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김성중의 행복한 북카페] 인생을 수선할 수는 없었던 수선공

김성중 소설가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되어 열두 권의 책을 골라갔다. 어떤 책이 수술 후 통증을 달래줄지 알 수 없으니 골고루 가져가 보자는 심산이었다. 임상 시험해본 결과 통증에 효과를 보인 작품은 버나드 맬러머드의 장편소설 『수선공』이다. 유대인 야코프의 고통이 너무도 가파르고 생생해 내 고통을 납작하게 만들어 버렸으니까.

야코프 복은 소설에 입장할 때부터 최악의 상황이었다. 고아로 자라 손재주 하나로 살아왔지만 부서진 창틀이나 계단을 고쳐주며 얻는 것은 돈이 아니라 한 끼 식사가 전부다. 아이 없이 5년을 같이 산 아내는 외간남자와 떠나버렸다. 마침내 지긋지긋한 고향을 떠나 도시에 가서 벽돌공장에 취직할 때만 해도 운이 좀 펴나 싶었다. 그러나 열두살 러시아 소년을 죽이고 그 피를 유대인 종교의식에 사용했다는 누명을 쓴다. 그가 진범이라는 증거도 없이 오로지 유대인 신분을 감췄다는 이유만으로.

김지윤 기자
말하자면 음모론의 희생자가 된 셈인데 이것은 정치적 술수에 운 나쁘게 걸려든 상황이었다. 야코프는 감옥에 가서 굶주림과 징벌에 처하고, 알몸수색을 당하고, 결박되어 온몸이 묶이고, 점점 큰 고통 속에 빠져들면서도 무죄를 주장하고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아니, 고통이 그로 하여금 질문을 멈추지 않게 만든다. 이 소설은 무용한 고통이 인간을 어디까지 몰고 가는지, 끝내 굴복하지 않는 인간에게 고통이 무엇을 선사하는지 집요하게 밝혀낸다.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으며 탈출 방법이 끝없이 유예된다는 점에서 카프카를 떠올리게 하고, 끝없는 고통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성서의 욥기를 연상하게 만드는 야코프의 수난기는 어둡지만 지루하지 않다. 환상 속에서 러시아 황제에게 총을 발사하는 대목처럼 폭발적인 장면이 곳곳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다만 이 좋은 작품은 오로지 도서관에서만 빌릴 수 있는 절판 도서다. 작가의 또 다른 장편 『점원』도 못지않게 수작이니 이 책부터 접해도 좋을 것이다.

김성중 소설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