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30년 만에 칸영화제 초청된 인도영화...대도시 속 별빛 같은 여성들 우정 담았다

아누(사진, 디브야 프라바)는 뭄바이에서의 고된 일상 속에서도 사랑을 놓지 않는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지만 반항할 수 있고, 자기표현에 자유로우며 성적 욕망도 숨기지 않는 인물이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밤이 돼야 쫓기듯 휴식할 수 있고, 작은 공간도 쉬이 내어주지 않는 이곳. 한국의 서울이 아니다. 인도의 뭄바이다. 뭄바이에 가 보지 않았어도 괜찮다. 새벽부터 좌판을 깔고 앉은 상인들, 열차를 타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출근길의 행렬이 눈에 들어올 때쯤 답답한 대도시의 공기가 익숙하게 느껴질 테니.

지난해 인도 영화로는 30년 만에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의 첫 장면이다.

영화 초반, 대도시의 풍경 뒤로 줄곧 흐르는 음성은 실제로 뭄바이에서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다. “23년이 됐지만, 아직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도시”, “뭄바이가 시간을 훔쳐요”와 같은 대사가 흘러나온다. 파얄 카파디아 감독이 스태프들과 함께 사전 취재하며 모은 인터뷰이들의 음성이다.

영화는 학생 파업을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무지의 밤’(2021)에 이은 감독의 두 번째 작품. 장편 극영화로는 데뷔작이다. 한국에선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고, 23일 국내 개봉한다. 지난해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에 이어 시카고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올해 아시안필름어워즈 작품상 등 전 세계 영화제 47개 부문을 수상했으며,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100%를 기록하는 등 평단의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독립영화 규모로 진행된 작품이다. 감독은 배급사와의 공식인터뷰를 통해 "뭄바이 촬영을 위해 소형 카메라를 함께 사용했다"고 밝혔다. 영화 속 뭄바이가 사실적으로 묘사 된 이유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뭄바이는 인도 전국 각지에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대도시다. 감독 또한 뭄바이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다. 그는 배급사와의 공식인터뷰를 통해 “뭄바이는 여성들이 일하기에 다른 곳보다 더 나은 장소이기도 하다”며 “집을 떠나 어딘가로 일하러 간 여성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두 간호사 프라바(카니 쿠스루티)와 아누(디브야 프라바), 그곳의 요리사 파르바티(차야 카담)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카메라가 따라가는 그들의 삶은 고되다. 파르바는 정략결혼 직후 독일로 일하러 떠나 연락이 두절된 남편을 뒀다. 힌두교도인 아누는 종교가 다른 남성의 연애가 금기시된 인도에서, 이슬람교도인 시아즈와 만나고 있다. 파르바티는 면직공장에 다니는 남편을 따라 고향에서 이주했지만, 남편과는 일찍 사별하고 20여년 간 살아온 집이 철거 위기에 처했다.
프라바(왼쪽, 카니 쿠스루티)는 아누(디브야 프라바)와 다르게 현실 순응적인 인물이다. 규칙을 중요하게 여기고, 평판을 신경쓴다. 독일으로 떠나 연락이 두절된 남편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밥솥을 받았을 때도, 그는 밥솥을 사용하지 않고 숨겨둘 뿐이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이러한 모습은 인도 속 사회문제의 단면이기도 하다. 감독은 공식인터뷰에서 “재정적 자율성을 가질 수 있음에도, 고향의 가족들은 딸의 연애나 결혼에 대한 개인적 선택을 통제하는 분위기”라고 묘사했다. 카스트와 종교 문제가 잔존하는 인도의 모습, 재개발 열풍이 불고 있는 뭄바이 일부 지역의 상황도 반영됐다.

세 여성은 그들의 나이 차만큼 다른 삶을 살아왔다. 셋 중 가장 젊고, 애인과 주체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아누는 부모의 뜻에 따라 결혼을 한 프라바를 이해하지 못한다. 파르바티는 장성한 자식을 둔 중년의 여성이다. 그들에게 공통점은 뭄바이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셋의 우정은 성근 모양으로도 힘이 된다. 대도시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인도언론 인디안 익스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뭄바이에 일하러 온 사람들에겐 가족이 있지만, 도시에 있는 친구와 동료에게서도 새로운 가족을 찾는다”며 “나이가 들수록 나는 우정에 더 의존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줄곧 어두웠던 도시 뭄바이에서 벗어나 라트나기니를 찾는 주인공들은 복잡한 표정으로 햇살을 맞는다. 뭄바이를 떠난 공간에선 여유를 느낄 수 있지만 삶의 가능성이 제한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뭄바이의 빛은 모호한 모습이다. 건물에서 나오는 인공적인 빛이거나, 잠시 빛났다 사라지는 폭죽 정도다. 얼굴로 쏟아지는 햇빛이 그들을 맞이하는 서부 항구마을, 라트나기니에선 다르다. 이곳은 영화 후반부에 뭄바이와 비슷한 비중으로 다뤄지는 공간이다.

파르바티의 고향이자 그의 이주를 돕기 위해 프라바와 아누가 함께 향하는 이곳은 뭄바이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뭄바이를 벗어난 이곳에서 인물들은 더욱 자유로워진다. 내레이션이나 메신저 속 대화를 통해 소통하던 도시에서와 달리, 등장인물 간 직접 대화하는 장면이 잦아지는 연출이 대표적. 감독은 비가 오는 몬순 시즌(6, 7월)의 뭄바이와 몬순이 지나가 건조한 11월의 라트나기니를 담아 대비감을 극대화했다.

그들이 빛이라 상상한 것은 어디에 있을까. 빛을 ‘희망’으로 치환하면 뭄바이에, 글자 그대로의 ‘빛’을 떠올린다면 라트나기니와 같은 고향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숨 쉴 구멍이 되어주는 우정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고도 넌지시 말하고 있다. 15세 이상 관람가, 118분.



최혜리([email protected])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