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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선 60대가, 하늘에선 70대가 불 끈다…인력·장비 노후화 심각[산불 한 달]

지난 1일 오전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지정면 판대리 산링청 산림항공본부. 헬기계류장에서 산불 진화를 마치고 온 초대형 진화헬기(S-64)의 세척 작업이 진행중이다. 박진호 기자
지난 1일 오전 강원도 원주시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헬기계류장. 산불 진화 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초대형 진화 헬기' S-64의 세척 작업이 한창이었다. S-64는 국내 도입된 산불 진화용 헬기 중 최대 담수량을 자랑한다. 4500마력의 엔진 2개를 장착한 S-64는 8000L의 물을 담고 최고 시속 213㎞의 속도로 날아갈 수 있다.

고압 분사 장비를 통해 고층 건물이나 바위가 많은 산불 현장에 직분사가 가능하다. 조종석에서 직접 물의 분사량·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전용 취수관(스노클·Snorkel)으로 40초 만에 물탱크를 가득 채울 수 있다.

김정길 산림청 항공안전과장은 “S-64는 다른 헬기보다 담수량이 최대 12배 이상 많아 큰불이 나면 상당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헬기는 지난달 경남 산청, 경북 의성, 지리산국립공원을 오가며 산불을 진화했다.
경남 산청 대형 산불 닷새째인 지난달 25일 오후 지리산과 인접한 산청군 시천면 구곡산 일대에 산불이 번져 산불진화 헬기가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S-64는 국내에 단 7대뿐이다. 이 중 2대는 정비하느라 이번 경북 산불에 투입하지 못했다. 산림청이 보유한 헬기(50대) 중 절반이 넘는(29대) 주력 헬기(KA-32)도 8대가 개점휴업 중이다.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헬기 제조사(쿠메프)를 제재 대상 기업으로 등재하면서다. 쿠메프가 제조한 부품을 우리나라가 수입하려면 미국 특별 허가가 필요하지만, 미국 정부는 한국의 허가 요청을 2023년 거부했다.

김원진 산림청 항공정비과 검사관은 “KA-32는 각각 25시간·50시간·100시간 운행하면 안전 예방 점검을 한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로터 블레이드 등 부품 수급이 어려워 정비 작업이 지연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일 오전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지정면 판대리 산링청 산림항공본부 헬기 계류장에서 미국 에릭슨사 제작한 초대형 진화 헬기(S-64)의 세척 작업이 진행중이다. 박진호 기자
정비하느라 바쁜 산불 진화 헬기
산불 진화용 헬기 수리온의 조종석. 여기서 직접 물의 분사량·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문희철 기자
더 큰 문제는 장비 노후화다. 산림청 헬기 중 사용 연수가 20년을 초과한 헬기가 33대(70%), 30년 이상이 12대(25%)다. 지방자치단체가 임차한 민간 산불 진화 헬기도 비슷하다. 강원도 인제군이 임차했다가 지난달 26일 경북 의성 산불 진화 과정에서 추락한 헬기는 1995년에, 대구 동구청이 임차했다가 지난 6일 추락한 헬기는 1981년 각각 생산했다. 기령으로 따지면 각각 30년·44년 된 노후 기종이다.

임차 헬기는 대부분 70대 안팎의 고령자가 조종한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간 임차 헬기는 젊은 조종사를 구하기 어려워 퇴직자를 재고용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산불진화대원의 평균 연령(60대)보다 더 고령자가 산불 헬기를 조종하는 셈이다. 실제로 의성서 추락한 헬기 조종사는 73세, 대구서 추락한 헬기 조종사는 74세였다.

