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의 행복한 북카페] 인생을 수선할 수는 없었던 수선공

야코프 복은 소설에 입장할 때부터 최악의 상황이었다. 고아로 자라 손재주 하나로 살아왔지만 부서진 창틀이나 계단을 고쳐주며 얻는 것은 돈이 아니라 한 끼 식사가 전부다. 아이 없이 5년을 같이 산 아내는 외간남자와 떠나버렸다. 마침내 지긋지긋한 고향을 떠나 도시에 가서 벽돌공장에 취직할 때만 해도 운이 좀 펴나 싶었다. 그러나 열두살 러시아 소년을 죽이고 그 피를 유대인 종교의식에 사용했다는 누명을 쓴다. 그가 진범이라는 증거도 없이 오로지 유대인 신분을 감췄다는 이유만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으며 탈출 방법이 끝없이 유예된다는 점에서 카프카를 떠올리게 하고, 끝없는 고통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성서의 욥기를 연상하게 만드는 야코프의 수난기는 어둡지만 지루하지 않다. 환상 속에서 러시아 황제에게 총을 발사하는 대목처럼 폭발적인 장면이 곳곳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다만 이 좋은 작품은 오로지 도서관에서만 빌릴 수 있는 절판 도서다. 작가의 또 다른 장편 『점원』도 못지않게 수작이니 이 책부터 접해도 좋을 것이다.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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