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퇴→농사→42세 유학→수석 졸업 "쓸모 묻지 말고 공부하라" [안혜리의 인생]
농사꾼에서 우주공학자 된 공근식 박사 인터뷰

" 무용해 보이는 것에 대한 열정. "
'무엇인가' 시리즈로 이름난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에세이집 『공부란 무엇인가』(2020)에서 내린 공부 정의다. 이를 적용하자면, 악명 높은 '7세 고시'나 '의대 쏠림'으로 유명한 한국은 무엇을 왜 공부하는지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 교육열이 높다기보다 오히려 교육에 냉담한 사회다. 김 교수가 "(입시·취업을 위한) 수단화된 공부 말고 특별한 목적 없이 공부하는 게 진짜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배경이다.
공부 싫어 자퇴, 유학 중엔 퇴학
노벨상 배출 명문서 수석 졸업
인생 반전엔 "더, 더, 더" 정신
무작정 "가르쳐달라" 매달렸다
좋아서 한 공부가 주는 울림
노벨상 배출 명문서 수석 졸업
인생 반전엔 "더, 더, 더" 정신
무작정 "가르쳐달라" 매달렸다
좋아서 한 공부가 주는 울림
그런데 여기, 한국 사회 대다수 학부모와 학생들이 그러하듯 공부를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더 알고 싶고, 배우는 게 재밌어서"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 두 동생이 대학 가고 취업하는 동안 본인은 공부가 싫어 고교 중퇴 후 마흔 살 되도록 고향에서 수박 농사짓던 공근식(55) 박사 얘기다. 너무 드문 사례라 TV 뉴스와 예능 프로그램까지 그를 다뤘다.
![MIPT 학회지에 실린 공근식 박사 스토리. 수박 농사꾼 이력은 러시아에서도 화제였다. 왼쪽 페이지는 1992년 '농진종묘'라는 잡지에 소개된 그의 모습. [사진 공근식]](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5/04/23/a3c664ea-18a2-4c29-99e9-2b08e8c3513d.jpg)
공 박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난 2022년 귀국한 후 이번 학기부터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박사 후 과정과 양자역학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성대 국제관에서 '무용한' 공부에 인생을 건 사연을 듣고, 그의 시각에서 정리했다. 안혜리 논설위원
두 번의 자퇴
다행히 재능이 있었다. 초강리 수박이 원체 당도 높기로 유명했지만 내가 키운 수박은 더 크고 달아 더 비싸게 팔았다. 농업기술센터의 농민 후계자로 뽑힐 만큼 성실하기도 했다. 4500평(1만5000㎡) 하우스에서 매년 12월 중순 수박 모종을 키워 이듬해 6월 시장에 내보내면, 곧바로 알타리무를 파종해 두 번 더 수확했다. 이렇게 1년에 세 번 농사지어 우리 식구 먹고살고 동생들 공부할 돈을 벌었다.
![지난 1999년 농우종묘 수박품평회에 참여한 부모님. 왼쪽 파란색 줄무늬 상의를 입은 게 아버지이고, 바로 옆이 어머니. 맨 왼쪽은 할머니다. [사진 공근식]](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5/04/23/8f105774-bccc-4df0-8566-55e235a793fe.jpg)
인복을 타고났는지 여기서도 여러 은인을 만났다. 전산전자물리학과 박종대 교수, 화학과 교환 교수로 온 고려인 김용하 교수, MIPT에서 온 러시아 박사, 그리고 충남대 물리학과 박병윤 교수, 그리고 함께 강의 들으며 아무 대가없이 나를 도와준 학생들이다.
![MIPT를 수석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 전인 지난 2016년 한국에 와서 배재대 재학 시절 은사이자 은인인 박종대 교수를 만났다. [사진 배재대]](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5/04/23/742511bb-ff9e-43ff-b6e8-8247bfd87190.jpg)
3학년부터 수업이 물리 아닌 컴퓨터 위주길래 휴학하고 카이스트와 충남대 청강에 집중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번엔 공부가 좋아서 한 중퇴였다.
한 번의 퇴학
위대한 항공학자 니콜라이 주코프스키(1847~1921) 이름을 딴 모스크바 인근 주코프스키 시에 위치한 MIPT는 안드레 가임 등 노벨상 수상자 10여 명과 미르·국제우주정거장(ISS)에 769일 체류했던 알렉산드르 칼레리 등 숱한 우주비행사를 배출한 항공우주 인재 양성의 산실이다. 수학·물리·화학 고교 내신으로 신입생을 뽑는데 다행히 이 과목 검정고시 성적이 좋았다. 마흔둘이던 2012년 일단 예비학교에서 러시아어를 배운 후 물리공학과에 입학했다. 아무리 예비학교를 통과했어도 수업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칠판 위 수식 보고 어찌어찌 공부했지만 컴퓨터 없던 컴맹이라 인터넷 공지를 놓치는 통에 시험을 아예 못 보고 1학기 만에 퇴학당했다.
유학 당시 전 재산이 5000만원쯤. 아무리 연 500만원 정도로 학비가 싸다지만 부모 봉양은커녕 집 재산 까먹으며 유학 가는 나를 동네 어른들은 무책임하고 형편없다고 욕했을 거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응원해줬는데, 이런 사실을 차마 털어놓을 수 없었다. 러시아어를 좀 더 배워 곧 돌아갈 거라고 거짓말했다. 속으론 "농사나 짓자" 했다.