김만주 산림청 산림항공본부장은 “통상 산림청·경찰·해양경찰·소방·군대에서 헬기를 몰던 사람들이 퇴직한 이후 ‘인생 2막’ 차원에서 경험을 살려 임차 헬기를 모는 경우가 많다”며 “산불 진화용 민간 임차 헬기를 모는 대부분의 파일럿이 70대 안팎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산불 진압 헬기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산불감시시스템. 문희철 기자
공중진화요원은 싸구려 마스크…“마스크 벗고 진화”
지난 2일 중앙일보가 방문한 서울산림항공관리소 산림재난상황실 모니터에 경남 산청 화재 현장이 송출되고 있다. 문희철 기자
헬기 등 장비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산불감시시스템도 한계가 있다. 지난 2일 방문한 서울산림항공관리소 3층 산림재난상황실 한쪽 벽면은 산림항공지원 현황을 실시간으로 나타내는 디지털 화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산림청이 관할하는 헬기 동선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고, 화재 발생 장소, 담수 가능한 저수지·소방용수 위치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산림청 소속이 아닌 헬기 위치는 파악이 불가능했다.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지난달 산불의 경우 지자체가 임차 헬기를 투입한 것은 물론, 경찰·해양경찰·소방에 주한미군까지 산불 진화 수단을 투입했지만, 현재 시스템으론 파악이 불가능했다.

김인석 산림청 서울산림항공관리소 기장은 “안 그래도 연기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운 산불 발생 지역에 소속이 다른 헬기를 투입하면 위치 파악이 어렵다”며 “각 기관 간 정보를 공유해 공중 공간에서 안전이 보장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산림재난상황실과 연동된 PDA 기기. 헬기 조종사가 이 기기를 들고 헬기에 탑승하면 산림항공관리소가 실시간 헬기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문희철 기자
산불진화차도 턱없이 부족하다. 산불진화차는 물탱크 용량이 800~1200L인 일반 산불진화차와 3500L급 특수진화차로 구분한다. 산불 진화에 유리하도록 최저지상고(46㎝)를 높인 특수진화차는 29대다. 나머지는 포터·봉고 등 1t 트럭이나 픽업트럭을 개조한 산불진화차다.

특수진화차조차 가격(7억5000만원)이 비싸고 덩치가 커서 좁은 산길에선 무용지물이다. 이 때문에 산림청은 기아에 의뢰해 군용 소형전술차량(K-351)을 개조한 다목적산불진화차량을 제작했다.

이 차량을 타고 화재 작업에 투입됐던 유현종 산림청 공중진화대원은 “특수진화차보다 물대포의 압력이 세고, 서스펜션이 안정적이면서도 차체가 특수진화차보다 작아 경사가 심한 산길에서도 종횡무진 진화가 가능했다”며 “산불 진화용 헬기가 못 뜨는 심야 시간에 물차 공급을 받으면서 5시간 연속해서 물대포를 쏘았더니 거센 불길도 못 버티고 진화되더라”고 말했다.
기아 군용차를 개조한 다목적산불진화차. 공중진화대원들에게 호평을 얻고 있지만, 현재 투입 중인 차량은 단 한 대 뿐이다. [사진 산림청]
이처럼 호평받는 다목적산불진화차량은 현재 단 1대만 운영 중이다. 이종수 산림청 기획조정관은 “이르면 연내 16대를 추가로 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산불 진화 현장에서는 산불 진화대원들에게 지급하는 마스크 장비도 열악하다고 지적한다. 한 공중진화대원은 “소방공무원에겐 화재 진압 전용 마스크를 지급하는 데 비해, 산림공무원은 산불 진화 전용 마스크가 없어 보건용 마스크를 지급한다”며 “보건용 마스크를 쓰고 산불 현장에 나가면 고글에 습기가 차고 휴대성도 불편해 마스크를 벗고 오염물질을 마시면서 진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소연했다.

선진국 시스템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의 산불화재정보기술프로그램(WFIT)은 연방정부·주정부 등 산불 진화 기관 간 통신이 가능한 단일 시스템이다. 화재 규모, 화재 확산 속도, 화재 진행 상황, 수목 폐사율 등 화재 관련 데이터를 유관 기관이 공유한다.

전문가들은 진화 인력 강화와 함께 산불 대응의 기동력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남성현 전 산림청장은 “담수량 1만L급 헬기를 도입하는 등 헬기 기종을 다양화하고, 산불진화차도 100대 정도는 있어야 갈수록 대형화하는 산불에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희철.박진호.황수빈([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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