험이 있는 정동영 의원 같은 당내 전략가들이 개헌 카드를 추진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요즘 이 전 대표는 ‘중도 보수’ 선언에 이어 조갑제·정규재 등 보수 논객을 만나는 등 우클릭 행보를 하고 있다. 초당적인 통합의 리더십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다. 개헌으로 ‘제7공화국’을 열어 그런 리더십을 헌법으로 구현한다면 더 점수를 딸 것이 분명하다.





강찬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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