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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빈자들의 벗’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기고 간 것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이듬해인 2014년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아 평화와 위로 그리고 화해의 메시지를 전했다. 사진은 2014년 8월 14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뒤 영접나온 내빈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는 교황 모습. 연합뉴스


첫 남미 출신, 가톨릭 개혁과 소수자 옹호에 힘써



한국과도 깊은 인연…포용과 소통의 메시지 울림

전 세계 가톨릭 14억 신자를 이끌어 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시간) 88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지난 2월 중순 폐렴으로 입원해 한 달여간 투병했던 교황은 전날인 20일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에 나타나 부활절 메시지를 전했을 정도로 회복하는 모습이었다. 갑작스러운 선종 소식에 가톨릭 신자는 물론 신앙의 차이를 넘어 그에게 감화된 사람들 모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교황청 궁무처장인 케빈 페렐 추기경은 선종 사실을 전하며 “(교황이) 특히 가난한 이들과 가장 소외된 이들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그의 사목 철학은 겸손과 청빈, 소통의 자세로 나타났다. 소수자를 옹호했고, 보수적 가톨릭 교회에 변화를 주는 데 단호했다.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2013년 첫 남미 출신이자 1282년 만의 비유럽권 출신 교황으로 선출됐다는 점에서 시대 변화에 따른 가톨릭 개혁이라는 과제가 그에게 주어졌다고 볼 수 있다. 2023년엔 동성 커플의 결혼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사제의 축복을 허용하기도 했다. 인사 개혁에도 적극적이어서 지난 2월 교황청 역사상 처음으로 수녀를 행정원장에 임명했다.

분쟁으로 얼룩진 세계 곳곳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종교 지도자이기도 했다. 2015년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에 관여했고, 2021년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이라크를 방문해 무장테러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생전 마지막 메시지는 이스라엘과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휴전 촉구였다.

‘빈자의 성자’ 성 프란치스코를 따라 교황명을 정할 만큼 소탈하고 청빈했다. 아르헨티나 추기경 시절 마피아가 마약을 유통하는 빈민촌을 찾아 사목 활동을 했고, 교구에서 제공하는 자동차를 마다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교황 즉위 후에는 ‘신의 대리자’이면서도 교황 관저 대신 일반 사제의 공공 숙소인 산타 마르타에서 기거했다. 2014년 4박5일간의 방한 기간에도 방탄 의전 차량 대신 한국산 소형차를 선택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은 교황의 아시아 대륙 첫 방문국이었다. 명동성당 미사에서 “한국인은 같은 언어로 말하는 형제자매”라며 형제가 죄를 지으면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는 남북 화해 메시지를 남겼다. 세월호 유족을 위로했고, 음성 꽃동네를 방문해 50여 분간 자리에 앉지 않고 행사를 소화했다. 지난달 출간된 교황의 자서전 제목은 ‘희망’이었다. 마지막 장에서 “저는 한낱 지나가는 발걸음일 뿐”이라며 “여러분도 이 길을 걸어 가십시오. 온유한 사랑과 용기로 이 싸움에 동참하십시오”라고 했다. 신앙의 차이를 떠나 우리 모두 큰 영적 지도자를 잃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안한 영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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