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선종] 국수주의 득세 속 '약자의 대변인' 잃은 가톨릭, 기로에
미국·유럽 '자국 우선주의' 짙어지는데…진보적 목소리 내 온 교황 선종
미국·유럽 '자국 우선주의' 짙어지는데…진보적 목소리 내 온 교황 선종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약자들의 대변인' 역할을 해 오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시간) 선종하면서 가톨릭 교회가 갈림길에 섰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진단했다.
WP는 이날 바티칸시국발 기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기독교 조직인 가톨릭 교회의 역사에서 한 장(章)이 마무리됐다고 평가했다.
WP는 중남미 출신 첫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랫동안 혐오해오던 '민족주의'라는 관념이 서구 세계에서 다시 득세하고 있는 시점에 교황의 선종 소식이 전해졌고 짚었다.
종교적 위선을 지적하고 신앙의 문을 "모든 이들, 모든 이들, 모든 이들"에게 열어주려고 했던 '영적 지도자'의 죽음으로 가톨릭 교회가 분열과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한 차이를 노출한 채 갈림길에 섰다는 것이다.
12년이 넘는 재위 기간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교회가 이혼, 동성애, 피임 등 성(性) 관련 논쟁들로부터 벗어나서 기후변화, 이민, 인공지능 등 현대 사회의 이슈를 다루는 데에 더 집중하도록 유도했다.
또한, 교도소 수감자들의 발을 씻어주는가 하면 가톨릭 교회법상 인정되지 않는 이혼이나 재혼을 한 신자들과 성소수자 커뮤니티에도 접근하려고 노력하는 등 사목(司牧)적 관심의 범위를 넓혔다.
이 때문에 가톨릭 교회 내 전통주의자들의 반감을 샀으며 때로는 가톨릭 교리와 전통에 어긋나는 가르침을 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회 정의를 강조해온 프란치스코 교황은 국수주의와 민족주의가 발흥한 여러 유럽 국가들의 정부들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펴온 반(反)이민 정책을 비판하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또 가난한 이들이 인간으로서 존엄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기후 변화에 맞서는 노력을 장려했다.
교황 선종 당일 오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의 분수대 옆에 서 있던 오스트리아 수녀 브리기테 탈하머는 WP 기자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화와 정의와 사람들의 존엄성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는 점에서 '도덕적인' 목소리였다"며 "이제 누가 그 목소리가 될 수 있을까?"라고 말하며 우려를 드러냈다.
WP는 아울러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서양 양쪽(아메리카 대륙과 유럽 대륙) 모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세웠던 모든 대의명분은 공격에 처해 있다고도 지적했다.
또 프란치스코 교황이 혁명적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실질'의 변화보다는 '스타일'과 '어조'의 변화에 관한 것이었다며, 동성애가 "본질적으로 무질서"하며 "악하다"는 가톨릭의 공식 교리나 사제 결혼 불허 입장을 고수한 점을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성 부제(副祭) 서품 방안에 대해서도 연구와 토론은 허용했으나 실제로 여성 서품이 가능하도록 제도나 방침을 바꾸지는 않았다.
한편, WP는 앞으로 20일 내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콘클라베에는 교황 선거 투표권을 갖고 참가할 자격이 있는 추기경의 수가 135명에 이르러, 가톨릭 교회 역사상 최대 규모가 될 공산이 크다고 예상했다.
또한 이번 콘클라베는 역사상 가장 예측하기 힘든 콘클라베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교황청에서 주요 직책을 맡아 온 몇 명의 추기경들과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명망 높은 추기경들이 차기 교황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지만, 명확하게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력한 후계자라고 할만한 인물은 없다.
이 때문에 의외의 인물이 선출되거나 표가 갈려 여러 날에 걸쳐 선거 기간이 길어질 공산이 보통 콘클라베 때보다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교황청 출입 전문기자 겸 작가인 마르코 폴리티는 "(이번 교황 선거의 경우) 다른 때보다 새 교황이 콘클라베 전이 아니라 콘클라베 가운데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가톨릭) 교회는 극보수주의자들이 (진보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에 맞서는 '내전'을 10년 넘게 겪은 뒤" 이번 선거를 치르게 된다고 지적하면서 "다른 때와 다른 점은 유력한 후보가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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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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