1, 2학년은 여전히 언어가 문제였지만 성적은 꽤 좋았다. 오전 9시 시작하면 밤 9~10시까지 수업하고, 금요일에 내준 과제 하느라 주말 내내 공부했다. 어린 러시아 천재들도 버거운 수업이라 더 이 악물고 했다. 다행히 귀가 트인 3학년부터 전 과목 A 플러스 받아 외국 유학생으로는 드물게 국가장학금에다 생활비까지 넉넉히 받았고, 수석 졸업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쓸모없고 쓸모있는 박사
수박 농사짓다 뒤늦게 우주공학 공부하는 내 사연은 한국뿐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화제였다. MIPT 학술지와 현지 언론에 소개된 덕분인지 학교 측은 한국 행 비행기 표까지 사주며 각별히 챙겼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가령 박사 과정 때 주 1회 열리는 세미나에서 조금이라도 민감한 주제를 다루면 참석이 막혔다. 심지어 지도 교수 논문도 공유 못 받기 일쑤였다. 외부 발표는 검열을 거쳤다. 단기 프로젝트로 온 MIT 박사 과정 학생과 기숙사 한방을 쓴 적 있는데, 미국 역시 극초음속 분야는 외국 유학생에게 잘 개방하지 않는다고 했다. 상관없었다. 러시아에 남으면 그만이었다.
![러시아연방 과학학회 참석 후 지도교수 이반 블라디미로비치 예고로프(오른쪽)와 나를 도왔던 안드레이 노비코프와 찍은 사진.공부만 하느라 러시아에서 찍은 사진은 5장이 전부다. [사진 공근식]](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5/04/23/0f6f82ce-a405-4550-ab81-d34689e208c0.jpg)
지금껏 요양병원 계신 아버지 돌보며 고향 집에서 혼자 논문 쓰고 있다. 발사체 시뮬레이션을 위해 컴퓨터를 1년 6개월 동안 한 번도 끄지 않고 계산 프로그램을 돌려 첫 논문은 완성했고, 두 번째 논문 작업 중이다. 야학부터 아무런 계획 없이 그저 새로운 걸 알게 되는 게 재밌어 공부했다. 그런데 생애 처음으로, 외국 유명 학회지 등재라는 특정 목표가 생겼다. 논문을 계기로 러시아에서 멈춘 공부를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어가길 희망해서다.
성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김장현 교수 제안으로 하는 시간강사가 지금 한국에서 내 지식을 활용하는 유일한 통로다. 한국우주항공청(KASA)의 화성 탐사선 계획이 20년 뒤인 2045년에나 잡혀 있는 만큼, 내 지식은 당장 쓸모가 없다. 또 곧 정년퇴직할 나이라는 현실의 벽 탓인지 관련 연구 기관 취업도 쉽지 않다. 한마디로 연구는 너무 앞섰고, 나이는 너무 먹었다. 괜찮다. 당장 써먹을 수 없는 공부면 어떤가. 공부하다 보면 또 뭔가 일어나겠지.

안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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