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신을 교황이라 칭하지 않았다" 한홍순 전 교황청 대사 [내가 본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을 애도하며 그분의 교황 재임 시절 1년 가까이 교황청 주재 대사로 일한 시절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처음 본 것은 2013년 3월 13일 저녁 그분이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나타나 신자들에게 인사할 때였다. 필자는 바티칸 경찰의 배려로 성 베드로 광장에 운집한 수많은 신자 맨 앞에 설치된 바리케이트 안쪽에 자리 잡을 수 있어서 매우 가까운 자리에서 그분을 볼 수 있었다.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과 행동은 참으로 파격적이었다. 첫 말씀은 이탈리아어 저녁 인사인 “부오나 세라 (좋은 저녁 보내세요, Buonasera)”였다. 짧은 연설에서 그분은 자신을 교황으로 지칭하지 않았다. “로마의 주교”라고 지칭하면서 제가 여러분을 위해 하느님의 축복을 빌기 전에 여러분이 저를 위해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 달라고 청하며 허리를 깊숙이 숙이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파격적인 모습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12년간 교황으로 재임하는 동안 펼친 교회 개혁을 위한 활동을 예고한 것이기도 하였다. 생각해 보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이후 역대 교황 73명 중 처음으로 프란치스코를 자신의 교황명으로 택한 것은 바로 그 시작이었던 셈이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탈하고 검소하며 겸손한 분이었다.
필자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가까이서 만난 것은 교황 취임 미사 사흘 뒤 교황과 교황청 주재 외교사절단과의 만남의 자리에서였다. 이때 필자는 교황이 예수회 출신임을 염두에 두고 필자가 교황에게 예수회가 운영하는 그레고리안 대학교의 스페인 출신 한 교수 신부님의 제자라고 말하자 교황은 “아, 그분은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셨지요.”라고 응답했다. 필자는 이어 교황에게 부에노스아이레스 한인 가톨릭 공동체를 방문했던 것처럼 이제는 한국을 방문할 때가 됐다고 말하자 교황은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고 응답하기도 하였다.
이날 필자 내외가 목격한 흥미로운 광경도 기억난다. 필자보다 바로 앞서 교황에게 인사 드리던 칠레 대사 노부부가 교황님과 함께 박장대소하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들은 사연인즉 이 노부부가 교황과 초면인데 그분이 대뜸 “대사님 내외는 부부 싸움을 하면 누가 먼저 용서를 청합니까?”라고 묻더란다. 이에 칠레 대사가 자기라고 대답하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측근이며 평신도로는 교황청 최고위직에 있던 필자의 막역한 친구에게 들은 얘기도 생각난다. 콘클라베(교황선출회의)에 참석하러 아르헨티나에서 출발해 저녁 시간에 로마에 도착한 베르골리오 추기경(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름)이 전화로 집에 먹다 남은 밥을 좀 챙겨 달라고 부탁하더란다. 소탈하기 짝이 없는 모습니다.
2013년 말엽 이임 인사를 하며 필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한국 방문을 요청하였다.
“교황님, 한국 천주교회는 예수회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 신부 덕분에 설립됐습니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신자는 북경에서 예수회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예수회 회원인 교황께서 한국을 방문해 교회를 더욱 성장시키실 차례가 됐습니다.” 이 말을 듣고 교황은 즉시 “예, 그렇게 하지요.”라고 응답했다. 이 말을 들으며 필자 내외는 귀를 의심할 정도였지만 “아, 이제 됐구나!”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사랑은 참으로 각별하다. 교황은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돼 맞은 부활절에 발표한 담화를 비롯해 기회 있을 때마다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요청해 왔으니 말이다.
13세기의 성자 프란치스코의 정신에 따라 복음의 원천으로 돌아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며 교회를 개혁하고 좀 더 인간다운 세상을 건설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인 프란치스코 교황, 자기 말이 아니라 모범을 통해 모든 사람과 소통한 교황, 그분이 살아낸 언행일치의 모범은 교황께서 사랑한 한국 백성의 지도자들도 본받아야 하리라.
한홍순 전 주교황청 한국 대사=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 경제학 박사. 한국외대 경제학과 명예 교수, 천주교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을 지냈고, 주교황청 한국 대사를 역임했다.

백성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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